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배리어 프리,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는 세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19일 9:00 오전

클래식 음악 배리어 프리,

‘장애’가 ‘장벽’이 되지 않는 세상

장애예술의 포용과 팽창, 어디까지 와 있을까?

 

장애운동의 뿌리는 1960년대 영국을 필두로 유럽에서 시작됐다. 영국은 장애인 접근성을 어떻게 높일지 우선적으로 고민했다. 영국 사우스뱅크에서 주최하는 장애예술 페스티벌 ‘언리미티드’의 시니어 프로듀서는 “높은 수준의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접근성’과 ‘작품성’이 확보됐을 때 장애예술은 더욱 꽃피울 것이다.

현재 국내 장애예술의 중요한 키워드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대중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을 때에도 장애예술계와 장애예 술인들은 부단히 움직였다.

첨단기술은 장애예술인의 ‘눈’이 되어줬다.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이자 피아니스트인 김예지는 오선보의 직관성을 반영한 ‘다차원 촉각 악보’를 만들었다. 도미넌트에이전시의 황도민 대표는 시각장애 연주자를 위한 지휘 인지 보조 장치 ‘버즈비트’를 개발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등한 접근권 박탈이 차별의 시작이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장애예술은 음악계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다. 오페라 음악코치 이지영과 일본 피아니스트 이즈미 타테노가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이지영은 청각장애인과 협업한 오페라 워크숍 참관기를 보냈다. 그는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예술 장르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밝혔다. 한편 이즈미 타테노는 지병으로 우반신이 마비됐지만 재활 기간을 거쳐 2004년 ‘왼손 피아니스트’로 복귀했다. 동시대 작곡가들은 그에게 ‘왼손을 위한 작품’ 100여 곡을 선사했다.

지금, 동시대 예술을 보자. 다양한 것을 ‘포용’하면서 영역을 ‘팽창’하고 있다. 장애예술의 핵심인 ‘포용적 예술(inclusive arts)’은 또 하나의 현대예술이다. 이번 기사가 장애예술의 미(美)를 알리는 촉매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고립에서 벗어나도록 힘이 되어주는 네 명의 음악인과 장애예술을 논했다. ‘다차원 촉각악보’를 개발 중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시각장애인 합주를 위해 보조 장치를 개발 중인 황도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새로운 ‘눈’을 위한 진화는 이곳 너머 국경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빅토리홀오페라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오페라 공연을 만들고 있는 이지영, 왼손의 감동을 행하는 이즈미 타테노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글 장혜선 기자

 

Interview

 

‘다차원 촉각악보’를 개발한 피아니스트·국회의원 김예지

모두를 위한 악보

지난 2월 10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김예지의 릴렉스 콘서트’가 펼쳐졌다. 배리어 프리 공연에서 ‘보조 수단’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을 무대 안으로 포용한 공연이었다. 김예지는 ‘보조 수단’도 ‘또 다른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무엇보다 ‘다차원 촉각악보’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여서 뜻 깊었다.

미국 유학시절, 김예지는 점자악보가 미처 담지 못하는 ‘오선보의 직관성’을 느끼고 싶어서 ‘다차원 촉각악보’를 개발했다. ‘다차원 촉각악보’의 기본 개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악보’다.

 

김예지(1980~)는 숙명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 석사를 받았다. 이후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사, 위스콘신대학 매디슨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이다

 

 

 

학창 시절, 악보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점역을 요청했다고요. 일본에 맡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각장애 음악인들이 모두 점자악보를 일본에서 구매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도 악보점역이 많이 발전했고 점역사도 늘어서 많은 양의 악보를 보유하고 있지요. 제가 한창 공부하던 1990~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습니다. 늘 의뢰하던 일본 단체가 친절했으며 개인 일정도 세심히 신경 써주었죠. 만족도가 높은 업체였어요.

시각장애인으로서 음악을 배울 때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악보는 음악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어요. 교재 공급이 수월하지 않았던 게 가장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박사 논문의 주제를 ‘촉각 보표 표기법 도입(An Introduction To Tactile Stave Notation)’으로 구성한 결정적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쇼팽 전주곡 Op.28을 레슨받은 첫날이었어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작곡가 의도를 읽지 못했네’라고 하셨죠. 점자악보에 없는 정보가 일반 오선보에는 직관적으로 나와 있음을 그때 알아차렸죠. 일반 악보에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정보를 점자악보에서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악보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악보라면 더더욱 좋을 테고요.

한 인터뷰에서 “내가 개발한 다차원 촉각악보는 점자악보의 ‘대체물’이 아닌 ‘보완물’이다”라고 언급하셨습니다.

‘보완물’이라고 했던 이유는 현재 ‘다차원 촉각악보’는 상용화되지 못한 채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이 악보가 빠른 시간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죠. 이 점이 완료된다면 보완책으로 사용하기보다는 또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개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이디어가 구현되려면 기술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요.

처음엔 실·단추·빨대처럼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한 번 만들어 보았고, 이후에는 3D 프린터 테스트 도 해봤어요. 이 과정에서 위스콘신대학 기술공학 분과 대학원생들과 지도 교수의 도움이 컸죠. 최종적으로 종이에 액체 플라스틱을 입히는 과정이 포함된 제작 방법이 원하던 결과물에 가장 적합했습니다.

‘다차원 촉각악보’가 피아노 외에도 다른 관현악 주자들이 사용하도록 개발됐나요? 더불어 오케스트라에도 도입 가능한지요?

피아노만을 위해서 만든 악보는 아닙니다. 필요를 느끼는 분들 이라면 연주자나 작곡가, 성악가 모두 사용 가능해요.

다차원 촉각악보

상임위 1순위로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배정받으셨죠. 문체위에 장애인 의원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2020년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장애예술인지원법’이 통과되어 2020년 12월부터 시행됐는데요.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렇지만 정작 장애예술인 창작활동에 가장 도움 되는 지원책들이 기존 장애수당과 겹친다는 이유로 제외되면서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장애인문화예술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의 평균 활동 기간은 6~7년에 불과할 정도로 짧아요. 예술 관련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도 62%에 달했습니다. 예술 활동 증명을 받기 위한 기준 중 하나가 공개발표 실적인데, 장애예술인은 작품 발표 기회가 부족합니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은 장애예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 따라 예술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장애예술인에게 도움이 되는 입법 활동과 정책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장애유형·생애주기·생활환경별 특성을 비롯해 현장 목소리가 잘 반영된 정책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버즈비트’를 개발한 도미넌트에이전시 대표 황도민

소리는 진동이다

문화예술 기획사 도미넌트에이전시의 황도민 대표는 영국 휴먼인스트루먼트(대표 바하칸 마토 시안)와 함께 시각장애 연주자를 위한 지휘 인지 보조 장치 ‘버즈비트(Buzz Beat)’를 개발해왔다. ‘버즈비트’는 특수 제작된 지휘봉이다. 지휘자의 움직임을 진동으로 전환하여 연주자에게 전달한다.

지난 1월 22일에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버즈비트’를 통해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공연에선 지휘자 진솔과 14인 연주자가 함께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공연 전인 1월 17~19일에는 시각장애 연주자에게 지휘에 관한 이론과 실습, ‘버트비트’ 사용법을 알려주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황도민(1986~)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타악기를 전공했다. 2010년 서울국제타악기페스티벌에서 처음 공연 기획 실무를 익힌 그는 이듬해 공연기획사를 차렸다. 현재 도미넌트에이전시를 운영하며 ‘버즈비트’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버즈비트’를 개발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후배 중 시각장애를 지닌 타악기 연주자가 있는데요. 그 친구가 자신도 지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군요. 당시 친분 있던 핀란드 기획자에게 이러한 얘기를 전했더니, 영국의 개발자를 소개해 줬습니다.

그리하여 영국 장애예술인 지원 기관인 휴먼인스트루먼트와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된 거군요!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2017년으로 거슬러 가야 돼요. 휴먼인스트루먼트와 연락하니 아직 실험단계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개발할 모든 준비는 완료됐다고 하더군요. 제가 펀딩을 담당하며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영국을 오가며 여러 번 미팅을 거쳤는데요. 초기 모델 시스템은 조금 불안정했어요.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 문제도 있었지만 지금은 해결됐습니다. 2018년 11월, 영국에서 ‘버즈비트’를 사용한 시연회가 처음 열렸어요.

국내에는 2019년 서울시향 ‘우리동네 음악회’에서 ‘버즈비트’가 처음 사용됐습니다.

당시 서울시향을 지휘한 차웅 지휘자가 학교 선배였어요. 서울시향이 한빛맹학교에서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웅 지휘자에게 ‘버즈비트’를 소개했죠. 서울시향 공연기획팀에서 긍정적으로 응해주어서 두 명의 연주자가 장비를 착용해 연주했습니다.

‘버즈비트’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소리는 진동이다’도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촬영을 진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휘인지 보조 장치’에 관한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했어요. 2019년 서울시향과 연주를 진행했을 때 발견된 기술적 문제를 영국에서 개선하는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이 장치를 처음 생각해 낸 작곡가 롤프 게하(1943~2019)도 참여하기로 예정 됐는데, 그해 갑자기 돌아가셔서 롤프를 기리는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버즈비트’를 위해 훈련해야하는 것들이 있는지요?

“이 파트에선 이렇게 시작할 거야” 같은 사전 약속이 필요하죠. 사실 이러한 약속은 비장애인 연주자도 리허설 과정에서 모두 거치는 겁니다. 설치 방법은 매우 간단해요. 5분만 설명을 들으면 바로 세팅할 수 있죠!

현재 어느 정도 개발이 이뤄진 상태인가요?

개발은 거의 완료된 상태입니다.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당장 가능하지만 비용이 문제죠. 사회적 기업은 수입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돈에 대한 이야기를 기업에 설명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걸 팔아서 돈이 될까?”라는 심사위원의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다른 분야에서도 이 장치를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버즈비트

이전 한 인터뷰에서 “무용수가 송신기를 차고, 시각장애인 관객이 수신기를 착용하면 무용 관 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고 언급했습니다. 음악을 넘어 다른 장르에서도 ‘버즈비트’가 유용할 것이라고 보나요?

시각장애인 관객이 무용을 즐기는 방법은 무용수 동작을 직접 만져보고 설명을 듣는 거예요. 만약 무용수가 ‘버즈비트’ 송신기를 착용한 지휘자가 되고, 관객이 수신기를 착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무용수의 움직임을 진동으로 느끼겠죠. 비장애인, 안무가에게도 새로운 시도가 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실현하기 위해 장치를 많이 바꿔야겠지만 기본적인 이론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영국은 장애인 차별과 사회적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양한 법령 제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를 보면 제도가 아닌, 인식적 측면이 우수한데요. 한국도 정책이나 시설 면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처지진 않아요. 다만 제도적으로 앞서가지만, 대중이 ‘차별’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요즘 ‘클럽하우스’에서 시각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장애예술에 관한 대화가 오가요. 결국은 ‘인식 문제’로 귀결됩니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되어 살아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무엇이 불편한지를 굳이 물어봐야지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From abroad

 

미국 | 이지영

소리의 벽을 허물다

청각장애인의 손은 부지런히 춤을 추며 목소리가 된다. 미묘한 손 움직임과 다채로운 얼굴 표정은 언어를 넘어 노래가 된다. 필자가 속해있는 빅토리홀오페라는 미국 버지니아 샬러츠빌에 위치한 민간 오페라단이다. 현대인들의 일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주며 다양한 관객층을 확보해 가고 있는 혁신적인 예술 단체. 지난해 2월, 빅토리홀오페라의 설립자인 미리암 고든스튜어트와 브렌다 패터슨이 기획한 ‘소리의 벽을 허물다(Breaking the Sound Barrier)’ 워크숍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페라’라는 예술 형식에서는 보기 드물게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들과 협업을 이뤄낸 작업이었다. 워크숍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억압’이다. 청각장애인들은 그동안 보이지 않는 억압 속에 살아왔다.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청각에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적응해 나가야만 했다. 풀랑크의 오페라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에서는 프랑스 혁명 당시 종교 탄압 아래 죽음으로 내몰린 수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억압’이라는 주제를 투영해내기에 제격인 작품이었다.

극 중 주요 인물인 블렁슈, 콩스텅스, 그리고 마담 리두안느가 나오는 장면을 발췌해 집중 조명했다. 한 명의 청각장애인 배우와 한 명의 성악가가 짝을 지어 각각의 인물을 묘사했다. 청각장애인 배우들은 극 중 현재 시점인 1780~1790년대를 사는 세 인물을 담당하고, 성악가들은 그 이전 시대에 다른 형태로 억압을 받다가 죽은 존재로 등장한다. 이 죽은 영혼들은 세 수녀의 영적 수호자가 되어 무대 위에서 그림자처럼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준다. 극 후반부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수녀들은 다음 세대에 억압받는 또 다른 누군가의 영적인 수호자가 될 것이다. 이 순환 고리는 21세기 우리의 삶에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물음표에 대한 답은 연습실에서 하나씩 찾아갔다. 한 공간에 ‘비장애인 음악가(성악가·지휘자·피아니스트)’와 ‘청각장애를 지닌 배우’들이 모였다. 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에는 수화가 능통한 연출가 알렉 레브와 수화통역사들이 힘을 모았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Gina Proulx Photography/Victory Hall Opera

풀랑크의 음악적 언어 중 ‘갑작스러운 쉼표’나 ‘긴 음가’를 수화에 담아내는 작업은 흥미로웠다. 단순히 설명적인 손짓을 더하는 대신 감정을 춤으로 표현했다. 수화가 부수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하나의 오페라 요소가 되었다. 지휘자 케슬린 켈리의 유려한 ‘수화’는 미처 채우지 못한 빈틈을 꼼꼼히 엮어나가며 모두를 포용했다. ‘소리의 벽을 허물다’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빅토리홀오페라의 청각장애인 오페라 워크숍은 새로운 예술 장르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음악은 그저 귀로 듣는 대상을 넘어 마음으로 느끼는 존재였다. 장벽을 허물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들은 마법처럼 그 순간 그 공간을 따스하게 변화시켰다. 갈수록 양극화만 되어가는 우리 시대, 예술가들의 이러한 작은 시도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새로운 통로가 되어주지 않을까. victoryhallopera.org

이지영(1989~)은 연세대에서 교회음악 합창지휘를 전공, 뉴잉글랜드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빅토리홀오페라 음악코치, 엠트리 케냐 음악교육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 이즈미 타테노

왼손 피아니스트

데뷔 초부터 일본과 핀란드에 거주지를 두고 연주활동을 해왔다. 핀란드에서 활동한 것은 고요한 환경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훌륭한 음악가를 많이 배출했지만, 클래식 음악 시장은 아주 작다. 반면 일본 음악 시장은 윤택하여 연주가로서 여러 도전을 해볼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핀란드 정부로부터 예술가에게 주는 종신 연금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우반신이 마비되어 ‘왼손 피아니스트’가 됐을 때, 60세가 넘었으니 이제는 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1972년 도쿄에서 나의 팬클럽이 결성됐다. 이후 팬클럽은 간사이·시코쿠·규슈·도호쿠 등으로 확대되어서 연주 활동의 큰 힘이 되어줬다. 2002년 뇌일혈로 쓰러지고 2년 후 다시 복귀할 때에도 일본 팬들의 지원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갑자기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참 행복했다. 음악을 만듦에 있어서 ‘왼손이냐’ ‘양손이냐’는 궁극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왼손을 위한 작품’은 낯선 것이었다. ‘왼손 피아니스트’ 첫 무대를 위해 작곡가 마미야 미치오(1925~)와 페르 헨릭 노드그렌(1944~2008)에게 작품을 부탁했다. 마미야 미치오는 “왼손을 위한 곡을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전했다. 이후 그가 써준 곡은 일본 최초의 ‘왼손을 위한 작품’이 되었다. 지금은 타계한 노드그렌과도 30년 가까이 알고 지냈는데, 그가 쓴 피아노 작품은 모두 나를 위한 곡이다.

이후 미국·아르헨티나·이스라엘·오스트리아 등 여러나라 작곡가들이 나에게 곡을 헌정했다. ‘왼손 피아니스트’가 된 후 피아노 협주곡만 15곡을 초연했고, 실내악이나 낭독을 융합한 작품도 발표하곤 했다. 요즘 작곡가들은 왼손을 위한 작품에 의욕적이다. 작곡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작곡가의 길을 걷는 이라면 왼손 작품에 활짝 열려있기를 바란다.

벌써 4년째 가나자와에서 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왼손 피아니스트를 위한 오디션’에 심혈을 기울인다. 앞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오디션(Ishikawa Kanazawa Left-Handed Pianist Audition)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니,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이즈미 타테노(1936~)는 1960년 도쿄예술대를 졸업한 이후 일본과 핀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2002년 지병으로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2004년 ‘왼손 피아니스트’로 복귀했다. 동시대 작곡가들이 그에게 ‘왼손을 위한 작품’ 100여 곡을 헌정했다. 데뷔 60주년을 맞아 일본 7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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