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출발이 만들어낸 불후의 명곡
조지 거슈윈의 첫 히트곡 ‘Swanee’가 1919년에 발표되었다면, 그보다 일곱 살 위인 콜 포터(1891~1964)에게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도록 단 한 곡의 히트곡도 없었다. 1915년 브로드웨이에서 첫 작품을 발표한 그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근 10년간 유럽 생활을 하다가 1928년, 그의 나이 서른일곱에 다시 브로드웨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콜 포터의 뒤늦은 출발이 만들어낸 향후 10년의 성공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브로드웨이에 복귀하자마자 ‘Let′s Do it’을 히트시킨 그는 이듬해 뮤지컬 ‘Wake Up And Dream’을 발표해 런던 공연 263회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브로드웨이에서는 미국 음악 산업을 잿더미로 만든 대공황의 여파로 136회 공연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에 담긴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콜 포터 작품에 대한 재즈 연주자들의 특별한 관심은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를 시작으로 끊이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한 바로 다음 해 피아니스트 제임스 P. 존슨이 이 곡의 첫 재즈 버전을 녹음했다.(음반①) 이후 아티 쇼(1938)·토미 도지(1941)·빌리 홀리데이(1945)의 녹음이 줄을 이었다. 그중 제임스 P. 존슨의 녹음은 1920년대 뉴욕 할렘에서 융성했던 스트라이드 피아노(Stride Piano) 주법으로 콜 포터의 작품을 연주한 보기 드문 희귀본이다. 훗날 보컬리스트들도 흔히 생략하는 원곡의 서창(敍唱, Verse) 부분마저 연주한 제임스 P. 존슨은 두 번째 코러스에 진입하면서 파격적 면모를 보인다. 그는 한 옥타브 이상의 간격을 마치 큰 걸음 내딛듯이(Stride) 오가며 규칙적인 베이스음을 연주하는 이 스타일의 기본 주법으로 진행하다가, 두 번째 코러스부터는 래그타임과 스윙이 뒤섞인 변칙을 구사한다.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대가 제임스 P. 존슨이 훗날 등장하게 될 듀크 엘링턴과 텔로니어스 멍크의 음악적 조상임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주는 부분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다
하지만 콜 포터의 이 작품이 재즈에서 보다 빈번히 연주된 것은 1945년부터였다. 당시 재즈의 새로운 흐름을 몰고 온 비밥 연주자들은 이 곡의 코드 진행이 즉흥연주에 무한한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좀 더 빠른 템포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태드 대머런의 ‘Hot House’(1945), 패츠 나바로의 ‘Barry′s Bop’(1947), 리 코니츠의 ‘Subconscious-Lee’(1949) 등은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의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만든 비밥의 고전이다.
평면적인 즉흥연주의 나열에 의존하는 것을 탈피해 모던재즈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찰스 밍거스는 1954년부터 ‘재즈 작곡가 워크숍’을 결성하면서 그 역시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음반②) 목관악기 주자 존 라포타와 공동으로 진행한 당시의 녹음은 1956년 이후 밍거스의 완성된 모습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이 곡이 당시 재즈라는 장르에서 차지하던 의미를 그 누구보다 명백히 들려주었다. 연주의 서두를 여는 AABA 형식의 주제 부분은 테오 마세로(테너 색소폰, A파트), 존 라포타(알토 색소폰, A파트)가 성부를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B파트를 리드하던 새드 존스의 트럼펫이 마지막 A파트마저 이끌면서 어느새 멜로디는 태드 대머런의 ‘Hot House’로 바뀐다. 두 곡은 본질적으로 같은 곡이었던 것이다. 밍거스가 색소폰 외에도 다른 목관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라포타, 마세로와 함께 이 작업을 한 이유는 명백하다. 즉흥 솔로가 진행될 때 리듬 섹션을 제외하고 음악에서 잠시 사라지는 평범한 관악기 주자들과 달리, 밍거스는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리고 여기에 첼로마저 더한 사운드로 솔로 뒤편에서 화성의 밑그림을 깔아주는 것이다. ‘도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토록 우습게, 바보처럼 만들까’라고 물었던 콜 포터의 실연가는 25년 뒤 불협화음이 더해진 부조리한 느낌의 모던재즈로 변신했다.
하지만 모던재즈 시대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의 주류적 해석의 정점은 1956년 클리퍼드 브라운&맥스 로치 퀸텟에 의해 완성되었다.(음반③) 연주 속도를 한껏 올린 이 열띤 하드밥은, 당시 이 밴드의 사이드맨이던 소니 롤린스(1957)는 물론 애니타 오데이(1959)·캐넌볼 애덜리(1961)·그랜트 그린(1962)·캐멀 존스(1965)·스탠 게츠(1987)·윈턴 마살리스(1990)·키스 자렛(1999)의 열광적인 즉흥연주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1959년 빌 에번스의 녹음이 없었다면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에 관한 재즈의 관점은 훨씬 왜소해졌을 것이다.(음반④) 모두가 빠른 즉흥연주의 소재로 삼던 당시 에번스는 연주자 상호 간의 정밀한 교감의 끈으로 이 곡을 이용했다. 곡이 진행되면서 A파트는 긴장감으로 가득 찬 피아노·베이스의 동시 즉흥연주로 진행되다가 B파트에서 드럼이 가세해 경쾌한 네 박자 스윙이 전개될 때, 음악은 재즈 본연의 쾌감을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29년의 간격을 두고 등장한 제임스 P. 존슨의 연주와 빌 에번스의 연주를 비교해 듣는다면 재즈가 동시대의 그 어떤 음악보다 빠르게 변모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달의 추천 재즈음반
❶ Snowy Morning Blues
Decca-GRP 16042|연주 시간 3분 10초|1930년 1월 21일 녹음|제임스 P. 존슨(피아노)+에디 도거티(드럼)
❷ Jazzical Moods
Period-Fantasy OJCCD 1857-2|연주 시간 8분 8초|1954년 12월 녹음|찰스 밍거스(베이스, 피아노)+존 라포타(알토 색소폰, 클라리넷)/새드 존스(트럼펫)/테오 마세로(테너 색소폰, 플루트)/잭슨 윌리(첼로)/클렘 데로자(드럼)
❸ At Basin Street
Emarcy 814 648-2|연주 시간 7분 33초|1956년 2월 16일 녹음|클리퍼드 브라운(트럼펫)+소니 롤린스(테너 색소폰)/리치 파월(피아노)/조지 모로(베이스)/맥스 로치(드럼)
❹ Portrait In Jazz
Riverside 0888072306783|연주 시간 4분 36초|1959년 12월 28일 녹음|빌 에번스(피아노)+스콧 라파로(베이스)/폴 모천(드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