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마티외 에르조그, 바람처럼 날아든 지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10일 9:00 오전

THE CONDUCTOR
지휘자 마티외 에르조그

바람처럼 날아든 지휘봉

지휘자 마티외 에르조그

비올리스트의 지휘 이야기. 혹은 지휘자의 비올라 이야기

 

오는 5월 내한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는 마티외 에르조그(1977~)는 한때 비올리스트로서 세계를 누볐던 사람이다. 에벤 콰르텟의 창단 멤버(1999~2014)이기도 한 그는 여러 무대에서 비올리스트로 활약하다, 2015년 어릴 적부터 꿈꿨던 지휘자의 길을 선포하며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에르조그가 지휘자로서 한국 관객에 건네는 첫 인사다.

드디어 한국에서 지휘봉을 든 당신을 만나게 됐다!
2009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비롯한 여러 무대에 에벤 콰르텟으로서 올랐다. 2019년에는 나의 친구이기도 한 조진주(바이올린)의 초청으로 통영국제음악당에도 섰다. 한국 악단을 지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코리안심포니의 여러 음반을 들어보았는데,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에르상의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드림타임’, 그리고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을 선보인다. ‘프랑스 출신’ 지휘자의 출사표인건가.
의도적으로 드뷔시와 에르상을 택했다. 이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플루트를 유사하게 활용했다. 또, 인상주의적인 관현악 색채로 꿈과 현실 사이를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상스의 ‘오르간’은 이와 다르다. 프랑스의 서정보다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교향곡에 가까운 낭만이 가득하다. 오르간과 피아노의 등장은 이 교향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에르상의 ‘드림타임’은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해외에서 이미 에르상의 작품을 여럿 지휘한 바 있는데, 어떤 점이 당신을 매료시킨 건지 궁금하다.
필리프 에르상(1948~)의 엄청난 팬이다!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역동적이며 깊이가 있다. 그러면서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지니고 있다. 연주는 매우 복잡하지만.(웃음) 이번 공연을 통해 많은 관객이 에르상 음악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리라 자신한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바람의 향연’이다. 적당하다고 보나?
매우 만족스러운 제목이다. 플루트가 활약하는 두 작품에 이어, 바람이 관통하는 또 하나의 악기인 오르간이 등장하니 ‘바람의 향연’은 더없이 적절하다.

비올리스트, 지휘자되기

1999년 비올리스트로서 에벤 콰르텟을 창단해 2014년까지 활동했다. 지휘자의 길을 선언한 무렵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휘를 했고, 파리음악원에서도 지휘를 전공했다. 그러다 현악 4중주에 대한 열정이 피어올라 에벤 콰르텟을 창단했고, 15년 간 지휘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던 2012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우연한 계기로 젊은 현악 연주자들의 리허설을 이끌게 됐는데, 그 순간 잠들어 있던 지휘에 대한 나의 열정이 폭발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아내에게 가서 “나, 지휘해야겠다”고 말했다.

에벤 콰르텟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콰르텟을 떠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간 대니얼 하딩의 보조 지휘자로 경험을 쌓고, 여러 마스터클래스와 콩쿠르에 참여해 몇 차례 상도 탔다. 지휘자로서 무대에 설 준비가 됐다고 판단이 섰을 때 에벤의 동료들에게 내 뜻을 밝혔다.

지휘의 무엇이 당신을 매료시킨 걸까.
현악 4중주를 하면서는 경험하지 못할 수많은 레퍼토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러·R. 슈트라우스·바그너·스트라빈스키… 이름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작곡가들의 관현악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게 큰 이유였다. 또, 지휘의 정신적인 면도 매력적이었다. 개성 강한 음악가들을 설득해 나의 음악적 해석을 관철시키는 과정은 피를 끓게 했다.

콰르텟의 일원으로 산 세월이 길었다. 지휘로 영역을 바꾸면서 맞닥뜨린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리허설 방식에 있어서 특히 차이가 컸다. 콰르텟에서는 해석을 켜켜이 쌓아나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한 작품을 가지고 한 달간 리허설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으로는 최대 세 번의 리허설만이 허용될 것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시간 안배를 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었다. 또, 음악의 경계 밖에서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악단은 수많은 규율에 의해 굴러간다. 이에 비하면 현악 4중주는 규율이 없다고 봐야 할 정도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 ‘중재’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비올라를 연주하면서 얻은 내공이 지휘에서는 어떻게 발휘되던가?
마침, 지난주에 샤를 뒤투아(1936~)를 만나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도 비올리스트였다. 비올리스트들에겐 하모니와 곡의 구조를 포착하는 귀가 있다. 뒤투아와 나는, 현악 앙상블의 ‘중심부’에서 쌓은 시간과 경험이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는 데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에 동의했다.

지휘 공부는 어떻게 이어나갔나?
빈 국립음대에서 대니얼 하딩의 스승이기도 했던 마크 스트링어(1964~)를 사사했다. 이외에도 많은 스승을 만났지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세묜 비치코프(1952~)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주최한 저녁식사에서 처음 만난 그는 인자함과 지혜로움으로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에게 피드백을 받고자 내 지휘 영상을 보냈는데, 지휘 제스처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의견을 내주는 동시에 나의 재능을 격려해주었다. 이후 그의 보조지휘자를 자청해 그와 가까이에서 일했다. 비치코프는 리허설 중 자신이 내린 여러 선택들에 대해 내 의견을 묻곤 했다.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2015년 앙상블 아파시오나토를 창단했다. 자신의 악단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유는 많은데 핵심만 말하자면, 실내악 연주자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짓고 싶었다.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관악 앙상블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연주하는 관현악곡에는 특별함이 있다. 처음에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기획자, 경영자, 사서, 예술감독, 그리고 지휘자까지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는 게 도전이 되었지만, 이 모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의 창단 멤버이자 비올리스트로서 지난 10여 년간 활동한 이승원이 최근 지휘자로 전향해 커리어를 쌓고 있다. 당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소규모 앙상블에서 시작해 ‘봄의 제전’에 이를 때까지 음악가들 앞에 많이 서봐야 한다.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잘 다루기 위해선 역시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뿐인 기회를 통해 좋은 첫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여러 악기의 테크닉부터 관현악법, 음악사 등에 관해 공부를 최대한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무엇보다도, 열정을 가져야 한다. 음악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지만, 지휘자라는 직업은 우리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 상기하지 않으면 때때로 우리를 압도하기도 하는 위험한 일이다!
박찬미 기자 사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바람의 향연’
마티외 에르조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플루트 조성현·오르간 남에셀)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에르상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드림타임’,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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