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자금성을 채운 장대한 스케일의 푸치니 ‘투란도트’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중국 전설시대의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다. 남성 혐오증을 가진 투란도트 공주는 각국에서 몰려오는 구혼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있다. 이때 멸망한 타타르 왕국의 칼라프 왕자가 공주의 미모에 한눈에 반해 그녀에게 구혼장을 내민다. 그러나 투란도트는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맞춰야 결혼할 수 있고, 한 문제라도 틀리면 곧바로 참수형에 처해질 것이라 위협한다. 왕자는 우여곡절 끝에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내지만 그래도 공주는 계속해서 왕자를 거부한다. 그리고 왕자는 역으로 공주에게 과제를 낸다.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내 이름을 알아내면 투란도트 당신의 승리,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랑의 힘으로 당신과 결혼하리라.”
왕자의 선언에 공주는 크게 당황하고 베이징 시민을 총동원하여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3막의 유명한 테너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동이 터오는 새벽 즈음 왕자가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노래다. 별빛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르면 자신이 승리한다는 당당한 내용의 낭만적인 아리아다.
푸치니는 영국에서 접한 중국 음악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중국의 민요 ‘모리화’와 황제찬가를 오페라 속에서 직접 인용하고, 5음계와 반음계, 불협화음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동양적인 신비가 넘쳐 흐르는 가상세계를 아름답게 구축했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는 공·탐탐·종·실로폰을 비롯한 타악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높낮이 변화가 심한 중국 음악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효과적으로 연출한다.
1998년 장이머우 감독은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투란도트’를 공연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비록 역동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원색이 중심이 된 중국 특유의 현란한 색채감각과 용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격정적인 이미지의 나열은 서구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한동안 작품 속에 묘사된 군중 동원과 공개 처형 등 공포정치의 요소 때문에 이 오페라를 마뜩찮아 했던 중국 공산당 당국도 장이머우의 공연이 세계적인 환호와 갈채를 받자 태도를 바꾼다. ‘투란도트’를 중국과 베이징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국가적 오페라로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이 자체 제작한 ‘투란도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장대한 스케일 속에 그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가득 담아낸 프로덕션이다.
‘투란도트’는 푸치니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음악 구조를 자랑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푸치니 사후 프란코 알파노가 피날레를 완성했고, 2001년에는 이탈리아의 현대음악 작곡가 루차노 베리오가 새로운 버전을 발표했다. 2005년에 이르러선 중국의 젊은 작곡가 하오웨이야가 중국식 감성을 보다 진하게 담아낸 피날레 장면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제 ‘투란도트’는 서구가 중국을 바라보고 중국인들이 서유럽에 접근하는, 하나의 ‘음악적 실크로드’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 되었다.
music 중국 현대사의 민낯, 피아노 협주곡 ‘황하’
‘투란도트’가 철저히 서구인의 시각으로 묘사된 중국을 담고 있다면, 피아노 협주곡 ‘황하’는 중국 현대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원곡은 중일전쟁 동안 등장한 애국적 칸타타 ‘황하대합창’인데, 1960년대부터 대륙을 휩쓴 문화혁명의 광풍 속에서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맞게 잘리고 다듬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중화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한 민족주의 성향의 음악이던 것이 ‘마오쩌둥 찬가’를 포함한 중국 공산당의 선전음악으로 무리하게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황하’는 이래저래 중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음악이다. 구조는 조악하고 내용은 어설프지만 랑랑을 비롯해 이 음악을 연주하는 중국 예술가들의 표정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 경제적 급성장을 배경으로 나날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강화해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와의 공존과 공영보다는 자국 중심의 문화적 오만함을 앞세우는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서구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조악한 키치”라며 이 작품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play 1980년대 베이징을 비추는 거울,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
‘1983년, 베이징에서 ‘버스, 정류장’ 을 탈고하다.’ 극작 노트에 이런 기록을 남긴 가오싱젠은 5년 뒤 프랑스로 망명길을 떠난다. 그의 글에 나타난 급진적인 사상을 문제 삼은 중국 당국이 그를 핍박했기 때문이다. 모택동을 비판하고, 베이징의 천안문 사태를 다룬 그의 작품은 상연이 금지되었고, 그는 고국을 등지고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가오싱젠은 중국어권 작가로는 처음으로 선정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그의 대표작인 부조리극 ‘버스, 정류장’은 교외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차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는 시골에서 도시로 갈 수밖에 없는 1980년대 중국 사회의 모습, 이제 막 도시화와 산업화가 시작된 베이징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망명하기 전 가오싱젠은 중국 베이징인민예술극장의 극작가로서 ‘비상경보’ ‘버스, 정류장’ ‘피안’ 등을 통해 중국 실험극의 장을 열었다. 서양 현대극에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의 전통 형식과 이야기를 가지고 완성도 높은 희곡 작품을 생산해냈다.
novel 진짜와 속마음 사이, 장아이링 ‘색, 계’
여류 작가인 장아이링의 작품은 당시 중국 문학 작품들이 보여준 국가와 민족, 계급 등의 이데올로기보다 개인에게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그녀의 성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소설 ‘색, 계’다. 소설의 배경으로 그려지는 1940년대 상하이와 홍콩은 주변 열강의 힘의 논리와 일본의 침략 전쟁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소유하고 싶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시대의 욕망과 이로 인한 폭력, 그 속에서 드러나는 참으로 인간적인 솔직한 감정은 주인공 왕치아즈의 행동의 변화와 모습을 통해 담겨진다. 소설에서는 중심 주제를 고의로 감추는 서사 기교를 사용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시대에 시달려왔지만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감추는 상하이와 홍콩, 아니 중국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상하이와 홍콩을 여행할 때도, 소설 ‘색, 계’를 읽을 때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면 안 되는 진짜 이유다. 내밀하게 깊이 들여다보자. 소설 ‘색, 계’에서 상하이는 옥빛이다.
dance 강렬한 붉은 색, 중국국가발레단 ‘홍등’
영화 ‘홍등’(1991)을 바탕으로 중국국가발레단을 통해 재구성된 동명의 발레 작품은 1920년대 중국의 봉건제도로 인해 희생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맡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감독을 맡았던 천치강이 발레를 위한 곡을 새로 썼으며, 제롬 카플랑이 의상을 맡는 등 ‘중국의 발레’를 완성하고자 총력을 쏟아 부었다. 붉은색을 비롯해 작품에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강렬한 색채는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고도로 훈련되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복제된 인형 같은 무용수들은 감탄을 넘어 비장미마저 느껴지게 한다. 발레에 기반을 두고 전통무용·경극·그림자극 등 전통예술을 접목해 중국적 색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music 황지원(오페라 칼럼니스트)
play 정진세(작가·연극평론가)
novel 한송희(북칼럼니스트)
dance 김태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