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하는 독일 관현악의 선명한 본질
‘89세의 현역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Herbert Blomstedt)가 독일 중견악단의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와 처음 한국을 찾는다. 10월 26~27일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5·6번, 슈베르트 교향곡 ‘미완성’,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공연한다. 주로 대서양 양단을 오가는 오랜 음악 여정 동안, 일본은 자주 들렀지만 서울과의 인연은 지금껏 닿지 않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스웨덴계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블롬슈테트는 두 살 무렵 부모의 고국으로 건너갔고 지금도 스웨덴 국적이다. 어려서 5년 간 핀란드에 거주했고, 노르웨이 오슬로 필(1962~1968), 덴마크 국립교향악단(1967~1977), 스웨덴 노르셰핑 심포니(1954~1962), 스웨덴 방송교향악단(1977~1982)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하면서, 북유럽 모든 국가의 정서를 심신으로 섭렵했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노르웨이의 그리그, 덴마크의 닐센, 스웨덴의 프란츠 베르발트·빌헬름 슈텐함마르에 모두 정통할 뿐더러, 이들을 ‘북구’로 뭉뚱그리지 않고, 개별 특성을 분명히 구현해왔다.
1954년 스톡홀름 필에서 데뷔한 이래 30·40대 시절엔 북유럽에 포스트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에 꾸준히 객원 지휘를 나갔다. 2011년 아르농쿠르를 대체해 빈 필은 84세의 블롬슈테트를 데뷔시켰는데, 1959년 피에르 몽퇴도 같은 나이에 빈 필에 처음 오른 에피소드가 함께 회자됐다.
블롬슈테트가 독일에 진입한 건 40대 중반부터다. 동독 시절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이하 SKD)에서 예술감독(1975~1985)을 수행하는 동안 유럽 각지와 미국·일본 투어를 진행했고, 지명도도 점점 높아졌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앨범이 이 시기를 증명한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1985~1995) 수석지휘자 시절엔 악단과 유럽으로 건너가 에든버러·잘츠부르크·루체른 페스티벌을 공략하며 신비감을 키웠다. 이 시절, 데카에서 남긴 시벨리우스·닐센 교향곡 시리즈부터 한국에서 큰 시차 없이 그를 공감할 수 있었다. 1996년부터 2년간 북독일 방송교향악단 감독을 지냈고, 쿠르트 마주어에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1998~2005) 감독도 맡았다. 오페라에는 SKD 시절 베토벤 ‘레오노레’에 관심을 보였고, 주로 순수 관현악에 침잠했다. 모든 감독직에서 은퇴한 건 2006년이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블롬슈테트가 감독직을 맡지 않았음에도 1982년부터 쌓아온 신뢰에 힘입어 명예 지휘자로 영입할 수 있었다. NHK 심포니 역시 1986년부터 명예 지휘자로 그와의 관계를 증진해왔다.
블롬슈테트는 악단의 특성을 살핀 다음, 자신만의 박자감을 탄력 있게 이식하는 기술이 일품이다.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오케스트라에 따라 번지는 해석의 편차가 큰 편이다. 오랫동안 리허설을 까다롭게 진행했지만, 요즘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독일 관현악에선 사운드의 조탁이나 장식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본질에 다가서는 접근을 선호한다. 올여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에든버러·BBC 프롬스 페스티벌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대한 리뷰도 주로 이 같은 점을 조명했다. 요즘도 백스테이지에서 포디엄까지 경쾌한 걸음으로 나가는 모습은, 여느 90대 지휘자들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