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초의 미디어아트센터 브리스톨 워터셰드

예술과 기술, 도시로 하나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2017/20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앞두고 브리스톨의 흥미로운 도시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다

2017/20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앞두고, 영국 예술문화계 인사들이 지난 10월 서울아트마켓 기간에 맞춰 사전 답사차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 3월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와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상호교류의 해를 지정하고, 양국의 예술 및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을 처음 국가 계획으로 추진하며 선두 주자로 손꼽히는 영국이 한국과 협력해 앞으로 2년여 간, 양국의 문화예술 및 창조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20세기까지 배에 물건을 띄워 보내던 무역도시 브리스톨은 21세기 들어 예술과 기술은 물론, 사람을 모으고 협업을 통한 혁신을 피워내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 중심에 워터셰드(Watershed)가 있다. 과거 항구 옆에 자리한 창고가 현재 미디어센터로 탈바꿈해 영국의 창조산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2010 국제미래포럼의 한 보고서는 워터셰드를 다양한 시장과 경제 속에서 발달하는 창의적인 생태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작품과 발명품을 동시에 구축한다고 표현했다.

1982년 처음 문을 연 워터셰드는 영국 잉글랜드 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 자리한 영국 최초의 미디어센터다. 과거 세계 각국과 무역하던 브리스톨 항구 인근에 지어진 창고는 재건축을 통해 3개의 영화상영관, 창작스튜디오, 다양하게 활용되는 디지털미디어아트센터를 갖춘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영화·음악·공연예술·디자인·시각예술뿐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오가는 창의적 예술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이곳의 주된 역할로, 여기에서 다양한 사람의 다각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예술―기술―비즈니스의 경계 사이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초점에 두고 있다.

워터셰드 내 퍼베이시브 미디어 스튜디오(pervasive media center)는 잉글랜드대학·브리스톨 대학·워터셰드 간의 합작을 통해 탄생한 곳으로, 레지던스 아티스트 제도를 실시해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연구·제작·상연을 지원한다. 도시 중심 리서치와 협업을 위한 스튜디오로, 전 세계적인 예술가·기술자·연구자 네트워크를 통해 예술과 기술, 문화와 접목하여 ‘플레이어블 시티(Playable City)’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01년 단편영화 쇼케이스 및 미디어아트의 온라인 전시 공간인 독립 웹사이트 디셰드(dShed, www.dshed.net)를 통해 40만 명에 달하는 방문자를 유치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곳에선 기획 또는 창단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의 현황을 살피거나 관련 아티스트와 토론을 펼칠 수 있다.


▲ 워터셰드 운영관장 딕 페니

워터셰드의 운영을 총괄하는 딕 페니(Dick Penny)는 프로듀서 출신으로 브리스톨 올드빅 극장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브리스톨이 영국의 창조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 5등급(MBE)를 받은 바 있다. 그는 워터셰드의 역할로 기후 변화 등 사회적 이슈를 두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 갈등이 아닌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그 이슈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충분히 분담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브리스톨 도시 자체가 혁신이 되고, 지역 사회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워터셰드가 펼치는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딕 페니가 들려준 브리스톨 워터셰드의 목표와 방향성, 그간 진행해온 프로젝트 사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에서 이뤄지는 예술 분야를 포함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청사진과도 같아 보였다. 예술과 기술, 도시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워터셰드의 현황을 딕 페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예술+기술+도시=워터셰드

라운드테이블에서 워터셰드의 정신과 현황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예술(art), 기술(technology), 도시(city)를 내세웠다. 여기엔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이 중요하게 발휘된 것 같다.

브리스톨에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있다. 공연예술뿐 아니라 브리스톨 사운드(영국 항구도시에서 생긴 어둡고 우울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대표되는 다양한 밴드가 있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활동에 기술을 결합하고 싶었다. 브리스톨에는 휴렛패커드(HP), 도시바, 소니,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의 유럽 지사가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예술과 기술을 연결하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결합에서 비롯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워터셰드의 임무 중 하나다. 워터셰드가 제작에 참여하고 결과물을 상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작업들이 이뤄지는 것은 골목이나 교회, 철도 옆길 같은 도시 곳곳이다. 결국 예술과 기술뿐 아니라 도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의성과 문화적 풍부함을 불러일으키는 도시, 그 안에 자리한 네트워크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그로 인해 에너지가 풍부해지는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워터셰드의 프로젝트 상당수는 공공의 사회 이슈와 관련된 것이 많다. 예술가로 하여금 이에 대한 창조적 발생과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1982년 시작된 워터셰드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아티스트에게 아이디어와 워터셰드의 네트워크를 함께 설명하면서 함께 작업할 생각이 있는지 먼저 제시하거나, 때로는 아티스트가 먼저 우리에게 제안할 때도 있다. 공고를 내고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어느 쪽이든 예술가 혼자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워터셰드가 늘 해답을 먼저 제시할 수는 없지만, 누가 도와줄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예술가를 돕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예술가, 기술자, 워터셰드 중 어느 쪽의 제안이 더 많은 편인가?

때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반반이다. 브리스톨 시내의 몇몇 대학에서 아이디어를 먼저 내놓기도 하고, 시의회에서 요청이 먼저 들어오기도 한다.

워터셰드의 한 해 예산 규모와 구성은 어떻게 되나?

2015/2016 시즌 총예산은 600만 파운드(약 102억원, 2015년 환율 기준)이다. 이 중 36%가 잉글랜드예술위원회와 브리스톨 시의회 등이 주는 기금을 비롯해 기업 후원금 및 프로젝트 수익이고, 다음으로 워터셰드 내부 카페와 바에서 얻는 수익이 19%다. 브리스톨 커뮤니티 대학, BFI 필름 아카데미 등이 고정적으로 내놓는 기금 15%, 영화관 티켓 수익이 13%를 차지한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 사이의 협업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은 없는지.

예술가든 기술자든 각 영역의 경계가 뚜렷한 사람들이고, 스스로 폐쇄적으로 일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이러한 전문 영역은 진입장벽이 높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해결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모여 더 전문화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전문성이 보편성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자신의 재화를 투여하도록(invest)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부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사람, 도시와 함께하는 워터셰드의 프로젝트 5

딕 페니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정확한 결과를 다른 도시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이것들 모두가 도시에 유의미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라며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① ‘바이크태그(BikeTAG)’ 자전거 이용자가 많은 브리스톨의 도시 환경에 주목한 프로젝트다. 2012년 워터셰드와 영국문화원이 주관한 플레이어블 시티 스프린트(Playable City Sprint)라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진행됐으며, 동아시아 작가 중 하나로 한국의 방&리(Bang&Lee)를 비롯해 틴 벡, 줄리언 사익스가 한 팀을 이뤘다. 이들은 LED 조명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접목한 시스템이 장착된 자전거를 타고 이용자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형태의 게임에 참여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워크숍을 통해 개발했고, 이것이 큰 호응을 얻어 이듬해 팀 대결을 펼치는 것으로 발전시킨 테스트 형태의 새로운 프로젝트 ‘컬러 키퍼스(Colour Keepers)’를 선보였다.

② ‘그림자(Shadowing)’ 워터셰드의 연례 공모전인 ‘플레이어블 시티 어워드(Playable City Award)’ 2014년 수상작으로 영국의 건축학도 매슈 로지어와 캐나다의 인터랙션 디자이너 조너선 촘코의 아이디로 탄생했다. 두 달간 브리스톨 시내에서 인적이 드문 골목, 적외선 카메라가 설치된 가로등을 지나는 사람의 그림자 형태를 저장해 이후 다른 사람이 가로등을 지나갈 때 검정색 이미지로 바닥에 투사된다. 한참 동안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경우, 새로운 그림자가 인식될 때까지 가로등 아래엔 그전까지 저장된 그림자가 재생된다. 딕 페니는 “일상의 공공공간을 재조명하고. CCTV로 대표되는 감시 문화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③ ‘대기질 프로젝트(Danceroom Spectroscopy)’ 데이비드 글로웨이키라는 화학자가 브리스톨의 좋지 않은 대기질을 주제로 워터셰드에 먼저 제안해 이뤄진 프로젝트다. 어떻게 하면 오염된 대기 상태를 가시화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리서치 치원에서 진행됐다. 대기 중 다양한 분자를 스크린에 각기 다른 색깔의 점으로 보여주고, 이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춤과 움직임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④ ‘크레인 댄스 브리스톨(Crane Dance Bristol)’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로라 크레이프먼의 아이디어 중 하나에서 시작됐다. 인터랙티브 무용이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구현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브리스톨 강가에 자리한 대형 크레인 3대를 갖고 진행한 프로젝트다. 워터셰드는 음악에 맞춰 여러 대의 크레인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적 테스트를 도왔다. SNS 사전 홍보를 통해 당일 현장에 1만 명가량의 관중이 몰렸고 40분 분량의 퍼포먼스가 온라인 생중계됐다. 어둑해진 주말 저녁 강가, 빛을 발산하며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크레인 3대의 리드미컬한 모습은 브리스톨의 야경을 새롭게 바꿔놓았다.

⑤ ‘진심(Heartfelt)’ 연주자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로봇 디자이너 러스티 스퀴드, 인터랙티브 조명 디자이너 지기 제이콥스 와이번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심박을 체크하는 장치를 단 연주자들이 베토벤 현악 4중주 A단조 Op.132를 연주한다. 연주가 진행됨에 따라 음악가들이 느끼는 정서, 그에 따라 달라지는 심박은 연주 공간에 설치된 여러 개 조명의 깜박임, 관객들의 손에 쥐어진 물체의 진통―햅틱 기술(haptic technology)―을 통해 드러난다. 음악가와 연주 작품 사이의 인터랙션, 이것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연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프로젝트다.

세계 2위, 영국의 창조산업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은 현재 자국의 창조산업을 세계 2위로 성장시켰다. 1997년 토니 블레어 정부가 출범하고 과거 영국의 문화유산부가 이 시기에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Department of Culture, Media and Sport)로 개편되면서 ‘창조산업’이 정책 어젠다 중 하나로 떠올랐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라는 용어는 2001년 영국의 경영 전략 전문가인 존 호킨스가 쓴 ‘창조경제’를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존 호킨스는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및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창조경제를 정의했다.

‘개인의 창의성을 이용해 지적재산권을 설정하고 활용해 부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정의되는 영국의 창조산업 정책은 지금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문화미디어스포츠부의 주도 아래 다양한 공공기관 및 민간기관의 협력을 바탕으로 발전해왔다. 창조산업의 영역을 문화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것으로 설정해 세부적으로는 영화·음악·공연·광고·건축·예술·여가·출판·방송·라디오 등의 분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2017/2018 한·영 교류의 해

‘한·영 상호교류의 해’는 2017년 2월 공식 개막, 2018년 3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도시’ ‘디지털 기술’ ‘다양성과 통합’ ‘창의 기업가정신’ ‘창의 교육’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전시, 공연, 레지던시, 랩(LAB), 컨퍼런스, 워크숍, 디지털 콘텐츠 등이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2017년 9~10월은 ‘한·영 상호교류의 해’ 페스티벌 기간으로 한국과 영국의 창의적인 예술이 집중적으로 소개된다. 한·영 상호교류의 해 사업은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전, 청주, 대구, 광주, 강릉·평창 등 국내 여러 주요 도시에서 개최된다.

한·영 상호교류의 해(한국 내 영국의 해)는 영국문화원이 주관하고,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영국 무역투자청(DIT), 영국 외무성(FCO), 주한영국상공회의소(BCCK) 등 영국의 주요 기관들이 협력한다. 또한 잉글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Creative Scotland), 웨일스예술위원회(Wales Arts International), 북아일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Northern Ireland)와도 긴밀하게 협력하여 한·영 문화예술분야의 협력 프로젝트 발굴과 확대를 지원한다.

사진 Water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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