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새로운 희망의 울림
서울시향 연주가 있던 12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결정이 내려진 날이었다. 비상이 일상이 된 시국에서 많은 이들이 날선 긴장 속에서 지내왔다. 외부적으로는 비약적인 성장을 한 한국은 내부적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무엇보다도 의식의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어 왔다. 세계적으로 행복 지수는 낮고 부패 순위는 높다.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주도해야 할 청년세대는 이제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지만 가장 어두운 시기에 우리는 보고 들었다. 변화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모여 어둠을 밝히며 거대한 울림을 갖는 거리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서울시향의 연주회 몇 시간 전에 탄핵이 가결됐다. 이날의 연주곡목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협주곡과 브람스의 첫 교향곡이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35세에 작곡한 작품이며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브람스가 44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마지막이라기에는 너무 이르고 처음이라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의 객원지휘는 알렉상드르 블로슈가, 클라리넷 협연은 김한이 했다. 올해 31세가 된 블로슈와 스무 살 김한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실력있는 신예들이다. 가능성으로 가득한 이 두 젊음은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의미심장한 걸작을 끝이 아닌 시작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전반부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였다. 협연을 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만11세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후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이름을 남기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자크 랑슬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등상을 비롯해 청중상, 위촉곡 최고해석상을 석권했다. 밝고 힘찬 미래만 펼쳐있을 것 같은 스무 살의 벅찬 기대가 모차르트의 선율을 타고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한없는 긍정성과 희망이 넘실거렸다.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블로슈는 김한의 유연하고 매끄러운 진행에 미풍을 불어넣듯 섬세한 움직임을 더했다. 아다지오의 2악장에서 클라리넷의 깨끗하고 아득한 울림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듯 슬픔과 눈물, 죽음의 그림자가 없는 세계였다.
전반부의 신선한 기운은 후반부에 연주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에도 이어졌다. 브람스가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심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를 등 뒤에서 끊임없이 의식했다. 20대에 시작한 교향곡은 결국 20여년이 걸려 40대 중반에 완성됐다. 많은 연주가 거인의 발소리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팀파니의 연타와 함께 비장하게 시작한다. 그런데 블로슈의 출발은 상당히 가뿐했다. 묵직한 돌덩이를 짊어진 시시포스의 걸음이 아니라 배낭 하나 가볍게 둘러 맨 걸음이었다. 블로슈는 음량의 대비가 아닌 음색의 차이를 살렸다. 웅장하고 극적인 면을 부각시키기보다 음이 가진 미묘한 질감, 섬세한 뉘앙스에 중점을 두어 표현했다. 브람스가 켜켜이 쌓은 층들은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보다 빛이 비치 듯 다채로움이 강조됐다.
대한민국이 중대한 결정을 내린 이날, 죽음을 목전에 둔 모차르트는 새 꿈을 꾸는 듯 했으며, 이전 세대의 짐을 지나치게 많이 짊어졌던 브람스의 발걸음은 희망찼다. 이 젊은 연주자들이 전한 메시지는 꿈과 희망이었다. 새로운 세대가 있는 한 많은 것을 잃었어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는 것이다.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