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영감, 숲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낭만, 신비, 공포가 가득한 초록의 시공간에서 길어 올린 음악들

숲 | 수풀.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들어찬 곳

더운 여름날에 나무들이 얽혀 만든 숲의 그늘은 피부로 다가온다. 서늘하다. 그래서 숲은 촉각의 시공간이다. 숲은 나무들이 모여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란 사전적 의미로만 단정될 수 없는 감성적 공간이다. 그곳은 도피와 은둔의 공간이며, 고독과 사색의 공간이자,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의 뇌리에 가장 먼저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뒤져보아도 숲은 작곡가들의 산책로가 숨어 있는 공간이자 영감과 소재를 안겨주는 곳이기도 했다. 산책을 즐긴 베토벤이 많은 작품 구상을 나무로 우거진 산책로에서 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전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6번은 난청이었던 그가 자연을 청각 외의 다른 감각으로 음미하기를 즐겼으리라는 추측을 해보게 하는 교향곡이다.

낭만의 숲

독일 가곡의 전통을 보면 베토벤부터 자연의 소재가 노래 속에 꽃피우기 시작했다. 자연물에 대한 감정이입은 베토벤 이후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로 이어졌다.

영화 ‘파리넬리’(1994)의 감독으로 유명한 제라르 꼬르비오의 ‘가면 속의 아리아’(1987)에서 노스승과 소프라노 제자가 마차를 타고 숲을 거닐다 비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노스승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던 여제자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비를 그대로 맞으며 숲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진다. 그 장면에 흐르던 말러의 교향곡 4번 중 3악장은 비에 젖은 푸른 숲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비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들을 적에도 사랑과 숲과 비가 한데 섞여 있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브람스가 비에 젖은 숲을 보며 감상하라고 작곡한 곡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저녁 무렵 제자는 노스승에게 돌아온다. 노스승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비에 젖은 숲으로 뛰어 들어가 어떤 생각을 하다 나왔을까…

노스승은 창가에서 슈만의 가곡 ‘리더크라이스’ 중 다섯 번째 곡인 ‘달밤’을 부른다. 곡이 그리는 달밤은 가수가 지닌 낭만적인 감성만으로는 그려내기 어려운,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곡이다. 이 가사에도 숲이 나온다.

“마치 하늘이 조용히 대지에 입맞춤하는 듯한 밤, 바람은 불어 풀은 물결치고, 숲은 은밀히 속삭인다.”
노래를 들으며 창밖에서 노스승을 바라보던 여제자의 뺨은 젖어 있던 빗물과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한데 섞여 있다.

공포의 숲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무더운 여름밤에 오싹한 냉기를 불어넣었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밤과 숲이 주요 배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반부에 늘 “이 이야기는 ○○도 ○○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라는 식으로 끝나는 드라마였다.

숲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려움의 시공간이었다. 우리에게 동화로 알려진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의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15세기부터 독일 각지에 퍼진 영아 살해 관련 민담을 모티브 삼아 지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배경 역시 숲. 반나절은 걸어야 끝이 보이는 독일의 깊은 숲이다. 키 큰 전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대낮에도 어둑한 이 숲들은 온갖 동화와 기담(奇談)의 산실이었다. 버려진 아이들과 그들을 향해 식욕을 불태우는 마녀는 미로 같은 숲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림 형제의 잔혹 동화는 작곡가들에겐 인기의 소재였다. 독일의 훔퍼딩크는 ‘헨젤과 그레텔’을 토대로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림 형제의 민화집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중 ‘노래하는 뼈’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말러는 ‘탄식의 노래’를 작곡했다. 이 이야기 역시 숲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 동화다. 이야기에는 신비의 숲속에 피는 붉은 꽃을 찾아오는 사람과 혼례하겠다고 선언한 여왕, 붉은 꽃을 찾아 나선 형제, 아우가 꽃을 찾아내자 그를 죽여 버드나무 밑에 묻고 꽃을 강탈한 형, 아우의 뼈를 우연히 발견해 그것으로 살인의 전모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등장한다. 결국 혼례식에 참석한 음유시인이 여왕과 형 앞에서 플루트를 불어 살인의 전모가 밝혀지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말러는 빈 음악원에 수학하던 17세 때 이 곡을 작곡했는데, 그는 숲을 살인과 공포의 기운이 가득 곳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신비와 신성의 숲

숲은 신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베르디의 ‘맥베드’는 초입에 마녀가 등장하는 숲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하나의 교향곡은 곧 하나의 세계’라고 말한 이는 말러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 3번의 도입부에서 모든 악기는 제각각 소리를 내며 숲과 대지의 울음을 묘사한다. 그리고 3악장에서 숲의 짐승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오케스트라가 묘사하는데, 이는 숲의 정령들이 속삭이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양사상은 숲속의 어느 것 하나도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물신관을 기본으로 한다. 어린이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 치부할 수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모노노케 히메’(1997) 역시 만화의 형식을 빌려 이러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으로 그 숲을 더 신비롭게 영상화했다.

악기가 태어나는 숲

생각해보면 현악기와 목관악기는 모두 숲에서 나온다. 소설가 김훈은수필집 ‘풍경과 상처’에 이렇게 썼다.

‘한 그루의 대나무를 들여다보는 인간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대나무는 비어 있고 단단하고 곧다. 인간은 악기를 만들 수도 있고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속 빔에 가 닿을 때 인간은 거기에 구멍을 뚫어 피리를 만든다. 저 자신이 비어 있는 존재들만이 음악을 이루는 소리를 생산해낼 수 있다.’

숲과 그 속의 나무는 죽어서 인간에게 악기와 음악을 선물한다. 숲과 나무가 없다면 인간에게 음악도 울림도 없는 것이다.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지가 되었던 숲은 현대인들에게는 휴식의 쉼터가 된다. 여름이 가기 전에 숲으로 가보자. 조용한 그곳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조용히 걸어보자. 아마 오선지에 그릴 수는 없다고 해도 자신만의 악상이 떠오를 것이다. 그곳은 낭만과 신비, 혹은 공포가 가득한 신비한 초록색 시공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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