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쇼스타코비치 전곡 연주 4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10월 22일
금호아트홀

젊음으로 파고든 깊이

‘저러다가 악기가 두 동강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내심 걱정이었다. 권혁주·장유진(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심준호(첼로)는 현란한 활 놀림으로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쥔 악기(樂器)는 오히려 화기(火器)에 가까웠다. 한편으로 대장정의 마지막 순간만을 목격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이번 공연은 금호아트홀 ‘러시안 시리즈’의 하나로 쇼스타코비치가 1938년부터 1974년까지 남긴 현악 4중주 15곡 전곡을 9월 3일(1·3·7·14번), 9월 10일(6·8·10·13번), 10월 15일(5·9·11·12번), 10월 22일(2·4·15번)에 선보이는 여정이었다. 곡의 특성상 유려한 선율보다는 단편적인 부분을 엮어 ‘전체’를 연출해야 한다는 특성으로, 4중주로 입을 모으다가도 개개인의 단면을 드러내야 하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통하여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 느낌이 들었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2번 Op.68은 약 42분 동안 진행됐다. 2악장에서 장유진·이한나·심준호가 만든 화음의 삼각형 위로 권혁주(제1바이올린)의 선율이 구슬피 지나갔다. 심준호는 3·4악장에서 묵직한 저음을 민첩하고 예민하게 꽂아 넣었다. 현악 4중주에서 빛을 발하기 어려운 비올라. 하지만 이한나는 제1·2바이올린과 첼로 사이를 탄력 있게 이어주며 중허리를 든든히 지켜내는가 하면, 때로는 바이올린보다도 치솟고, 첼로보다도 낮게 가라앉기도 했다.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 외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올림푸스 앙상블 등에서 활동하며 키워온 유연성이 빛을 발한 연주였다. 4번 Op.83은 장유진이 제1바이올린을 잡았다. 권혁주의 색채와 달리 쇼스타코비치에 담긴 지독한 건조함 속에서도 서정을 추구하는 음색이었다.

다시 권혁주가 제1바이올린을 잡은 15번 Op.144는 앞서 선보인 2번 Op.68과 4번 Op.83에 비하여 차분한 분위기의 곡으로 암전의 상황을 십분 활용한 점이 흥미로웠다. 본인들이 연주한 후에 받은 느낌을 더욱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랄까. 보면대에 부착된 스탠드의 불빛은 오로지 쇼스타코비치의 음표(악보)만을 비추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암전의 시공간에서 오로지 숨결로만 호흡을 맞췄다. 이어서 그동안의 추억을 서랍에 집어넣듯 3번 Op.73의 3악장과 10번 Op.118의 2악장을 앙코르로 선보였다. 잠깐의 모습을 통해 9월부터 이어온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1990년대에 전곡 연주가 유행한 적이 있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와 바흐·모차르트·베토벤이 주가 되었다. 보편적인 악기와 곡 중심이었고, 연주자는 대부분 교수급 중견들이었다. 지금의 전곡 연주는 악기와 레퍼토리 반경이 넓고 다양해졌다. ‘무르익었을 때’ 꺼내는 카드가 전곡 연주라는 그때의 관념과 달리 ‘무르익기 위한’ 자양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젊은 연주자(단체)들의 겁도 없어졌고, 긴 마라톤을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색다르게 주행할까 하는 고민도 하는 것 같다. 앞서 말한, 암전 속의 15번 Op.144처럼.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모든 공연이 끝났을 때, 같은 장소에서 2013년 8월에 노부스 콰르텟이 선보인 바흐의 ‘푸가의 기법’이 떠올랐다. 젊은 음악가들이 심연으로 뛰어드는 그 시도는 늘 아름답고, 늘 진한 기억을 만든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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