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
음악으로 마주한 인간미
보고 싶은 공연, 볼 만한 공연은 많은데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일 만큼 우리나라도 이제는 공연 문화의 강국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세계 최고 아티스트들이 한국 무대를 찾아오고 그들의 음악을 한국의 청중과 나누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긍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필자는 가끔 허망함을 느낄 때가 있다. 뭔가를 많이 들었는데, 혹은 연주자의 괄목할 만한 이력과 가공할 만한 기교에 탄성이 나오기는 했는데, 공연장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며 느끼는 공허함은 꽤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다. 반면 기교와 이력이 무의미할 만큼 마음을 채우는 공연을 가끔 만나는데, 그럴 때면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다.
11월 14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이츠하크 펄먼의 공연이 그런 연주였다. 연주가 시작되고 15분이 지나면서 청중은 연주자의 화려한 이력도,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기교도, 펄먼이 지닌 신체적 장애도 다 잊어버린 듯했다. 그저 브람스와 베토벤의 선율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마음까지 채우면서 최면에 걸린 듯 소리의 세계에 흠뻑 취했다. 70세 노장이 풀어내는 음악은 곧 그 사람이었고, 그의 삶이며 담담한 일상의 진술이었다. 거기에는 관중을 압도하려는 괴력 같은 소리도, 관객의 감흥을 고취시키려는 잔재주도, 과장된 기교도 없었다. 그저 담백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바이올린 선율로 전하려는 진지한 탐구와 노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 효과는 어떤 현란한 몸짓이나 과장된 소리보다 파장이 컸다. 관중은 비로소 작곡가가 의도한 음악의 본래 모습과 마주하고 있었다. 연주자에 의해 연출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음악은 관객의 귀를 지나 마음으로 파고들었고, 깊은 감동으로 가슴을 가득 채웠다.
17세기 작곡가 르클레르의 소나타는 절제미와 균형미를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정교한 성부간의 대화를 이끌어냈다. 브람스의 ‘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는 경쾌하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무게감을 잃지 않는 중후한 매력으로 가득했다. 베토벤 소나타 5번 ‘봄’은 피아노와 완벽한 조화 속에서 마치 봄의 향기를 맡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2부에서 연주된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는 여러 겹의 황홀한 음향으로 그림 같은 음악을 경험하게 했다.
피아니스트 로한 드 실바의 연주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진정한 컬래버레이션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감미롭게, 필요한 만큼의 크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절제된 연주가 갖는 아름다움으로 바이올린의 소리를 빛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또 하나의 살롱 음악회를 연상케 하는 앙코르의 향연은 이날 공연의 백미이자 연주자 펄먼의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했다. 다섯 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펄먼의 모습에서 자신이 지닌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싶어 하는 노장의 마음이 느껴졌다. 특히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삽입곡이던 존 윌리엄스의 작품은 자신의 민족을 향한 펄먼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청중은 ‘연주자 펄먼’을 넘어 ‘인간 펄먼’과의 만남으로 한동안 먹먹한 마음으로 박수를 멈추기 어려웠다. 연주자가 음악으로 청중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뤘다는 것은 가장 큰 찬사이자 환호다. 이츠하크 펄먼은 이런 찬사를 받아 마땅한 시대의 진정한 아티스트로 청중의 가슴에 각인됐다.
사진 크레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