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교향악축제

클래식에서 듣는 우리 시대의 음악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5월 1일 9:00 오전

REVIEW

4월 2~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늘날 연주되는 100년 전 혹은 200년 전 음악은 당시 음악의 재현일까?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갖는 또 하나의 가치를 발견한다. 최근 교향악축제의 프로그램이 익숙한 작품 위주로 구성되어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중평에 공감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의 소리를 만들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노력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KBS교향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KBS 교향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슈코의 오페라 ‘할카’ 서곡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등 바르샤바와 라이프치히, 빈을 잇는 중앙 유럽에서 탄생한 19세기 명작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KBS교향악단은 서유럽적인 세련미에 집중했고, 역동적인 다이내믹과 중후한 화음, 튜바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투명한 음색으로 훌륭한 음향의 조화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타악기가 명확히 들리지 않은 것은 일종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모니우슈카의 서유럽적 감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겠지만, 폴란드라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함께했다. 첫 보잉부터 날 선 아티큘레이션으로 폭발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유연한 2주제마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하며 전율을 느끼게 했다. 강한 스트로크가 더한 거칠고 극적인 표현은 넋을 잃게 하는 파가니니의 ‘무궁동’이나 야만적인 버르토크의 리듬마저 연상시켰다. 여기에 감성적 시나리오로 강한 호소력까지 지님으로써, 오늘날에도 여전히 멘델스존으로부터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2악장으로까지 이어진 긴장은 감상자에게 피로로 다가왔다. 정확한 음정과 곧게 뻗어가는 충실한 음향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2악장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3악장에는 첫 악장을 능가하는 속도감과 강렬함이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찾을 수 없는 보잉은, 그녀가 무엇을 연주해도 완벽하게 해낼 것을 확신하게 했다.

후반부에 연주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의 1악장에서는 숲속 마을의 정경이 펼쳐졌다. 목관악기의 연주는 다양한 새소리처럼 들렸으며, 농민들의 춤곡에 담겨있는 생동감 있는 리듬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제스처 중심의 진행은 말러를 많이 들어온 애호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름의 논리로 모든 부품이 맞물리며 진행하는 일반적인 연주 스타일에 비교하면, 이번 공연에서는 제스처들이 보다 선명하게 들렸지만 음악적인 시나리오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모든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마지막 대단원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수수께끼가 풀린 듯 극적 효과가 집중되었다. 2악장은 민속무곡인 렌틀러 리듬이지만 무게감을 덜어내지 않으며, 느린 3악장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된다. 마지막 4악장은 조각난 장면들이 스냅샷과 같이 연결되어 전체 그림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후반부로 진입하면서 높은 집중력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지막 대단원에 이르러 모든 긴장과 궁금증을 걷어내고 화려한 사운드로 마무리했다.

 

서울시향과 첼리스트 김두민

서울시향과 첼리스트 김두민

윌슨 응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1번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2번,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을 연주했다. 올해 부지휘자로 선임된 그는 홍콩에서 구스타프 말러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정도로 말러에 대한 열정이 강한 지휘자로, 움직임이 큰 지휘 동작도 말러를 본뜬 것 같다. 그는 이를 통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을 관현악단임에도 충분한 다이내믹의 폭과 유연한 움직임을 이끌어냈고, 관객이 음악을 시각적으로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더 나아가 지휘자의 역할과 지휘법까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드보르자크 협주곡은 첼리스트 김두민이 협연했다. 그는 1악장부터 거칠고 과감한 젊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일관된 음색으로 강한 호소력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지어 음악적 시나리오를 구성해나갔다. 첼로의 템포가 빠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악장에서 대체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관현악과의 대비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가 다소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2악장에서 김두민은 충분한 여유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인간적인 감성을 느끼게 했다. 3악장은 강한 스트로크로 더욱 극적이고 감각적으로 몰아갔다. 이 협주곡이 매우 강렬하고 기교적인 작품임을 새롭게 발견한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다. 첼로 독주가 끝나는 순간까지 김두민은 열정적인 모습을 유지했으며, 관현악의 짧은 코다 또한 이에 부응하여 강력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은 라흐마니노프 ‘관현악 무곡’이었다. 교향곡 수준의 장대한 길이와 두터운 음향, 완숙한 표현력은 이 곡이 그의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한다. 그리고 서울시향의 연주는 이를 더욱 실감하게 했다. 1악장의 시작과 함께 편집증적인 단편의 반복과 시계추와 같은 리듬으로 좌중을 사로잡았으며, 금관의 일사불란한 팡파르는 공간을 압도했다. 색소폰으로 시작하는 러시아 스타일의 서정적 선율은 실향민의 애환을 담아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2악장은 약음기를 사용한 금관의 날카로운 소리와 현의 날 선 피치카토가 오싹한 분위기를 만들며 시작됐다. 바이올린 독주로 시작하는 독특한 선율은 마법사가 걸어 나오는 듯한 신비로운 이미지를 그렸고, 서울시향은 각 프레이즈와 악기의 역할을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긴장을 유지했다. 탬버린의 활약이 돋보이는 3악장은 자정이 되어 벌어지는 마귀들의 격렬한 춤판으로, 선명한 음색을 바탕으로 모든 프레이즈가 살아 춤을 추는 듯 ‘디에스 이레’의 변주를 역동적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대단원에 이르러 정교회 성가가 등장하며 이 곡의 진정한 주제인 종교적 승리를 완성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를 물들인 피아니스트의 향연

제주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이진상

확률의 세계란 생각할수록 참 묘해서,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체감이 많이 다른 경우가 있다. 가령 로또 복권의 경우, 그토록 많은 경우의 수가 나타나는 것을 미리 느낀다면 우리의 막연한 기대감이 많이 줄 수도 있겠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참으로 작은 확률 자체가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만나 펼칠 수 있는 연주의 결과가 만드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다. 수십 명의 앙상블을 이끄는 지휘자와 작품의 조합, 솔리스트가 생각해 내는 해석의 가능성, 거기에 연주 순간에 나타나는 당일의 컨디션이나 분위기 등을 고려해 보면 분명 그렇다.

한 달 가까이 펼쳐지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30년을 걸어온 주최측의 노련한 기획력과 봄을 수놓는 콘서트홀의 익숙한 낭만을 느끼려는 단골 청중들이 가세해 매일 다르고 예측 불가능한 교향악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유감없이 나타냈다.

페스티벌의 개막을 장식한 제주교향악단의 역동적 에너지는 젊은 지휘자 정인혁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어떤 지휘자든 자신의 기량과 취향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정인혁과 제주교향악단은 깔끔한 조형과 단정한 고전미를 앞세워 개운한 뒷맛을 느끼게 했다.

열정이 넘치는 제임스 저드가 이끈 대전시향의 무대는 각 파트의 다듬어진 앙상블이 모여 고급스런 앙상블을 선사했다. 대곡인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깊은 서정성과 엄숙함으로 요리해낸 대전시향은 목관과 금관의 매끄러운 호흡이 빛났으며, 타이트함을 잃지 않은 채 전체를 이끌어낸 저드의 끈기와 고집이 두드러졌다.

스위스 출신의 유대인 작곡가 블로흐의 교향곡 C# 단조를 한국 초연한 지휘자 장윤성과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은 훈련과 집중력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호연을 펼쳤다. 말러와 슈트라우스가 섞인 듯한 작풍, 거기에 대위법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텍스트를 오차 없이 재현한 오케스트라와 전체를 장악하며 총체적인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한 장윤성은 크고 작은 무대를 거치며 쌓은 그간의 관록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선이 곱고 예민한 감성의 피아니스트. 이진상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매우 흥미로운 방향으로 바뀌게 된 제주교향악단과의 이번 브람스 협연은 대곡을 아우르는 노련미와 연출력, 특유의 서정성이 현대적으로 결합한 모습이었다. 청춘의 에너지가 동반된 비르투오시티를 현명한 절제로 뽑아낸 멜랑콜리가 인상적이었던 1악장은 청중들에게 피아노의 음량보다 음상의 원근감을 느끼게 했으며, 담백하게 그려진 2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흡사한 뉘앙스 조절로 통일감을 나타냈다. 본격적인 명인기로 승부한 3악장 역시 관현악과의 타이트한 호흡이 일품이었으며 후반부로 갈수록 뜨거워지는 음향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전시향과 피아니스트 원재연

부소니 콩쿠르의 까다로운 심사위원들에게 창의성과 예술가적 감성을 인정받으며 2위를 차지한 원재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제임스 저드의 빈틈없는 리딩 아래 흥미로운 모습으로 펼쳐졌다. 콩쿠르 결선에서 호평받은 레퍼토리답게 원재연의 타건에서는 시종 여유와 폭넓은 경험이 느껴졌다. 프레이징의 마무리까지 긴장감과 정성으로 포장해내는 모습, 날카로워질 수 있는 아르페지오와 스케일을 둥글고 우아하게 다스리는 솜씨에서 젊은 대가의 탄생을 예견케 했다. 담백하게 이루어진 카덴차에서도 균형 감각이 두드러졌으며, 관현악 내 다양한 솔로 악기들과의 부분적인 조합도 완성도 높은 대화로 이어졌다.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과 피아니스트 이용규

들을 때마다 기대한 것 이상의 놀라움을 전달해 주는 피아니스트 이용규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가 확실한 청중일수록 놀라움을 느꼈을 듯하다. 유장한 흐름이 느껴지는 여유로운 템포와 단단한 질감의 음상으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즘은 예상을 벗어나는 프레이징과 독특한 악센트의 향연, 근육질과 금속성을 오가는 후기 낭만 피아니즘의 적나라한 노출로 매우 개성 있게 그려졌다. 분절적인 다이내믹과 돌발 상황처럼 느껴진 루바토는 청중들에게 즐거운 놀라움과 함께 익숙한 레퍼토리에 선입견을 벗겨내면 이런 결과물도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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