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전미숙·안성수·제임스 전, 무용평론가 문애령 좌담

길게 기억될 춤을 위하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우리나라 창작 무용 흐름의 중추에 서 있는 3인의 안무가와 무용평론가가 말하는 창작 무용계의 발전 제안

우리나라 창작 무용 흐름의 중추에 서 있는 3인의 안무가와 무용평론가가 말하는 창작 무용계의 발전 제안

예술은 ‘오늘’을 담는다. 시대를 대표하는 좋은 무용 작품의 탄생은 젊은 무용가들의 창작 활동과 연결된다. 현재 춤 창작에 매달리고 있는 무용가의 수가 늘고 있고, 안무가들은 자기만의 개성을 무대에 과감히 드러낸다. 해외 진출을 겨냥한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진다. 안무가들의 창작 활동은 한국의 동시대 무용 위상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우리나라 창작 무용 흐름의 중추에 서 있는 3인의 안무가 전미숙·안성수·제임스 전과 무용평론가 문애령이 동시대 안무 현장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따져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좌담은 11월 6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미숙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창작 무용, 지속적인 정책이 시급하다


▲ 문애령


▲ 제임스 전

문애령 최근 한국의 창작 무용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해외 무대에 작품을 올려도 과연 예술 선진국의 관객 수준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오늘 모인 세 안무가의 최근 무대를 보면서 이 정도면 한국 창작 무용도 국제적 수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창작 무용의 질이 높아진 이유는 무용 전공자들의 기량이 성장했고, 일부 무용 관련 지원책이 요즘 들어 결실을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안무가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임스 동감합니다. 초연 시 아쉬운 부분을 계속 수정해 작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재정적으로 힘들어 대부분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예산이 해결돼야 무용가들의 기량이 성장한 만큼 작품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안성수 특히 해외 투어는 지원이 없으면 힘들어요. 저는 한 작품을 계속 공연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고민했어요. 해외 극장과 관계있는 기획자들과 연결되어 초청 공연을 가졌죠. 이번 ‘투오넬라의 백조’도 기반을 갖춘 해외 컴퍼니에 포함돼서 작품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요즘 젊은 안무가들은 이런 라인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 해외에 나가면, 다른 페스티벌에도 계속 연결되어 초청받더라고요.

전미숙 초연을 한 뒤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은 작품이 있어요. 그 작품이 해외에서는 어떤 객관적인 평을 받을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 작품은 무대에 들어가는 요소가 많아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서울아트마켓(PAMS)을 추천해줬어요. 이번 오프닝 공연을 보니 해외에서 많은 기획자와 극장 스태프가 방문했더라고요. 여러 면에서 후배 무용가들이 처한 환경은 우리 세대와 많이 다르기에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아트마켓에 출품하려면 무대를 제작해 공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예산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문애령 한국 무용예술 정책의 전반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안무가들을 발굴하긴 해야겠지만, 직업 무용단을 20년 운영하거나, 해외 기획자들에게 뽑혀 2~3년 동안 여러 차례 초청 공연한 안무가들을 따로 관리하는 체제가 필요해요. 생계유지가 어려운 안무가들은 몇 번 지원하다가 외면해버리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거든요. 안무가를 육성한다고 예산은 왕성하게 투자하고, 나중에 남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낭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임스 전 유럽이나 미국은 안무가로 인정을 받으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어요. 직업 무용단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안무가가 되더라도 먹고살기 어려워요. 국내 발레단은 웬만하면 해외 안무가를 초빙하려고 하죠. 한국에도 현대무용이나 발레 상관없이 지역 무용단이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도 머스 커닝엄·피나 바우슈 작품을 하잖아요. 안무를 통해 무용 장르를 교류하고, 서로 발전하는 겁니다. 현재 한국의 무대감독과 조명감독은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극장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모든 것은 먹고살 만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발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런 점이 해결돼야 많은 사람이 안무에 더 관심을 보이고, 파고들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직업 무용단은 안무가를 고용하는 회사겠지요. 이 역할을 우리나라에서는 각 극장의 기획 공연이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획 과정에서 안무가와 출연진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현재 ‘댄싱9’ 출연진을 많이 영입하는 상황입니다.

문애령 만약 저보고 극장 기획 공연을 만들라고 하면, 저 역시 관객을 생각해야 하니까 대중매체에서 이름을 알린 무용가를 올리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댄싱9’ 자체가 우리 무용계에 과연 이득이 될까요. 그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주제를 선택해 안무한 분량이 굉장히 짧아요. 2~3분의 장면을 보고 감동했다고 극찬하고, 점수를 매기더라고요. 무용예술은 그런 식으로 평가 받을 만큼 단순한 예술이 아닙니다. 무용계 종사자 모두 비슷하게 생각할 거예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죠.

전미숙 ‘댄싱9’은 예술로서의 무용과 당연히 거리가 있어요. 하지만 현재 일반인은 물론이고, 사회 지도층 격인 사람들까지 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한 상태예요. 대중에게 춤이 저렇게 신날 수 있고, 열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린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안성수 아무래도 유명세를 타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론 좋은 기회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들은 ‘이쪽’으로 다시 오기 어려울 거예요. ‘이쪽’은 돈 벌기가 어렵거든요. 생리적으로 ‘이쪽’하곤 잘 안 맞는 거죠.

‘이쪽’이라는 곳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지요?

안성수 항상 해오던… 무용예술.

전미숙 처음 ‘댄싱9’ 프로그램이 출연 가능한 무용가를 알아볼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에게 많은 콜을 했어요. 간혹 학생들이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교수들이 나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요. 춤을 전공한 학생들이 다양하게 사회에서 활동하고 일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대중의 힘을 얻는 것은 무용가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과 부딪히면서도 안무의 순수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프로그램의 매력을 스스로 멀리 할 것 같아요.

짧은 방송 시간 동안, 일반 대중은 춤을 만드는 무용가들을 보며 ‘안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문애령 ‘춤이 단순한 기분 풀이가 아니라, 머리를 쓰며 만드는 거구나’라는 개념을 심어줬다면, 그것도 예술적으로 큰 교육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짧고, 충동적이며, 자극적인 스타일에 길들여진 시청자가 일반 무용공연장에 오면 실망할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의 역할이 방송처럼 ‘쇼업’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임스 전 발레 콩쿠르에선 1분 30초의 춤을 보고 상을 주죠. 그런데 실제로 발레무용가가 되고, 예술가가 되고, 오랫동안 무대에서 주역이 되려면 인격과 테크닉, 예술성을 갖춰야 합니다. 1분 30초 동안 춤을 잘 췄다고 그 사람이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니죠. 안무라는 것은 무대 경험과 예술 경험이 무르익어야 나올 수 있어요. 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좋지만, 열기가 금세 식을 것 같아요. 예전의 브레이크댄스 열풍같이 뜨거웠다가 한 번에 사그라질 수도 있지요.

안무가와 작품의 성장을 위하여


▲ 안성수


▲ 전미숙

안무가 발굴은 무용계의 필수적인 사업입니다. 안무도 교육이 될까요?

안성수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창작과가 꼭 안무가를 만드는 과는 아닙니다. 학생들은 설치미술가가 되기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모든 분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예전처럼 무용을 배우고 작품을 경험한다고 무조건 안무가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문사를 수료하려면 실험무용제를 두 번 해야 하는데, 40명이 넘는 사람들과 경쟁해야 공연을 할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반쯤이 적성에 안 맞아 학교를 떠납니다. 제가 줄리아드를 졸업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예요. 줄리아드를 졸업하면 백퍼센트 직장을 갖는다던데, 다 거짓말이죠. 졸업하기 전에 학생들의 반이 학교를 떠나고, 정말 직업을 가질 학생들만 학교에 남는 겁니다.

문애령 일단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하고, 선생의 역할은 여러 예시를 보여주는 거겠지요. ‘이런 식의 작업도 있고, 저런 식의 작업도 있다. 이렇게 많은 방법이 있는데 너는 네가 알아서 해라’ 이 정도가 교육일 것 같습니다.

무용의 특성상 무용가와 안무가라는 인적 자원이 국내외를 직접 넘나들어야 문화가 교류됩니다. 실제로 안무가들의 해외 경험이 한국 창작 무용계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문애령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성공한 안무가들은 여기 계시죠. 하지만 사라진 안무가들도 많습니다. 명맥을 유지하며 어렵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해외를 다녀오면 분명 안무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 자체만으로 안무가가 될 순 없어요. 무용가는 열심히 연습하면 되지만, 안무가는 그에 더해 연습실도 있어야 하고, 자기 생각을 전수해줄 출연자도 있어야 하죠. 다시 똑같은 예산 문제가 생깁니다. 음악으로 비유하면 안무가는 작곡가입니다. 연주가들은 악기만 있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얼마든지 연주하지만, 작곡가에게는 오케스트라라는 하나의 단체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무용가로 성공하는 것보다 안무가로 성공하기가 훨씬 어렵죠. 좋은 컨템퍼러리 작품이 나오더라도, 작품이 계속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순환구조가 없습니다. 안무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해외 경험을 하고 돌아와 꿈에 부풀어 작품을 만들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서 낙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요.

전미숙 젊은 안무가들이 해외 활동을 하고 많이 돌아오는데, 보통 ‘반짝’ 하고 사라지죠. 궁극적인 과제이긴 하지만, 안무란 자기 맛을 담아야 합니다. 해외에서 러브콜 받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보면 자기 색깔이 확실하게 있어요. 안무가가 여러 작품을 통해 인정받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을 거예요. 젊은 안무가들이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초연’이 ‘재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와 재연 후 해외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 마련이 시급하네요.

제임스 전 유럽은 일단 국가가 서로 가까워 이동하기가 편해요.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예술감독을 맡았던 체코 출신 이르지 킬리안은 자기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이 세상에 안무를 잘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안무를 보여줄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유럽에서는 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3년간 한 작품이 여러 곳에서 계속 올라가죠. 그럼 안무가들은 3년 동안 월급 받을 곳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연속적인 프로젝트가 될 수 없어요. 지방에서는 ‘백조의 호수’만 공연하고 싶어 해요. 컨템퍼러리 작품은 표가 잘 팔리지 않으니까요. 한국의 현대무용은 지방에서 공연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키우지 않으면 한국에서 훌륭한 안무가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문애령 안무가 육성을 위한 새로운 예산이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개선해 예산 분배를 잘하라는 뜻이죠. 안무가의 성과를 관리해가면서 3년, 30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지 괜찮은 예술가가 한 명 나오지 않을까요.

이 자리에 모인 안무가들도 각각의 메인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성공한 작품을 떠올리면서, 작품이 ‘괜찮게’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린 것 같은가요?

전미숙 저는 스스로 프로페셔널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알려진 것에 비하면 다작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작품을 만들고 레퍼토리화하지도 않았고요. 작품을 재연하면 처음 만들 때의 간절함을 잊어버려요. 하지만 몇 작품은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중 하나가 이번 6월에 재연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였어요. 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너무 신작만 요구하는 상황인 거예요. 창작산실에서 큰돈을 지원 받으면 좋은 신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죠. 신작이 아니라 재연작도 많이 유통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안성수 제 작품 중에서는 ‘장미’가 가장 많이 유통됐는데, 작품을 만들기까지 2년 걸렸고, 서울아트마켓에서 뽑혀 작품이 팔리기까지는 또 2년이 걸렸죠. 유럽 투어를 가고, 일 년 뒤 또 유럽 투어를 했습니다. 다른 재밌는 작품도 많은데, 하필 그 작품이 서울아트마켓에 선택된 걸 보면 운이 큰 작용을 하는 것 같긴 해요. 서울아트마켓에서 비행기 표를 지원해주니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작품을 초연해 5년 정도 꾸준히 선보인다면 성공한 케이스에 속하나요?

제임스 전 계속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전미숙 그럼요! 그 작품을 바라는 수요가 있다는 거잖아요.

제임스 전 저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다듬었어요. ‘빙1’은 1995년, ‘빙2’는 1996년, ‘빙3’는 1998년에 완성했습니다. 저는 서울발레시어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어요. 돈을 못 벌면 단원들 월급을 못 주거든요. 2000년에 김인희 단장이 발레단 수익을 위해 가족 발레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문예회관 대극장에 공동 작업 투자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생긴 작품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어요. 그 외에도 ‘백설공주’ ‘코펠리아’ 등 여러 가족 발레를 만들었습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레퍼토리가 참 다양한데, ‘호두까기 인형’도 고전 작품과 모던 작품을 갖고 있어요. 지방 공연장 기획자들은 관객을 모으기 어려워, 컨템퍼러리 작품을 꺼립니다. 지방 공연을 자주 가는 단체를 살펴보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제일 많이 가죠.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같이 레퍼토리도 클래식 발레 위주입니다.

동시대 공연예술 특징으로 ‘융·복합’이 대세입니다. 창작 무용 현장에서도 장르간의 협업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죠. 융·복합 공연예술 현장에서 무용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요?

문애령 요즘 다양한 분야가 섞이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마치 세상에 처음 존재하는 것처럼 강조하면 안 됩니다. 공연예술의 출발이 궁정 발레라고 하잖아요. 1581년에 여왕의 발레극(Ballet Comique de la Reine)을 연출한 책임자는 자신이 모던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춤하고 연극을 섞은 것이 오늘날 공연 예술의 모태가 됐어요. 이처럼 공연 예술은 원래 융·복합이었는데, 극단적인 순수예술까지 갔다가 포스트모던 이후 장르가 다시 융합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융·복합을 신기하단 식으로 홍보하면 공연예술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각 예술은 완전히 독립해서 잘 성장했죠. 이 시대의 융·복합은 다 큰 성인끼리 다시 한 번 모여보자는 겁니다. 누가 대장이 되어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협업이 되려면 그 안에서 각기 자기 영역이 충분히 빛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론상으로 좋은 융·복합 모델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공연을 보면 안무가의 역할이 의심되는 때가 있지요. 남한테 전권을 다 주고, 예산은 무용이 다 대는 식입니다.

전미숙 요즘 정부나 기관에서도 융·복합을 해야 더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융·복합은 이미 이전에 이뤄진 것이니, 시대의 흐름이나 장르의 진화, 실험을 통해 다른 형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새로운 융·복합 작업이 될 것입니다.

제임스 전 무용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젊은 안무가들을 보면서 걱정되는 부분은 유럽과 미국의 안무를 무작정 따라 한 카피 작품이 많다는 거예요. 자기만의 독특한 맛이 나와야 하는데 쉽진 않죠. 안무가끼리 서로 영향을 받긴 하지만, ‘누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더 해봐야지’ 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의 창작 무용 현장에 대해 다방면으로 살펴본 자리였습니다. 좌담에 참여한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좌담이 우리 무용계 흐름에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안무가 전미숙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현대무용을 전공, 영국 런던 컨템퍼러리 댄스 학교에서 현대무용과 안무법을 공부했다. 1981년부터 현대무용단 탐에서 무용가와 상임안무가로 활약했다. 1998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재직하며, 전미숙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3대 무용원 원장을 역임했다. 여전히 춤 교육의 통속과 자유, 포용에 대해 그리고 안무의 개별성과 경계에 대한 숙제를 푸는 중이다

안무가 안성수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줄리아드 대학 무용과를 졸업했다. 1991년 뉴욕에서 안성수 픽업 그룹을 창단했다.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 스크립스 험프리 와이드먼 리몬 안무상, 보니 버드 안무상을 수상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에게 안무란 먹고사는 수단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안무가 제임스 전

줄리아드 대학 무용과에서 수학했다. 유니버설발레단·국립발레단·플로리다 발레의 무용수로 활약했다. 1995년 순수 민간 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단하여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01년 ‘생명의 선’, 2002년 ‘이너 무브스’, 2004년 ‘12를 위한 변주’를 네바다 발레 시어터에 수출했고, 2008년 ‘이너 무브스’를 노바 발레에 판매했다.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생활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에게 안무는 요리이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무용평론가 문애령

이화여대 무용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 팡테옹 소르본 철학과에서 예술철학 DEA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평론집 ‘비평적 관점에서 본 무용예술’ ‘전환기의 무용예술’을 발간했다. 동시대 무용 현장을 꾸준히 기록하는 그에게 안무는 삶의 동반자 같은 존재다

자문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전성빈(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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