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윤디를 위한 변명

내한 공연 중 실수를 저지른 피아니스트 윤디. 그의 음악까지 절벽에 세울 필요가 있을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피아니스트 윤디의 내한 공연 이후 각종 언론과 SNS에 비난이 쏟아졌다. 윤디는 지난 10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데이비드 로버트슨/시드니 심포니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중 실수를 저질러 잠시 동안 연주를 중단시켰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쏟아진 보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마치 천재 피아니스트가 몰락이라도 한 듯 몰아가는 여론이 안타까워서이기도 하다. 연주회 당일, 리허설부터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 상황까지 쭉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피아니스트 윤디의 내한 공연 이후 각종 언론과 SNS에 비난이 쏟아졌다. 윤디는 지난 10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데이비드 로버트슨/시드니 심포니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던 중 실수를 저질러 잠시 동안 연주를 중단시켰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쏟아진 보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마치 천재 피아니스트가 몰락이라도 한 듯 몰아가는 여론이 안타까워서이기도 하다. 연주회 당일, 리허설부터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 상황까지 쭉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10월 30일 오후 5:30 리허설 윤디와 시드니 심포니의 리허설은 원래 오후 4시에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당일 오후에 시간이 바뀌었다. 공연 기획사 세나 뮤직+아트 매니지먼트(이하 세나)에 문의하니,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협의하여 순서를 바꾼 것뿐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기자는 일찌감치 객석에 앉아 하루 앞당겨 리허설을 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의 연주부터 오케스트라 연습까지 쭉 관람했다. 윤디는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 연습에 충실히 임했다. 연주 중간중간 로버트슨과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조율했다. 로버트슨이 발을 구르며 흥겹게 지휘봉을 휘두를 만큼 윤디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맑고 또렷했다. 매끄러운 테크닉과 경쾌한 터치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전날 새벽까지 연습했다던 그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전날 대구에서 호흡을 맞춘 만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윤디 모두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오후 8:00

본 공연 객석의 약 80%가량 관객이 들어섰다. 4년 만에 내한하는 시드니 심포니가 첫 곡으로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를 연주했고, 첫 내한인 지휘자 로버트슨은 명쾌한 연주로 첫 인사를 건넸다. 이어 윤디가 등장했다. 여기서부터는 널리 알려진 바대로다. 윤디의 연주는 엉망이었다. 1악장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발전부에서 오케스트라와 다른 마디를 연주하며 삐걱거리다 연주를 멈추고 말았다.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윤디는 왼손을 들어 로버트슨에게 손짓한 후 재빨리 몇 마디 앞으로 돌아가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로버트슨은 반쯤 돌아선 채로 윤디와 오케스트라를 번갈아 바라보며 불안한 지휘를 이어갔다. 오케스트라 역시 곡이 끝날 때까지 협연자의 호흡을 살피며 ‘눈치 연주’를 했다. 1악장에서 무너진 윤디의 연주는 2악장, 3악장에서도 완전히 바로 서지는 못했고, 상당수의 청중이 40여 분간 숨 막히게 불안한 광경을 지켜봤다. 사정을 모르는 관객들과 알면서도 격려를 보내는 관객들의 박수가 한동안 이어졌지만 앙코르는 없었다. ‘졸연’에 상심한 악장은 오케스트라를 그대로 놔둔 채 휙 나가버렸다.

오후 9:10

대기실 공연의 1부가 끝난 후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했던 기자는 무대 뒤 대기실로 향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윤디는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이메일로 대답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해가 갈 만한 상황이었다. (윤디는 인터뷰 질문에 회신하는 것을 일주일 간 고민하다 여론이 점점 악화되자 끝내 고사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예정되어 있던 사인회는 아티스트의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됐다.

10월 31일

오전 12:00 윤디의 SNS에는 ‘나는 내일 당신을 놀라게 해줄 거야!’라는 말과 함께 핼러윈을 떠올리게 하는 두 장의 사진이 게시됐다.

10월 31일과 11월 1일

SNS를 통해 윤디의 이야기가 퍼졌다. 윤디의 실수에 연민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 잘 몰랐던 청중이라면 누구의 잘못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는 것, 그리고 연주를 망치고도 핼러윈을 즐기는 듯한 그의 사진에 실망감을 느끼는 이가 많았다. 이는 수많은 언론 매체의 보도로 이어졌다. 세나의 서유진 이사는 “이날 본사에 프레스 티켓을 요청해 공연을 관람한 기자는 10명 미만”이라고 밝혔다. 물론 티켓을 구입하여 연주회를 관람한 매체도 있을지 모른다. 주말 내내 수십 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윤디가 지휘자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2·3악장에서 불만스럽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으며(한 언론은 손수건을 집어던졌다고 오보했다), 연주를 마친 후 누구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고 도망치듯 공연장을 빠져나갔다는 내용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줄줄이 올라왔다. 얼마 전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보고 배울 만한 상황이 연출되었다며 다행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이는 다시 SNS를 타고 확산되었다.

이후 벌어진 일들

11월 2일 월요일 하루 동안 세나는 쇄도하는 티켓 환불 요청에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약 100통의 전화에 대응해야 했다.

윤디는 중국판 SNS인 웨이보에 ‘이틀 전 서울 공연에 대해 사과드린다. 실수에도 포용과 지지를 보내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어떠한 설명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지만 싸늘해진 여론은 풀어지지 않았다.

한 음악평론가가 개인 SNS에 올린 내용을 세나가 말한 것이라 잘못 보도한 어느 매체의 실수로 윤디 측이 세나에 유감을 표하는 일도 있었다. 세나가 윤디의 소속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다는 소문 역시 한 언론사의 과장 보도로 인한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연주회, 레코딩 리스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협주곡, 슈만 환상곡, 쇼팽 발라드·프렐류드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하더라도 윤디가 청중의 믿음을 저버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자만해졌다거나 한국 무대를 만만하게 여겼다는 식의 오해도 최근 몇몇 무대에서 그가 보인 무성의한 태도와 경솔한 언행이 자초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연주상의 실수가 각종 추측성 글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로 인해 윤디가 피아니스트로서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묘사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수상과 연관 지어 그를 비난하는 것도 한국 클래식 음악계 전체를 바라봤을 때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그의 이번 내한 연주를 관심 있게 지켜본 기자로서, 또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으로서 그가 부디 오해를 딛고 실력으로 일어서길 바란다.

사진 유니버설 뮤직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