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륙, 5인의 오르가니스트

조금 특별한 음악 여행자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다섯 대륙 오르가니스트들의 ‘정통성’과 ‘지역성’을 마주하다

한곳에 머물며 유구한 세월을 담아내는 파이프오르간. 오르간 연주자는 각 대륙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악기를 찾아 나선다. 역사를 이어가며 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오르가니스트의 특권이다. 그렇기에 오르가니스트를 ‘조금 특별한 여행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한국 오르간 순례지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 설치는 우리나라 양악사에 상징적인 사건이자 업적이다. 한국에서는 1950년 이후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는 교회가 늘어났다. 하지만 파이프오르간은 매우 고가이며 설치가 까다로워 보급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1978년에 설치된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은 ‘국내 공연장 1호 파이프오르간’으로, 한국 오르간 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독일의 카를 슈케(Karl Schuke)사 제품으로, 6단의 손 건반, 8098개의 파이프, 98개의 스톱을 지닌 거대한 규모. 총 13개월 동안 제작됐고, 설치 기간만 3개월이 걸렸다.
거문고를 본떠 만든 겉면, 전통 가옥 지붕을 연상케 하는 상단, 범종 32개의 음색까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드러낸 파이프오르간이다.

과거와 현재 잇는 우리 시대 오르가니스트들

매년 쉽고 다양한 파이프오르간 프로그램을 기획, 오르간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올해는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까지 다섯 대륙을 대표하는 오르가니스트들을 초청했다. 마이클 엉거(캐나다 태생), 마레크 슈테판스키(폴란드 태생), 제러미 조지프(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 토머스 헤이우드(오스트레일리아 태생)가 한국을 찾아온다. 아시아 대표로는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파이프오르간시리즈 ‘피터와 오르간’에 참여해 호평을 받은 오르가니스트 김지성이 합류한다.
공연은 이틀간 진행된다. 27일 ‘바흐의 밤’은 오르간 음악의 대표 작곡가인 바흐의 작품 양식을 전체적으로 살펴본다. 28일 ‘눈부신 오르간의 밤’은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오르간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더불어 각 대륙을 상징하는 작품을 출신 작곡가들의 내공이 담긴 연주로 만날 수 있다. 바흐를 뿌리 삼아 단단한 줄기로 이어지는 오르간 레퍼토리를 전반적으로 훑어보고, 오르간 음악의 동시대적 의미를 묻는 의미 있는 자리다. 다음은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5인의 오르가니스트와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를 기초로 구성한 가상 대화.

이번 공연은 다섯 대륙의 정체성을 지닌 5인의 오르가니스트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각국마다 오르간 교육에 독특한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지성 파이프오르간은 설치된 건물의 고유한 음향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유럽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자연적인 음향을 밀접하게 느끼며 성장해, 어떤 악기를 마주해도 스스로 음색을 찾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아시아는 파이프오르간 수가 적어 학생들이 여러 오르간의 다양한 음향을 파악해본 경험이 드뭅니다. 그래서 아시아 학생들은 새로운 공간의 악기를 만나면 음색을 만드는 것을 낯설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동양권 학생들의 건반 테크닉은 정말 우수한 편이죠!
마레크 슈테판스키 지난해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을 했죠. 한국의 오르간 연주자들도 많은 해외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어요. 폴란드에선 보통 중학생 때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해요. 그 전에는 피아노로 기본기를 익히죠. 그 시기에 테크닉을 꼼꼼히 다듬는 것이 좋아요. 폴란드에서 기본적인 공부를 마친 학생들은 보통 더 넓은 배움을 위해 유학을 가는 편이에요.
마이클 엉거 오늘날에는 교육의 장이 세계로 뻗어 있어요. 어디서 공부를 하든지 간에 오르간이란 악기의 테크닉, 즉흥연주, 순발력 등 모든 면을 철저히 훈련해야 합니다.

문화적 요소가 음악을 표현하거나 해석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줄까요?

토머스 헤이우드 호주의 파이프오르간 역사는 1800년대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유럽과 북미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이죠. 그 영향 때문인지 저는 근대 이후 오르간 레퍼토리에 관심이 있는 편이에요.
제러미 조지프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 12년 동안 살고 있어요. 긴 역사를 지닌 오스트리아 음악 문화에 흠뻑 빠져 있죠. 빈 음악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빈 궁정 예배당에서 빈 소년 합창단, 빈 필하모닉과 매주 합주를 하며 지내는 삶은 정말 즐거워요. 오르가니스트로서 마음의 고향을 빈이라고 생각할 정도죠.
마레크 슈테판스키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는 생활환경이 영향을 주기도 하고, 연주자 개인의 인격이 성숙해지며 변하기도 해요.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음악적 깊이도 달라지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갖고 작품에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공연에서 27일에는 바흐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바흐는 오르간 음악의 황금기였던 바로크 시대에 독일 오르간 작품의 형식을 완성했죠. 그 형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현대에 활동하는 오르가니스트에게 바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러미 조지프 오르가니스트들은 바흐가 오르간에 기여한 열정에 감사해야 해요. 바흐의 음악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것 이상으로, 기술적으로도 오르간과 완벽히 부합하죠.
김지성 바흐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중 교회의 견제가 가장 심했죠. 교회 관계자들은 바흐의 음악을 세속적이라고 치부했습니다. 바흐 시대의 예배 음악은 가능한 조용하고 단순해야 했으니까요. 바흐는 결국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 옮겨 다녀야 했어요. 당시 바흐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 유행하는 모든 음악 스타일을 꿰뚫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만의 음악으로 재창조했습니다. 이러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바흐뿐 아니라, 당대의 모든 클래식 음악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죠.

파이프오르간은 다양한 음색과 폭 넓은 음역대를 갖췄죠. 따라서 오케스트라 곡을 오르간 곡으로 편곡하는 작업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르간을 위해 작곡된 곡’과 ‘오르간을 위해 편곡된 곡’을 연주할 때 차이가 있나요?

김지성 오르간을 위한 편곡 열풍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당시 영국은 도시마다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는 붐이 일었죠. 많은 사람이 오르간 작품뿐 아니라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오르간으로 듣기를 열망했어요. 다양한 오르가니스트가 클래식 음악을 오르간으로 편곡했고, 이후 이러한 유행이 세계로 퍼진 것입니다.
제러미 조지프 오르간을 위해 작곡된 음악은 처음부터 악기의 기술적 가능성을 고려해 만들어져서 연주하기가 수월해요. 편곡된 작품은 오르간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여러 악기의 특성이 담겨 있어요.
마이클 엉거 특히 원곡이 교향곡인 경우 연주가 까다롭죠.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개성을 살리면서, 오르간 본연의 음색과 균형을 맞춰야 해요.
토머스 헤이우드 오르간을 위해 ‘제대로’ 편곡된 작품이라면, 처음부터 오르간을 위해 작곡된 곡과 같은 사운드가 나옵니다. 재밌는 점은, 일반 대중에겐 오르간을 위해 편곡된 곡이 더 친숙하다는 것이죠. 보통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오르간을 위해 편곡하니까요.

파이프오르간은 악기를 찾아가서 적응하는 시간을 보낸 뒤에야 연주할 수 있습니다. 악기마다 건반의 느낌과 음색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짧은 시간 안에 악기에 적응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마이클 엉거 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별적으로 소리를 낼 때와, 콤비네이션으로 소리를 낼 때, 전체적인 음향 환경까지도 고려해야죠. 힘들지만 보람 있는 과정입니다.
김지성 맞아요. 음색 하나하나의 특성과 볼륨을 파악해야 하죠.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인토네이션을 누가 했는지에 따라 악기 스타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설치된 오르간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느 회사 제품인지’ 규모와 음색을 파악한 뒤에 악기와 어울리는 레퍼토리로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오르간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동시대 오르가니스트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토머스 헤이우드 ‘어떻게 하면 관객이 오르간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해야 돼요. 관객에게 오르간에 대한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오르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에요.
제러미 조지프 오르가니스트들은 보통 교회에서 연주를 많이 하는 편이죠. 하지만 교회에 설치된 오르간은 대부분 관객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반대로 콘서트홀의 장점은, 청중이 오르가니스트의 연주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관객이 손과 발을 이용한 독특한 오르간 연주법을 본다면, 분명 흥미가 생길 거예요.
김지성 한국은 오르간 기획 연주가 많지 않아서, 대중이 오르간 음악을 접하기가 매우 어렵죠. 해외 공연장처럼 오르간이 설치된 곳은 상임 오르가니스트를 선정하며 매 시즌마다 다양한 오르간 연주회를 기획한다면, 대중도 파이프오르간과 한결 가까워질 것입니다.

 

5대륙 5인의 오르가니스트 프로필


김지성 아시아
한국 태생. 독일 쾰른 음대에서 빅토어 루사스를 사사했다. 1994년 쾰른 필하모니에 데뷔해 유럽, 중국, 일본, 호주 등 총 63개국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서울신학대 교회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이클 엉거 아메리카 
캐나다 토론토 태생.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을 최우수 졸업했고, 미국 이스트먼 음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가르치고 있다


마레크 슈테판스키 유럽 
폴란드 제쇼프 태생. 요아힘 구르비흐를 사사했고, 세인트 메리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며 본격적으로 오르가니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폴란드 크라쿠프 음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제러미 조지프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태생. 뤼베크 음대에서 마르틴 하젤뵈크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서 위르겐 에슬을 사사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빈 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빈 호프카펠레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토머스 헤이우드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태생. 열일곱 살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데뷔했다. 멜버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세인트 앤드루 성당의 음악감독이며, 멜버른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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