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일신홀
음악과 텍스트의 독특한 공존
TIMF앙상블은 작곡가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곡가로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은 한스 베르너 헨체(1926~2012)를 선택했다. 그를 언급하는 데 있어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는 사회주의와 이탈리아 두 가지 아닐까 싶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반공 정서가 강한 때에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냈으며, 또한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직선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그는 신변의 안전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주해야 했다. 이러한 헨체의 입장은 음악에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글과 음악의 결합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이는 드라마로 이어져 20세기 중반 음악극이라는 장르가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TIMF앙상블의 이번 연주는 특히 글과 음악의 결합에 대한 헨체의 남다른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비교적 초기작인 ‘미의 존재’(1963)와 완숙한 시기의 ‘눈에 대한 세 개의 노래’(1989), ‘거룩한 밤’(1993)이 그들이다. 프로그램의 첫 곡은 바리톤과 플루트를 위한 ‘거룩한 밤’으로, 작고 높은 음성, 낭독, 크고 우렁찬 음성 등 목소리의 다양한 표현으로 모노드라마적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이에 반해 무심한 듯 우아한 플루트 연주는 어색한 두 세계가 공존하는 듯한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헨체가 경험한 세상은 이러한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곡인 ‘미의 존재’는 의미심장한 시어로 가득한 랭보의 시, 세 대의 첼로와 하프의 독특한 앙상블이 만드는 섬세하고 고결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헨체는 상징주의 텍스트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했을 테지만,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음악가’ 헨체의 이상 세계를 담고 있었다. ‘눈에 대한 세 개의 노래’는 ‘거룩한 밤’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역시 성악의 다양한 극적 표현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소프라노와 바리톤, 그리고 8중주의 비교적 큰 앙상블은 가사와 악기, 노래의 배열 등 다양한 성격의 조합으로 서로 뒤엉키며 시가 내포하는 불안한 정서와 어우러졌다.
이날 공연에서는 2곡의 기악작품도 함께 연주됐다. 헨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음악극 ‘도망친 노예’를 쿠바 출신 기타리스트 레오 브라우어가 자유롭게 재조합해 편곡한 ‘도망친 노예에 대한 기억’(1970)으로, 한 대의 기타만이 무대에 올랐다. 원곡의 이야기와 특유의 직설적인 성악의 극적 표현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현대적 주법이 만드는 다양한 음향 자체가 극적 개연성을 띠고 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청중으로부터 강한 집중력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고, 프로그램의 중심에 배치되어 흡사 헨체에 대한 추모식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 했다.
마지막 곡은 8중주를 위한 ‘네 개의 환상곡’(1969)으로, ‘미의 존재’와 ‘도망친 노예’ 사이에 작곡된 곡임에도 또 다른 음악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부산하고 거친 분위기는 원곡이 갖고 있던 횔덜린의 시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 곡에서 환상적인 음색을 들려주며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헨체의 시대정신에 대한 사고와 예술이 갖는 동시대적 의미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 또한 오늘날 유의미하다. TIMF앙상블의 이번 공연은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에 대한 함의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특히 음악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헨체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사진 TIMF앙상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