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페터 치머만 협연, 마레크 야노프스키/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

독일 정통 음악의 저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4월 1일 12:00 오전

프랑크 페터 치머만 협연, 마레크 야노프스키/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내한 공연
3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독일 정통 음악의 저력
주빈 메타는 근래의 한 인터뷰에서 ‘오케스트라의 전통이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통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다루는 작품의 종류에 따라 사운드는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전통적인 것이 사라졌다고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 혹은 전통적인 사운드를 간직한 오케스트라는, 메타의 말대로라면 오랜 세월 성격이 비슷한 작품을 연주해온 오케스트라라는 의미가 된다.
금세기 들어 네 번째 내한 공연을 가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국내 음악 팬 사이에서 독일 정통 사운드의 수호자로 알려진 오케스트라다. 2011년 내한 때 사용한 광고 카피는 ‘정통 보수 독일 사운드를 추구’였고, 이번에는 ‘정통 독일 사운드의 깊이와 여유’를 보여주는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두 문구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정통 독일 사운드’가 바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성격을 정의하는 핵심이라면 그 실체를 이루는 작품은 무엇일까?
2002년부터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마레크 야노프스키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평생을 헌신한 노대가다. 그는 결코 ‘앙팡 테리블’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데뷔 이래 스타일의 큰 변화 없이 여러 오케스트라를 거치며 정말 서서히 명성을 쌓아 결국엔 위대한 대가가 되었다.
첫 곡 ‘오베론 서곡’은 그가 전곡 녹음을 한 작품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에 빈번히 포함시켰다. 때문에 연주 스타일은 수정주의자의 날렵한 베버가 아니라 바그너를 예고하는 묵직한 베버가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으며 그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하지만 프랑크 페터 치머만이 독주자로 참여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곳곳에서 삐걱거림이 느껴졌다. 도입부터 강렬한 보잉과 억센 악센트를 넣어가며 분위기를 끌어온 독주자에게 열렬히 호응하듯 오케스트라도 다소 큰 소리로 이에 맞받아치는 바람에, 북구의 서늘한 서정이 시커먼 적란운이 가득 찬 풍경으로 바뀌었다. 결국 초절적 테크닉을 요구하는 이 난곡을 아무 어려움 없이 연주해내는 치머만의 명인기와 또렷한 음정을 들려준 관악기군의 기량만 남는 연주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2부를 장식한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이 시작되면서 단번에 사라졌다. 야노프스키는 70대 중반의 지휘자라고는 믿기지 않은 활달한 템포와 확신이 느껴지는 탄탄한 해석을 보여주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묵직한 저음, 다이내믹의 섬세함은 떨어졌지만 큰 음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목관, 특히 오보에와 바순 수석의 연주는 청중에게 큰 감흥을 선사했다. 맹렬한 기세로 치달은 피날레가 끝나고 쏟아져 나온 함성은 당연한 결과지만, 사실 진짜배기는 따로 있었다.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3막 전주곡이 바로 그것이다.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현재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앞서 소개한 메타의 말처럼 이들이 한동안 몰두했던 바그너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들이 지금 가장 잘하는 것도 바로 바그너의 음악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서 미진한 점을 한 방에 날리는 감동적인 마무리였다.
글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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