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노블 ‘Cherokee’

황덕호의 스탠더드 넘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하나의 곡, 다양한 흔적

1955년, 밴드 리더이자 작곡가인 레이 노블(1903~1978)의 마음은 지쳐 있었다. 영국 출신인 그는 정확히 25년 전, 패기 있게 미국으로 건너와 스윙밴드를 이끌며 히트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빅밴드 스윙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오십 줄에 들어선 그에게 더는 아무런 일거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레이 노블은 활동의 주 무대였던 LA에서 짐을 싸 샌타바버라의 한적한 해변에 집을 얻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통장에 작곡 인세가 마구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성기에 차트 정상을 차지하지도 않았던 그의 곡(그는 다섯 곡의 차트 1위곡을 발표했다) ‘Cherokee’를 통해서 말이다.

그 무렵 ‘Cherokee’는 재즈 연주자라면, 특히 비밥 연주자라면 누구나 정복해야 하는 ‘연습곡’으로 자리 잡았다. 작곡가인 레이 노블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다. 당연하다. 1950년대 당시 비밥 연주자들은 레이 노블이 연주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연주하고 있었고, 그 설계도를 그린 사람은 찰리 파커(1920~1955)였으니 말이다. 1955년, 아무런 일거리가 없어 은퇴한 한 밴드 리더가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완전한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리다 못해, 그 해 자신을 스스로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 혁명가로 인해 인세를 벌어들인 사실은 얄궂은 음악 비즈니스계의 한 모습이다.

원곡인 듯, 원곡 아닌, 원곡 같은 편곡 버전

오늘날까지 ‘Cherokee’를 연주하며 레이 노블의 연주를 듣고 고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이 곡은 찰리 파커의 곡이 돼 있었다. 모두 이 곡을 통해 파커의 스타일을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파커의 작품 제목 ‘Chasing the Bird’처럼 기이하게도 돈은 레이 노블이 버는 것이다. 음악은 오로지 작·편곡으로 만들어진다는 오랜 통념은 그들에게 지적 재산권을 부여했지만, 여전히 즉흥연주에는 아무런 권리도 주지 않고 있다. 모두 파커의 솔로를 베끼고, 따라 하고, 흉내 냈지만, 인세는 단 1달러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재즈가 통상적인 음악과 산업에서 얼마나 변두리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색소포니스트 리 코니츠의 말대로 만약 즉흥연주에 인세가 적용됐다면, 파커는 생전에 갑부가 됐을 것이다.

‘Cherokee’에 대한 찰리 파커의 아이디어는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싹 터 있었다. 훗날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것은 1939년, 19세 때 고향 캔자스시티를 떠나 뉴욕에 처음 도착해 접시닦이 일을 하며 밤에 잼세션 무대에 참여하던 때였다. “139번가와 140번가 사이 7번 애비뉴에 있던 (댄 월의) 칠리 하우스에서 잼세션을 가졌던 것이 기억난다. 1939년 12월이었다. 나는 당시 항상 연주되는 틀에 박힌 코드 진행이 지겨워지고 있었다. 나는 뭔가 도약할 방법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 소리가 귀에 들렸다. 하지만 연주할 수는 없었다. 음… 그런데 어느 날 밤, ‘Cherokee’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코드의 더 높은 음정을 멜로디로 사용하고, 거기에 맞는 코드 진행을 붙이면 새로운 방법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귀로 상상하던 그 소리를 이제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살아난 것이다.”


▲ 찰리 파커가 연주하는 모습 ©Ab Schaap

이듬해 찰리 파커는 고향으로 돌아가 제이 맥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941년,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시 뉴욕에 입성했다. 1942년, 맨해튼 지역에 송출되는 단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시에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냇 킹 콜 트리오와 버디 리치의 반주로 ‘Cherokee’를 연주했다. 이 녹음은 음질도 조악하고 여러 편집 음반에 실려 있어 추천 음반에 꼽을 수는 없지만, 이미 이때 ‘Cherokee’의 ‘현대적인’ 모습이 완성돼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레이 노블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 훨씬 빨라진 템포에 주제 선율을 지우고 코드를 레일 삼아 폭주하는 즉흥 선율은 재즈 연주의 급격한 진화를 담은 한순간이다.

찰리 파커는 ‘Cherokee’를 스튜디오 공식 녹음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가 속했던 사보이 같은 독립 레이블들이 인세 지출을 막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스탠더드 넘버의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아예 다른 곡을 만드는 관행이 있었다. 파커는 1945년 첫 리더 녹음에서 ‘Cherokee’의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만든 새로운 곡 ‘Ko-Ko’를 녹음했고, 이런 방식은 파커의 또 다른 곡 ‘Warming Up a Riff’, 원 마시의 ‘Marshmallow’, 서지 챌로프의 ‘Blue Serge’, 도널드 버드의 ‘The Injuns’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Cherokee’라는 제목 아래 찰리 파커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수많은 녹음이 있지만, 그중에서 소니 스팃(1950, Prestige Records), 레니 니하우스의 알토 솔로에 빌 홀먼이 편곡을 맡은 스탠 켄턴 오케스트라(1955, Capitol Records)의 연주는 탁월하다. 하지만 테너 색소폰 주자 조니 그리핀(1928~2008)이 6분여 동안 밀어붙인 이 곡의 녹음은 파커의 유산이 어떻게 ‘세상에서 색소폰을 가장 빠르게 부는 사나이’(평론가 랠프 글리슨)를 탄생시켰는지를 보여준다.(음반①)

찰리 파커의 설계도를 밑그림으로 자신들만의 탁월한 개성을 그 위에 부여한 연주로는 버드 파월(1924~1966)(음반②)과 조 패스(1929~1994)(음반③)의 연주를 꼽아야 한다. 파월은 탁월한 리듬과 화성 감각으로 환상적인 빛깔을 입혔으며, 패스의 무반주 기타 녹음은 마치 세상을 먼저 떠난 비르투오소 아트 테이텀이 기타리스트로 환생한 것 같은 화려한 기교로 악절 사이의 숨어 있는 음을 모조리 끄집어낸다.

‘Cherokee’는 빅밴드 편곡에서도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어니 윌킨스의 편곡(1955년 세러 본 녹음, 1959년 퀸시 존스 녹음)은 가장 고전적인 비밥 빅밴드 사운드로 꼽힌다. 하지만 GRP 올스타 빅밴드의 연주는 이 밴드의 4인조 트럼펫 섹션을 위한 초절기교 작품으로 빠른 속도·난기교의 솔리(soli)·숨 막히는 솔로 배틀 등 모든 면에서 이 곡의 컬렉터라면 놓칠 수 없는 명연주다.(음반④)

글 황덕호

KBS 1FM ‘재즈 수첩’을 16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 ‘평론가’보다는 ‘애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쓰고, 듣고, 틀고, 강의한다

이 달의 추천 재즈음반

1 Way Out

Riverside OJCCD 1855-2│연주 시간 6분 38초│1958년 2월 녹음│조니 그리핀(테너 색소폰)+케니 드루(피아노)/윌버 웨어(베이스)/필리 조 존스(드럼)

2 Jazz Giant

Verve 829 937-2│연주 시간 3분 37초│1949년 5월 녹음│버드 파월(피아노)+레이 브라운(베이스)/맥스 로치(드럼)

3 Virtuoso

Pablo PACD 2310-708-2│연주 시간 3분 34초│1973년 11월 녹음│조 패스(기타)

4 GRP 올스타 빅밴드 Live!

GRD Records 9740│연주시간 5분 8초│1993년 1월 녹음│아르투로 산도발·랜디 브레커·척 핀들리·바이런 스트리플링(트럼펫)/게리 린지(편곡)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