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4월 1일 12:00 오전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슈베르트의 ‘음’과 ‘숨’을 만끽하다
김수연·임동혁 듀오 리사이틀 ‘슈베르트 포 투’
2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당신은 낙인을 찍지 않고는 이게 뭔지 보지 못하니까! 당연히 제대로 볼 수가 없지!” 최근 개봉한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은 ‘뉴욕 타임스’지의 평론가 타비타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모든 예술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규정짓는 타비타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술을 접할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곡이 슬픈 이유는 작곡가가 젊을 때 불치병에 걸렸기 때문이야’라든지 ‘저 연주자는 어릴 때 신동 소리를 듣고 자라서 화려한 것만 잘해’라며 단정짓기 쉽다. 선입관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한 감동을 변질시키고 한정된 감흥만 느끼게 한다. 머리를 비우고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이 예술을 대하는 현명한 자세임을, ‘똑똑한’ 어른들은 잘 잊는다.
지난 2월 3일,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과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슈베르트 포 투’라는 제목의 신보를 발매했다. 음반에 담긴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화려한 론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레퍼토리에 바이올린 소나타 D장조를 더해 2월 28일에 연주회를 열었다. 김수연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과한 의도나 연출이 담긴 연주에 거부감을 느낀다. 순간순간의 느낌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그녀는 이번 무대를 통해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였다.
한마디로 ‘본질’과 ‘자유’로 완성된 무대였다. 김수연과 임동혁은 슈베르트가 펼쳐놓은 ‘음’과 ‘숨’을 만끽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동등하게 노래하며 부딪치고 화해하는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가뿐하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시작해 명쾌한 보잉으로 끝맺음하는 순간까지 내내 생동감이 넘쳤다. ‘화려한 론도’에서는 마치 오케스트라 곡을 듣는 듯한 장대함이 느껴졌다. 화려한 기교의 바이올린과 촘촘하게 몰고 가는 피아노는 두 사람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는 피아노의 환상적인 트레몰로와 바이올린의 슬픈 듯 느린 노래로 신비한 이미지를 그려냈다. 다채롭게 변주된 후 처음의 트레몰로가 다시 한 번 연주될 때는 찬란함마저 느껴졌다.
젊은 두 연주자는 곡에 완전히 몰입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청중은 탄성을 터뜨렸다. 앙코르로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몬티의 ‘차르다시’를 연주하자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순수하게 작품에 접근하고, 진중하게 내면을 표현한 이들의 연주가 청중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선보일 음악 활동에도 의심이나 바람 없이 애정 어린 시선만 보내야겠다, 다짐하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김호경

봄날의 노스탤지어
대전시향 마스터스 시리즈 3
김대진·김화라 ‘아름다운 인연’
3월 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그들의 앙상블을 처음 본 것은 5년 전이다. 당시 훌륭한 교육자이자 음악가인 아버지와 바이올린을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딸이 함께한 무대는 호기심 많은 청중의 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3월 어느 봄날, 지휘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김대진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가 지휘자와 협연자로 다시 무대에서 만났다. 이전에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앙상블 파트너로 함께 호흡을 맞추기는 했지만, 이번 무대는 지휘자와 협연자로 만났기에 더욱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차가운 북구의 스산함이 선율에 녹아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김화라의 애수에 찬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되었다. 청명하면서도 쓸쓸한 고독감이 봄날의 따뜻한 분위기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김대진의 지휘봉과 함께 제2주제가 중후하게 전개되면서 곡 전반에 북구 정서의 랩소디풍 선율이 무대를 휘감았다. 2악장의 시작은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주고받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 바순과 호른의 불안정한 화음이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을 뒷받침하고, 3악장에서 팀파니 소리 사이로 화려한 바이올린 선율이 우수를 자아냈다. 김대진은 지휘봉과 눈빛으로 어둡고 격렬한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북구의 차가운 서정을 한눈에 펼쳐 보였다. 봄이 오나 싶더니 다시 겨울이다. 북구 특유의 신비를 간직한 바이올린 선율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일찍 찾아온 봄날의 서정을 진한 노스탤지어로 덮었다. 시벨리우스 음악의 진면목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국지연

꿈, 꽃이 피다 

박규희 클래식 기타 독주회
3월 12일
LG아트센터

객석’ 2015년 3월호 인터뷰에서 ‘기타리스트’로서 마음의 고향을 한국이라고 밝힌 박규희. 그녀는 예원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이민을 갔고, 이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지난해 나온 신보 ‘사우다지’까지 총 일곱 장의 음반을 발매한 그녀를 만날 수 있던 통로는 ‘음반’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국 데뷔를 오랫동안 꿈꿨기에 이번 공연을 ‘꿈’이라는 뜻의 에스파냐어 ‘수에뇨(Sue?o)’로 명명했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의 요람인 ‘남미’(루이지 레나니 카프리스 7번, 바흐 샤콘)와 류트의 부흥기를 이뤄낸 ‘유럽’(파울로 벨리나치 ‘종고’, 빌라로부스 ‘쇼루스’ 1번·연습곡 12번, 아구스틴 망고레 ‘숲 속의 꿈’ ‘대성당’, 알베르토 지나스테라 기타 소나타 Op.47)의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 레퍼토리는 페이스북 앙케트를 통해 팬들이 직접 선곡한 것이다.
들고 있는 기타가 다소 크게 느껴질 만큼 박규희의 체구는 아담하다. 하지만 작은 손으로 소리의 강약을 ‘요리’하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며, 곡 안에서 음색 전환이 천연덕스럽다. 작은 소리는 음악의 숨결이 귀에 닿은 듯 간지럽고, 악기 울림통을 뚫는 웅장한 소리는 심장을 쫀득하게 만든다.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아련하기도, 때로는 덤덤하기도 하다. 기교적인 부분에서는 손가락 진행이 민첩하다.
‘비주류’로 분류되던 악기들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베이시스트 성민제 같은 연주자를 통해 열기가 촉매됐다. 작은 음색 때문에 클래식 기타가 주목받기 힘들다지만, 한국에서도 ‘매력적인’ 선각자가 있다면 클래식 기타의 대중화는 실현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클래식 기타가 ‘미녀’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의 ‘스타성’과 동반하며 입지를 세웠다.
박규희는 한국에 대한 애정과 악기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 2007 하인스베르크 기타 콩쿠르, 2008 벨기에 프랭탕 기타 콩쿠르, 2010 빈 포럼 기타 콩쿠르, 2010 스페인 루이스 밀란 기타 콩쿠르, 2012 스페인 알함브라 기타 콩쿠르, 2014 폴란드 얀 에드문트 유르코프스키 기타 콩쿠르에서 1위를 한 ‘믿음직’한 보증도 있다. 그녀라면 클래식 기타와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객석 분위기는 유독 차분했다. 적막한 침묵 속에서 청중은 클래식 기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아하고 나긋나긋한 음색을 오롯이 받아들였다. 클래식 기타는 여느 악기보다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주된다. 심장을 타고 전율하는 박규희의 청초한 기타 소리. 드디어 화사한 꽃망울이 터졌다. 우리 음악계에도 클래식 기타의 봄이 오려나 보다.
장혜선

잘 ‘구경’하고 갑니다!
NT Live ‘프랑켄슈타인’
2월 25일~3월 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난 2월 말과 3월 초, 국립극장의 NT Live ‘프랑켄슈타인’ 상영 주간.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남산으로 향하는 여성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버스로 택시로, 또 걸어서 극장을 찾는 행렬이 흡사 순례자의 모습 같았다. 나이도 모습도 다른 ‘여성 순례자’들이 읊조리는 단어의 상당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가 출연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연극 팬뿐 아니라 영상 팬까지 남산으로 한데 불러모아 재미있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동기야 어쨌든, 누군가에겐 소문난 잔치(2012년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연기상·이브닝 스탠더드 어워드 남우주연상)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자, 다른 이에겐 ‘훈남 영국 오빠’를 대형 스크린으로 만나는 시간이었을 터.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같은 원작을 소재로 국내에 올린 뮤지컬(충무아트홀)이나 연극(연극열전)과 자연스레 비교해볼 만한 기회이기도 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피조물을 번갈아가며 연기한 두 버전을 모두 관람했다. 일찍이 피조물을 그저 ‘괴물’로 그려낸 영화와 달리, 연극에선 피조물에게 언어를 부여했다. 연출 의도에 따라 우리가 ‘피조물’에게 가장 크게 느껴야 할 감정 중 하나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 연민과 안타까움일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피조물이 좀 더 ‘심금을 울렸다’. 실연으로 봤다면 놓쳤을, 세세한 근육의 떨림과 시시각각 변하는 호흡을 카메라가 포착해낸 덕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괴물’인 그가 온몸으로 보여준 성장과정은 훗날 그가 겪은 비극을 더욱 애잔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같은 이유로 지난해 연극열전의 ‘프랑켄슈타인’에 오른 박해수 역시 이 배역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초에 한 바퀴를 돈다는 올리비에 극장의 고속 회전 무대장치, 피조물의 상태와 극적 상황에 따라 마치 생명체처럼 반응하는 무대 위 4000개의 전구를 ‘창조적으로 도입’하고 ‘기술적으로 컨트롤’한 것들을 보며 (2011년 작인데도!) 한 극장에, 한 예술 작품에 투여되는 놀라운 기술과 자본력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저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적인 프로덕션의 필수 요소, 테크니션과 크리에이티브 팀에 대한 재정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은 숙제다.
더불어 영상의 세로쓰기 자막은 고민해볼 문제다. 영상에 기본적으로 삽입된 영어 자막과 장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지만, 그만큼 유익함과 배려가 와 닿지는 않는다. 이 영상을 보는 관객의 상당수는 유아기부터 가로쓰기로 시작한 사람들 아니던가.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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