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주말 아침을 울린 대가의 당당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예술의전당 토요콘서트

9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토요일 오전 11시, 브런치 식당이 붐비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겐 과음한 다음 날 늦잠을 잘 시간일 수도 있다. 지난 9월 13일 토요일 오전 11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청중으로 가득했다.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토요콘서트의 이번 시즌은 프랑스 피아노 협주곡과 독일 낭만주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이날은 좀 특별하게 베토벤의 작품만으로 구성됐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교향곡 5번 ‘운명’. 애호가와 초심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걸작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의 관심은 무엇보다 협연자인 옥사나 야블론스카야에게 쏠렸다.

러시아 출신으로 알렉산드르 골덴베이저르와 타티야나 니콜라예바에게 배운 야블론스카야는 매네스 음대와 줄리어드 음대 교수를 역임했다. 지휘자 드미트리 야블론스키의 모친이기도 하다. 그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 연주를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클래식 음악 팬들이 적지 않았다.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입장하고, 지휘자 김대진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이어졌다. 이어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야블론스카야가 천천히 무대에 등장했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당당한 긴 서주에 이어 야블론스카야의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녀의 연주는 타건이 명징하고 한 음 한 음을 깨끗하게 빚어냈다. 미묘한 아티큘레이션이 대가다웠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견인하고 있었다. 느긋하면서도 중심을 확실히 잡고 연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1악장의 카덴차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아찔하더니 건반에서는 새벽 밤하늘에 알알이 박힌 별처럼 빛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황제’ 2악장의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회상적 흐름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꿈꾸듯 끝없이 계속되는 악구에서 야블론스카야는 늘 새롭게 시작했다. 2악장에서 3악장으로 이행하며 거칠고 격정적인 흐름에 잠길 때도 맑고 고운 건반이 또렷하게 포착됐다. 그녀는 간간이 미려한 템포 루바토를 쓰며 피아노 협주곡 중 대곡에 호흡을 불어넣었다.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거듭되는 커튼콜에 야블론스카야는 슈베르트 ‘물 위에서 노래함’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당당한 협연곡과 애틋한 앙코르. 앞으로 야블론스카야의 연주를 더 자주 보고 싶다.

휴식 시간 뒤에 더 증대된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등장하고 교향곡 ‘운명’에 대한 김대진의 해설이 이어졌다. 네 음으로 이루어진 ‘운명의 동기’가 네 개 악장 곳곳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직접 연주를 통해서 설명하니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한결 높아진 듯했다.

연주를 들어보니 정면 뒤에 포진시킨 8대의 베이스를 비롯한 중·저역대 악기와 목관군이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돌림노래 같은 3악장에서 딱딱 들어맞는 베이스는 깔끔하고 정갈한 김대진의 스타일을 반영했다. 환희에 찬 4악장은 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는 베이스·팀파니·트롬본·호른·트럼펫·목관악기 순으로 단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관심의 중심이 야블론스카야에 쏠렸지만, 김대진과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들은 ‘운명’ 4악장을 한 번 더 연주하는 것으로 앙코르를 선보였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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