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신창용, 건반 위의 항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29일 9:00 오전

건반 위의 항해

피아니스트 신창용

소나타부터 협주곡까지 한 달 새 여덟 곡을 무대에 올린다. 그 속에서 부단히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장미셸 바스키아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뉴욕 출신의 젊은 아티스트인데, 제 뉴욕 유학기가 떠오르더군요.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장소와 재료 등 표현에 한계를 두지 않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을 연주에 녹여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피아니스트 신창용, 그는 넓은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 자신을 찾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일정들이 이를 보여준다. 3~4월에 걸쳐 안산·광주·서울·인천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전국 투어를 갖는다. 그 사이 줄리안 코바체프/대구시향과 협연(3.26)하고, 정민/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4.1)에도 오른다. 올 하반기에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자리에 선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그리고 쇼팽 콩쿠르다.

이 많은 무대를 위해 그는 방대한 양의 레퍼토리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도 힘든 기색 없이 기대감을 내비친다. 닿고자 하는 목표도 분명하다. ‘신창용의 음악’을 더 많은 관객에 전하는 것. 그 개성을 찾는 데 다양한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피아니스트 신창용과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일정들을 보니 숨 가쁜 매일을 보내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매일 다섯 시간씩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느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막 전국 투어의 첫 무대(안산/3.11)를 마쳤지요. 이번 공연의 ‘핫이슈’는 모차르트 소나타 18번을 국내 무대에서 처음 연주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커티스 음악원 재학시절 연구와 고민을 많이 한 작품입니다. 모차르트 고유의 색깔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제 개성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어요.

무대에서 볼 기회가 거의 전무했던 작품이기에, 그 시도를 있는 그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라벨 ‘밤의 가스파르’도 연주하는데요, 지난해 11월 발매된 동명의 음반을 통해 ‘신창용의 시그니처’로 거듭난 곡이죠. ‘피아노 건반 위에서 한계는 없다’는 걸 알게 한 작품입니다. 무척 어렸을 때 접했지만, 줄리아드 음악원 재학 중 제대로 공부하게 됐어요. 라벨의 삶과, 이 곡의 배경이 된 시들을 깊이 있게 탐구했습니다. 이런 자료는 상상을 펼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제 상상이 덧대어진 ‘밤의 가스파르’를 들려줄 수 있었죠.

순회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을 연주하는 한편, 코바체프/대구시향과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3.26)을 선보였지요. 두 작품 사이 연결고리를 발견할 기회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소나타의 화음’이 ‘협주곡의 독주 파트’,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화성’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두 작품의 3악장 피날레엔 아주 흡사한 테크닉이 사용되더라고요. 라흐마니노프만의 비르투오소적인 작곡법에 감탄했어요. 이번을 계기로 두 곡을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순회공연의 각 공연 프로그램을 조금씩 달리했어요. 더 많은 곡을 준비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안산에서는 쇼팽 스케르초 4번 대신 발라드 3번을 연주했고, 인천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대신 슈만 환상곡집 Op.12를 선보입니다.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어요.(웃음)

2018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추후 한 작곡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죠. 이런 프로그램은 언제 실현될지 기대되는데요. 아직 20대를 지나고 있으니,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대가 되면 더 성숙한 연주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 이후에 도전하고 싶은 프로그램이에요.

 

채워지지 않는 갈망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독일에서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라고요. 미국에서 9년간 공부하면서 테크닉과 소리를 만들고 듣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이 시기에 다진 음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견해를 넓히고 싶어요. 여러 문화를 경험하며 기존에 알던 작품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주로 학생으로 레슨실에 들어갔을 텐데, 최근 유튜브 채널 ‘또모’에서는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해 화제가 됐어요. 누군가를 이끌고 지도하는 경험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제 설명이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지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레슨을 하는 것처럼 마스터클래스를 준비했습니다. 막상 가르쳐보니 소통의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죠.

이미 여러 국내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안정적인 연주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 하반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5월)와 쇼팽 콩쿠르(10월)에 참가한다는 소식은 의외였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자리에요. 쇼팽 콩쿠르를 위해 마주르카·왈츠·소나타·발라드·에튀드·협주곡 등 쇼팽의 다양한 음악을 익히고 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레퍼토리 선택이 보다 자유로워요. 라벨·슈만·모차르트·리스트·프로코피예프 등을 다채롭게 준비 중이죠. 순위에 상관없이 스스로 발전할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는 듯 느껴져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스스로의 연주에 대한 만족감이 아닐까요. 계속 발전해나가야 하기에 고민은 끝이 없어요. 아마 모든 아티스트도 그럴 거예요. 30대가 되기 전, 최대한 많은 곡을 다뤄보며 지평을 넓혀두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무대에 서든, 무슨 일을 하든 이것이 그 기반이 되어있을 테니까요.

글 박찬미 기자 사진 스톰프뮤직

 

교향악축제 정민/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협연 신창용)

4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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