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창’을 너머 세계를 비추기 위한 지난 일 년간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이를 위한 제언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개관 1주년을 맞아 기념 페스티벌을 치렀다. 페스티벌 기간 특별 공연 프로그램의 명칭은 ‘아시아를 위한 심포니’였다. 여기서 ‘심포니’는 ‘교향곡’을 의미하기보다는 은유적 차원에서 ‘한데 모인 소리’를 뜻했다. 2016년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아시아의 작곡가와 연주자들, 나아가 유럽과 미국의 작곡가들까지 참여한 일종의 현대음악 축제가 펼쳐졌다.
여느 현대음악 연주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복합 문화시설로서 ACC 건물이 풍기는 독특한 오라와 함께 ‘한국-아시아-세계’의 중층적 관계가 새롭게 탐색되었다. 소개된 작품들이나 연주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았고,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전통악기의 연주법 등을 소개하는 워크숍 행사까지 곁들여져 내용 면에서 풍성한 행사였다. 하지만 공연장에 일반 관객이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단순히 홍보 미비나 소개되는 작품들의 대중성 부족을 탓할 일은 아니다. ACC라는 특수한 ‘장소성’과 여기서 추구되는 ‘현대성’의 기조가 ACC 내부에서 탄력적으로 공유되고 대중적으로 설득되기까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이상적인 음악적 소통을 이루고, 미래상을 제시하다
개막 공연은 대규모 가변형 극장인 극장1에서 열렸다. 한국과 중국, 미국과 독일 국적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들을 김영언 부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광주시향이 연주했다. 풀 편성 관현악단에 의한 두 시간가량의 연주회가 동시대 창작곡만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날 공연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작곡가들이 직접 리허설에 참여해 지역 연주자들과 소통하고 관객들과도 교감을 나누는 특색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극장1의 음향 조건상 마이크를 통해 걸러진 관현악 사운드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 적잖이 아쉬웠다. 독일 작곡가 게르하르트 슈테블러의 ‘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쓰키, 스바루’를 연주할 때는 협주 솔로 악기였던 일본 전통 관악기 쇼(일본식 생황)의 소리가 지나치게 여리게 들렸고, 현대음악에서는 늘 중요하게 다뤄지는 특수 악기들의 소리도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곤 했다. ACC 설계 단계에서 콘서트홀을 배제한 점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지만, 극장1의 무대에 특히 관현악을 세울 경우 마이크 음향 세팅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개막 공연 중 미국의 작곡가 마이클 도허티의 세 악장 구성 관현악곡 ‘아메리칸 고딕’ 역시 돋보였다. 관현악의 짜임새가 풍성하면서도 치밀하고, 블루그래스 같은 미국의 대중적 음악 양식을 현대적 불협화음과 접목하는 솜씨가 유려했다. 도허티가 ‘아시아를 위한 심포니’라는 주제의 공연에 초대된 것도 그의 음악이 ‘슈퍼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미국 대중문화 코드를 몽타주 형태로 활용하여 곧잘 드러내는 ‘지역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 날 ‘작곡가의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한 주제로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개막 공연이 있던 날 밤 극장2에서는 ‘아시안 비트’라는 제목의 타악 공연이 있었다. ACC의 극장2는 연극 공연을 겸할 수 있는 복합 공연장으로, 마이크 없는 실내악 공연도 가능하다. 여섯 명의 타악 주자가 이끄는, 외견상으로는 단조로운 공연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다채로웠다. 극장의 실내 구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연주자들의 입체적인 소리 체험을 구성한 크리스티안 메이슨의 ‘여섯 명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라하라’도 좋았지만, 김웅식의 솔로 장구가 주도하는 정일련의 ‘장구와 네 명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타이밍’이 특히 훌륭했다. 작곡과 연주 양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타악 앙상블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둘째, 셋째 날 같은 장소에서 각각 대만 소거인(小巨人)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홍콩 뉴 뮤직 앙상블의 공연이 있었다. 전자는 한국의 국악관현악단과 비슷한 형태로 중국 전통악기를 쓴 관현악단이고, 후자는 현대음악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서양식 실내악단이다. 홍콩 뉴 뮤직 앙상블의 공연이 좀 더 특기할 만한데, 그 가운데서도 해금 주자 이승희가 협연한 ‘해금과 현악 합주를 위한 사랑의 1인치는 다른 무엇’이라는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작곡가 산타 뷔스는 놀라울 만큼 해금이라는 한국 전통악기의 어법과 시김새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고, 과감한 양장 차림의 이승희 역시 작품의 파격적인 현대성을 완벽하게 자기화했다. 작곡가와 연주가가 전 지구적 소통의 견지에서 상생의 만남을 실현하는 한 가지 이상적 모델을 제시해주었다고 할까.
ACC는 개관 전후로 정치적 맥락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전당장 선임과 민주평화교류원 개관과 같은 현시점까지 풀지 못한 숙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문을 연 국립 문화예술 기관으로서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능성과 의미를 던져 주었다. 여전히 내부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태인데다 복합전시관 중심의 첨단 시설이 애초부터 미술계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암시하는 상태에서 매회 연주자들의 실연이 요구되는 공연 기획의 여러 난점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ACC의 공연예술 비중은 지금보다 더 높아지고 훨씬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ACC가 표방하는 문화적 ‘융합’의 힘은 무엇보다 공연, 즉 퍼포먼스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