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한·중·일 원데이페스티벌

예술가들의 연합작전, 경계를 허물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지난 7월 12일 오후 7시, 40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94개 공연이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예술이라는 가장 자유로운 형식으로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순간의 기록을 옮겨본다

원데이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딱 하루만 열리는 축제다. 한날한시 다양한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공연은 오로지 원데이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원데이페스티벌은 예술을 매개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시간이었다.

10년 넘게 ‘마룻바닥’ 음악회인 하우스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작곡가 박창수는 2012년 ‘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지난 2013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대한민국 38개 시·군에서 65개 공연을 올렸다. 올해는 그 규모를 확장해 한국·중국·일본 3개국에서 40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94개 공연으로 꾸며졌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다발로 이뤄진다는 조건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동일했다.

지난 7월 12일 오후 7시, 한국 28개 시·군에서 총 47개 공연, 중국 15개 시에서 총 18개 공연, 일본 11개 시에서 29개 공연이 동시에 열렸다. 이번 원데이페스티벌 역시 일반적인 공연장 외에도 미술관·카페·서점·성당·가정집 등 다양한 장소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진행됐다.

‘경계 허물기’는 원데이페스티벌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이미 하우스콘서트를 통해 연주자와 객석의 거리 좁히기를 10년 넘게 시도해온 박창수는 올해 원데이페스티벌을 통해 3국이 정치·사회 부문에서 극복하지 못한 첨예한 대립 관계를 예술로 허물고, 각 지역마다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걸음을 내디뎠다.

7월 12일, 한국·중국·일본에서 펼쳐진 그 하루, 한 시간 동안의 뜨거웠던 울림을 지면에 옮겨본다. 한국 율하우스에서 열린 공연 리뷰와 더불어 같은 시각 중국과 일본에서 현지인들에게 큰 주목을 받은 공연의 풍경을 페스티벌에 참여한 연주자들에게 들어보았다.

베이징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과 에라토 앙상블의 이야기

지난해 10월 하우스콘서트에 참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 원데이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원데이 페스티벌의 모든 공연은 무료 관람이었고, 참여한 우리도 연주료를 받지 않았다. 관객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그로 인해 클래식 음악 저변이 확대된다면 연주료가 지급되지 않아도 우리가 움직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됐다.

따라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곡이면서도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기준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짰다. 우리가 연주한 곳은 베이징에 위치한 주중한국문화원 내 갤러리였다. 과연 많은 사람이 모일까 하는 생각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200여 명의 관객이 몰려 클래식 음악과 한국이 주최하는 공연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연 시작 무렵에는 조금 어수선하고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로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의 몰입도가 순식간에 높아지면서 이들이 우리의 음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경청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객이 공감하고 몰입하는 순간을 공유하는 것은 연주자로서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공연에서 중국인 연주자들과의 협연 또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과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함께 연주하면서 이들이 이날 공연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 일본인 연주자들이 함께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중국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일 연주자들이 함께 다시 만날 자리를 기대하고 기약하고 싶은 마음이다.


▲ 베이징 공연

도쿄 노름마치 음악감독 김주홍의 이야기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알즈아트코트에서 열린 원데이페스티벌은 한국과 일본의 연주자들이 전통과 현대를 한자리에서 펼쳐 보인 무대였다. 이날 노름마치의 김주홍·이호원·오현주 외에도 곽재혁(피리·태평소), 조수옥(무용), 하라다 요리유키(피아노), 장리향(가야금)이 무대에 올랐다. 형식화된 틀에 맞춰 이어져오는 전통음악과 틀을 넘어서는 즉흥음악이 서로 교차하면서 모두에게 신선하고도 인상적인 공연이 마련됐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음악적인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즉흥음악이 그날 참석한 모두에게 매력적인 장르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또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준비해 선보이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즉흥 속에서 자연스러운 정반합을 이뤄내는 시간이 됐다. 즉흥음악의 대가인 피아니스트 하라다 요리유키의 연주를 보면서 그가 정형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알고 있음에도 그 사이를 교묘하게 비켜나가며 집중력을 갖고 자신의 색깔을 구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김덕수 이후로 한국의 전통 타악팀의 일본 활동이 많이 부진했다. 노름마치는 20년 넘게 나고야에서 전통놀이판 워크숍을 해왔는데 일본의 중심인 도쿄에서 공연을 펼친 것은 원데이페스티벌을 통해 마련된 자리가 처음이었다. 우리의 연주에 반응하는 일본 관객들을 보면서 앞으로 일본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기회가 됐다.


▲ 도쿄 공연

서울 박창수·쉬펑시아·타케다 겐이치의 즉흥연주 공연 관람기

하우스콘서트의 본거지 율하우스는 이번 원데이페스티벌에서 한국·중국·일본 각 국가의 연주자가 모두 모인 유일한 곳이었다.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관객들은 공연 시작 5분을 앞두고 40명가량이 됐다. 오후 7시 정각.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쥔 박창수가 관객들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스태프들과 공유하고 있는 메신저 채팅방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고, 또 어느 지역은 마지막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는 소식이 실시간 사진과 글로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의 소소한 브리핑은 관객들로 하여금 같은 시각, 다른 공간에서 순간을 공유하는 가치를 상기하게 하며 자리에 참석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제 오후 7시네요. 오늘 저는 연주자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한국·중국·일본에서 동시에 열리는 원데이페스티벌이 이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박수에 그의 곁으로 쉬펑시아(구젱)와 다케다 겐이치(일렉트로닉 타이쇼-고토)가 등장했다. 박창수는 쉬펑시아와 7년 전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다케다 겐이치는 첫 만남이었다. 이들 사이에는 리허설도 어떤 조건이나 약속도 없었다. 그저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에 대한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박창수는 “작곡이 이뤄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 즉흥음악의 매력”이라는 말과 함께 “각자가 음악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를 바라보면서 즉흥음악을 감상하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약 1시간 동안 이뤄진 연주에서 박창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느슨함과 팽팽함의 완급을 조절하며 각 연주자가 스스로의 스타일을 드러내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음악 구조를 쌓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 연주자는 서로 주도권을 긴밀하게 주고받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의 모든 과정이 즉흥으로 이뤄지기에 연주자들은 서로를 향해 감각의 날을 세우면서 느낀 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소통하고 있었다.

이날 연주를 위한 악기 구성은 피아노·구젱·일렉트로닉 타이쇼-고토였는데 셋 다 현을 울려 소리를 내고 연주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창수는 타현악기인 피아노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쉬펑시아는 구젱을 연주하는 동시에 구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주술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케다 겐이치는 그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면서, 첨예한 음악적 구조를 쌓아 올렸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로 나아갔다.

심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듯했던 세 사람의 연주는 마치 마법이 풀리듯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곤 세 사람의 연주는 끝이 났다. 연주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이후 쉬펑시아의 유쾌한 제안으로 10분 정도 관객 모두가 함께 만드는 즉흥음악이 이뤄졌다. 관객들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몸으로 내는 소리의 레이어를 하나씩 만들고 쌓아 올리며 변주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순간을 공유하며 흐름의 주체로 하나 되는 경험과 마주했다. 이날 공연에 참석했던 피아니스트 조은아는 “공연 자체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고 악보에 담길 수 없는 음악, 악보가 필요 없는 음악을 연주해내는 모습이 부러웠다”며 “연주자 세 사람이 주고받는 에너지가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공연 후 만난 박창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같은 문화적 기반을 가졌음에도 오랜 기간 역사적 갈등, 정치적 대립을 비롯한 여러 분쟁의 이슈를 안고 있는 한국·중국·일본에서 동시에 공연이 열린다는 것이 이번 페스티벌이 갖는 중요한 의의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이번 페스티벌은 세 나라가 갖는 정치적·경제적 측면의 주도권과 달리 문화적인 면에서 한국이 두 나라에 대한 주도권과 적극성을 갖고 하나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 서울 율하우스 공연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