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셸리/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9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10일 롯데콘서트홀

연륜과 젊음이 빚어낸 조화

우리에게는 토머스 비첨의 오케스트라로 각인되어 있는 로열 필하모닉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셰에라자드’ ‘페르귄트 모음곡’ ‘영웅의 생애’ 등 HMV 레이블에 남아 있는 불멸의 기록을 통해 당시 화려하던 멤버들의 족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실 비첨 서거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루돌프 켐페·언털 도라티 등이 악단의 재도약을 이끌었지만 오래전 이야기이고, 70년의 풍상을 견디고 우리 앞에 선 로열 필하모닉은 백전노장과 신예 주자의 조화가 절묘한 오케스트라로 변모했다. 이번 내한 연주는 다니엘레 가티를 이어 2007년부터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샤를 뒤투아가 아닌 수석 부지휘자인 신예 알렉산더 셸리가 지휘봉을 잡았다.
서울에서 열린 두 차례 연주의 메인 레퍼토리는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이었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가을 초입의 선곡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느긋하면서 그윽하게 연주를 시작했고, 이 작품의 2악장은 그 인상적인 도입부부터 호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대목인데,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연주가 상당히 좋았다. 서로 대화하듯 이어지는 목관악기군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앙상블은 악단의 전성 시절 클라리넷의 잭 브라이머 등 ‘로열 패밀리’로 불리던 기라성 같은 목관 주자들의 전통을 되살리는 멋진 연주였다. 3악장의 다채로움을 이와 같이 활기 넘치게 구현한 연주도 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지점이 오늘 로열 필하모닉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 아닐까 한다. 시종 뜨겁게 몰아치면서 마무리한 마지막 악장은 억지스럽고 과장된 기운 없이 자연스러운 연주였고, 상당히 신선한 감각으로 수놓은 브람스를 만날 수 있었다.

앙드레 프레빈,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그리고 1990년대 후반까지 상임 지휘자였던 거장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지도 영향인지 로열 필하모닉의 러시아 레퍼토리 연주는 정평이 나 있는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첼리스트 김정환을 협연자로 초빙하여 차이콥스키의 대표적인 협주곡을 연주했다. 특히 ‘로코코 변주곡’의 연주가 좋았다. 그리 스케일은 크지 않았지만 관악 앙상블의 아기자기한 묘미와 밀도 있는 현악군의 짙은 러시아 정서가 일품이었다. 다만 두 협연자의 연주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필자는 이번 연주회를 통해 로열 필하모닉의 연주를 즐기는 것 이외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롯데콘서트홀의 음향 비교를 할 수 있는 또 하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거의 비슷한 조건의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어 더 정확한 비교가 가능했다. 두 번째 연주였던 롯데콘서트홀에서 필자는 흥분된 경험을 했다. 현악 오케스트라의 피치카토가 이처럼 생생하고 강렬한 공명으로 다가온 것은 이번 브람스 교향곡 4번 2악장의 연주에서 처음이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역이 이렇게 묵직하고 생생하게 들린 것도 놀라웠다. 목관악기의 사운드 또한 한 음 한 음이 조화로우면서도 대단히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기에는 최적의 공연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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