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접어든 이브라기모바의 에너지가 이제 서울에 흐를 시간이다
2015년 7월 31일과 8월 1일 밤 10시 15분.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Alina Ibragimova)가 BBC 프롬스의 심야 공연, ‘레이트 나이트 프롬스’에 연거푸 올랐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와 소나타 전곡 연주회 시리즈였다. 로열 앨버트홀의 5,200여 좌석은 매진됐고 1,000여석의 입석도 당일 매진됐다.
2015시즌 프롬스는 예산 삭감의 고육책으로 솔로 주자들의 특별 독주 프로그램을 편성했는데, 언드라시 시프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요요 마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과 함께 이브라기모바의 바이올린 시리즈가 한 축을 이뤘다. 앞선 두 거장의 이름값과 비교해 아직까지 국내에선 큰 인지도가 없지만 이브라기모바의 영국 내 위상은 메뉴인 음악원 동기인 스코틀랜드 바이올린 주자 니컬라 베네데티(1987년생)와 함께 갈수록 탄탄해지고 있다.
2016년 1월 첫 날, 영국 왕실은 안무가 매튜 본(1등급 GBE)과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단장 타마라 로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이상 3등급 CBE), 말콤 마르티누(4등급 OBE)와 함께 이브라기모바(5등급 MBE)에게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했다. 오직 영국 국적자에게만 주어지는 상훈이다. 1985년 소련 우랄 지역에 위치한 폴렙스코이에서 태어난 이브라기모바는 1996년 부친을 따라 런던으로 왔고 지금도 영국 국적을 갖고 있다. 20년을 영국에 살았지만 이브라기모바의 허스키한 영어 엑센트에는 강한 러시아 억양이 묻어 나온다. 느리지만 정제된 어휘를 사용하려는 의지에서 그녀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음악과 말투가 닮았다고 표현한다.
여러모로 국내에 생소한 알리나 이브라기모바가 서른을 넘겨 한국에 첫 내한한다. 3월 31일 금호아트홀에서 비버(파사칼리아)와 바흐(파르티타 2번), 이자이(소나타 3번)와 버르토크(독주 소나타)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으로 프로그램을 채웠다. 내한공연은 일본과 이어지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일본에선 이브라기모바의 독주회를 거의 전담으로 반주하는 피아니스트 세드리크 티베르기앵이 동반하고, 이브라기모바가 참여하는 시대악기 현악 앙상블, 키아로스쿠로 현악 4중주단이 열도 여행을 함께 한다.
영국 음악계 중심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알리나 이브라기모바는 전형적인 음악가 가정에서 자랐다. 부친은 영국으로 건너와 런던 심포니에서 더블베이스 수석으로 일했고 모친 역시 바이올린 교사였다. 영국 이주 초기,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던 이브라기모바는 닥치는 대로 새 문물에 적응하고자 애썼다. 일흔 명 규모의 메뉴인 음악원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어울리던 친구가 베네데티였다. 둘은 답답할 때면 학교 밖으로 나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1998년 유네스코 인권선언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메뉴인 지휘로 베네데티와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공연한 것이 그들의 우정을 상징한다.
모친은 메뉴인과 하이페츠, 레핀의 명반을 들려주며 이브라기모바가 안네 조피 무터를 롤모델로 성장하길 바랐지만 그녀가 끌린 쪽은 실내악이었다.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만 봐도 다비트 오이스트라흐·기돈 크레머·토머스 체트마이어로, 어머니의 의도와는 조금씩 방향이 달랐다.
이브라기모바는 2002년, 17세에 런던 심포니 장학금을 받고는 경연은 그만 나가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연구할 음악들이 콩쿠르에서 평가받을 성질이 아님을 확신했고, 집중한 것이 바흐의 무반주 세트였다. 대개의 러시아인들의 접근이나 메뉴인 음악원에서 가르치던 내용과는 달리 비브라토를 억제한 역사주의 해석에 관심을 기울인 게 10대 후반부터다. 빠르고 경쾌한 보잉과 최소한의 비브라토는 유연하지만 근육질의 연주로 돌아왔다. 비슷한 디아스포라를 겪은 빅토리아 뮬로바가 수십 년에 걸쳐 얻은 변화를 이브라기모바는 몇 년 안에 경험했다.
학교를 졸업한 그녀를 영국 음악계의 중심 인물로 견인한 곳은 BBC였다. 2005년부터 2년간 BBC 라디오 3 뉴제너레이션 아티스트로 선정되면서 영국의 주요 메이저 악단과 협연을 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찰스 매커라스, 존 엘리어트 가드너로 대표되는 고음악 전문가들과 교류했고 2005년엔 왕립 음악원 출신들과 함께 고전주의 음악의 역사주의 해석을 지향하는 키아로스쿠로 현악 4중주단을 창단했다.
아울러 게르기예프, 유롭스키 등 러시아 지휘자들과 교분을 쌓으며 협연자로서의 중량을 늘렸고 2007년 하이페리언 레이블과 전속 계약이 시작되면서 영국 밖으로 실력이 알려졌다. 2007년 위그모어홀에 데뷔해 2010년대 들어 공연장 기획 공연의 정규 주자로 발돋움했다. 위그모어홀 라이브로 발매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은 달라진 이브라기모바의 위치를 확인할 최적의 기록물이다. 독주회에서 현대 악기를 쓸 때도 기본적으로 거트현을 사용하고 키아로스쿠로 현악 4중주단과 함께 할 땐 클래식 활을 사용해 고전 피치로 연주한다. 키아로스쿠로 멤버들과는 공연이 없어도 매달 5일 가량 공동 연습을 목표로 삼았는데, 네 명 모두 다른 도시에 살고 지난해 이브라기모바가 가정을 가진 이후 앙상블 운영에 변화도 감지된다.
이브라기모바는 지휘자의 단일한 지시를 오케스트라와 함께 수행하기보다, 지휘자 없는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할 때 보다 자연스런 음악이 나온다. 크레메라타 발티카, 브리튼 신포니아,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 함께 할 때는 “모든 음악은 실내악을 지향한다”는 자신의 주관을 단원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이 표정에 역력하다. 스케줄이 협주곡과 실내악, 리사이틀로 고루 분포되어 있고, 시대악기와 현대악기의 사용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레퍼토리의 개척에선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사사한 테츨라프의 영향도 보인다.
BBC 뉴제너레이션에 함께 뽑힌 이래, 리사이틀 반주를 도맡는 티베르기앵 이외에 자신의 스타일과 통하는 추가의 건반주자도 고려할만 하다. 악보에 충실한 연주보다 당일 현장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하느라 가끔씩 즉흥적인 프레이징에서 난조를 겪는 경우 역시 발전의 한 과정이다. 신선한 음색과 질주하는 생명력. 막 서른에 접어든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의 에너지가 이제 서울에 전해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