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300년 서양 음악의 역사를 조망하다
클라리네티스트 로맹 기요(Romain Guyot)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의 솔리스트이자 제네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바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수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국내 음악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5년부터 서울대 겸임교수로 적을 두고 서울에서 자신의 앙상블인 로망 앙상블을 창단하면서 우리와 더욱 가까워졌다. 2015년 12월 마지막 주에 열린 연주회는 그 창단을 알리면서 앞으로 계획과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다. 특히 바로크부터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프로그램에 올려 첫 시작부터 녹록지 않은 연주력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음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전반부는 바로크 시대 텔레만, 고전 시대 모차르트, 그리고 낭만 시대 브람스 등 클라리넷의 아름다움 음색과 앙상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했다. 텔레만에게는 낭만적인 감성으로 풀어낼 만한 작품이 많은데,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도 그중 하나다. 독주자로 나선 로맹 기요와 객원 독주자 채재일은 부드러운 레가토와 포근한 음색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바로크 스타일을 기대하던 감상자라면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대부분의 감상자에게는 아늑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로 음악의 공감각적 수용을 꾀하는 것도 이번 연주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느린 3악장의 ‘물 영상’과 ‘피날레의 춤’ 그림은 리듬의 특징과 어울렸다. 두 독주자의 연주는 현악 앙상블에 대해 도드라지기보다는 조화로운 앙상블로 들렸는데, 당시 협주곡에 사용된 리토르넬로 양식에 맞춰 전체 합주를 밸런스의 기준으로 둔 것으로 보인다.
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과 협연하여 음반을 냈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중 2악장에서 기요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바셋 호른의 그윽하고 깊은 사운드에 실어 보냈다. 관현악단의 호른은 내추럴 기법으로 투명하고 순수한 소리를 내면서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브람스의 ‘세레나데’ 1번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대비되는 구도로 설정하고, 다양한 조합의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감성적인 브람스에 적절한 수준의 리듬감을 더해 경쾌하게 전반부를 마무리했다.
‘오늘의 음악’이라는 부제를 가진 후반부는 생존해 있는 두 작곡가 기욤 코네송(Guillaume Connesson)과 오스발도 골리호브(Osvaldo Golijov)의 작품을 연주했다. 연주 전 코네송의 감사 메시지를 영상으로 선보여 오늘날 음악이 갖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코네송은 대중음악과 포스트미니멀리즘을 결합해 감각적이고 극적인 특징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육중주’ 역시 그러한 스타일로, 여섯 연주자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정교하면서도 질주하는 듯 연주했다. 여기에 영상에 비춰진 도시의 이미지와 겹쳐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2악장은 도시의 불빛을 피해 꿈을 꾸며 휴식을 찾는 밤의 시간이라면, 3악장은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다시 찾아온 일상의 시간들을 연상케 했다. 작곡가의 의도가 이러한 도시에서의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음악을 마음으로 공감하는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마지막 곡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골리호브의 ‘꿈과 기원’이었다. 피아졸라의 후예로서 가장 각광받는 작곡가지만, 이 곡은 남미보다는 오히려 유대적 정서를 품고 있다. 환상적인 시나리오로 장면 전환이 잦으면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지만, 두드러진 클레즈머의 음악과 베이스의 피치카토 연주가 민속적 특징을 부각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포레의 ‘꿈을 꾼 후’ 등 로맹 기요의 따뜻하고 포근한 레가토가 돋보이는 낭만적인 작품들을 앙코르로 연주하여 다시 한 번 클라리넷의 매력을 여운으로 남겼다.
사진 봄아트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