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초 부소니 ②

COMPOSER OF THE MONTH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이상을 노래한 음악의 파우스트

1866 이탈리아 엠폴리에서 출생
1900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완성
1904 피아노 협주곡 작곡
1907 ‘새로운 음악미학에 대한 스케치’ 출판
1912 오페라 ‘신부 선택’ 초연
1924 베를린에서 사망
1925 오페라 ‘파우스트 박사’ 초연

페루초 부소니는 항상 ‘작곡 중’이었다. 그러나 연주자로서 지극히 바쁜 삶을 살며 작곡에 집중할 수 없었던 그는 작곡가로서 명함을 내미는 데 주저했다. 1896년에는 “피아니스트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작곡가라는 사실은 감추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레퍼토리급 작품을 내놓는데, 바로 바이올린 소나타 2번(1898/1900)이다. 빠르고 경쾌한 이탈리아 무곡 타란텔라가 등장한 후 쉼 없이 바흐의 코랄 ‘오, 영혼의 친구여, 내가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얼마나 좋은가’에 의한 6개의 변주곡이 연결된, 이탈리아와 독일적 특성이 혼합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곡가로서 부소니에게 매우 중요했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으로부터 나만의 작곡법을 처음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이 곡을 ‘나의 첫 번째 작품’이라 말한다.”

초월적 이상을 그린 피아노 협주곡


▲ 부소니가 직접 그림으로 나타낸 피아노 협주곡의 구조

부소니는 이어 기념비적 작품, 피아노 협주곡을 발표한다. 1901년 작곡에 착수한 그는 “한번 중단되면 결코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며 2개의 런던 연주회를 취소할 정도로 작품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1904년 완성된 결과물은 모두 5악장으로, 한 시간이 넘는 길이에 마지막 악장에는 무대 뒤 남성합창까지 등장하는 대규모 협주곡이다. 이 신기한 협주곡은 초연에서 혹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부소니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합창, 관현악이라는 특이한 구성에서 베토벤의 ‘합창 환상곡’과 비견되곤 한다. “교향곡의 외형을 가진다”는 본인의 해설에 따라 19세기 교향적 협주곡의 후손으로 볼 수도 있다.

부소니의 전기 작가인 에드워드 조지프 덴트는 피아노 협주곡의 형식에 대해 “분석하기 어렵다. (…) 주제가 악장을 넘나들며 변주되는 방식 때문이다. 이 곡은 전체를 하나로 보아야 한다. 부소니는 항상 이 곡이 쉼 없이 연주되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부소니는 특이한 형식으로 과거의 거장과 구별되는 독창성을 내심 내세우고 싶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 악장의 남성합창에 대해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언급하며 이 곡이 독일 전통의 연장선에 있음을 암시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음악적 특성을 혼합하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부소니는 작품에 “이탈리아 선율과 리듬이 녹아 있다”며 “실제 3곡의 이탈리아 민요가 사용됐으며 분명한 이탈리아풍 프레이즈가 빈번히 등장한다. 4악장은 나폴리 사육제의 일종으로, 타란텔라가 고도로 발전된 형태”라고 부연했다. 덴트는 2·4악장에 나폴리 민요가 쓰였으며 4악장에는 이탈리아 포병대의 행진곡이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형식에 대해서라면 1902년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그린 특이한 건물 그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 건물은 1·3·5악장을 의미합니다. 그 사이의 두 생물은 스케르초와 타란텔라입니다. 첫 번째는 특이한 꽃과 새로, 두 번째는 베수비오 산과 사이프러스 나무로 상징됩니다. 입구 위로 해가 뜨고, 건물의 뒷문은 단단히 봉인되어 있습니다. 끝의 날개와 같은 것은 아담 욀렌슐레게르(Adam Oehlenschläger)의 시에 붙인 합창으로 자연의 신비를 상징합니다.”

건물은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전을 연상케 하는데, 신과 자연이 조화된 이미지를 그린다. 이 그림은 악보 표지에 인쇄됐다. 5악장의 남성합창에 대해서는 1921년 덴트에게 “협주곡에서 합창단이 보여서는 안 되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소리를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 해 전, 부소니가 음악학자 후고 라이히텐트리트에게 했던 말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느 해 질 녘, 나는 스트라스부르 성당에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남성의 소리가 들려왔고, 소년들이 반대 방향에서 응답했다. 협주곡의 느린 악장(5악장)에서 이 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호세 비아나 다 모타는 부소니가 자신에게 “이 협주곡은 사람의 일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1악장 ‘삶의 영광, 신비, 부름에 대한 기대’부터 2악장 ‘수천 가지 환상적인 계획이 있는 젊음’, 3악장 ‘내적 화합을 위한 진지한 투쟁으로 성숙함’, 4악장 ‘삶의 거친 욕망으로부터 마지막 도피’, 5악장 ‘영원에서 의식적이고 냉정한 침잠’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부소니는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이미지를 중첩함으로써 자신의 초월적 이상을 음악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걸작의 행진

피아노 협주곡 이후 부소니는 주요 작품들을 연이어 완성했다. 1904년부터 이듬해까지 카를로 고치의 연극을 위해 ‘투란도트 모음곡’을 썼으며, 1917년에는 오페라 ‘투란도트’로 발전시켰다(이는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보다 9년 앞선다). ‘투란도트’는 부소니가 “나의 진정한 두 번째 작품과 세 번째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과 ‘투란도트’다”라 말할 정도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사이 E.T.A. 호프만의 이야기를 기초로 작곡한 오페라 ‘신부 선택’(1906~1911)도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오페라 부파를 모델로 삼은 코믹 오페라로, 베르디의 ‘팔스타프’의 영향을 받았다. 1912년 베를린 초연은 호평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부소니가 이탈리아인으로 여겨진 까닭에, 이탈리아적 인상이 담긴 ‘신부 선택’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한 여성은 평소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를 오페라 부파를 쓸 적임자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소니는 이렇게 응수했다.

“유머는 진지함이라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그 진지함은 ‘신부 선택’의 등장인물인 레온하르트에서 드러난다. 그는 연금술사이자 “순식간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초인 같은 인물이다. 부소니 연구가 안토니 보몽은, 호프만이 그랬듯 부소니도 레온하르트에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고 본다.

또한 ‘신부 선택’은 ‘시간의 편재(the omnipresence of time)’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로시니의 오페라 ‘모세’ 중 ‘히브리인의 행진’과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예프테’, 미국 음유시인의 노래, 독일 민요, 군대 팡파르, 그레고리안 성가, 유대교 찬송 등 다양한 인상이 담겼으며, 자신의 작품도 짧게 인용했다. 이렇듯 작품 속에 시공간이 멀리 떨어진 음악들을 공존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음악의 초월적 지배자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피아노 작품 ‘6개의 비가’(1907)와 ‘청년에게’(1909), ‘대위적 환상곡’(1910) 등도 중요하다. ‘비가’는 이탈리아 스타일과 바흐의 코랄, ‘투란도트’ 등 부소니 자신의 음악을 모아놓은 ‘부소니의 편재’와 같은 모음곡이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모습을 담았다”며 ‘비가’에 애정을 표했다. ‘대위적 환상곡’은 바흐 ‘푸가의 기법’의 마지막 미완성 푸가 주제를 기초로 한 곡으로, B(B♭)-A-C-H(B) 주제를 사용했다. 부소니는 이 곡의 구조도 ‘피아노 협주곡’처럼 직접 그린 건축물에 빗대어 설명했다.

‘새로운 음악 미학에 대한 스케치’

‘신부 선택’을 작곡 중이던 1907년, 부소니는 “오랫동안 숙고한 신념의 결과”를 모아 ‘새로운 음악미학에 대한 스케치’를 출판했다. 부소니는 이 글에서 “예술 작품의 정신은 (…) 시대가 바뀌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J.S. 바흐와 베토벤을 음악의 원류라 정의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시작인 것일 뿐 넘어설 수 없는 끝은 아니다. 작품의 형식이나 표현법은 창작된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이어 “음악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자유를 얻는 것이 음악의 운명이다”라는, 니체나 바그너의 사상을 음악으로 가져온 듯한 결론을 맺는다. 이는 연주자들의 권리와 역할과 연결된다.

“감성적인 해석자로서 연주는 예술이 지닌 고도의 자유로부터 파생한다. (…) 작곡가의 영감은 필연적으로 기보를 통해 잃게 되기에, 연주자는 자신의 영감으로 복원해야 한다.”

책은 부소니의 철학적 고찰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부소니의 남다른 식견을 보여준다. 무조적인 표현이나 한 옥타브를 12음 이상으로 나누는 등 시대를 앞선 음악을 제시하기도 했다.

‘파우스트 박사’로 선포한 이상


▲ 피아노 앞에 앉은 부소니


▲ 막스 오펜하이머 ‘페루초 부소니의 초상’(1916)

부소니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작품은 오페라 ‘파우스트 박사’였다. 1906년부터 ‘파우스트’를 소재로 여러 시도를 하던 그는 1914년 12월 베를린에서 괴테의 소설 이전에 쓰인 ‘파우스트 박사’라는 인형극 대본을 발견했다. 부소니는 이를 기초로 며칠 만에 직접 대본을 작성했다. 그리고 1916년 9월 드디어 작곡을 시작한다. 그러나 수많은 연주회를 다녀야 했고, 클라리넷 소협주곡(1918), 플루트 디베르티멘토(1920), 피아노 소협주곡(1921), 클라비어위붕(연습곡, 1918~1922) 같은 상당한 양의 작품을 완성하는 등 ‘파우스트 박사’에 집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파우스트 박사’는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작품은 부소니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25년 그의 제자인 필리프 야르나흐가 완성해 드레스덴에서 프리츠 부슈의 지휘로 초연됐다.

‘파우스트 박사’는 ‘새로운 음악미학에 대한 스케치’에서 제시한 의견을 반영한다. 부소니는 “가사는 항상 진정한 효과에 장애가 된다”고 여겼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래 속 이야기는 ‘믿을 수 없고 비현실적인 사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페라는 ‘초현실적 주제’를 가지고 마법 거울이나 왜곡된 거울로서, 실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삶을 반영한다.”

부소니는 자신의 대본을 “의도적으로 연결성을 떨어뜨리고 파편적으로 보이게끔” 구성했다. 또한 쇼펜하우어적인, 불멸하는 삶의 의지로서 죽음 후에도 존재하는 결말을 짓는다. ‘신부 선택’의 레온하르트와 마찬가지로, 초월적 이상을 지닌 자신을 파우스트에 투영했다.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의 마지막 대사에서 자신의 이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나는 법 위에 서 있다. 모든 세대를 포용하며, 인류는 영원히 나 자신과 하나가 된다. 나 파우스트는 영원한 의지다!”

부소니는 파우스트 박사의 이상을 이루었을까? 아니면 끝내 미완으로 그쳤을까? 노먼 레브레히트가 두 달 전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밝혔듯, 그는 안타깝게도 “유럽 문명의 잃어버린 거물”로서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초 음악사에서 지나칠 만한 한 페이지의 구석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럽의 음악을 통합해 ‘음악의 편재’를 이뤘다는 이상을 실현한 표본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의 의지가 오늘날 음악을 넘어 다방면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대답은 긍정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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