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서형민,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2월 15일 9:00 오전

ARTIST’S ESSAY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

 

어˚머˚니, 위대한 세 글자

피아니스트 서형민

 

©임주희

시골 소녀가 불과 16살의 나이에 상경했다. 한동안 언니와 형부 집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가냘픈 몸으로 미싱공장에 취직한 후 야간학교를 다니며 말 그대로 주경야독을 했다. 얼마 후 검정고시를 치르고, 후암동에서 1980년대 당시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던 ‘학생테이프’를 대여해주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것은 어머니께서 내 재능을 허투루 보시지 않은 덕이다. 실제로 어린 나이에 피아노뿐 아니라 작곡도 곧잘 해내며 ‘영재’로 불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 입학해, 당시 원장이던 이영조 선생님께 작곡을 배우며 피아노 공부를 병행할 기회를 얻었다. 그 후 한 잡지에 실린 것이 TV 출연으로 이어졌다. 당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던 SBS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에는 두 번 출연했고, MBC ‘생방송 화제집중’, KBS 2 ‘확인! 베일을 벗겨라’ 등에 출연하며, ‘금호영재독주회’를 비롯한 연주 활동을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내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홀로 나를 이끌고 가셨다. 고작 열 살 때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먼 타지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어머니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나라에서 열심히 일하셨다.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는 아예 혼자 나를 키워내야 했다. 주에 6일, 때때로 7일 내내 네일 가게에서, 나중에는 세탁소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보답하고자 공부에만 매진했다. 무엇보다 미국 아이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나 언어의 장벽을 넘으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다.

 

어머니와 이원숙 여사(정명훈 모친)와 함께 한 어린 서형민 ©본인제공

 

어머니의 희생이 드디어 빛을 발한 걸까. 고등학교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프린스턴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 두 군데에서 동시에 전액 장학금을 제안받았다. 정치외교학도를 꿈꿨기에 프린스턴 대학교 진학을 고민했으나, 그 유명한 이매뉴얼 액스(1949~) 교수님의 ‘줄리아드 교환학생 프로그램’ 비용 지원을 약속한 컬럼비아 대학교를 택했다. 인생은 롤러코스터라지만, 나의 롤러코스터는 낙차가 컸다. 영재로 유명했던 적도 있고, 공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미국에서 자라며 은근한 인종차별과 억울한 일을 겪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피아니스트에게 치명적인 손톱이 들뜨며 안에 염증이 차오르는 원인 모를 병(여전히 완치되지 않은)에 오랜 시간 고생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런 와중에도 국제콩쿠르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며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가장 절박할 때 센다이 콩쿠르에서 준우승(2013)을 거둬 대한민국 남자 음악인이라면 크나큰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는 군대 문제를 해결했고, 손끝이 아파 잠을 못 이루는 때에도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맞아가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무대에 오르고, 몇 달 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2016)을 거머쥐었다. 계속 콩쿠르에 도전하여 저먼 피아노 어워드 우승(2018),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2019)을 이력에 추가했다.

밝은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주자의 이면에는 어두운 이야기도 자리한다는 명제에 내 삶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역사를 전공하며 느낀 점은, 역사란 과거일 뿐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 나름의 ‘역사’를 써가는 것이다. 그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은 삶에 대한 의지다. 어머니께서 가시밭길을 걸으심으로써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역경을 이겨내는 방법을 연마할 수 있었다.

 

©김계희

 

아주 어릴 때 어머니께서 정명훈 선생님의 연주회에 데려가신 적이 있다. 그때 ‘저분과 협연하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18세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시향을 이끄는 정명훈 선생님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악보를 새로이 익히며 이 곡을 오케스트라와 반드시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다시 시간이 흐른 후 그 곡을 자그마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정명훈 선생님 옆에, 그리고 로열 필하모닉 옆에 세운 것은 정해진 숙명이 아니라, 작은 체구의 나의 어머니로부터 잉태된 나의 크나큰 의지가 아니었을까.

확고한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 의지를 심어준 이는 나를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이지만, 유독 내게 ‘어머니’ 세 글자가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음반


2018 인터내셔널 저먼 콩쿠르 우승 기념 앨범

서형민(피아노) Genuin 19643

베토벤 6개의 바가텔 op.126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드뷔시 전주곡 2권,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슈만 ‘아라베스크’ ‘어린이 정경’

 

공연


지중배/강남심포니(협연 서형민)

8월 19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만 ‘아라베스크’, 쇼팽 발라드 1번, 리스트 파우스트 왈츠 S407 외

 

 

 

글 서형민

피아니스트 서형민(1990~)은 매네스 음대 예비학교·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하노버 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서 올리비에 갸르동을 사사하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2016)·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우승(2016)·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콩쿠르 우승(2018)·비오티 콩쿠르 2위(2019) 등을 했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깊이 있는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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