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 오늘의 클래식

가을에 만나는 동시대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현대음악’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어떤 것이 연상되는가? 도통 따라 부를 수 없는 선율, 타악기의 불규칙한 비트 혹은 차가운 전자음.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를 꼽아보면 어떤가? 누군가는 쇤베르크를, 누군가는 리게티를, 누군가는 뒤사팽을 말한다. 이들 사이에 100년이 넘는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종 그저 ‘난해한 곡을 쓰는 현대 작곡가’로 묶이고는 한다.

우리가 인지하고 소비하는 현대음악은 실제 ‘지금 생산되고 있는’ 음악과 비교할 때 그 시차가 상당하다. 지금은 21세기이며 불레즈와 메시앙은 시간상으로나 양식상으로나 이미 고전이 됐지만, 현대음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직 20세기 초·중반 어디쯤 머물러 있다. 그 시절 극단적으로 행해졌던 아방가르드한 음악적 실험의 충격에서 우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이는 슬픈 선입견이기도 하다. 실례로 휘태커의 합창음악이나 뒤티외의 피아노 작품 등은 온화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20세기에 태어난 현대음악이라는 이유로 낯가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여기, 현대음악을 ‘진정한 우리 시대의 음악’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이들이 온다. 프랑스 현대음악의 선봉에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여온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부터 한국 현대음악의 생태계를 가꾸어나가는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시리즈,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접목해 음악의 반경을 넓혀가는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까지. 올가을 이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현대음악의 면면을 탐색해보자.

현대음악 최정예부대, 창단 40년 만의 첫 내한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지금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 이하 EIC)이 드디어 한국에 온다.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현대음악계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EIC의 이번 공연은 창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 발걸음이라 반가움이 더하다. EIC는 갓 만들어진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에 성실하게 몰두한다. 이들의 의욕적인 연주 활동과 학구열 덕분에 EIC는 현대음악의 ‘레퍼런스’로 인정받고 있다.

1976년,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는 프랑스 음악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일을 단행했다. 퐁피두센터 산하 음악·음향연구소 이르캄(IRCAM: 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을 설립함과 동시에 현대음악을 위한 연주 단체 EIC를 창단함으로써 불레즈는 자신의 음악세계는 물론 프랑스 현대음악의 진보에 양 날개를 달았다. 전자음악에 몰두하던 불레즈에게 이르캄은 제2의 두뇌였고, EIC의 단원 31명은 곧 불레즈의 31개의 손가락이 되었다. 연주, 레코딩, 학술활동 등을 통해 EIC와 이르캄은 이상적인 상생 관계를 이어나갔고, 4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프랑스 현대음악의 선봉에 우뚝 서 있다.

작곡가가 작품을 잉태하는 모체(母體)라면, 앵테르콩탕포랭은 뛰어난 산파(産婆)와도 같다. EIC는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가장 최신의 음악’을 가장 잘 소화하는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EIC가 초연한다는 것은 작곡가로서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 되었다.

EIC가 현대음악 연주에 최적화된 단체가 되기까지는 역시 불레즈의 공이 지대했다. 불레즈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EIC에 명확히 새겨졌다. 단원들과의 평등한 소통을 추구하던 그는 EIC의 조직 체계를 여타의 오케스트라와는 다소 다르게 구성했다. 곡에 따라 연주자의 수를 유연하게 배치함은 물론, 모든 단원들은 악장이나 수석 등의 위계 없이 수평적인 관계 속에 자리한다. 31명의 단원 모두가 솔리스트라는 명칭으로 존재하기에 같은 악기 주자들끼리도 그 비중이 평등하다. 또한 앙상블에 속해 있으면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음악 활동이 상당 부분 보장된다. EIC의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의 경우에도, 뒤사팽·마누리·야렐 등 유수의 작곡가들이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하며 초연을 의뢰한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나아가는 공동체인 EIC는 현대음악을 전천후로 맞닥뜨리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첫 내한 무대가 10월 26일 서울과 28일 통영에서 펼쳐진다. 마티아스 핀처의 지휘로 리게티·바레즈·불레즈·진은숙 등의 작품이 연주되며, 통영에서는 특별히 윤이상의 ‘협주적 음형’이 연주된다. 핀처가 작곡한 바이올린을 위한 앙상블 ‘마레(Mar’eh)’는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의 협연으로 양일 모두 무대에 오른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EIC. 이들의 치열한 탐구를 만날 시간이 왔다.

Interview with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EIC)의 솔리스트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과의 인터뷰를 위해 멀리 프랑스로 전화를 걸었다. 강혜선은 1993년 파리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및 첫 여성 악장으로 임명됐으나, 불레즈에게 발탁된 뒤 오케스트라를 떠나 1994년 EIC에 입단했다.

불레즈·뒤사팽·페델레 등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초연하며 현대음악 연주에 매진하고 있는 그녀. 20년 넘게 몸담고 있는 EIC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는 강혜선의 목소리에는 현대음악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마티아스 핀처의 바이올린을 위한 앙상블 ‘마레’의 협연자로 나선다. 핀처가 직접 지휘를 맡기도 하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5년 전쯤 이 곡을 연주했을 때는 풀 편성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는데, 더 작은 규모의 앙상블과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핀처에게 건의했더니 소규모 앙상블을 위한 곡으로 새롭게 만들어줬다. 재탄생한 결과물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만족스럽다.

EIC에서 20년 넘게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당신이 느끼는 EIC는 어떤 단체인가?

현대음악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랄까. 아주 열정적이면서 학구적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가 만들어준 곡은 그 누구도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작품이기에, 매번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자세로 매 작품마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가며 연구한다. 작곡가와 직접 소통하며 작품을 함께 탄생시키는 일은 의미있고 흥미롭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거의 없다 보니 연습량도 매우 많다. 힘든 과정을 함께 거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있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31명의 단원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아주 끈끈한 우애가 있다. 전우애와도 같은 이러한 유대감은 불레즈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는 단원들 한 명 한 명을 아들딸처럼 사랑했다.

불레즈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접했을 텐데.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많은 업적을 이루고 세인의 칭송을 받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은 모든 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했다. 콘서트 투어 도중 머무는 호텔에서 벨보이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사람은 늘 불레즈였다. EIC에 악장이나 수석 등의 타이틀 없이 모두가 동등한 솔리스트로 존재하는 것도 불레즈가 단원들과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 면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현대음악을 낯설어 한다.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드나?

현대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으니 낯섦을 극복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현대음악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청중은 프랑스에서도 아직 소수다. 나와 내 동료 연주자들의 할 일이 아직도 많다고 느낀다. 연주자도 관객도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클래식 음악은 조성이나 형식 등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수월하게 감상하지만 현대음악은 꼭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이다. 마음속에 흰 도화지를 펼쳐놓고 감상해보면 어떨까. 어떠한 사전 정보나 고정관념 없이, 들리는 대로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보길 바란다.

한국 청중을 위한 다채로운 현대음악 상차림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시리즈

아르스 노바(Ars Nova).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이 말이 음악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지만, 단어가 지닌 힘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2006년에 시작된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프로젝트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해마다 새로운 음악을 향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흥행이 보장된 레퍼토리만 연주해도 아쉬울 것 없던 서울시향에게 현대음악은 곧 미지의 땅이었고, 그 토양이 얼마나 척박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속에 현대음악을 심을 수 있던 것은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진은숙’이 지닌 강력한 브랜드 파워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꾸준히 성장해온 ‘아르스 노바’는 어느덧 출범한 지 10년이 지나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일 년에 총 4회 열리는 ‘아르스 노바’의 무대에는 독주와 실내악, 관현악이 고루 올라간다. 공연 시작 40분 전부터는 당일 프로그램에 대한 진은숙의 해설이 진행되어 현대음악 초심자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또한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해 그들의 성장을 도모하고, 마스터클래스와 공개 강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현대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오는 10월 3일과 7일 열리는 ‘아르스 노바’ 공연에서는 네덜란드 지휘자 안토니 헤르뮈스와 말레이시아 피아니스트 메이 이 푸가 진은숙·도허티·히나스테라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르스 노바’의 지난 10년이 한국 현대음악의 토양을 다지는 데 바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을 통해 현대음악을 매개로 관객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열매’를 맺기를 기대한다.

전자음악, 테크놀로지를 통한 새로운 틀 만들기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기술의 발달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 전자+음악=‘전자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전자음악은 이전에 없던 음향을 들려줄 뿐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원리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며 그 한계를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1994년 시작돼 올해 23회째 맞은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이하 SICMF)는 국내 및 국외 작곡가들의 3년 이내에 작곡된 전자음악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 연주된다. 특별히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프랑스의 창작음악연구소인 GRAME을 초청해 특별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10월 13~16일의 4일간 5회의 공연으로 구성된 이번 SICMF에서는 컴퓨터의 알고리즘 시스템과 인간의 즉흥연주를 결합한 태싯그룹(한국)의 ‘시스템 2’, 기타와 라이브 전자시스템을 위한 인터랙티브형 음악인 하루나 와키(일본)의 ‘언프록’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는 전자음악.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이들의 움직임을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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