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글 박찬미 사진 클래시크 청담
테이블마다 켜져 있는 촛불과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낭만적인 음악, 연주되지 않을 때마저 예술품 같은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더블베이스와 피아노의 자태까지. 이곳에 들어선 당신은 곧 클래시크 청담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부족함 없는 서비스는 이 분위기를 더욱 완벽하게 만든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여느 레스토랑 메뉴 부럽지 않을 양질의 음식은 이곳 유명세의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완벽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매 순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받았다. 이런 위안을 전한 건 음악이었다. 클래시크 청담에서는 화요일부터 토요일, 밤 8시에서 11시 사이 매일 다른 음악회가 펼쳐진다. 클래시크 청담을 찾았던 그 날 무대 위에 섰던 네 명의 연주자는 재즈라는 틀 안에서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앞으로 이어나갈 음들을 정했다. ‘즉흥 연주’였다.
사실 우리 삶도 ‘즉흥 연주’와 같다. 예상 가능한 사건들만이, 준비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매 순간의 선택이 계속되어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게 될 터다. 음악을 듣다 보니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들이 연주했던 것처럼 가끔은 콘 푸오코(정열적으로)를, 때때로 마 논 프레스토(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를, 또 어느 순간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그라치오소(사랑스럽고 우아하게)를 살고 있는가. 이 순간에만 존재할 뿐인 이 음악처럼 ‘여기, 지금’을 즐기고 있는가. “중간중간 박수로 북돋아 주시면 흥 나서 더 열정적으로 할 수도 있고요. 사심이 너무 들어가서 망칠 수도 있어요.” 이들은 완전하지 않은 현재를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망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던 이들의 여유는 항상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우리네 풍경을 상기시켰다. 누구나 한편에 지니고 있을 미숙함이 오히려 건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순간이다.
어느덧 무대 위 앙상블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내가 좋아하는 것(My favorite things)’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천둥번개가 치는 어둑한 밤 어린 마음에 모든 게 무서웠던 아이들은 하나둘씩 마리아에게 모여드는데, 그들을 다독여주기 위해 마리아가 불렀던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개에게 물리거나 벌에 쏘이거나 슬플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린다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과 새끼 고양이의 콧수염, 밝게 빛나는 금속의 솥과 따뜻한 털장갑.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 폭풍 같은 하루가 지고 있던 이 순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다독여볼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은 마리아의 노래와 같이 우릴 품고 있었다.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이 음악들을 따라가다 보니 시간도 어느새 훌쩍 흘렀다. 길을 나서며 들어보니, 클래시크 청담은 곧 근처에 새로운 둥지를 틀 예정이란다. 이 매력만 그대로 옮겨 놓으면 될 것 같다. 위안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 항상 완벽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함과 조급함을 조금 놓아 보고 싶을 때 사람들은 그곳으로 발걸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