‘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REVIEW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REVIEW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젊은 피아니스트의 청렴함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1월 26일
금호아트홀
사늘한 겨울 공기를 뚫고 도착한 금호아트홀에서 26세의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연주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과 묘한 호기심을 동반한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독주회를 보기 위해 금호아트홀로 가는 길 역시 그러했다.
선우예권은 서울예고 졸업 후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쳐, 현재는 매네스 음대에서 리처드 구드를 사사하고 있다. 2009 인터라켄 클래식스 콩쿠르 1위, 2012 윌리엄 카펠 피아노 콩쿠르 1위, 2013년 센다이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고, 지난해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 1위 수상으로 주목받은 연주자다. 차곡차곡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가 궁금했다.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K.Anh 205,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 퍼시 그레인저 피아노를 위한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산책’ 듀엣, 리스트 ‘순례의 해’ 2권 ‘이탈리아’ 중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 슈베르트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 D.935/2·D.935/3,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연주했다.
첫 곡인 모차르트부터 트릴과 꾸밈음이 또랑또랑했고, 오른손과 왼손의 조화는 선명했다. 이어진 퍼시 그레인저에서는 단단한 표현력이 돋보였다. 2부 첫 순서로 준비한 슈베르트에서 음악적 색채가 분명히 드러났는데, 그는 일방적으로 말하지 않고 작곡가와 세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느린 트릴마다 약간의 무거움이 느껴졌지만, 해석에 ‘과한’ 덧붙임이 없다. 마지막 곡인 라흐마니노프에서는 그만의 오라가 터져 나왔다. 찬란한 기교에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연주자의 면모다. 연주 내내,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작곡가 본연의 의도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젊은 연주자가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정석적 방법으로는 국제 콩쿠르 입상이 있다. 콩쿠르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실력과 인기가 상승하고, 사회적으로는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실현된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이 ‘젊은’ 연주자에게 커다란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청중이 남과 다른 ‘특별함’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은 차별을 위해 때로 ‘과한 해석’을 택하기도 하는데, 극한의 해석이 신선함으로 다가와 묘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많은 콩쿠르를 석권한 선우예권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해석보다는 청중에게 작곡가의 의도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같다. 음악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견고하게 다듬으려는 마음. 조용히 자신을 매만지고 키워내며, 음악으로 청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신선했던 점은, 곡이 끝나면 여운을 두고 청중의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연주자가 깊은 감정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는 늘 문제로 제기되곤 했다. 연주자의 쉼표 앞에서 여백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청중의 배려가 절실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진심이 전달된 것이다. 장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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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답
임현정 피아노 독주회
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임현정의 연주가 있던 날, 일찌감치 공연장에 도착한 나는 수첩과 볼펜을 양손에 야무지게 들고 그녀를 기다렸다. 이날의 연주 목록 중 첫 번째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열아홉 살 때 대입을 준비하며 1년간 열심히 쳤던 곡이다. 하이힐을 신고 팔짱을 낀 채 객석의 중앙에 앉아 ‘흠흠’ 헛기침을 하고 나니 왠지 심사위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명이 꺼지고 임현정이 새카만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했다. 박수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C단조 화음을 쿵 내려치며 빠른 속도로 음악에 몰입했다. 그녀의 ‘비창’은 완전히 새로웠다. 애통함을 그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절규하는 듯 보였다. 맹렬하게 몰아치는 스케일은 비극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듯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주는 완성된 작품으로서 청중에게 전달됐다.
임현정은 2012년, 데뷔 음반인 베토벤 소나타 전집 녹음(EMI Classics)을 통해 베토벤의 내적, 영적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자신만의 해석을 내보인 바 있다. 3000장에 이르는 베토벤의 편지를 읽고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등 그녀의 열정은 그녀가 직접 쓴 음반 해설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무대에서도 뚜렷한 주관으로 한 음 한 음 또렷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임현정은 이날 ‘열정’과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라흐마니노프 ‘소리의 그림 연습곡’을 들려줬고, 나는 연주가 끝날 때까지 수첩 위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무엇을 받아 적으려 준비했던 걸까. 연주자의 철학과 감성을 그저 느끼는 것이 훌륭한 감상법임을, 새삼 느꼈다. 김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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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에서 만난 잡곡밥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마티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2월 10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밥처럼 먹는 일상 오페라’를 표방하며 서울시오페라단이 2013년 8월 모차르트 ‘마술피리’로 돛을 올린 ‘오페라 마티네’. 올해 상반기 라인업을 보는 순간 ‘쌀밥보다 잡곡밥 먹을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이 잘 알고, 선호도 높은 작품을 지난해까지 올려온 ‘오페라 마티네’는 단맛에 씹기도, 소화하기도 편한 ‘쌀밥’이었다. 반면 올해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팔리아치’ 등 상대적으로 짓기도 까다롭고 꼭꼭 씹어야 하지만 건강엔 좋은 ‘잡곡밥’ 같은 레퍼토리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오페라 마티네’ 무대엔 1월 모차르트의 단막 오페라 ‘바스티엥과 바스티엔’ 풀버전에 이어, 2월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콘서트 형식으로 올랐다.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인데다 누군가는 ‘오페라단에서 웬 뮤지컬이냐’ 하겠지만,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등은 해외 오페라극장에서도 종종 공연하는 ‘오페라다운’ 작품이다. 게다가 족보로 치면, 뮤지컬은 오페라의 손자뻘 되는 장르 아니던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25년 전 세상을 떠난지라, 아직 유효한 저작권 문제로 서울시오페라단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뮤지컬 넘버 중 한국에서 연주가 가능한 곡을 모아 영상과 함께 콘서트 형식의 무대를 마련했다.
영상이 등장하는 콘서트의 경우 관객이 연주보다 스크린 속 영상에 시선을 뺏기거나, 영상과 라이브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영상과 연주의 비중, 서로 다른 플랫폼의 간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가 관건인데, ‘오페라 마티네’의 경우 첫 번째 문제를 공연 초반 영상으로 이해를 돕고, 이후엔 음악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수월하게 넘겼다. 반면 두 번째 문제?영상과 라이브의 간극?에선 플랫폼 전환 사이에 포즈가 많아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피아노·퍼커션으로 구성된 앙상블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곡 메들리 연주가 시작됐다. 대개 해설로 시작된 기존의 ‘오페라 마티네’와 달리, 오페라 서곡처럼 오로지 ‘음악’으로 작품의 서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한 프러포즈가 관객과의 첫 만남에서 효과적으로 다가왔다.
1950년대 복고풍 의상으로 차려입은 가수들이 차례로 뮤지컬 넘버를 소화하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띈 인물은 아니타 역의 메조소프라노 신민정이다. 푸에르토리코 여인들의 노래 ‘America’를 탁월하게 소화해냈는데, 음색도 좋거니와 유일하게 작품 특유의 싱코페이션을 살려내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반면 남주인공 토니(테너 이규철)와 여주인공 마리아(소프라노 이세희)의 이중창 ‘Tonight’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규모와 형식상 멤버 간 앙상블이 상대적으로 금방 들통(?)나는 것이 ‘오페라 마티네’에서, 두 사람의 노래는 세레나데임에도 오히려 대결구도를 연상시켰다. ‘어쩜 저렇게 호흡이 안 맞을까’ 싶은 생각이 1시간가량 진행한 공연 내내 가라앉질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대결(?)은 앙코르 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려는 프리마돈나의 씁쓸한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아쉬운 풍경은 객석에도 있었다. 지난해 시리즈의 상당수가 매진된 것과 달리 겨울 비수기 탓인지, 레퍼토리 탓인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400여 석의 3분의 1이 비어 있었다. 90분가량의 1회 공연이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여성 관객이 주 대상인 만큼 공연 콘텐츠와 연계될 수 있는 관객 개발 프로그램은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공들여 잘 지은 밥은, 여럿이서 먹을 때 더 맛있으니까.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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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묻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극 해롤드&모드
1월 9일~3월 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기쁨은 달려들고 행복은 스며든다’고 했던가. 사랑은 스며듦이다. 자살을 꿈꾸며 죽음을 동경하는 19세 소년 해롤드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80세 할머니 모드의 만남. 그러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이들은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리고 연민과 애틋함이 우정과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해롤드와 자유분방하고 천진난만한 모드가 처음 만난 곳은 장례식장. 죽음을 기념하는 곳에서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고 때로는 발랄하고, 때로는 진지한 만남을 지켜보며 관객 역시 잃어버린 순수와 사랑, 삶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에게 진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연극 ‘해롤드&모드’는 시나리오작가로 유명한 콜린 하긴스의 작품이다. 1971년 컬트 영화를 원작으로 1973년 각색을 거쳐 연극으로 변모한 뒤 프랑스에서 7년 동안 계속 공연했다. 그리고 1974년 베를린 르네상스 극장, 1980년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을 거쳐 큰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 그리고 80’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작품이다. 특히 배우 박정자는 2003년 처음으로 모드 역을 맡은 이후 지금까지 네 번의 연극과 한 번의 뮤지컬을 통해 꾸준히 80세 할머니 모드를 연기해왔다. 올해가 여섯 번째 무대다.
연출과 무대, 배우까지 모두 바뀌면서 새로운 무대를 선사한 2015년 ‘해롤드&모드’는 노련함으로 순수함을 연기할 수 있었던 배우 박정자와 신선함으로 진지함을 연기할 수 있었던 배우 강하늘의 특별한 조화가 인상적인 무대였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죽음의 가벼움’을, 80세 할머니가 꿈꾸는 ‘삶’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따뜻한 사랑 안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박정자와 강하늘의 개성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섬세한 표현, 유쾌한 음악, 서정적인 대사는 이 작품의 주제인 ‘인생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또 다른 장치였다. 자살을 꿈꾸는 19세 소년 해롤드가 유쾌한 80세 할머니 모드를 만나면서 진정한 삶과 사랑을 배워간다는 이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테마를 다루면서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프리즘으로 말이다. 국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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