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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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1일 5:12 오후

예술에서 발견한 한줄

 

세계 전체가 하나의 무대지요. 그리고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배우에 불과하고요. 모든 사람이 등장했다 퇴장했다 하는데, 한 남자는 평생 동안 여러 가지 배역을 맡고 그의 일생은 7막으로 구성되지요.

처음에는 어린애인데, 유모의 품에 안겨 으앙으앙 울고 침을 질질 흘리지요. 그 다음에는 투덜거리는 어린 학생인데, 가방을 멘 채 아침에는 빛나는 얼굴이지만 달팽이가 기어가듯이 마지못해 학교에 가지요.

그 다음에는 연인인데, 용광로처럼 한숨을 쉬고, 애인의 이마를 생각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지요.

그 다음에는 군인인데, 기이한 맹세들을 늘어놓고, 수염은 표범과 같으며, 체면을 몹시 차리고, 싸움은 번개처럼 재빠르며, 물거품 같은 명예를 위해서라면 대포 아가리에도 뛰어들지요.

그 다음에는 법관인데, 살찐 식용 닭과 뇌물 덕분에 배는 제법 뚱뚱해지고, 눈초리는 매서우며, 수염은 격식대로 길러져 있고, 현명한 격언과 진부한 문구도 많이 알고 있으며, 이렇게 해서 자기 배역을 연기하지요.

그런데 여섯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슬리퍼를 신은 말라빠진 어릿광대 역으로 변하는데, 콧잔등 위에는 안경을 걸치고, 허리에는 돈 주머니를 차며, 젊은 시절에 입었던 홀태바지는 말라빠진 허벅지에 너무나도 헐렁하고, 사내다운 굵직한 음성은 어린애 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되돌아가서 피리처럼 삑삑 소리만 내지요.

그리고 파란 많은 이 일대기의 끝 부분인 마지막 장면은 제2의 어린 아이의 시절인데, 오직 망각만 있을 뿐, 이빨도 없고, 눈도 없고, 미각도 없고, 아무것도 전혀 없는 거지요.

셰익스피어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중에서

셰익스피어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2막 7장에서 우울한 사색가 제이퀴즈는 인생을 7막으로 구분된 연극에 비유한다. 인생은 모두 연극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대사지만, 사색가로서의 통찰 또한 엿보인다.

작품은 1599~1600년 무렵 제작됐으며, 최초의 상연 연대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인간의 고뇌를 다루고, 희극은 인간 사회의 즐거운 면과 어리석은 면을 다룬다. 이 작품 역시 극 초반부터 무질서로 가득한 궁정 분위기를 전한다. 극의 중심 배경이 되는 아든 숲은 궁정과는 대조적이다. 중상모략도, 전쟁도, 무기도 없는 곳이지만 물질적으로는 궁핍하다. 귀족 출신인 로절린드·실리어·올란도는 궁정 생활에 지쳐 아든 숲으로의 도피를 택한 이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아든 숲을 정신적 회복의 장소로 상징한다. ‘인간사의 모든 갈등이 초록 세계에서 치유된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아든 숲을 비판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이퀴즈로, 궁정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아든 숲을 찾아온 공작과 일행들을 모두 바보라며 비꼰다. 어릿광대 터치스톤 역시 가는 곳마다 아든 숲은 ‘쓸쓸한’ ‘황량한’ ‘버림받은’ 곳이라 말한다.

극이 끝날 무렵, 아든 숲으로 도피해 온 이들 중 다수는 궁정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이 돌아간 궁정의 분위기는 순화된다. 변화의 계기를 아든 숲의 정신적 분위기가 마련했다는 데서 이곳은 존재의 의의가 있다. 완전한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으며, 한 대상을 비판하는 기준 역시 언제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진가는 빛을 발한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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