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그 개’ & 국립극단 청소년극 ‘오렌지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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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1일 3:16 오후

 그 개와 그 곰과 그 소녀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 THEATER

‘그 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뭐가 바뀌었느냐는 반문이 많다. 촛불혁명이 있었고, 미투혁명도 있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도 맞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느끼는 변화의 속도는 느리다. 역사의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간 것 같지 않은 착시 덕분에 멀미가 나기도 한다. 몸에는 단 한 발자국의 감각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차는 달리고 있고 시간도 달리고 있다.

연극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현상은 세대교체이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결과 드러난 협회들의 순응과 무능력도 비판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통해서이다. 서울시극단 ‘그 개’(10월 5~21일 세종M씨어터)와 국립극단 청소년극 ‘오렌지 북극곰’(10월 11~21일 백성희장민호극장), 개와 곰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라갔다. 두 공연 모두 16세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이다.

 

그 개와 민주시민

‘그 개’는 무스탕과 보쓰라는 두 마리 개 이야기다. 무스탕은 해일이 우연히 만난 유기견이다. 보쓰는 제약회사 회장 장강의 개, ‘보쓰의 개’이다. 해일은 말끝마다 욕이 튀어나오는 틱장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씨발!” 해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오는 욕 때문에 학교에 가기도 두렵다.

아빠는 장강의 운전수이다. 장강은 육사 출신으로 대대장으로 예편을 하고 대형병원 로비를 통해 성장한 제약회사 회장이다. 장강은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아내와도 별거 중이고, 자식도 미국에 살고 있다. 장강 옆에 있는 유일한 존재는 독일 셰퍼드 보쓰이다. 장강도 보쓰도 넓은 집에서 홀로 외롭다. 보쓰는 장강과 왈츠도 추고 말도 한다. 무스탕도 해일과 말을 한다.

무스탕의 원래 이름은 바닐라였다. 해일은 “그런 달달한 이름으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사느냐”고 걱정하며 야생마라는 뜻의 무스탕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해일은 무스탕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고, 다른 아저씨와 사는 엄마에게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무스탕과 보쓰는 개의 몸짓을 흉내 내지 않고 사람처럼 행동한다. 해일이 사는 빌라에 이사 온 젊은 부부 영수와 선영의 아들 별이는 성인배우가 배냇모자를 쓰고 등장해서 갓난아이를 연기한다. “나 언제 뒤집어? 나 언제 말해? 근데 이유식이 왜 이래? 집은 왜 이렇게 좁아? 우리 집 가난해?” 말들을 쏟아내며 별이의 옹알이를 대신한다. 해일과 무스탕, 장강과 보쓰, 영수와 선영 부부의 이야기들이 교차되면서, 짧고 위트 있는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대사 하나로 장면과 감정을 전환시키는 뮤지컬과 같은 빠른 전개이다.

‘그 개’

그런데 해일이 그리는 애니메이션 동화 그림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세상 모든 공기가 물로 변하듯” 사람들이 깊은 침묵에 잠기게 된다. 선영은 미술공모전 입상으로 받은 상금 때문에 3만원이 인상된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기 위해 보험공단과 미술공모전을 주최한 신문사와 문화재단을 뛰어다니며 해촉증명서를 떼러 가느라 잠깐 집을 비우고, 그 사이 해일과 함께 장강의 정원의 들어간 별이가 보쓰에게 물려 죽는 사고가 생긴다. 선영은 그동안 빨리 돈을 모아 전셋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꼈었던 돈의 목록을 끝없이 외우며 자신을 자책한다.

‘그 개’를 죽이자는 결정이 내려지지만, ‘그 개’는 보쓰가 아니라 무스탕이 된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아빠는 해일에게 무스탕의 안락사 합의서에 지장을 찍게 한다. 해일은 자신이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른이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해일은 무스탕과 함께 바닷가에 가서 무스탕을 풀어주고 뒤돌아선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혼자 있거나, 누군가 옆에 있거나, 모두 외롭다. 선영과 영수 부부는 해일이 처음으로 만난 “멋진 어른, 민주시민!”이었다. 민주시민은 가난한 시민이었을 뿐이고, 어디선가 늙었지만 여전히 강한 이빨을 가진 사나운 ‘그 개’는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다.

 

그 곰과 이주민

‘오렌지 북극곰’

‘오렌지 북극곰’은 새로운 시도의 연극이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와 영국 버밍엄 레퍼토리 씨어터, 영국과 한국어 이중언어 연극 극단인 한영씨어터 공동제작 작품이다. 영국 연출가 피터 윈 윌슨, 작가 에반 플레이시와 한국 작가 고순덕, 그리고 한국과 영국 십대 청소년이 참여한 2014년 워크숍을 공연으로 발전시킨 2016년 초연에 이은 두 번째 공연이다. 2016년 공연이 한국 배우들의 한국어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한국과 영국 배우들이 참여해서 각자의 모국어로 공연하는 이중언어 연극이다. ‘오렌지’와 ‘북극곰’의 조합만큼이나 예측불허의, 낯설고 새로운 공연이다.

지영과 윌리엄은 떠내려가는 빙하의 북극곰처럼 ‘표류하는 중’이다. 지영은 2살 때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 엄마의 기억이 없다. 대신 할머니가 지영을 키웠다. 중3이 되면서 지영은 여자의 몸이 되어가고 있다. 지영의 친구 태희는 중1이 되자 몸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중3이 되자 이미 여자가 되어 ‘여신’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지영은 아직 화장은 어색하지만 화장품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엄마 기억이 난다. 지영에게는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가 필요한 나이다.

윌리엄은 이주민이다. 2살 때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와 영국에 왔다. 윌리엄의 엄마는 “이민자들은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떠드는 늙은 사람들의 엉덩이를 닦아주는” 간병인 일을 하고 있다. 엄마는 윌리엄이 영국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해 윌리엄에게 매번 ‘코코팝스’를 사준다. 윌리엄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매일 아침 혼자 ‘코코팝스’ 시리얼을 먹는다.

‘오랜지 북극곰’

윌리엄의 친구 아더도 이주민이었다. 아더의 원래 이름은 에요턴디다. 윌리엄도 원래 자기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에요턴디는 아더가 되었고, 윌리엄도 본래의 이름대신 영국식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지영은 할머니가 알려준 집주소로 엄마를 찾아갔지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윌리엄은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 사라의 부모님께 편지를 쓰며 자신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지영과 윌리엄은 어른에게서 위로받지 않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과 영국 공동제작의 복잡한 과정만큼이나 아직 선명한 중심 이미지 하나로 공연이 압축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영국 십대들의 자기 이야기들이 날것 그대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낯선 지점들이 흥미롭다. ‘그 개’의 해일, ‘오렌지 북극곰’의 지영과 윌리엄은 각자 자신의 바다에서 표류 중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 어른이 된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서울시극단·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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