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참여하는 뉴욕대학교 국제 고등연구소 주관 프로젝트 ‘클래식 음악의 미래’. 대표 연구진이 밝히는 목적과 의미
저명한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최근 저서 ‘미래와의 대화’에서 앞으로 15년 후 달라질 세상을 소개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2021년부터는 정규직과 프리랜서를 포함한 비정규직의 비율이 비슷해질 것이며, 이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직종을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노동 집약적 산업으로 분류되었던 분야는 기계로 대체되는 반면, 차세대 직업군이 생김에 따라 사회가 구동되는 다이내믹이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오늘을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미래를 적극적으로 맞이하자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음악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세계 음악계 주요 인사 22명이 모여 ‘클래식 음악의 미래(The Future of Classical Music)’라는 이름의 역사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욕대학교 국제 고등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프로젝트의 연구진은 지휘자이자 작곡가 에사 페카 살로넨과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작곡가 진은숙 같은 음악가들을 비롯해 매슈 밴베센(뉴욕 필하모닉 대표)·데버러 보르다(LA 필하모닉 대표)·로랑 베일(파리 필하모니 디렉터) 같은 주요 단체장들, 호다 알 카미스 카누(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 설립자)·자카리 울프(‘뉴욕 타임스’지 비평가) 등 예술계 여러 분야의 인물로 구성됐다.
지난 4월 시작해 앞으로 3년 간 이어질 이 프로젝트의 목적과 목표에 대해 듣기 위해 연구를 이끌어가는 책임자 중 한 명인 뉴욕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마이클 베커먼을 만났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과연 예측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생각
첫 번째 화두는 바로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창작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다. 먼저, 오늘날 탄생하는 현대음악은 19세기 음악에 이어지는 것이므로 당연히 클래식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훈련된 전문 연주자들에 의해 콘서트홀이라는 환경에서 작품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연주되는 ‘클래식’한 과정을 거쳐 구현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거에 창작된 ‘클래식 음악’이 현대음악을 위협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클래식 음악이란 일반적으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추구하는 현대음악의 숨통을 조인다는 것이다. 과연 이 두 견해를 하나의 그림 속에 둘 것인지, 아니면 분리해 생각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개념 정립도 되어 있지 않다고 베커먼은 말한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백인 상류층의 전유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시각은 클래식 음악이 교육 수준과 사회 구조에 의해 구축된 것임을 의미한다. 현 음악 교육 시스템 역시 클래식 음악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흐의 작품이 인도 음악, 일본 전통음악보다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으면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갇히고 만다는 것이 베커먼의 설명이다.
그가 진단하는 경제적 측면은 더욱 심각하다. 재정을 ‘소비’해야 하는 예술 단체들의 특성상 역사를 더해갈수록 예산을 늘려가며 발전을 이루었고, 필연적으로 점점 더 많은 기부자를 필요로 하며 더 큰 기부 액수를 바라게 되었다. 구조적으로 비용 절감은 불가능한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노조가 조직된 단체와 기관을 보면 극명하다. 단적인 예로,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뉴욕 필하모닉 음악회의 사전 강의를 위해 마이크를 단상에 가져다두는 단순한 일을 하는 직원은, 음악학교 강사의 약 4배에 달하는 봉급을 받는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스태프에 들어가는 비용을 따지면 천문학적 금액에 달한다. 이는 밥그릇을 두고 싸우는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벽에 도달해 모두 무너져버리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 프로젝트는 이러한 위기감에서 출발했지만, 그렇다고 전략과 대책을 세워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22명의 연구진은 일 년에 두 차례씩 정례 모임을 갖는 것 외에 이메일을 통해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지난 8월 22~24일,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음악 고등교육과 클래식 음악의 세계화에 관한 이슈를 집중 논의했다.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이 방대한 만큼 각 회의마다 다루어야 할 주제를 선별해 모임을 갖고, 뉴욕대학교의 세 명의 교수들과 산하 연구팀이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베커먼 교수가 이야기했듯,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어쩌면 우리 손에 영원히 잡히지 않은 채 손 밖으로 빠져 나가는 모래같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좇는 시대에 특정 분야의 현주소를 진단하고자 깃발을 올린 학자들과, 이에 동참하는 프로젝트의 참여자들, 그리고 ‘돈 안 되는 연구’를 3년 간 지원하는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우리가 기댈 만한 희망의 출발점인 듯하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작곡가 진은숙 인터뷰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계기는 무엇인가?
몇 년 전부터 미국 활동이 늘어났는데 이에 대한 영향인지 일 년 전쯤 뉴욕대학교 국제 고등연구소로부터 본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인지했고, 세계 음악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해 참여했다. 특히 서양의 클래식 음악계에 동양 음악 붐이 일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각 기관의 행정이나 도시의 음악계 동향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좋고, 한국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세부 연구 주제로 밝혀진 내용 중 ‘컴퓨터, 인터넷의 출현이 클래식 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나’에 관해 작곡가인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곡가들이 앞으로 내놓을 작품들이 어떠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나?
컨퍼런스에서도 이 주제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음악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이것들이 사회에 끼친 지대한 영향 덕에 사람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본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이 모두 있다고 보는데, 긍정적 측면은 인터넷의 발달로 소통이 빨라지며 대중이 음악을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부정적 측면은 클래식 음악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작곡가들이 지닐 흐름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무척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서양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는 사람은 많은데 문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는 양적인 확장뿐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복합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한국 음악계, 동양 음악계가 서양인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마켓으로 성장한 것도 괄목할 만하다.
글 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