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의 과거·현재·미래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 이들이 쏘아올린 변화는 존재해왔고, 또 존재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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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8월 19일 9:00 오전

SPECIAL REPORT

INTRO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이름부터 참 쉽지 않다. 혼란스러웠던 건 이들의 행보와 팝페라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클래시컬한 창법과 편곡을 구사하는 이들의 음악적 색채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팝페라였다. 더욱이 ‘팬텀싱어1’의 구호는 ‘한국의 일 디보를 찾아라’였다(일 디보는 대표적인 팝페라 그룹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클래식 크로스오버’로 주로 칭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가장 큰 이유다. 제작자·아티스트·대중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점도 크게 작용했다. 199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팝페라는 크로스오버의 서브컬처로 여겨지며 점차 빛을 잃어갔지만, 크로스오버는 음악이 시작된 이래 최정상의 아티스트들 역시 자유롭게 참여해 온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력과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는 무대 기회와 인지도에 낙심했던 많은 성악가는 방송 매체가 제공하는 기회에 적극 반응했고,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둔 다양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만들어냈다. 대중 역시 한층 고루하게 여겨질 수 있는 팝페라보다 고급스러운 이들의 음악에 매력을 느꼈으며, 제작자들은 클래식 크로스오버를 통해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일명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 판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클래식 크로스오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서유럽 팝페라의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국내 클래식 크로스오버 음악의 예술성과 지속 가능한 요건을 대중음악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뒤, 이 모든 것을 수면위로 끌어낸 JTBC ‘팬텀싱어’ PD와 음악감독의 이야기를 짧게 들어본다. 클래식 음악이 시대, 그리고 대중과 호흡하는 법을 이들로부터 조금 색다르게 찾아보려 한다.

글 권하영 기자

PART 1

서유럽 팝페라를 되돌아보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서 성악 크로스오버는 1981년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출시한 앨범 ‘퍼햅스 러브’(CBS)에서 컨트리가수 존 덴버와 동명의 팝 넘버를 부른 작업이 시원이다. 심도 있는 성악 크로스오버는 1990년 시작됐다. 도밍고는 이탈리아 월드컵을 계기로 루치아노 파바로티·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스리 테너’ 콘서트에 참여했다. 1991년 파바로티는 고향 모데나에서 개최된 자선 음악회 ‘파바로티와 친구들’에서 스팅·주케로와 각각 이중창으로 어울렸다. 특히 루치오 달라와 함께 부른 ‘카루소’에서 파바로티는 오페라 가수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크로스오버의 전범을 보였다. 카레라스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 ‘영원한 친구들(Amigos Para Siempre)’을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불렀다.

파바로티와 친구들, 그리고 안드레아 보첼리

그러나 스리 테너1만으로 크로스오버의 성장 견인은 힘이 부쳤다. 음악 전체 장르에 걸쳐 크로스오버라는 용어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단순한 이종 분야의 결합만으론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순 없었다. 크로스오버를 대체할 새 얼굴, 새 프레임이 요구됐다. 피사 근교 농촌 마을 라야티코 출신의 안드레아 보첼리2는 선천성 녹내장을 앓았고, 축구를 하다가 시신경이 손상된 역경을 겪었다. 클럽 가수를 전전하다가 주케로가 파바로티에 헌정할 ‘미제레레’의 가이드 가수를 청했고, 데모 녹음을 들은 파바로티는 1994년 ‘파바로티와 친구들’에 보첼리를 불러 ‘마티나타’를 같이 노래했다. 이 공연 이후 보첼리는 바로 국제적 명사로 발돋움했다. 1994년 성탄절에는 바티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앞에서 ‘참 반가운 성도여(Adeste Fideles)’를 불렀는데 로마 카톨릭을 신봉하는 아티스트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영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업적을 이룬 사라 브라이트만3은 1990년 남편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이혼하고 음악적 독립을 위해 카탈리나 오페라 ‘라 왈리’를 섭렵했지만 클래식 음악계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다 장기인 뮤지컬 창법으로 돌아와 1997년 보첼리와 ‘타임 투 세이 굿바이’로 만났다. 정통 오페라 경험이 있는 두 스타를 묶는 새로운 종개념이 요청됐고, 그 때 나온 용어가 ‘오페라틱 팝(Operatic Pop)’이다. 국내에선 댄스컬(댄스+뮤지컬)이나 발레컬(발레+비보이+탭댄스) 같은 작명처럼, 오페라틱 팝을 주로 팝페라(Popera)로 번안한다. 1997년 ‘워싱턴 포스트’지가 공신력 있는 매체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팝페라를 거명했지만 국제 시장에선 인위적인 신조어가 주는 서브컬처 느낌을 경계한다. 가수 음역에 맞춰 편곡해 부르는 정도가 심하거나 클래식 가창이 어려운 구간에 팝 스타일을 시도하는 자체를 멸시하는 톤이다. 음악학 일부에선 20세기 초반 뉴욕을 중심으로 엔리코 카루소를 비롯한 이탈리아 이민자 그룹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이탈리아 지역 사투리로 래그·재즈·코미디 뮤지컬을 소화한 기록을 오페라틱 팝의 기원으로 평가하지만 비중 있는 학설은 아니다. 팝페라는 보첼리와 브라이트만 덕에 1990년대 후반 음반 시장의 마지막 불꽃을 뜨겁게 태웠지만, 상업적 성과와 무관하게 일부 클래식 음악 주류에선 여전히 태생이 불분명한 장르 취급을 받는다. 21세기 들어 유럽 음반 산업이 부양한 첫 남자 팝페라 가수는 시에나 출신의 알레산드로 사피나였다. 정통 클래식 음악과 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본인만의 창법으로 칸초네를 부르면서 ‘제2의 보첼리’ 신화를 꿈꿨지만, 보첼리의 공연·앨범과는 판매고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사피나는 훗날 조수미와 한국 투어를 했고 영국에서 시작된 경연 프로그램 ‘더 엑스 팩터(The X Factor)’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데카는 맨체스터에서 금속 노동자로 일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에서 노래한 러셀 왓슨에 투자했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왓슨은 클래식 음악 작품에서 벨 칸토를 시도했지만 곧 성대 이상으로 이어졌고, 그를 발굴한 에이전트 페리 휴즈와 거액의 송사에 휩싸이면서 팝페라는 불가피하게 이권에 따라 아티스트의 흥망도 좌우될 수 있음을 알렸다. 뉴질랜드의 헤일리 웨스튼라, 웨일스의 샬롯 처치, 잉글랜드의 이소벨 쿠퍼(활동명 Izzy)는 런던 음반 산업이 주로 영연방을 타깃으로 발굴한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다. 요크셔 출신으로 런던 왕립음악원을 다닌 레슬리 가렛과 웨일스 태생으로 역시 동문인 캐서린 젠킨스 역시 팝페라로 보폭을 넓혔다. 영국 최고 학부 출신인 이들의 손에는 마이크가 쥐어졌다.

 

성악 크로스오버의 개념을 바꾼 일 디보

마이크를 든 가수로는 더 이상 클래식·오페라하우스 관객을 데려올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팝페라의 탈출구는 TV 공개 경연이었다. EMI 퍼블리싱 매니저 출신의 사이먼 코웰은 미국에서 ‘아메리칸 아이돌’, 영국에서 ‘더 엑스 팩터’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제작·심사하면서 출연자들을 크로스오버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코웰은 스리 테너의 후계자를 찾는 명분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4인조 남성 중창팀을 오디션으로 모집했다. 스페인 바리톤 카를로스 마린, 미국 테너 데이비드 밀러, 스위스 테너 우르스 뷔흘러, 프랑스 대중가수 세바스티앙 이장바르가 일 디보4(Il Divo) 멤버로 추려졌다. 일 디보는 20세기 후반 통용된 크로스오버 성악의 개념을 바꿨다. 이들 이전까지 팝페라 콘셉트의 남자 가수는 되도록 마이크를 쓰지 않고 클래식 창법을 유지한다는 적정선이 있었지만 일 디보는 반대였다. 더 이상 클래식 음악이 주를 이루는 크로스오버에 얽매이지 않았고, 라스베이거스 호텔 정찬이나 크루즈의 디너쇼에서 관중을 만족시키는 시청각 퍼포먼스에 주력했다. 독창자 1인의 보컬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다인조로 활동하면서 차츰 멤버 개인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식도 기존 클래식 음악 마케팅에선 없던 방법이다. 충성적인 일 디보 팬들만으로 보첼리의 공연과 같은 상업적 후광을 기대하는 전략이다. 활동 초기 일 디보는 “클래식 음악 장르에선 너무 팝적이고, 팝 장르에선 너무 클래식”이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필했지만, 활동 10년이 넘은 지금 마이크로 성량을 조절하면서 소화할 클래식 음악 넘버는 손에 꼽을 정도다. 중년에 접어든 이들에게 과거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비교하는 연예 미디어의 질문도 사라졌다. 클래식 음악 팬들도 일 디보라는 그룹의 이름은 알지만, 각 멤버의 이름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공개 경연에서 여성 중창팀이 나오지 않는 것도 여성 소비자가 여성 중창팀에는 움직이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의 에반 제키초,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수전 보일과 폴 포츠5가 등장했다. 각자 경연에서 ‘넬라 판타지아’와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던 이들은 특별한 클래식 음악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유튜브 동영상을 자습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러나 보일이나 포츠 모두 공식 데뷔 이후의 콘서트에선 경연 때와 균질한 기량을 보이지 못해 애를 먹었다. 성악 기초 교육이 부실한 결과다.

월드뮤직 시장에서의 새로운 가능성

2010년대 팝페라는 가수 개별의 역량에 의존하면서 장르의 위력은 위축됐다. 로스 앤젤레스 출신의 조시 그로반6은 보첼리 대역으로 그래미 시상식을 연습하다가 보첼리의 불참으로 결국 셀린 디온의 파트너가 된 신데렐라 스토리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현역 오페라 가수들은 그로반을 오페라 가수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그로반 스스로 팝과 오페라의 양분법을 자신이 초월했다고 강조한다. 본인이 구사하는 내지르지 않는 독특한 비브라토가 현대적 팝페라의 새로운 전형이라는 입장이다. 201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오스트리아의 콘치타 부르스트7는 드래그 퀸(여장 남자)으로 화제를 모았다. 짙은 턱수염에 몸의 굴곡을 노출하는 드레스를 입은 그는 본명인 톰 노이비르트 대신 ‘수염 난 여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우승곡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다(Rise Like a Phoenix)’는 노골적으로 가수의 개성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팝페라다. 2019년 현재 서유럽에서 일 디보를 대체할 남성 중창팀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탈리아 3인조 일 볼로(Il Volo)8는 프로그레시브 록과 오페라의 접점을 추구하지만 전통적인 팝페라 영역 밖에 있다. 팝페라에 거부 반응이 심한 프랑스에선 소프라노 에마 샤플랑이 신고전주의를 코드로 전자음악에 팝페라를 접목하지만 콘서트 대신 행사 섭외가 주를 이룬다. 프랑스 루앙 출신의 남성 가수 아모리 바실리9는 어려서 워너 뮤직 프랑스와 계약하면서 조시 그로반 스타일의 뮤지컬·팝페라 가창을 지향했다. 팔레르모 출신의 필리파 조르다노는 라틴 팝을 팝페라 스타일의 칸초네에 접목했지만 멕시코 시민권을 얻은 후 활동이 뜸하다. 2020년을 앞두고 팝페라는 오히려 월드뮤직의 자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슬로베니아의 보컬리스트 알렌카 고타르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성악과 출신으로 루블라냐에서 전막 오페라에 출연하는 동시에, 2007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팝페라 넘버(Cvet z juga)로 참가했다. 청정무구한 음색을 지닌 노르웨이의 소프라노 시젤은 노르웨이, 켈틱 같은 지역 민요에서 독특한 오라로 팝페라의 커버리지를 넓혔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PART 2  국내 클래식 크로스오버 그룹의 예술성과 지속성

다른 예술 분야도 그렇겠지만, 음악의 장르를 정의하고 따지는 건 아무래도 약간 좀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장르라는 것이 국경선이나 문지방처럼 또렷이 나뉘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요즘 같은 시절에 ‘정통’이나 ‘순수’를 고집하는 것이 생산적인 결과를 낳기란 어렵고,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분투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 작품이 서있는 출발점이 어디인지, 다시 말해 예술가가 어떤 장르의 어법으로 자기 작품에 접근하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일이라고 본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의 크로스오버 유행을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혼합하는 경향을 뜻하는 크로스오버라는 단어는 많은 경우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혼합’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이때 크로스오버 음악은 ‘주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음악가가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팝 음악’으로 통한다. 국내에서 이 장르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꾸준히 이어지기는 했을지언정 인기가 높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소 바뀐 듯 보인다.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우승한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 같은 팀이 대중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팬덤이 생기고, 공연 역시 성황리에 치러지면서 이 장르의 음악 역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들은 무엇이 다르길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이라는 포맷을 통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참여를 직접적으로 유도하기 때문에 특정 뮤지션에 대한 팬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쉽다. 일종의 ‘아이돌’이 탄생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이 보여준 뛰어난 능력 역시 인기의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인기와 열광이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그건 그저 실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후 내놓는 음악이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전에 말했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다시 말해, 크로스오버를 두루뭉수리하게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혼합이라고 말은 하지만 방점이 어디에 찍혔느냐는 것이다. 르네 플레밍이나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브로드웨이 히트곡을 부르는 것도 크로스오버이겠지만, 아리아나 그란데가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부르는 것도 크로스오버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클래식 음악가의 관점으로 접근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고, 후자는 팝 싱어의 관점에서 해석한 음악이 나올 것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는 우열이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다. 그리고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는 후자에 속하는 듯 보인다. 둘 다 팝, 그 중에서도 ‘한국 팝’의 땅에 발을 딛고 서서 클래식 음악을 적정 수준으로 가미한다.

보컬 팝 그룹으로서의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

두 그룹의 데뷔 음반을 들어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포르테 디 콰트로의 정규 데뷔작 ‘포르테 디 콰트로’(2017)를 간단히 요약하면 클래시컬한 요소가 일부 섞인 보컬 팝 리메이크 앨범이다. 윤종신·김이나 등의 일급 작곡가와 작사가가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리지널은 네 곡이고 나머지는 전부 리메이크다. 그리고 실제로 기억에 남는 곡들도 오리지널보다는 리메이크 쪽이다. 마그네틱 필즈의 ‘북 오브 러브’나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시네마 천국’ 테마 등의 팝 음악이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편곡과 멤버들의 멋진 보컬 하모니를 통해 재탄생한다. 포레스텔라의 데뷔작 ‘에볼루션’(2018)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댄스 비트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아임 커밍 나우’나 피아노 발라드 ‘유얼 마이 스타’ 같은 곡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크로스오버와는 많이 다르다. 앨범 후반부의 곡들은 보다 익숙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선보이고는 있지만 그룹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하모니를 중시하는 보컬 팝 그룹’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이는 포르테 디 콰트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음반들이, 이 그룹들이 그렇게 많은 호응과 사랑을 얻고 있는 것이 아주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아이돌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컬 팝에 대한 선호와 수요 또한 크다. 이른바 가창력 있는 가수의 절창, 즉 아득하게 치솟는 고음과 스위스 시계 기판처럼 정교한 아날로그 하모니는 여전히 많은 음악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부터 ‘복면가왕’과 ‘불후의 명곡’에 이르기까지, ‘노래는 정말 잘 하는데 빛을 못 보던 가수’가 텔레비전에 나와 화려한 편곡과 가창력으로 명성을 얻는 일은 드물지 않다. 여기에 더해 보컬 팝 그룹의 전통을 같이 고려해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일기예보 등이 불러일으킨 아카펠라 열풍 이래 아름다운 화음과 목소리를 강조하는 팝 보컬 그룹은 음악 시장에서 꾸준히 일정 이상의 호응을 얻어 왔다(여담이지만 동방신기도 데뷔 당시에는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고 홍보되었다). 대중음악계의 전면에 눈에 띄게 드러났던 적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잊은 적도 없었다.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

그러니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를 오히려 이러한 전통의 일부로 보면 어떨까. 다시 말해 이들은 사라 브라이트먼이나 안드레아 보첼리, 임형주와 같은 스타일로 대표되는 팝페라나 크로스오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 보인다. 두 그룹 모두 보컬 팝 그룹의 전통에 속해 있지만 그 전통을 클래식 음악과 뮤지컬 등의 필터를 통해 다채롭고 능숙하게 해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크로스오버’한 그룹들이기도 하다. 경쟁을 통해 검증된 실력이 있고, 정규 앨범에 붙은 데카 레이블 딱지는 음악성에 대한 일종의 상징적 보증 역할을 한다. 지금보다 더 많은 팬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한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두 그룹 모두에게 중요한 건 ‘오리지널리티’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해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들은 팝 그룹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은 새로운 레퍼토리보다는 기존 레퍼토리의 해석이 중요하다(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팝 음악에서 중요한 건 자신만의 히트곡이다. 리메이크는 처음에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일정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포르테 디 콰트로와 포레스텔라의 최근작에는 각 그룹이 생각하는 자신들의 고민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엿보인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두 번째 앨범 ‘클라시카’(2017)에서 라흐마니노프·말러·비제 등의 곡을 편곡하여 가사를 붙이고 있고, 최근작인 미니 앨범 ‘컬러스’(2018)는 전곡을 신곡으로 채웠다. 포레스텔라는 올해 발표한 신보 ‘미스티크’(2019)의 타이틀곡 ‘달하 노피곰 도다샤’에서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라는 야심찬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이 두 그룹을, 또 한국의 크로스오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 지켜보고 싶다.

글 최민우(대중음악평론가)

PART 3   JTBC ‘팬텀싱어’ 제작진이 말하는 클래식 크로스오버

김형중 PD

‘팬텀싱어’ 시즌 1·2를 거쳐 최근 종영한 ‘슈퍼밴드’의 연출·기획을 맡았다.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들의 재발견을 이끌어내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팬텀싱어’를 기획한 의도가 궁금하다. 최근 많이 사라져버린 4중창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성악 발성의 매력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해답이 크로스오버였다.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을 예측했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바람은 있었다. 아이돌처럼 멋있는 성악가나 뮤지컬 배우들이 대중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시즌 3도 방영될 예정이다.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뛰어난 음악적 기량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지원했다. 성악 전공생들뿐 아니라 뮤지컬 배우 등 많은 참가자의 기본기가 탄탄했다. 70~80%가 음악의 힘이었다면 나머지는 스토리라인이다. 기본적으로 조합의 맛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들 간 케미스트리를 보면서 진한 우정이나 에너지 같은 것들을 느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나온 것도 큰 몫을 했다.

크로스오버 그룹의 형성에 있어 기획자의 의도가 자주 개입되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클래식 음악이 고전의 해석이라면 현대 음악은 창작이다. 클래식 크로스오버에 뛰어들려는 많은 분이 아예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약간의 가이드만 있으면 너무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트레이닝의 문제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아이디어를 냈던 고훈정이나 조민규와 같은 친구들이 기획자로서의 캐릭터로서 부각됐다.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이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해외와 비교했을 때 국내 클래식 음악의 시장이 훨씬 더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해외 음반 매장에는 별도로 크로스오버 섹션이 없다.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가 조금 대중적인 음악을 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존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들도 다양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권태은 음악감독

‘팬텀싱어’ 시즌 1·2를 거쳐 최근 종영한 ‘슈퍼밴드’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들의 재발견을 이끌어내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곡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프로젝트는 국내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였다. 제작진부터 클래식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를 대중이 얼마나 좋아할까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클래시컬한 선율이나 멜로디를 가진 대중음악에서 주로 곡을 선정했다. 그러나 정작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샀던 곡은 파바로티가 불렀던 ‘카루소’였다. 이후부터는 클래시컬한 곡들이나 잘 모르는 곡들도 좀 더 과감하게 선곡했다. 주로 이탈리아 팝을 다수 선보였고, 시즌 2에서부터는 보다 폭넓고 도전적인 선곡을 감행했다.

크로스오버 음악의 매력을 소개해 달라. 5분 남짓한 곡에 다이내믹한 음악적 편곡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알레산드로 사피나의 ‘루나’라는 곡이다. 시즌 1 우승자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대표 레퍼토리기도 한데, 전반부에는 전자 드럼만 나오며 악기를 최소화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뿐 아니라 바로크적인 음악적 성부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편곡이 가능했던 것은 참여자들의 뛰어난 음악적 기량 때문이었다. 폭발적인 성량뿐 아니라 한없이 작은 소리까지 가능한 이들로 인해 편곡도 과감해졌다.

국내 크로스오버 음악이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창작곡 위주로 가서 그들만의 히트곡이 나와야 장르가 갖는 단단함이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전곡 창작곡으로 수록한 포르테 디 콰트로의 2.5집 ‘컬러스’가 갖는 의의는 크다. 더불어 ‘팬텀싱어’의 경우 음악적으로 많은 투자를 한 프로그램이다. 방송이 끝나고서 현장이나 행사, 콘서트 등에서 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면 방송에서 듣던 곡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많은 관객이 이들의 음악을 찾는 것뿐이다. 그래야만 더 많은 음악적 투자가 가능해지고, 양질의 음악이 탄생할 수 있다.

글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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