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20 23 문화예술 키워드 모음집
2023년 계묘년이 밝았다. 한 해를 수놓을 공연예술계의 문화 키워드를 모두 한데 모았다. 기억해두면 좋을 소식과 1년 동안 펼쳐질 공연계의 유행도 미리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 한해 기억해두면 좋은, 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국가들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해체해본다. 이 키워드들을 미리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올 한해 펼쳐질 공연들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다.
기획·총괄 허서현·임원빈 기자
Part 1
2023년에 맞이한 이슈들
Part 2
예술계의 새 유행
Part 3
주목받을 지역들
바그너 탄생 210주년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만난 예술계
예술이 되는 서커스
대형 오리지널 뮤지컬 내한
기부 음악회를 여는 연주자들
예술가 소재의 공연
환경 단체와 작업하는 예술가
2023 콩쿠르 미리보기
한류의 확장
예술의 신교역로, 중동
인도의 전통 음악
북유럽의 현대음악
Part 1. 2023년에 맞이한 이슈들
‘계묘년’에 찾아오는 작곡가 기념 주기와 콩쿠르
먼저, 2023년에 미리 살펴보기 좋은 문화계 이슈를 만난다. 탄생 주년을 맞는 작곡가들과 예술의 각축장인 콩쿠르를 미리 살펴보았다. 또한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과 전통예술 속 토끼의 의미를 돌아본다.
문화예술 키워드 01
베르디&바그너 탄생 210주년
음악가와 정치의 필연적 만남
1813년 동갑내기 두 작곡가가 탄생 210주년을 맞았다. 200주년이던 2013년에 두 작곡가의 대표작들이 오페라계의 양축을 세웠는데, 올해는 어떠할까. 베르디의 오페라를 집중적으로 선보일 시간이자, 바그너의 작품으로 오페라계에 도전장을 내놓을 시간이다.
혁명의 에너지는 파괴적이다. 오랫동안 응축된 압력을 견디다 기어이 터진 폭발력은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파괴할 대상을 찾아낸다. 1789년 폭발한 대혁명의 파괴적 에너지가 여전히 끓었을 때, 나폴레옹은 국내를 진압하고 방아쇠를 프랑스 밖으로 겨누었다. 하나 역사는 절대 영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의 대패로 나폴레옹의 추락이 시작됐고, 그가 퍼트린 불씨는 민족주의를 일깨워 19세기 유럽의 역사를 바꿨다. 특히 같은 민족과 언어를 사용함에도 분열돼 있었던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그 반향이 대단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이 명백해진 1813년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가,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가 탄생했다. 두 나라가 각각 통일을 향한 극적인 여정을 겪고, 또 통일 이후 하나의 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각 민족성을 대변할 음악이 필요했다. 오페라사 불멸의 천재인 두 명의 음악은 본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시대를 상징하고, 정치색을 띠게 됐다.
소외된 자를 비추던 베르디
성공의 문을 먼저 열었던 쪽은 베르디였다. 1842년, 29세의 베르디가 최초로 성공을 거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민중의 애국가 같은 곡이었다. 훗날 리카르도 무티가 단호히 금지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나부코’ 공연에서 이 곡이 앙코르를 받는 일은 흔했다.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준 비극 3부작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광대·창녀·집시의 이야기를 이탈리아인이 소중히 생각하는 ‘가족애’ 속에 녹여낸 명작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성공 가도에는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물결이 함께 했다. ‘비바 베르디’(Viva Verdi)는 “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만세(Viva Vittorio Emanuele Re d’Italia)”를 내포한 채 통일을 지지하는 구호로 널리 퍼졌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했던 베르디였지만, 결국 마지못해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최초의 의회 의원으로 선출돼 그의 정치 이력의 정점을 찍었다.
최근 음악계에서 베르디의 잊힌 작품들을 발굴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스로가 갤리선의 노예처럼 단 한 시간도 쉬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언급했던 ‘갤리선 시대’의 작품이 그러한데, 이는 흔히 1842년 ‘나부코’ 이후부터 1851년 ‘리골레토’로 성공하기 직전 시기의 곡을 뜻한다. ‘맥베스’ ‘아틸라’ ‘예루살렘’ ‘스티펠리오’ 등이 있다.
스스로 소외를 일으켰던 바그너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이 ‘오페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장르를 초월한 새로운 예술을 꿈꾸었다. 스스로 대본을 쓰고, 다양한 저서를 남길 정도로 그는 자기중심적인 면에 상응하는 강력한 사명감이 있었다. 도박 빚을 피해 파리로 도피하고, 실크와 향수 애호가였던 그를 두고 혹자는 그의 음악 세계가 낭만적 신화와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를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한다. 당시에 만연했던 유대인 혐오를 그는 적극적으로 피력했기에, 사후 그의 음악은 나치 정권하에 애용됐다. 그가 남긴 바이로이트의 성전은 반현대화·반유대주의·반민주주의 성향을 가진 이들의 온상이 됐다.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공연장을 바이로이트에 남겼으며, 바그너 왕조의 후손들이 여전히 그곳을 다스리고 있다. 예전에는 10년 치 티켓이 매진돼 구할 수 없었고, 공연장 앞에는 ‘티켓 구함’이라는 피켓을 든 채 행운을 기다리던 열혈한 바그너 팬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흘러간 세월만큼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짚은 채 바이로이트를 찾지만, 그들의 노화 속도를 대신할 젊은 층의 유입 속도는 훨씬 더디다. 젊은 관객들에게 바그너는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그의 오페라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길다. 긴 대기자 명단, 암시장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던 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지난 여름 모든 공연 티켓을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중소 극장에서도 ‘반지’ 4부작에 도전하고, 그의 작품 중 비교적 짧은 ‘로엔그린’ ‘탄호이저’ 등은 흥행을 보증하는 레퍼토리로 자리 잡을 정도로 바그너 작품을 향한 저변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한국은 올해 베르디 물결!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기념하여 4개의 베르디 오페라를 예고했다. 상반기인 4월 27~30일 파비오 체레사(연출)와 이브 아벨(지휘)의 ‘맥베스’, 6월 22~25일 잔카를로 델 모나코(연출)와 레오나르도 시니(지휘)의 ‘일 트로바토레’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상영된다. 하반기 9월 21~24일 뱅상 부사르(연출)와 세바스티안 랑 레싱(지휘)의 ‘라 트라비아타’, 11월 30~12월 3일 스테파노 포다(연출)와 홍석원(지휘)의 ‘나부코’는 국립극장 해오름 무대에 오른다. 또한 대구오페라하우스 역시 오페라 축제 기간에 베르디의 ‘아이다’를 야외무대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화예술 키워드 02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음악가를 기리는 각 국의 동향
올해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873~1943)의 탄생 150주년이자 서거 80주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대규모 기념행사는 축소되거나 취소됐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여전히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연주될 예정이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부터 첨예화된 극단적인 빈부 격차는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표면화됐고,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향했다. 전쟁의 상흔으로 작곡가의 인생 궤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정부가 준비한 라흐마니노프 150주년 사업도 퇴색됐다. 2021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법령에 따라 프랑스·헝가리·핀란드 등에서 ‘올-러시안’ 페스티벌을 개최하고자 했으나 전면 취소될 전망이다. 대신 작년 러시아 내에서만 실시한 라흐마니노프 콩쿠르(피아노·지휘·작곡)를 비롯해 기념주화 발행, 지명 및 문화 시설에 작곡가 이름 명명 등 약 100여 개의 사업이 극장·박물관·문화원·도서관에서 전개된다. 행사의 정점은 라흐마니노프 탄생일인 4월 1일 러시아 전역에서 열리는 ‘마이 라흐마니노프’로 뮤지컬·연극배우가 작곡가의 편지·회고록·인터뷰를 낭독한다. 박물관에서는 ‘Pass the Music’ 행사를 통해 각 기관 SNS에서 제작한 플래시 몹을 업로드하고, 해시태그로 후발 주자를 지명하는 예술적 계주를 이어간다. 모스크바에서는 GES-2 박물관(GES-2 House of Culture)의 ‘라흐마니노프 페스티벌’이 이목을 끈다. 알렉세이 루비모프·미로슬라프 쿨티셰프·아르세니 타라세비치 니콜라예프·유리 파보린 등 러시아의 오늘을 증명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라흐마니노프를 조명한다. 러시아 국립 음악 박물관은 라흐마니노프 특별전을 열고,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은 오페라 ‘알레코’와 ‘Unknown Rachmaninov’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라흐마니노프 기념에 열성인 곳은 작곡가가 여생을 보낸 미국이다. 유자 왕은 오는 1월 27·28일, 2월 4·5일에 야닉 네제 세갱/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완주한다. 3월에는 스티븐 허프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와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조지 리가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보스턴 심포니는 2월에 라하브 샤니의 지휘로 관현악 무곡을, 4월에는 안드리스 넬손스의 지휘로 교향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베를린에서는 4월에 후지타 마오가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6월에는 장하오천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다. 런던에서는 1월에 엔리케 마촐라/런던 필이 교향곡 1번을 연주하고, 2월에는 마린 올솝/런던 심포니의 관현악 무곡이 예정돼있다. 3월에는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위그모어 홀에서 ‘올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 같은 달, 피아니스트 루시 파럼과 배우 헨리 굿먼의 ‘라흐마니노프 내레이션쇼’도 진행된다. 도쿄에서는 1월에 투간 소키예프/NHK 심포니가 관현악 환상곡 ‘바위’를 연주하고, 6월에는 오타카 타다아키/도쿄 필이 교향곡 1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방과 동아시아에서 라흐마니노프를 다루는 빈도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문화예술 키워드 03
계묘년
‘검은 토끼’해와 예술
‘검은 호랑이’의 해였던 2022년을 보내고, ‘검은 토끼’해를 맞이한다. ‘검은 토끼’를 떠올리자니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든다. 흰색 토끼는 20세기 전반에 수입된 종이고, 이 땅에 서식하던 토끼는 주로 회색이나 갈색 등 어두운 털을 갖고 있었다. 예부터 토끼는 설화·한글 소설·판소리·동요 등에 등장했다.
고전 설화 ‘꾀 많은 토끼’에서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는 영민한 동물로 묘사되며, ‘별주부전’에서는 부패한 권력을 풍자하는 지혜로운 서민의 대변자로, 판소리 ‘수궁가’에서는 토끼의 간을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작곡가 윤극영(1903~1988)의 동요 ‘반달’ 중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라는 가사처럼 옛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방아 찧는 토끼를 상상하기도 했다. 최근 토끼는 케이팝 걸그룹 ‘뉴진스’의 음반 표지를 장식하며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계묘년을 맞아 토끼를 주제로 하는 전시와 공연도 준비돼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2에서는 ‘새해, 토끼 왔네!’(~3.6)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자라가 토끼를 꾀어 등에 업고 수궁으로 가는 장면을 표현한 토끼와 자라 목각인형, 부부의 금술과 다산 등 가족의 화목을 상징하는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 등 토끼와 관련된 전시품 70여 점과 토끼의 생태에 얽힌 흥미로운 민속 이야기를 선보인다.
오는 4월에는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판소리 ‘수궁가’를 선보인다(4.27~28/국립극장). ‘수궁가’는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유일하게 우화적인 작품으로 ‘별주부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익숙하고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유명해진 ‘범 내려오는 대목’과 ‘아이고, 나 토끼 아니오!’를 외치는 ‘토끼 잡아들이는 대목’, ‘토끼 배 가르는 대목’ 등 등장인물의 재치 있는 언변 대결로 이뤄진 각 대목들이 수궁가의 재미를 더한다. 이번 공연의 ‘수궁가’는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원작을 100분으로 압축한 작품이다. 주요 대목의 한자어를 현대어로 바꾸어 부르고,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직접 작창한 소리를 선보이는 시간으로 친근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로 관객들을 만난다.
뛰어오르는 토끼의 모습은 ‘도약’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는 5월 개관을 앞둔 부천아트센터와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하는 예술의전당이 새로운 시작과 재도약을 앞두고 다채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는 개관을 기념해 런던 필하모닉 초청 공연을 계획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은 정경화·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2.14),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4.26), 오페라 ‘노르마’(10.26~29) 등 다양한 장르의 주요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글 홍예원 수습기자
문화예술 키워드 04
세계 콩쿠르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며
콩쿠르는 수많은 인연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는 무대다. 참가자는 다른 색의 도시와 만나고 그곳 관객과 첫인사를 나누며, 음악가와 전문가들이 교류를 나눈다. 코로나로 인한 ‘고퀄리티’ 온라인 생중계 덕분에 세계 청중과 참가자들 사이 심리적 거리도 훨씬 좁아졌다. ‘나만의 아티스트’를 만날 인연이 물꼬를 트는 셈이다. 올해도 세계 곳곳의 콩쿠르가 그 소중한 만남을 주선한다.
한·중·일의 각축장
한국에서는 제주가 먼저 팡파르를 울린다. 제주민요 모티브의 관악 합주곡을 대상으로 하는 제주국제관악작곡콩쿠르는 2월 1~10일 공모를 진행하고, 3월 21일 결선 연주를 거쳐 우승자를 선정한다. 제주국제관악타악콩쿠르(8.8~16)는 모든 금관악기를 대상으로 하는 세계 유일의 경연으로, 올해 트럼펫·호른·테너 트롬본·금관 5중주 부문이 개최된다.
바다 건너 통영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10. 28~11.5)가 피아노 부문으로 열린다. 2019년 우승자 임윤찬에 이어 등장할 또 한 명의 음악가에 기대가 모인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11월 중)에는 재능 있는 성악가들로 북적일 예정이다. 최근 국내외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바리톤 김기훈, 테너 김건우,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등이 거쳐 간 바 있는 젊은 성악가의 등용문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다양한 부문에서 유망 음악가를 발굴한다. 항구 도시 다카마쓰에는 문지영이 2014년 우승을 거둔 바 있는 다카마쓰 피아노 콩쿠르(2.12~24)가 돌아오고, 영국 ‘스트라드’지가 캐나다 밴프 현악 4중주 콩쿠르와 런던 위그모어홀 콩쿠르에 비견한 오사카 실내악 콩쿠르(5.12~18)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4중주 부문으로 세계의 젊은 앙상블을 불러 모은다. 오사카 실내악 콩쿠르는 악기나 연주 장르 제한이 없는 2~6인의 앙상블을 위한 축제도 함께 개최한다. 실험적인 실내악이 궁금하다면 주목해보자.
1988년부터 이어진 무사시노 도쿄 오르간 콩쿠르(9.6~20)는 올해 9회를 맞았다. 예선과 1·2라운드는 스베일링크(1562~1621), 프로베르거(1595~1663), 바흐에서 슈만·브람스·메시앙 등을 아우르고, 결선에서는 자유곡과 2001년 이후 작곡된 작품을 함께 선보여야 한다.
중국에서는 쇤펠트 현악 콩쿠르(9.5~18)가 중국 최초의 교향악단이 들어섰던 하얼빈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바이올린·첼로·피아노 3·4중주·현악 4중주 부문으로 열릴 예정. 서아시아를 대표하는 콩쿠르는 세계적 음악가를 여럿 배출한 이스라엘에서 개최된다. 1974년 출범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다. 올해 본선에서는 한국의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박채영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부터 우크라이나까지
세계 유망 작곡가들의 시선은 이탈리아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제2회 루치아노 베리오 콩쿠르(1.15·16)가 이번에도 입상자에게 매력적인 혜택들을 제공하기 때문. 교향곡과 자유곡, 총 두 작품을 제출하는 공모는 지난해 11월 마감됐고, 1월 15·16일 결정되는 최종 수상작에는 2만 유로의 상금과 함께 2024/25 시즌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초연, 유니버설 에디션을 통한 출판의 기회가 제공된다. 이 밖에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세계 유명 작곡가 필리프 마누리, 타니아 레온 등으로 꾸려진 심사위원단과의 교류는 더없이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의 대표 피아노·바이올린 경연인 부소니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는 각각 8월과 10월 이어진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모차르트 주간과 함께 잘츠부르크의 3대 음악 행사로 꼽히는 모차르트 콩쿠르(2.2~16)는 현악 4중주와 성악 부문으로 찾아온다. 프랑스 북부와 남부에서는 각각 에피날 피아노 콩쿠르(3.17~26)와 리옹 실내악 콩쿠르(4.12~15)가 개최된다. 특히 피아노 3중주 부문으로 열리는 리옹 실내악 콩쿠르는 독특한 레퍼토리로 다른 음악가나 악단과 협업할 기회를 제공해 매력적이다. 예컨대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베토벤 3중 협주곡이나, 리옹 오페라 성악가들과 함께하는 베를리오즈의 연가곡 ‘여름밤’, 자이데 콰르텟과 함께하는 쇼송의 ‘그랑드 콘소트’ 등이 그 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리던 호로비츠 콩쿠르(4.13~21)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다. 심사위원장이자 지휘자인 키릴 카라비츠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결선에서 파이널리스트 3인과 호흡할 예정이다. 한편,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네바 콩쿠르(10.23~11.4)는 플루트·현악 4중주 부문으로 개최된다.
체코 프라하 봄 콩쿠르(5.6~14)에서는 한국 음악가들의 정복기가 이어지고 있다. 12개 부문이 운영되고 있는데, 플루트·클라리넷·피아노·현악 4중주에 이어 지난해 바순 부문에서도 한국인 우승자가 나왔다. 올해 열리는 비올라와 트롬본 부문에서 새 역사가 쓰일지 기대가 모인다.
소프라노 홍혜란·황수미가 우승기를 들었던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5.21~6.4)는 또 다른 차세대 성악가의 등장에 주목하고, 피아노 3중주 부문의 노르웨이 트론헤임 실내악 콩쿠르(9.26~ 30)는 올해 북유럽에서 주목할 만한 행사다.
독일 곳곳에서도 다채로운 콩쿠르의 장이 마련된다. 밤베르크에서는 지휘 부문의 말러 콩쿠르(7.7~15)가, 뮌헨에서는 비올라·더블베이스·하프·피아노 3중주 부문의 ARD 콩쿠르(8.28~9.15)가 열린다. 가곡 듀오의 향연이 펼쳐지는 슈베르트 콩쿠르(9.22~10.1)가 도르트문트에서 개최되고, 12월엔 텔레콤 베토벤 콩쿠르(11.30~12.9)에서 세계의 유망 피아니스트들이 본을 수놓는다.
북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북아메리카에서는 캐나다 몬트리올 콩쿠르(4.25~5.4)를 주목할 만하다. 올해 열리는 바이올린 부문에는 김봄소리·김재영 등이 입상한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두 주요 도시 멜버른과 시드니의 콩쿠르는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인종·문화 다양성을 가치로 두는 멜버른 실내악 콩쿠르(6.27~7.9)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부문으로 열린다. 한국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트리오 유니오(김은지·남아연·최영선)가 본선 진출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많은 음악가가 꿈꾸는 ‘드림 홀’일 터. 시드니 피아노 콩쿠르(7.5~22)는 이 ‘드림 홀’에 설 뿐만 아니라 시몬 영이 상임지휘자로 있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이기도 하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Part 2. 예술계의 새 유행
각광받는 소재들과 다각화된 예술계의 움직임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각종 공연예술계 유행들을 만날 수 있다. 환경문제를 포함해 음악가들의 기부행렬, 서커스로 변모한 무용과 뮤지컬의 소재가 된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이어 한류의 옷을 입은 외국인 소리꾼을 만나 세계 곳곳으로 향하는 한류의 소리를 듣는다.
문화예술 키워드 05
기부
예술가의 선한 의지가 향하는 곳
기부 음악회의 역사는 음악가가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게 된 순간에 선한 의지와 함께 탄생하였다.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공연예술계는 전례 없는 침체기에 빠졌다. 경제적 타격을 입기 시작한 기업이 예술 후원을 멈추기도 했다. 이러한 시기에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1749년, 작곡가 헨델은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고아원 앤섬’을 작곡해 런던에 있던 한 고아 자선단체를 도왔다. 공연은 자선단체의 예배당에서 초연됐는데, 당시 예배당이 완공되지 않아 유리창도 없이 공연을 진행할 정도로 열악했다. 그러나 다행히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헨델은 다시 기부 음악회를 열었다. 이 두 번째 기부 음악회의 구매자는 예배당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초과하여, 그는 2주 뒤에 다시 한번 음악회를 열어야 했다. 단체는 헨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를 자선단체의 이사회로 임명했고, 매 부활절 자선단체의 예배당에선 ‘메시아’를 공연하는 게 전통이 됐다.
헨델은 세상을 떠나는 1759년까지 이 기부 음악회에 매년 참석했다. 헨델이 이 시리즈로 기부한 금액은 약 7천 파운드에 달하며, 이는 현대의 50~100만 파운드(한화 약 8~16억 원) 사이로 측정된다. 당시 헨델의 지원을 받았던 고아 자선단체는 오늘날까지 ‘토마스 코람 어린이 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1786년 함부르크에서 C.P.E. 바흐는 자신의 아버지 작품인 ‘b단조 미사’의 ‘크레도’와 헨델 ‘메시아’의 ‘할렐루야’ 등을 함께 묶어 의료 빈곤층을 위한 기부 음악회를 열었다. 이는 바흐 사후 30년이 지난 이후로도 바흐를 기억하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베토벤은 1813년 교향곡 7번 초연을 기부 음악회로 꾸렸다. 공연은 오스트리아-바이에른의 부상병을 위한 자선 행사로 빈에서 초연됐으며, ‘웰링턴의 승전’과 같이 승리에 찬사를 보내는 곡과 함께 연주됐다.
엘가는 1914년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벨기에를 위해 ‘카리용’(여러 종이 음계 순서대로 달린 악기) 작품을 작곡했다. 이 작품은 크게 성공했고, 그는 이 기금으로 벨기에의 자선단체를 도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엘가는 폴란드 난민을 위해 ‘폴로니아’를 작곡했으며, 1915년 엘가의 지휘로 초연됐다. 이 작품은 그의 친구이자 폴란드의 수상이었던 파데레프스키에게 헌정됐다.
2020년 코로나 펜데믹의 위기가 찾아오면서, 세계 모든 이들이 고난과 좌절에 빠졌다. 사람이 모여야 하는 공연예술계는 전례 없는 침체기에 빠졌고, 경제적 타격을 입기 시작한 기업이 예술 후원을 멈추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바리톤 고성현은 50년 전 오페라 연출가 프랭코 제피렐리의 기부를 기억하며, 자신의 출연료 전액을 민간오케스트라에 기부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상희는 “어릴 적 봉제 인형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는 언제나 기부 생활을 당신의 삶 속에서 보여주셨다”라고 말하며 프랑스 한인입양협회 ‘한국의 뿌리’에 기부 음악회를 열었다.
사회에 위기가 생기면, 예술은 이에 참여하고자 한다. 참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사람에게 직접 예술을 건네기도 하고, 작품 안에 분명한 의미를 넣어 관객에게 위기를 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은 언제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양의 위치에 서 있다. 삶에 윤택을 더하는 예술은 의식주의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 의식주의 실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을 하는 주체는 실재하는 예술가이기에, 그들의 선한 의지는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까지 뻗어나간다.
글 이의정 기자
INTERVIEW
피아니스트 이혁
롱 티보 콩쿠르 우승 이후의 첫걸음,
기부 음악회 12.20 아트센터 중앙아트홀
작년의 끝자락, 롱 티보 콩쿠르를 우승하고 돌아온 피아니스트 이혁은 아트센터 중앙아트홀에서 기부 음악회를 열었다. 공식적으로는 첫 기부 음악회이지만, 그는 이미 유럽에서 우크라이나 망명자를 위한 공연에 참석한 이력이 있다. 23세의 젊은 청년은 어떤 마음으로 기부 음악회를 열게 됐는지 그 경위를 들어보았다.
매번 여유 있게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많은 분이 콩쿠르 무대에 서면 떨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오히려 나는 항상 떨리지 않는다. 그것보단 청중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기회에, 소풍 나온 것처럼 마음이 들뜨곤 한다.
그런데도 콩쿠르를 거치는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콩쿠르의 아쉽고 힘든 지점은 각 대회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지만, 각 단계의 당락으로 더 이상 연주가 불가능한 순간이다. 한 곡 한 곡 열정을 쏟아부어 모두 연주해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준비한 곡을 모두 연주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다음 콩쿠르도 준비하고 있을까?
지금 당장은 연주력 향상을 위한 공부에 매진 중이다. 그러나 나의 성장 과정에 필요하다면 차후에 고려할지도.
작년 콩쿠르 이후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는 공연이 기부 음악회였다. 어떻게 준비하게 됐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나는 오랜 기간 두산연강재단과 박용현 이사장님의 격려와 후원을 받았다. 이를 잊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게 목표였고, 작년 봄부터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중앙대학교와 취지에 공감해주신 분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게 됐다.
후원받는 과정 속 기억나는 일화가 있나.
하나를 꼽자면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시절, 격려를 위해 이사장님께서 직접 모스크바까지 오신 적이 있다. 그때 여행 가방에 나와 내 동생 피아니스트 이효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한가득 담아 전해주셨는데,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후 그 여행 가방에 연주복과 구두를 담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를 참가하러 갔고, 우승했다. 그때의 우승 뒤엔 나를 위해 마음 써주신 이사장님의 가방이 있었다.
지난 공연의 수익금은 중앙대학교병원 아동 병동에 기부했다. 구체적으로 아동 병동으로 지정한 이유가 있는지?
한창 뛰어놀며 행복해야 할 시기 중 병원에서 힘든 치료를 이어가고 있는 어린이에게 세상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어린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힘이 보태졌으면 좋겠다.
본인에게서 긍정적인 태도와 선한 영향력에 대한 믿음이 느껴진다. 이런 태도가 연주로도 연결되는 걸까?
부모님께 항상 내가 존재하며 살아가는 순간의 감사와 행복을 배워왔다. 이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아름다운 음악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비단 연주뿐만 아니라 생활 전체로도 이어진다. 맞이하는 매일을 귀하게 인식하다 보니 어느새 생각이 유연해지고, 마음속 혼란을 긍정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가족 전체가 사회공헌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맞다. 어머니는 심수봉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에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라는 가사를 좋아하신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나와 동생에게 일깨워주시곤 한다.
실제로 해외에 거주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구호 활동에 참여했다. 사회공헌에 참여한 또 다른 시도도 있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을 무렵 폴란드의 여러 단체가 피난 온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다양한 구조 활동을 펼쳤다. 여러 차례 자선 공연에 참여했고, 공연 수익을 구호단체에 기부했다. 다른 일로는 병원의 환자들을 돕거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체스보드 보급에 기부하기도 했다. 세상에 유익한 사회 구성원이 되고 싶다.
다음 기부 음악회도 생각 중이라고.
첫 기부 음악회에 일부러 ‘Op.1’을 적었다. 앞으로도 동생과 함께 이어 나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12월 공연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한다.
글 이의정 기자
이혁(2000~) 2016년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다. 2018년 하마마쓰 피아노 콩쿠르 3위, 2021년 쇼팽 콩쿠르 결선에 올랐으며, 2022년 롱 티보 콩쿠르에서 일본의 마사야 카메이와 함께 공동 우승을 수상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을 거쳐 현재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에 있다.
문화예술 키워드 06
서커스
기술이 아닌 예술을 꿈꾸다
Show Must Go on!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대형 공연이 우리를 다시 찾아오고 있다. 코로나로 주춤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규모가 크고 화려한 퍼포먼스일수록 흥행이다.
작년 9월에 시작한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 인 서울’(~1.2/잠실종합운동장 내 FB씨어터)은 파격적이고 화려한 퍼포먼스로 성황리에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1시간 여간 스탠딩으로 진행되는 공연에 ‘정면 무대’랄 것이 따로 없다. 공간의 4면은 물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 지나가는 공중 곡예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객석 띄어 앉기를 했던 시절이 무색하게, 관객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쪽을 향해 옹기종기 모여든다. 공연의 마지막에 뿌려지는 물줄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뒤엉켜 피날레를 즐긴다. 억눌렸던 자유의 에너지가 마음껏 분출되는 순간이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돌아온 태양의 서커스가 선보인 ‘뉴 알레그리아’(~1.1/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는 지난해 최고 매출을 달성할 공연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막 5주 만에 누적 관객 수 9만 명을 기록하며 매출 200억 원을 돌파했던 이번 공연은 “유튜브 등 매체를 통해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라이브 쇼만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던 예술감독 마이클 스미스의 바람대로 많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1970년, 캐나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공연 단체 ‘태양의 서커스’는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대표적인 단체다. 1990년대를 거치며 최대의 호황을 누렸던 이들이지만, 코로나로 투어를 모두 멈춘 2020년에 파산보호 신청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샀다. 무엇보다 이번 내한이 위기에서 극적으로 회생해 시작한 본격적인 세계 투어라는 점에서, 대형 공연 회복의 메시지가 강조된 공연이었다.
2023년에는 대형 뮤지컬의 화려한 라인업이 서커스 공연의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중 뮤지컬 ‘캣츠’(1.20~3.12/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5년 만에 객석에 ‘젤리클석’을 다시 운영할 것을 밝혔다. ‘젤리클석’은 젤리클 고양이로 분한 배우들이 관객 사이를 돌아다닐 때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좌석으로, 가장 먼저 매진되는 인기 좌석이다. 배우와 직접 손을 맞대거나, 불쑥 나타내 관객을 놀라게 하는 등 접촉이 있는 연출이라, 지난 2020년에 진행된 40주년 투어에서는 배우들의 객석 동선이 최소화됐었다. 젤리클석의 부활은 올 한해 이어질 대형 공연의 적극적이고도 당당한 부활을 암시하는 듯하다.
글 허서현 기자
컨템퍼러리 서커스
프랑스 시인 테오필 고티에(1811~1872)는 서커스를 ‘눈의 오페라’라고 불렀다. 19세기 미국을 포함한 서양 세계를 중심으로 서커스는 절정을 이뤘다. 곡예 중심의 화려한 묘기, 동물 곡예 등의 특징을 가졌던 당시의 근대 서커스는 서커스 유람단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며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20세기,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극으로 발전하며 예술의 경지에 오른 ‘쇼’가 된다. 다양한 음악과 연출, 서커스 학교를 통한 체계적인 방식의 교육 등이 이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다양한 유럽의 예술 축제와 무용계에서 서커스는 새로운 소재로 사랑받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융합예술의 길을 걷고 있다.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 & 에일리 서커스
‘지상 최대의 쇼’를 만들었던 미국의 서커스단이다. 단체명에 있는 ‘바넘’은 영화 ‘위대한 쇼맨’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 ‘바넘’(1810~1891)이다. 1871년 창단해 146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2017년, 자금난으로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 사자, 호랑이, 낙타 등 세계 각지의 동물을 내세운 쇼는 2000년부터 각종 동물 권리 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북미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를 보유했던 이들은, 2014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벌금 27만 달러를 내야 했다. 하지만 코끼리를 무대에서 빼자, 표 판매는 줄었다. 폐막 당시 최고 경영자는 “코끼리가 공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장하면서도, 코끼리가 없는 서커스를 보러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세기의 서커스 역사가 안타깝게 막을 내리는 듯했으나, 2023년 링링 브라더스가 자신들의 컴백을 발표했다. 공연은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쇼로, 9월에 북미를 중심으로 공연 예정이다.
대형 오리지널 내한 뮤지컬
뮤지컬 ‘시카고’
5.27~8.6/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브로드웨이 공연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2017년 이후 6년 만의 내한
뮤지컬 ‘시스터 액트’
11월 예정/대성 디큐브아트센터
뮤지컬코미디의 결정판! 두 번째 내한.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할까
서울 서커스 축제
2018년 문화비축기지에서 시작된 국내 유일의 서커스 축제다. 신작 및 해외 작품 발표, 서커스 체험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는 ‘서커스 캬바레’와 국내 중·소규모 작품으로 구성된 ‘서커스 캬라반’이 9~10월 사이에 열린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차량에 탑승한 채 공연을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인’ 방식도 진행한 바 있다. 국내 최초의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부터 봉앤줄, 서커스 디 랩, 코드 세시 등 다양한 한국 서커스 단체를 만나볼 기회!
온라인 극장 플랫폼
대형 오프라인 공연에 대한 열망이 강해진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온라인 공연 시장은 어떨까? 방 안에서 양질의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맛본 ‘방구석 관람객’을 위해 온라인 서비스가 올해도 계속되는 곳들.
문화예술 키워드 07
예술가 평전
무대로 다시 태어난 예술가들
예술가의 생애를 살펴보겠다고 위인전을 펼쳐볼 필요가 없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클림트’ ‘프리다’ 등 예술가를 소재로 뮤지컬 등이 성행 중이다. 그들의 삶과 예술은 노래와 음악을 통해 펼쳐지고, 무대는 위인전의 지면이 된다. 무엇이 예술가들을 작품으로 불러내고, 관객들은 왜 그들의 인생을 펼쳐보는 걸까.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뮤지컬 역시 작곡가 베토벤을 소재로 했다. 오는 1월에도 뮤지컬 ‘베토벤’이 초연을 앞두고 있으며 박효신을 필두로 박은태 등이 주역을 맡아 대중의 반응이 뜨겁다.
뮤지컬 칼럼니스트 원종원은 이러한 배경에는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을 다룸으로 작품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저작권 문제에서도 자유롭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해외 같은 경우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대중음악, 영화, 콘텐츠를 뮤지컬의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에서는 영화나 대중음악 대신, 예술가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때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권’과 ‘인지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뮤지컬의 소재가 되는 작곡가들은 50년 전에 작고했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저작권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한편, 뮤지컬의 대중적 인지도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만약 작곡가를 소재로 하게 되면 인지도가 이미 확보되었기 때문에, 창작이 아닌, 재연 같은, 수입 뮤지컬 같은 이미지까지도 얻게 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화가나 유명한 소설 작가들도 있지만, 왜 음악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유독 많을까? 이에 대해 원종원은 “음악적인 활용이 용이한 것”을 장점으로 꼽으며 “뛰어난 예술가들이 왜 천재적이고, 얼마나 멋진 작품을 만들었는가를 무대로 형상화할 때, 소설가의 글이나 화가의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작곡가의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 뮤지컬에서는 더욱 익숙한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을 작품에 적용하기에 용이하지만, 얼마나 잘 뮤지컬에 알맞게 승화시켰는가에 따라 완성도는 판이하게 갈릴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중요한 건 시대성
‘레베카’ ‘엘리자베스’ ‘모차르트!’ 등의 작곡을 맡았던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는 실존 인물을 작품 소재로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시대성을 드러내는 오케스트라의 역할’로 꼽았다. 그는 “인물들을 음악적으로 특성화시키려고 한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그들이 살았던 시대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현대성을 드러내는 팝적인 요소가 공존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뮤지컬 ‘모차르트!’(연출 유희성 외/작곡 실베스터 르베이)는 음악가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뮤지컬로 손꼽힌다. 2010년 초연 당시 모차르트 역에는 임태경·박건형·박은태·김준수가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모차르트!’는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작품으로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이후 16년만인 2015년 9월에서야 비로소 재연되었다.
르베이는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모차르트!’에서는 어린 아마데우스와 청년 볼프강이 함께 등장한다. 모차르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천재성을 클래식 음악적인 요소가 짙은 넘버를 통해 표현한다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모차르트를 표현할 때는 볼프강이 등장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선 팝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모차르트는 지금 시대로 보면 팝스타인 엘튼 존이나 아이돌 김준수처럼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본지 2019년 2월호 발췌).
모차르트는 뮤지컬의 단골 소재였다. ‘십계’, ‘태양왕’의 제작자인 알베르 코엔과 도브 아티의 프로듀싱으로 2009년 제작된 ‘모차르트 오페라 록’은 모차르트의 라이벌로 언급되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와의 갈등을 록 음악으로 풀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창작뮤지컬 ‘살리에리’ 역시 같은 내용으로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다.
작곡가를 소재로 한 뮤지컬
한편,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연출 오세혁/작곡 이진욱·김보람)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평가받는다. ‘니콜라이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1873~ 1943)에게 심리치료를 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교향곡 1번의 혹평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이며 음악계에 재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과의 만남을 그린 뮤지컬 ‘브람스’(작·연출 손수민/작곡 진주백),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를 둘러싼 소문과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파가니니’ 등이 무대에 올라 한국 관객을 사로잡은 바 있다.
음악가뿐만 아닌 다른 예술가들도 뮤지컬의 옷을 입었다.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발레 ‘봄의 제전’을 초연했던 안무가 니진스키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니진스키’는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 니진스키의 활동 이야기와 함께 ‘봄의 제전’ 초연 혹평 이후 로몰라와 결혼하면서 생긴 디아길레프와의 갈등을 그린다.
2014년 초연한 ‘빈센트 반 고흐’는 대중음악가 선우정아가 작곡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3D 영상기술을 전면에 내세워 작품의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굴곡진 삶을 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다룬 ‘프리다’(연출 추정화/작곡 허수현)와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동시대 작가 실레의 삶을 다룬 ‘클림트’(연출 김남현/음악 신승호)도 기억할만하다.
오는 1월에는 베토벤이 사랑에 빠졌던 안토니 브렌타노의 관계를 다룬 뮤지컬 ‘베토벤’(연출 길버트 매머트)을 만나볼 수 있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참여한 이번 작품은 베토벤이 40대 초반이었던 1810~1812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과 소나타 14번 ‘월광’ 등 30여 곡의 베토벤의 음악이 차용됐다. 르베이는 “베토벤의 음악엔 그의 영혼과 감정이 담겼다. 그에게 이입하기 위해서는 원곡을 써야 했다”라며 “음악이 유치해지지 않도록 진정성을 담았다. 베토벤이 하늘에서 미소 지으며 이 음악을 감상하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글 임원빈 기자
Performance information
뮤지컬 ‘베토벤’ 1월 12일~3월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12월 20일~2023년 3월 12일 예스24스테이지 1관
문화예술 키워드 08
환경
지구를 지키는 작은 움직임
환경 보호에 대한 목소리는 2023년 공연계 내에서도 계속 울려 퍼질 예정이다. 특히 탄소 중립에 대한 유럽 내 오케스트라의 대처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적 운동이 되어 퍼지고 있다.
2020년 세계환경의날에 설립된 ‘변화하는 독일의 오케스트라(Orchester des Wandels Deutschland)’ 협회는 2021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독일 내 환경 보호와 탄소중립을 촉진하는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단체에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뒤스부르크 필하모닉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편,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는 2021년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대사로 활동 중이다. 본 시장 카챠 도르너는 “기후 위기가 지속되는 시기에 공동생활을 위한 환경 보호 책임은 중요하다”라며 “상임지휘자인 디르크 카프탄이 전 세계에 기후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앞장서준 것에 감사한다”라고 전했다.
현재 30개 이상의 독일 오케스트라가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오케스트라 협회 상무이사인 제럴드 메르텐스는 “코로나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오케스트라가 기후 보호 및 지속 가능성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독일 오케스트라 조합(unisono)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최근, 종이 악보를 모두 디지털 악보로 전환하며 독일 최초 탄소중립을 달성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음악가 개개인의 참여도 눈에 띈다. 핀란드 출신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페카 쿠시스토(1976~)는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함께 오랫동안 작업하고 있다. 3년 전 칸 영화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과 함께 산림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영화 제작에 연주자로 참여했다. 또한 그가 20년간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헬싱키 인근 투술라 호수 인근에서 개최되는 아우어 페스티벌(Our Festival)에서는 비윤리적인 동물 사육의 경각심을 알리는 어린이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유럽 내 투어를 할 때는 기차를 이용하겠다는 것. 지난해 본지와 나눈 인터뷰에서 “모차르트나 파가니니는 마차로 여행했다. 8~9일이 걸리더라도 기차를 타고 베른에서 서울까지 이동할 의향이 있다”라고 밝혔다. 한 사람이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으로 남기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483kg인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실천은 결코 작은 움직임이 아니다. 코파친스카야는 오는 3월, 서울시향과 협연을 앞두고 있다(3.10·11/롯데콘서트홀).
2023년 국내 예술가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에스메 콰르텟은 오는 4월, 연출가 미셸 판 데르 아와 함께 환경을 소재로 한 음악극 ‘북 오브 워터’를 한국 초연한다(4.4/통영국제음악당).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의 중편소설 ‘홀로세의 인간’을 바탕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원작에서 집중호우로 주인공 가이저가 고립되는 상황에 조금 더 집중하며 이상 기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예술단체들은 탄소중립과 환경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먼저 국립단체들은 홍보물 제작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국립심포니는 공연폐기물 재활용 굿즈 제작을 해오고 있다. 홍보 현수막과 배너 등 재활용이 가능한 홍보물을 활용할 수 있게 개발 중이며 폐악보를 재활용한 파우치와 카드 지갑은 단체의 핵심 굿즈로 자리 잡았다.
이외 통영국제음악재단은 홍보인쇄물 줄이기에 집중한다. 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그랜드윙’을 이메일 뉴스레터로 대체했고, 기획공연 홍보를 위한 전단 인쇄를 중단했다. KBS교향악단은 프로그램 북 제작량을 줄이고, QR코드를 비치해 디지털 형식으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비단 대기업의 참여뿐만 아닌, 최근 정부의 ESG 도입 확산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에도 요구되고 있다. 공공조달영역 뿐만 아니라 예술 자체로 범위를 넓혀 국내 국공립 예술단체를 포함한 기관 및 기획사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ESG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실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글 임원빈 기자
문화예술 키워드 09
한류
국악에 흐르는 새로운 물결
이날치·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범 내려온다’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지 2년이 지났다. 이러한 물결 타고 국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젊은 국악인들은 국악의 르네상스와 한류의 새로운 주체가 되었다. 과거에 대중문화에 국한되었던 한류의 범위는 이제 한국의 전통예술과 문화로까지 넓어졌다.
그 흐름에 외국인들도 하나둘 몸을 담그고 있다.
INTERVIEW
소리꾼 마포 로르
판소리에 담은 한(韓)의 정서
신한류의 흐름 속에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 소리꾼이 있다. 카메룬 태생의 프랑스 국적 소리꾼 마포 로르(1984~)는 우연히 접한 판소리에 이끌려 직장에 사표를 내고 한국에 왔다. 판소리의 어떠한 매력이 한국문화를 알리는 국악인의 길로 이끌었는지, 소리꾼이 된 파리지엔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에서 6년 간 판소리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2015년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소리꾼의 공연으로 판소리를 처음 접했다. 판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들었던 카메룬 전통 민요와 완전히 달랐다. ‘나도 저런 소리를 내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외국인 소리꾼으로서 판소리를 배우는 데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판소리에는 옛 단어와 한자, 사투리가 많이 쓰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한문 수업을 들으며 한자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시작한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만큼 어려운 점도 있지만, 1년에 두 차례씩 숲에서 연습하는 산공부도 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있다.
최근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한류특별상(제4회 뉴시스 한류엑스포)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변인들의 경우 한국문화를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에 유학 온 친구도 있고, 한식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친구도 있다. 나는 판소리를 배우며 한국문화와 역사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로르랑아리랑’ 도 운영하고 있다.
연습 영상을 보고 카메룬이나 프랑스 등에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노래할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판소리가 한류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판소리를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춘향가’의 한 대목인 ‘사랑가’를 아프리카 전통 악기 장단에 맞춰 프랑스어로 부른 적이 있다. 외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통 음악을 낯설게 느끼는 한국의 젊은 친구들과 어린이들, 나아가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판소리의 즐거움을 전하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
글 홍예원 수습기자
마포 로르(1984~) 카메룬 출신 프랑스 국적의 소리꾼이다. 2017년 민혜성 소리꾼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2018년 프랑스 엘리제 궁 한·불 대통령 만찬 공연 참석, 2021년 서울시 명예시민 선정, 2022년 뉴시스 한류엑스포 한류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재학 중이다.
Part 3. 주목받을 지역들
중동과 인도,
북유럽에서 부는 바람
앞으로 세계의 기업이 주목하는 ‘기회의 땅’은 이젠 미 대륙도 아시아도 아닌 중동이다. 정치적 이슈가 끊이지 않아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각박한 이곳에 가까스로 피어난 클래식 음악과 예술 생태계를 돌아본다. 또한 인도는 한국과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한다. 1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는 216개이며 기타 언어까지 합치면 3,000개가 넘는다. 다채로운 언어만큼이나 문화유산도 화려하다. 한편, 유럽 내 클래식 음악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북유럽에서 불고 있는 새로운 현대음악까지 살펴본다.
문화예술 키워드 10
예술의 신교역로,
중동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중간지점
2022년 전 세계의 마지막 한 달은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카타르 월드컵이 가져갔다. 경제뿐만 아니라 오일머니를 문화예술에 투자하며 ‘제2의 중동 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많은 이들이 지켜보게 됐다. 중동의 전통 음악 문화를 곧장 들여다보는 것도 이들을 배워나가는 방법이겠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역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최근의 중동 모습을 보며, 중동의 클래식 음악 활동들을 살펴보았다.
두바이 오페라 극장
일곱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합국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와 두바이, 두 도시로 유명하다. 이 중 관광 도시로 이름을 빛내는 두바이엔 그 이미지에 걸맞은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가 2016년 8월 31일에 개관했다. ‘두바이 오페라’는 도시의 성장세에 맞춰 세계의 여러 음악가의 방문이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한 공연장으로 꼽힌다. 당시 개관 공연에도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올랐으며, 개관 한 달 뒤 가을엔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성공적인 공연을 펼쳤다. 2021년부터는 중동의 공연 기획사 SAMIT(Show Art Music International Tours)와 함께 ‘심포닉 미들 이스트’ 음악축제를 주관하고 있다.
2,000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은 다양한 장르를 공연하기 위해 음향 가변형 시스템을 갖추었다. 필요에 따라 홀은 오페라·뮤지컬·무용을 위한 극장으로, 관현악곡을 위한 클래식 공연장으로, 심지어 결혼식·갈라쇼·패션쇼·전시 등을 위한 넓고 평탄한 홀로도 변형된다. 공연장 외에도 야외 공간인 정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겨울이 없는 중동의 기후를 활용해 야외에서 신년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중해 동쪽에 이스라엘 건국이 이루어진 것은 1948년이지만, 이미 1936년 폴란드 출신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에 의해 ‘팔레스타인 심포니’라는 명칭으로 악단이 출범했다. 이스라엘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에 위치한 ‘찰스 브론프먼 오디토리엄’을 상주홀로 두고 있으며, 현재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상주음악가로 있다. 오랜 기간 음악감독 자리를 공석으로 두었지만, 세계에서 손꼽을 만한 명지휘자를 객원지휘자로 두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요엘 레비·자난드레아 노세다가 이들 앞에서 지휘봉을 들었으며, 특히 다양한 음반 작업을 함께한 레너드 번스타인은 1947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1990년까지 꾸준히 이 악단과 음악적 교류를 이어 나갔다.
1977년, 악단의 첫 음악감독은 주빈 메타로 결정됐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은 1981년에 ‘종신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빈 필·베를린 필의 객원지휘자, LA 필·뉴욕 필의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그는 2019년까지 성공적으로 악단을 이끌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움에 빠진 2020년, 다니엘 바렌보임의 제자인 라하브 샤니(1989~)가 악단의 두 번째 음악감독으로 올랐다.
글 이의정 기자
인클레시카 페스티벌
2011년부터 이어 온 인클레시카 페스티벌(InClassica Music Festival)은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음악축제로, 2021년 축제의 장을 두바이 오페라와 코카콜라 아레나로 옮기면서 주목도가 올라갔다. 1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했던 음악가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루돌프 부흐빈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길 샤함·다니엘 로자코비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이 있다.
2023년에도 2월 12일부터 3월 3일까지 약 3주간 15개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며 아르메니아의 첼리스트 나레크 하크나자리안, 이스라엘의 피아니스트 살림 아슈카르와 같이 중동 출신의 음악가를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음악가들이 참여한다. 국내 연주자인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도 예정돼 있다.
축제에선 중동 출신의 독주자뿐만 아니라 중동과 동유럽 국가의 악단도 만나볼 수 있다. 터키의 추쿠로바 시립 심포니·우즈베키스탄 국립 심포니·헝가리의 사바리아 심포니가 각각 3~4개의 공연을 맡아 연주한다.
중동의 음악가들
라하브 샤니(1989~)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로 2013년 구스타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15년 프란츠 벨저 뫼스트의 대체 지휘자로 빈 필을 지휘하며 주목도가 올라갔으며, 2018년에 로테르담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2020년에 이스라엘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나레크 하크나자리안(1988~)
아르메니아 출신 첼리스트로 11살 때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에 진학했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비치를 사사했으며,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첼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런던 심포니·로테르담 필하모닉·LA 필·시카고 심포니·세인트 룩스 오케스트라·서울시향 등과 협연했다.
살림 아부드 아슈카르(1976~)
이스라엘 출신 피아니스트로 22세에 카네기 홀에서 데뷔하면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런던 심포니·빈 필·로열 콘세르트헤바우 등과 협연했다. 이스라엘의 젊은 아랍·유대 음악가를 위한 단체인 갈릴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활동 중이다.
공연 기획사 SAMIT
2020년에 설립된 중동의 거대 공연 기획사인 SAMIT은 중동 오케스트라·사우디아라비아 국제오페라 페스티벌·심포닉 미들 이스트 음악축제 등을 진행·협력해왔다. 지난해 ‘심포니 미들 이스트’ 음악축제를 두바이에서 개최하면서 SAMIT의 대표 알렉산드라 미티우레바는 “두바이는 팬데믹 동안 최고의 도시가 됐다. 우리의 목표는 최고의 아티스트를 중동으로 데려오는 것이며, 우리의 관객은 진정한 예술성을 목격할 것이다”라며 중동의 클래식 음악 성장에 자신감을 보였다.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기업이지만, 그들이 펜데믹 기간에 이뤄낸 성과와 성장력을 살펴보면, 중동 지역의 클래식 음악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할 요충지임을 인지할 수 있다.
문화예술 키워드 11
인도 수교 50주년
신비의 땅에 숨은 예술 생테계
2023년은 한국과 인도가 수교를 맺은 지 50주년 되는 해이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던 인도는 이로 인한 유럽의 문화와 자국의 전통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러한 인도에는 다양한 예술이 있다. 수교 행사가 펼쳐질 인도의 문화와 예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식적인 외교관계 수립이 이루어진 건 1973년이지만, 인도는 한국전쟁 당시 의료지원 부대를 한국에 파견했으며 정전 후에는 공산군 포로 감시와 송환 활동을 해왔다. 양국은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수교를 맺은 뒤 오늘날까지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2014년 한국 정상의 방인 이후 문화교류 계획서가 효과를 발휘해 한·인도 국립박물관 및 국립아시아전당과 인도 국립 인디라간디 예술센터 간 업무 협력 약정이 체결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틀을 바탕으로 주인도한국문화원은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문화원은 인도인과 현지 교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주한 인도 신임 대사로 임명된 아미트 쿠마르는 임명식에서 “양국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인도의 음악가들
라비 샹카르(1920~2012)는 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타르(인도 류트) 연주자이다. 한국에서는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소개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알려진 건,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이 그에게 시타르를 배웠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였다. 조지는 1965년 러버 소울에서 직접 시타르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라비는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과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연주하기도 했다.
전통 음악과 동시대 음악의 융합을 이끈 음악가는 하리프라사드 차우라시아(1938~)이다. 인도 영화음악 감독이자 인도 전통 악기 반수리(대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인도 플루트) 연주자이다. 성악으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이후 플루트를 배워 1957년 올 인디아 라디오에 합류해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활동했다. 타현악기인 산투르 연주자인 쉬브쿠마 샤르마(1938~2022)와 ‘쉬브하리’를 결성해 클래식 음악 외 인도의 영화음악과 대중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조카인 라케쉬 차우라시아 역시 잘 알려진 반수리 연주자이다.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메리 메타(1908~ 2002)는 인도의 클래식 음악 1세대 음악가이다. 지휘자 주빈 메타의 아버지이자 인도 교향악단의 전신인 뭄베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설립자이다.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배워 영국으로 이주해 맨체스터 할레 오케스트라의 부악장과 악장으로 지냈다. 이후 아메리칸 유스 심포니를 창단해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이스라엘 심포니에타 등에서 악단을 이끌었다.
그의 아들 주빈 메타(1936~)는 몬트리올 심포니 음악감독(1961~1967), LA필 음악감독(1962~ 1978)을 지냈다. 1969년에는 음악감독이 없었던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음악고문으로 임명된 이후 1977년부터는 악단의 첫 음악감독으로 지냈다. 이후 1981년에는 이스라엘필 종신 음악감독직에 임명됐다. 1978년 뉴욕필 음악감독 임명되어 13년 동안 악단을 이끌었다.
글 임원빈 기자
뭄바이 국립공연예술센터(NCPA)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도 문화예술의 전초기지이다. 1969년 개관한 국립공연예술센터(이하 NCPA)는 뭄바이에 있으며 크고 작은 공연장과 전시 공간이 모여 있다. 1,109석 규모의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인 잠셰드 바바 극장은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부터 발레와 오페라, 뮤지컬까지 공연할 수 있다. 현재 인도 교향악단이 상주하고 있다. 타타 극장에서는 실내악과 연극을 포함한 인도의 전통 공연, 영화 등이 상영되고 연주된다. 1,010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회전식 무대와 다채로운 음향 장비를 갖추어 다양한 공연이 가능하다. 블랙박스 공연장인 Experimental 극장은 264석의 가변형 좌석을 갖추고 있어 소규모 무용과 공연들이 열린다. NCPA 예술 도서관에는 개관 이후 상영·공연된 6,000시간 이상의 음악 및 영화가 아카이브 되어 있다.
인도 교향악단
국립공연예술센터(NCPA)의 상주단체인 인도 교향악단은 NCPA의 회장 쿠슈루 순톡에 의해 2006년 설립되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마라트 비센갈리예프가 초대지휘자로 악단을 이끌었다. 이후 영국 출신의 미켈 톰스가 상주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뭄바이 체임버 오케스트라 소사이어티
1962년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고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지난해 60주년을 맞은 악단은 매해 6회의 정기연주회를 선보여 오고 있으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해 악기 대여 사업도 하고 있다.
인도예술재단(IFA, India Foundation for the Arts)
1995년 인도 예술진흥을 목적으로 창설된 민간 독립 비영리 단체로 인도 남부 방갈로르에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든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기금 지원 분야는 연구, 교육, 작품 제작 등이다. 새로운 영역 탐구와 융복합 예술을 지향하는 단체들에게 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IFA 아카이브를 통해 현재까지 지원한 프로젝트들을 유튜브와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인코센터(한·인도 문화정보센터)
친나이에 위치한 인코센터(원장 라티 자페르)는 남인도의 한국문화원 역할을 대신한다. 문화예술 교류를 목적으로 인근에 위치한 현대 모터스, 양국 중소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2006년도에 설립된 비영리 등록 재단이다. 한국어학당, 서예, 태권도, 요가, 역사 배우기, 요리 교실, 운동, K팝과 비보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 키워드 12
북유럽발 현대음악
음악의 거대한 줄기를 놓다
과거 북유럽은 클래식 음악계의 변방으로 여겨졌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나 노르웨이의 그리그, 덴마크 카를 닐센 등 정도가 손꼽을 만한 작곡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음악지형에서 북유럽 작곡가들의 활약이 눈부시고 영화 등에서 활발하다. 전통의 영향력이 뿌리내리지 못한 곳이 오늘날 그 어떤 새로움도 가능한 기회의 땅이 된 것. 올해도 북유럽 작곡가들의 신작이 여럿 발표된다.
주목할 만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첫 번째 인물은 에사 페카 살로넨(1958~)이 될 것이다. 다재다능한 핀란드의 대표 음악가인 살로넨(1958~)은 오르간 협주곡 세계 초연을 앞두고 있다. 2015년 첼로 협주곡 이후 오랜만의 관현악 신작으로,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이 공동 위촉했다. 올 상반기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 걸쳐 자신의 지휘로 연주될 예정이다.
살로넨과 동향 작곡가인 마그누스 린드베리(1958~)도 지난해 말 피아노 협주곡 3번(협연 유자왕)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서 세계 초연했다. 이 작품은 올해 뉴욕, 함부르크 등으로 연주 행렬을 이어간다. 또 다른 핀란드의 대표 작곡가 카이아 사리아호(1952~)는 지난해 BBC 프롬스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인물. 올해 예정된 신작 발표는 없지만, BBC 심포니는 다큐멘터리 스크리닝, 작곡가와의 만남, 두 차례의 공연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아이슬란드 작곡가들의 진격은 특히 압도적이다. 영화 ‘조커’로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 부문을 거머쥔 힐두르 구드나도티르(1982~)의 새로운 영화음악을 곧 한국에서 만난다. 지난해 미국에서 먼저 공개된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타르’가 2월 국내 개봉 예정이다. 지난해 BBC 프롬스에서 ‘ARCHORA’를 세계 초연한 안나 소르발스도티르(1977~)는 올해 현악 4중주 신작을 대니시 콰르텟의 연주로 첫선을 보인다. 비킹구르 올라프손(피아노), 페카 쿠시스토(바이올린) 등이 초연을 맡아온 작곡가 다니엘 비야르나손(1979~)은 최근 현대음악 지휘에 방점을 찍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예테보리 심포니가 자국의 대표 작곡가 중 한 명인 알버트 슈넬처(1972~)의 오라토리오 ‘SALT’를 세계 초연한다. 소프라노는 바다를, 바리톤은 인간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예테보리 시 건립 400주년을 맞아 위촉됐다.
덴마크 한스 아브라함센(1952~)은 지난해 오페라 ‘눈의 여왕’으로 그라모폰 컨템퍼러리 어워드를 거머쥔 주인공이다. 역시 신작 발표 계획은 없지만 주요 오케스트라가 그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린다. ‘그림 동화(Märchenbilder)’와 ‘렛미텔유(Let me tell you)’, 6개 피아노 소곡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NDR 엘프 필, 피에르 불레즈홀 등에 오른다.
노르웨이에서 주목할 현대 작곡가는 킴 안드레 아르네센(1980~)이 손꼽힌다. 특히 합창음악에 주력해온 그는 미국과 유럽 곳곳의 성당과 합창단으로부터 작품을 위촉받아 왔다. 트론하임의 니다로스 대성당이 의뢰해 2021년 미국에서 세계 초연된 ‘북쪽의 빛(Northern Lights)’이 다가오는 해에 자국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