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음색, 깊은 여유를 더한 첼로의 넉넉한 ‘목(木)소리’
바야흐로 봄, 꽃이 만개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정에서 첼리스트 이강호를 만났다. 그는 첼로를 ‘자연스러운 악기’라고 말했다. 현악기 중 연주하는 자세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첼로의 매력은 묵직하고 깊은 저음인데, 이 자연스러운 ‘목(木)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음역대가 비슷하다.
지난 4월 16일, 이강호는 교향악축제에서 김대진/수원시향과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했다. 5월 27일에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시리즈’ 첫 공연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손꼽히는 베토벤의 첼로 협주곡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가 첼리스트들에게 남겨준 소나타 다섯 곡을 떠올리면 아쉬움은 사라지고 무한히 감사하게 됩니다.”
스워스모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강호는 예일대 음대에서 석사 학위를,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6세의 나이에 남부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교수로 초빙됐고, 2005년부터 2010까지는 코네티컷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 때 인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첼로를 ‘추상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악기의 자연적인 요소와 품질을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고민했죠.”
연주자라면 한 번쯤 스스로 악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첼리스트 야노스 스타커는 스스로가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 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야샤 하이페츠·예후디 메뉴인처럼 타고난 재능을 가진 연주자들도 본인이 어떻게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지 살피기 위해 악기의 ‘기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 그럼 이강호의 정갈하고 논리 정연한 설명 속으로 들어가보자.
현악기의 조상
첼로(Violoncello)는 비올(Viol)족이다. ‘비올’은 초기 현악기를 부르는 명칭인데, 대표 악기로는 비올라 다 감바와 비올라 다 브라치오가 있다. 악기 형태와 연주 자세를 보면 모던 현악기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첼로는 무릎 사이에 악기를 끼고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의 영향을, 바이올린은 팔로 들고 연주하는 비올라 다 브라치오의 영향을 받았다.
현을 선택하는 방법
첼로의 현은 은·알루미늄·니켈·텅스텐·틴·티타늄 같은 금속 재질부터 양의 창자를 말려 만든 거트현 등 재질이 매우 다양하다. 연주자들은 보통 추구하는 소리, 악기와의 궁합, 연주하는 프로그램 등을 고려해 현을 선택한다. 미국 화폐에는 ‘우리는 신을 믿는다’는 뜻의 ‘In God We Trust’ 문구가 적혀 있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는 이 문장에 ‘거트(Gut)’를 넣어 ‘In Gut We Trust’라고 패러디했다. 거트현에 대한 그의 애정이 돋보인다.
“거트현은 반응이 빠르다는 장점과 소리가 작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거트현을 애용하는 스티븐 이설리스도 무대에서는 소리가 작다는 평이 있지만, 레코딩은 굉장히 좋은 편이죠. 강렬한 소리로 유명한 로스트로포비치는 쇠로 된 현을 많이 사용했어요.”
현을 바꾸는 주기는 연습량에 따라 달라진다. 연주가 있을 경우에는 보통 일주일 전에 현을 교체하는 것이 적당하다.
“저는 C현과 G현은 ‘스피로코레(Spirocore)’ 제품을, D현과 A현은 ‘라센(Larsen)’ 제품을 사용합니다. 스피로코레는 저음의 울림이 좋고, 라센은 거트현과 비슷한 부드러운 소리가 나요. 강한 소리가 나는 ‘야가(Jargar)’ 제품도 종종 사용합니다.”
묵직한 4현
초기의 첼로는 ‘F(파)-C(도)-G(솔)’로 조율하는 3현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B(시)-F(파)-C(도)-G(솔)’로 조율하는 4현의 첼로가 고안돼 유럽 등지로 확산됐다. 1550년경 독일에서 처음으로 ‘C(도)-G(솔)-D(레)-A(라)’로 조율했고, 이 방식은 오늘날까지 첼로의 4현을 조율하는 기준 음이다.
현악기의 스피커, f홀
16세기 전후로 악기의 공명통 구멍이 c형에서 f형으로 변형됐다. 현악기는 현의 길이와 두께에 따라 음이 결정된다. 결정된 음은 브리지와 사운드 포스트(악기 앞판과 뒤판 사이의 버팀대)로 연결되어 울림을 만든다. 그 울림은 공명통에 증폭돼 f홀을 통해 나온다. f홀은 현악기의 스피커인 셈이다.
무릎이 필요해!
1700년대 이전까지 첼로의 몸통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1710년경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에 의해 몸통 길이가 75cm로 고정됐다. 1750년 이후 악기의 목과 지판이 길어졌고, 줄 받침(너트)이 둥글게 개량되며 첼로는 부드러운 음색을 얻었다. 당대 연주자들은 악기를 무릎으로 고정시켜 연주했다.
“오늘날에도 바로크 첼로 연주자들은 악기를 무릎으로만 고정시켜 연주합니다. 하지만 악기에 무게가 실리지 않아 큰 소리가 안 나는 단점이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아슬아슬해 보이죠? 하지만 악기의 머리를 의자에 올려놓는 것이 첼로를 바닥에 눕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해요. 악기를 세로로 눕혔다가 넘어지면 브리지가 부러질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사운드 포스트라도 무너지면 악기의 완벽한 치료가 힘들어져요.”
첼로의 듬직한 다리
19세기 말 아르디 프랑수아 세르베가 ‘엔드핀’을 고안한다. 엔드핀의 영향으로 첼로의 연주 기량이 발달했고, 베토벤을 비롯한 작곡가들에 의해 마침내 완벽한 독주 악기로 거듭난다.
“오디오를 보면 받침이 뾰족한 것이 있어요. 바닥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해 울림을 많이 주려는 의도로 고안한 거죠. 엔드핀도 똑같습니다. 악기와 몸이 닿는 면적이 줄어들면 소리의 울림이 좋아져요. 엔드핀은 악기의 각도와 높이를 조절해 연주자들이 자유롭게 무게를 싣도록 도와줍니다. 엔드핀 끝은 날카롭게 유지해야 해요. 끝이 무디면 연주하다 악기가 미끄러지죠. 엔드핀의 소재도 악기 소리에 많은 영향을 주는 편입니다. 저는 쇠로 된 것과 탄소섬유로 된 것을 사용해요.”
엔드핀의 적당한 높이는?
“첼로를 ‘제대로’ 잡았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몸의 세 부분을 확인하면 됩니다. 악기를 연주할 때 ‘가슴’과 ‘양쪽 무릎’이 악기에 닿아야 해요. 이 세 부분이 몸에 닿으면 펙이 자연스럽게 귀 뒤에 오겠죠. 이 높이를 기준으로 엔드핀의 길이를 조절하면 됩니다.”
가슴에 멍이 든 첼로 연주자
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의 왼쪽 턱에는 정체불명의 시커먼 문신(?)이 있다. 악기 턱받침에 살갗이 오랫동안 닿아 거무스레하게 변한 것이다. 장기간 연습으로 얻은 ‘영광의 상처’인 셈이다. 첼로 연주자들은 좋겠다고? 첼로 연주자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소리! 첼로는 악기의 몸통이 가슴에 닿기 때문에 ‘훈장’이 가슴에 새겨진다.
계절 타는 현악기
“현악기의 재료는 목재라 습도와 온도에 매우 민감합니다. 현악기는 계절마다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가장 큰 문제는 기온의 ‘변화’입니다. LA는 항상 습해서 오히려 악기 관리가 쉬워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가 악기 관리에는 제일 까다롭죠. 여름에는 가습기를, 겨울에는 제습기를 트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댐핏(악기 안쪽에 수분을 공급하는 제품)을 사용해도 되지만, 물이 샐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돼요. 악기에 직접적으로 물이 닿으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악기가 갈라지거든요. 비행을 오래 하는 경우에는 악기 케이스 안에 스펀지로 된 습도 조절 장치를 넣는 것이 좋습니다. 치과에서도 1년에 두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라고 하잖아요. 악기도 마찬가지예요. 1년에 두 번씩 악기수리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브리지와 지판도 계절을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브리지의 높이는 지판 위로 5mm 정도 올라오는 것이 적당하다. 지판의 높낮이가 계절마다 변하기 때문에 브리지도 여름용과 겨울용이 있다.
“악기의 지판이 상하면 잡음이 생기므로 지판도 주기적으로 깎는 것이 좋아요. 연주자의 지판을 누르는 힘과 땀의 양에 따라 주기는 달라집니다. 첼로는 바이올린보다 텐션이 강하기 때문에 지판이 빨리 닳는 편이에요.”
엄지 포지션
첼로에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없는 ‘엄지 포지션’이 사용된다. 엄지 포지션은 상위 포지션에서 엄지손가락으로 현을 눌러 음역을 넓히는 주법이다. 주로 각 개방현 위의 옥타브 음정을 연주한다. 엄지손가락으로
포지션을 정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음을 짚는다. 엄지 포지션에선 힘이 없는 새끼손가락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엄지 포지션은 기타의 ‘카포’와 같은 기능을 해요. 손 모양은 피아노를 칠 때처럼 ‘계란 잡듯이’ 둥그렇게 해야 합니다.”
울프가 있다? 울프를 잡자!
현이 울리면 공명통에 진동이 축적된다. 현의 울림을 방해할 정도로 진동이 커지면 특정 음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데, 이것을 ‘울프톤(Wolf Tone)’이라고 한다. 첼로나 더블베이스 같이 덩치가 큰 현악기에서 쉽게 발생한다. 그 소리를 잡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바로 울프톤 제거기다.
“울프톤 제거기는 ‘지나치게’ 잘 울리는 음을 억제하는 효과를 줍니다. 첼로의 크기는 표준화돼 있어 악기마다 울프가 울리는 음이 거의 비슷해요. 보통 G현에서 많이 나는 편입니다. 약음기를 끼면 악기 내부 시스템에 변화가 오기 때문에 울프가 생기는 음이 변하죠. 조리개 뒷부분에 와인 코르크 마개를 넣어 울프를 잡기도 합니다.”
약음기의 위치
약음기의 재질은 나무·가죽 등 다양한데, 종류마다 음색이 달라진다. 연주할 때는 악기에 부착되는 ‘돼지 코’ 모양의 약음기가 자주 사용된다. “보통 약음기를 G현과 D현 사이에 끼우는데, 저는 D현과 A현 사이에 끼웁니다. 약음기는 소리를 어둡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죠. 첼로에서 가장 밝은 소리의 현은 A현과 D현입니다. 약음기를 가운데에 끼우면 A현의 밝은 음이 잘 안 죽어요.”
연습실에 웬 망치?
“악기를 ‘힘’으로만 연주하면 소리가 경직됩니다. 첼로는 무게를 ‘어떻게’ ‘잘’ 사용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무게가 쏠리는 지점을 익혀 무게를 제대로 싣는 방법을 배우면 ‘힘’과 ‘유연함’이 생겨요. 무게를 받는 손가락 지점이 있는데, 이 지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힘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을 ‘빼는 것’도 중요해요. 자연적인 물리현상을 이해하면 악기의 기술적인 부분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브라토를 할 때도 힘만 사용하면 비브라토가 무거워지죠. 항상 기술적인 부분과 음악적인 부분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활대와 활털
활대의 모양은 일자가 아니라 곡선이다. 곡선은 나무를 깎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활대 전체에 열을 가해 굽힌다. 활 하나에는 150~250여 개의 말총이 들어간다.
활에 무게를 주거나, 화음·아티큘레이션을 넣을 때마다 활털에는 보이지 않는 멍이 생긴다. 압력이 닿을 때마다 멍이 깊어져 활털이 끊어지는 것이다. 활의 ‘탈모’가 심해지면 활털을 갈아 끼워야 한다. 전문 연주자들은 보통 세 달에 한 번씩 활털을 가는 편이다.
바이올린과 달라요~
“바이올린과 첼로 활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활 쓰는 방법은 엄연히 달라요. 가장 큰 차이는 ‘새끼손가락’의 위치죠. 바이올린은 활대 위에 새끼손가락을 올려놓고, 첼로는 ‘펄 아이’라 불리는 동그란 부분 위에 놓아야 합니다.”
음자리표 삼형제
저음을 담당하는 첼로는 주로 ‘낮은음자리표’를 사용한다. 첼로는 7포지션까지 있는데, 높은 음역을 기보할 때는 ‘가온음자리표’를 사용한다. 덧줄이 많으면 악보를 읽을 때 번거롭기 때문이다. 가온음자리표에서도 덧줄이 많아지면 ‘높은음자리표’로 기보한다.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