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 김대진·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7월 29일 9:00 오전

EDITOR’S NOTE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슈베르트와 문지영

김대진·문지영 듀오 리사이틀

6월 22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문지영 피아노 독주회

6월 30일 금호아트홀 연세

 

종종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콩쿠르 위너가 등장한다. ‘최초’ ‘최연소’ 등의 타이틀. 이 호들갑스러운 분위기에서 듣는 연주회는 어쩐지 특유의 피로도가 있다. 그 개성을 애써 이해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한두 시간은 곧 사그라들 이슈처럼 잊힌다.

우승 자체보다는 그 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초여름, 문지영의 공연 소식이 들렸다.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시리즈 ‘디어 슈베르트’에서의 듀오와 트리오(22일), 그리고 슈베르트의 레퍼토리로만 구성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의 독주회(30일)였다. ‘이번엔 슈베르트구나!’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문지영의 연주회에 갈 때는, 적어도 콩쿠르 위너를 위한 마음가짐을 내려놓아도 좋다. 그는 연주에서 자기 개성에 앞서 높은 완성도를 보장한다. 작품에 원래 있는 것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식. 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유다.

6월 22일, 스승 김대진과 함께 하는 듀오 리사이틀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그랜드 론도’ D951가 이미 로비까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뒤이어 연주한 D885·D940·D947 모두 2020년 발매된 음반(Universal)의 수록곡이다.

한 대의 피아노에서 퍼스트는 문지영이, 세컨드는 김대진이 맡았다. 김대진은 단숨에 오케스트라적 사운드의 풍성함을 만든다. 타건의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 터치는 피아노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마법 같은 소리다.

화성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문지영의 방식은 오케스트레이션 위의 투명한 선율로 빛이 났다. 그의 연주에는 과정을 위한 음표가 없다. 차곡차곡 쌓인 음표들은 스스로 존재 가치를 가지고 그의 손끝에 안착한다. 많이 고민한 연주일수록, 관객의 고민거리는 줄어든다. 그저 믿고, 작곡가의 세계를 누리면 된다.

6월 30일, 문지영은 말년의 슈베르트를 독대했다. 이번 무대에서 D790·D899·D935·D145를 연주했다.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 무언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 같아”로 시작하는 슈베르트의 편지, 그리고 문지영이 쓴 손 편지였다. 편지에는 “모든 슬픔과 고통을 겪어내며 세상을, 친구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음악을 끊임없이 써 내려갔을 슈베르트를 생각하며 겸허해집니다”라는 문지영의 말이 적혀 있었다.

작품 속 작곡가의 말년을 담으려 애쓰는 문지영의 연주를 들으며 병환 중이던 슈베르트가 펜을 잡은 이유를 생각했다. 그가 죽음 앞에 써 내려간 춤곡과 즉흥곡은 그의 고통스러운 유언이었을까? 아니다. 고통에 대한 평정심이고, 삶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음악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슈베르트의 상황에 문지영은 가슴 아파하며 펜 대신 건반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냈다.

공연의 끝에서 진땀에 흠뻑 젖어 병상에 누운 슈베르트와 문지영의 꾹 다문 입이 중첩되었다.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문지영의 얼굴에는 죽음의 절망을 막 이겨낸 슈베르트의 표정이 묻어났다.

 

글 허서현·임원빈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금호문화재단

 

 


 

‘경희를 마주하다’
이새롬(혜석)/서인권(이철원)/이예지(경희)/원소영(시월)/임정은(老혜석)

 

 

 

 

 

 

 

 

 

 

 

 

 

여성의 글쓰기 투쟁사

연극 ‘경희를 마주하다’

7월 6~17일 소극장 산울림

뮤지컬 ‘실비아, 살다’

7월 12일~8월 28일 대학로 티오엠 2관

 

흔히 문학을 두고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긴 역사 동안 여성은 글의 영역에서 부재되어 있었다. 여성의 글쓰기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글을 쓰는 여성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극단 감동프로젝트의 연극 ‘경희를 마주하다’(각색 임정은·연출 홍성연)는 나혜석(1896~1948)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소설 ‘경희’를 각색해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실존 인물 나혜석의 삶을 알아야 한다. 그는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그야말로 ‘신여성’이었다. ‘조선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자주 언급되는 나혜석은 자유연애와 불륜, 이혼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여성으로는 힘들었던 집필 활동뿐만 아니라 화가로도 활동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극중 주인공 경희는 나혜석의 페르소나이다. 젊은 시절의 나혜석이 갈구했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됐다. 삶이 황폐해지고 있는 중년 나혜석은 자신이 만들어 낸 소설 속 경희를 서대문 사거리에서 실제로 만난다. 결혼해야 하는 고통, 나라를 뺏긴 슬픔에 서러워하는 경희를 보며 나혜석은 마음 아파한다. 복잡한 사건이 중첩되어 나타나지만 여백 있는 무대 덕에 배우들의 연기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었다. 무거운 내용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연출가 홍성연의 노련함도 두드러졌다.

한편 ‘실비아, 살다’(작/연출 조윤지·작곡 김승민)는 미국 작가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 역시 실비아의 생애를 알고 봐야지 더 깊게 다가온다. 실비아는 섬뜩한 스타일의 문체로 여성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8세 때 아버지 죽음을 겪은 충격으로 9세 때 처음 극단적 죽음을 시도하고, 21세에도 한번, 31세에 마지막 시도로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예술성을 제대로 평가받아 사후 퓰리처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굴곡진 미국 문학가의 이야기는 뮤지컬에서 다소 거칠게 그려졌다. 하지만 소극장을 가득 채우는 다정한 넘버들, 배우들의 호소력 있는 앙상블이 실비아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도록 유도했다. 공연 내내 뮤지컬의 힘은 사실 ‘노래’에서 나온다는 걸 새삼 깨달은 순간이 많았다.

‘여성서사’가 무엇인지는 무릇 불분명하다. 하지만 한국 공연사(史)에서 지금처럼 여성을 다룬 적극적인 서사가 당당히 존재하던 때는, 단연코 없었다. 최근에 무대에 오른 두 작품은 글(극)로 재현하는 여성이 이 시대의 여성서사임을 보여준다. 지난 근대사에서 여성이 글 쓰는 행위가 얼마나 참혹한 결말을 불러왔는지 고스란히 마주했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산울림·공연제작소 작작

 

‘실비아, 살다’
김주연·최태이·주다온(실비아)/최미소·이아름솔(빅토리아)/문지수·이규학(테드) 외

 

 

 

 

 

 

 

 

 

 

 

 

 

 


 

‘장구대전-첫번째; 류파전’ 이동욱·염창수·임재태·김한준·박현승·하현조(장구)

 

 

 

 

 

 

 

 

 

 

 

 

 

나란히 걸어주는 전통음악 공연

제1회 서울연희대전
‘장구대전-첫번째; 류파전’

7월 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여우락페스티벌 ‘네 개의 점(點)’

7월 6일 국립극장 달오름

 

‘나는 국악을 잘 알아’라고 말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모두가 자신 없어 하고, 어려워한다. 잘 모른다고 한 뒤에 따라붙는 말은 아쉬움과 가벼운 죄책감이 섞인 ‘알아야 하는데’이다. 전통음악은 항상 꽉 쥐고 있지 못 하지만, 시야에는 걸리는 위치, 그즈음에 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이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통음악 공연 안내 책자에는 ‘동시대성’이 자주 언급된다. 단 네 음절에 이들이 원하는 방향성과 고민이 뚜렷하다. 전통음악이 옛것으로만 치부되지 않기를 바라고, 어렵다는 대중의 인식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현대에 녹아들어 함께 살아나가길 바란다. 전통예술의 동시대성을 주창하는 두 공연, ‘장구대전’과 ‘네 개의 점’을 다녀왔다.

두 공연은 동시대성에 대한 해결 방안이 달랐다. ‘장구대전’의 연주는 음악에 손을 대는 타협 하나 없이, 6인의 장구쟁이가 전통 설장구를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러나 공연 연출과 홍보 방식이 독특했다. 제목의 대전이란 표어가 앉아 있는 관객을 심사위원으로 만드는 듯했다. 한 시간 이상 장구 소리만 계속 ‘관람’했다면 살짝 지루해졌을지 모를 여섯 작품을 면밀히 ‘관찰’하게 만드니, 각 연주자의 몸짓·소리가 개인의 것으로 더욱 선명해졌다. 전통음악 또는 장구쟁이로 뭉뚱그려지지 않고, 이동욱·염창수·임재태·김한준·박현승·하현조 각 개인이 날카롭게 장단을 잡았다.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선보인 ‘네 개의 점’은 보통의 공연 연출을 따랐으나, ‘어떤 음악을 할지’ 고민과 타협의 길을 걸어왔음을 드러냈다. ‘네 명이 모여 어떤 효과가 날까’라는 그들의 호기심처럼, 거문고(김민영·황혜영)와 가야금(박지현·하수연)을 다양하게 조합해 새로운 소리를 계속 찾았다. 가야금에 반주를 맡기고 거문고가 선율을 부르는가 하면, 아무도 선율을 안 하고 전투적으로 리듬을 뜯기도 한다. 관객에게 내내 ‘이 악기에선 이런 소리도 나요’라고 전해주었다. 두 공연 모두 어렵다면 다르게 보여줄 테니, 자신을 응시하라 외치고 있었다.

 

글 이의정 수습기자 사진 더원아트코리아·국립극장

 


‘네 개의 점(點)’
김민영(거문고)/박지현(가야금)/황혜영(거문고)/하수연(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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