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을 접해 ‘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3월 6일 9:00 오전

SPECIAL
알면 들린다

 

현대음악을 접해 ‘봄’

음원 차트를 뒤흔든 인기 현대음악부터 올봄을 채울 축제까지!

어렵고 난해하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폭동으로 현대음악의 ‘난해함’이 문제가 된 지 한 세기를 넘긴 지금, 우리 시대의 작곡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난해함’을 풀어내고 있다. 미간의 주름을 펴서 눈을 반짝 떠보자. 올해 3월은 새로운 봄의 제전이 열릴 테니! 기획·총괄 이의정 기자

Part 1. 살펴‘봄’

➊ 지금, 여기, 우리가 즐기는 현대음악 _이민희

➋ 막스 리히터 레볼루션 리뷰 _송주호

➌ 작곡가 라이언 로트 인터뷰 _이의정

 

Part 2. 미리‘봄’

➊ 통영국제음악제 미리보기 _이의정

➋ 크론베르크의 TIMF앙상블 _오주영

➌ 프레장스 페스티벌의 진은숙 _배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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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delis Fuchs

 

 

 

 

 

 

 

 

 

 

 

 

 

 

©SihoonKim/T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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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살펴‘봄’ ➊ Column

 

‘현대음악, 대체 누가 좋아하는 것일까?’ 공연을 함께 보던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찾아본 그 주의 빌보드 클래식 음반 차트 1위는 놀랍게도 현대음악이었다. 작곡가 막스 리히터(1966~)의 2015년 음반 ‘슬립’은 2월 셋째 주 기준, 168주 연속으로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다.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 특집의 ‘PART 1’ 지면에서는 수많은 청중의 지지를 얻은 인기 있는 현대음악을 살펴보기로 했다.

 

음원 차트 속 인기 작곡가들

지금, 여기, 우리가 즐기는 현대음악

전통과 기술을 결합한 그들은 누구인가?

최근 큰 사랑을 받는 현대음악은 공통으로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첫째, 어쿠스틱 위에 일렉트로닉 음향을 결합한다는 점. 둘째, 과거의 클래식 음악에서 가져온 재료를 활용한다는 점. 셋째, 영상·이미지 등을 음악과 결합하고, 영화·게임음악의 형태로 관객을 만난다는 점. 넷째, 조성·화성·반복을 통해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니멀리즘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

이 음악들은 보통 ‘포스트 미니멀리즘’ ‘신조성주의’ ‘포스트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어폰을 사용한 ‘개인적인 청취’에 적절한 음향을 구사하며, 유럽 소도시의 테크노 클럽에서부터 아시아의 대규모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을 만난다.

따라서 불과 몇 십 년 전 ‘현대음악의 청중은 전부 어디로 가버렸는가?’를 고민하며 빈 객석을 바라보던 보수적인 작곡계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제 대중이 떠올리는 현대음악 작곡가는 더 이상 ‘고루한 선생님’이 아닌,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상상을 세련되게 활용하는 시류에 민감한 ‘청년들’이다. 혹자는 이런 음악들이 정통 클래식 음악이 아니지 않느냐며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 대중과 접속하는 이 음악들은 21세기의 환경과 기술은 물론 대중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재를 그들의 작업 안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이미 시대성과 가치를 획득하고 있다.

 

차갑지만 ‘힙’한

이케다 료지·알바 노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중 하나인 애플뮤직에는 ‘앰비언트’ 혹은 ‘퓨어 앰비언트’ 등으로 지칭되는 일련의 음악 카테고리가 있다. 이 음악들은 짜임새의 변화가 부재하고 전자적으로 직조된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며, 상당수는 ‘글리치’라 부르는 노이즈를 포함한다. 이케다 료지(1966~) 그리고 알바 노토(1965~)로 대표할 수 있는 이런 부류의 음악은 매끈하고 냉혹한, 마치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둘러싸인 무균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케다는 공연장에서의 라이브와 미술관에서의 설치를 동시에 행하는 아티스트로 음반 ‘+/-’(1996) ‘0°C’(1998) ‘매트릭스’(2000)를 거쳐 명반인 ‘데이터플렉스’(2005), ‘테스트 패턴’(2008), ‘슈퍼코덱스’(2013) 등을 발표했다. 그는 “합리성·정확성·단순성·우아함·섬세함”을 아름다움으로 정의하며, 자신의 음악 안에 수학의 세계를 담는다. “숫자·크기·형태의 완벽한 조합은 우리와 독립적으로 지속된다. 수학의 숭고를 향한 미적인 경험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고 그는 주장한다. 0과 1에 휩싸인 디지털 시대 속 인간의 일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로 수학적 음향을 선택한 것이다, 동시대 환경이 온전히 디지털 기반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최근인 2022년 발매한 음반 ‘울트라트로닉스’ 역시 이케다 특유의 기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찌르는 듯한 컴퓨터의 잡음을 장인적인 기술로 직조한 짜임새는 규칙성이 느껴지는 동시에 재기발랄하며, 비록 선율이나 화성이 부재하지만 흡입력이 상당하다. 음악은 그 자체로 21세기 대중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현재의 공간을 그 안에 재현하고 있으며, 이어폰으로만 청취할 수 있는 세밀한 소리를 들려준다.

알바 노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카르스텐 니콜라이는 이케다와 마찬가지로 시각 요소와 음악을 뛰어나게 접합시키는 예술가이다. 이케다의 음악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이미지와 결합해 시청각 형태로 관객을 만난다면, 알바 노토의 음악은 공연장에서 화려한 미디어아트와 함께 거대한 음량으로 쏟아진다. 분명한 박자감, 노이즈,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상, 제한된 음색을 사용하되 독특한 질감으로 관객의 귀를 감싸는 입체적인 앰비언트(편집자주_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는 음악·소리) 등. 압도적인 리듬의 향연을 만들어내는 알바 노토의 음악은 어떤 측면에서는 풍만하게 조직된 케이팝의 묵직한 박자를 연상시킨다. 2020년 발매된 음반 ‘제록스 4’는 지금까지 알바 노토가 보여줬던 강점을 총망라하는 수작으로, 한 음정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만드는 드론 음향의 풍성한 질감이 특징이다.

 

음악의 요리사

아라시 사파이안·맥스 쿠퍼

바야흐로 음악의 재활용이 유행인 세상이다. 더 이상 베토벤 교향곡 1시간을 들을 시간이 없는 21세기의 청중의 존재, 그리고 기존에 만들어진 너무나 많은 클래식 음악과 누구나 손쉽게 그 재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결합돼 벌어진 현상이다. 예컨대 작곡가의 입장에서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은 마치 과거 민속음악이 그랬듯 대중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선율의 보고이다. 누구나 그 선율을 알고 있기에, 이를 재료 삼아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건, 낯선 음악이 주는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아라시 사파이안(1981~)은 이런 동향을 선도하는 작곡가로, 2016년부터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제바스티안 크나워(1971~)와 함께 ‘음악에 관한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중 ‘위버바흐’는 바흐의 음악을 새로이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며, 2017년 에코 클래식 ‘올해의 음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수개월 간 차트에 머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2019년 발표한 ‘이것은 베토벤이 (아니)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베토벤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변주곡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발표됐으며 독일 클래식 음악 차트와 미국 빌보드에 등장한 것은 물론 다수의 국가에서 아이튠즈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사파이안의 ‘음악에 관한 음악’ 프로젝트는 클래식 음악의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청취하고 전체적인 구조를 도외시하는 지극히 대중적인 ‘듣기 관습’을 작곡 방식으로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아다지에토’는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을 피아노 독주로 편곡했는데, 주요 선율에 베이스 음을 보강하고 재배치함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압축해서 들려준다.

반복적인 구조로 잘 알려진 필립 글래스(1937~)의 작품을 재료로 유사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브루베이커(1959~)가 글래스의 작품을 연주한 것에 프로듀서인 맥스 쿠퍼(1980~)가 연주 소리를 실시간으로 조작하여 새로운 소리를 덧붙였다. 이를 통해 선율은 여러 성부로 확장되거나 노이즈와 함께 새로운 질감을 갖게 됐으며, 전반적으로는 디지털 기반의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이 작업은 2019년 처음 발표된 이래 다양한 공연장에서 관객의 호응을 얻었고, 후에 ‘글래스폼’이라는 음반으로 발매됐다. ‘글래스폼’은 편곡·샘플링·즉흥연주의 그사이 어딘가에 있으며, 20세기 초 수많은 음악가가 글래스의 작품으로 힙합이나 댄스 음악을 만들어냈던 전통을 이어간다. 글래스의 음악이 노골적인 반복을 활용하며 어딘지 모르게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내비친다면, 쿠퍼가 매만진 음악은 보다 듣기 편하고 말랑말랑하게 변조돼 있다. 글래스 음악에 새로운 포장을 입혀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적자들

데이비드 랭·니코 뮬리

1960년대 뉴욕에서 태동했던 미니멀리즘의 광풍 이후, 후배 작곡가들은 조성음악을 부활시켰다. ‘포스트’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하지만, 오늘날 클래식 음악 공연장과 영화음악, 설치 무대를 누비며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은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이다. 데이비드 랭(1957~) 역시 이들 중 하나로, 현대음악 단체 ‘뱅온어캔’의 공동설립자로서 ‘성냥팔이 소녀 수난곡’으로 200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대편성의 진지한 작품과 오페라는 물론이고 소규모 앙상블 음악이나 영화음악 작업에도 능한 작곡가로 2016년 영화 ‘유스’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상 및 골든 글로브 상 후보에 올랐다.

‘수난곡’이라는 범주를 선택하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에서 가사를 가지고 온 ‘성냥팔이 소녀 수난곡’에서 볼 수 있듯, 데이비드 랭 역시 과거의 음악적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작곡가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후예답게 리듬을 활용한 화려한 짜임새를 보여주며 사람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잘 이용하여 청중을 감정적으로 고양시키는 특징이 있다. ‘나는 눕는다’(2005)나 ‘속이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1993/1995) 등의 몇몇 음악은 공연장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한편, 미니멀리스트 계보를 이야기하면 니코 뮬리(1981~)도 빼놓을 수 없다. 뮬리는 글래스 밑에서 키보드를 연주했고, 글래스 작품의 컴퓨터 사보가로 일하며 1937년생 글래스와 현재의 청중 사이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디지털 매체를 능숙하게 다루며 일렉트로닉·팝 등을 혼합한 새로운 유형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작곡하는 인물로, 확장된 조성을 바탕으로 하는 정교한 리듬이 특징이다. 오페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성악 작곡에 능하며 2008년 발매한 음반 ‘모국어’가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음반은 전통적인 조성어법과 거리가 있는 신선한 음향을 갖고 있으며 따뜻한 악기 음색을 즐기고자 하는 관객의 취향에 부합하는 세련된 소리를 들려준다.

글 이민희(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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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반

 

이케다 료지 ‘데이터플렉스’(2005) Raster-Noton R-N068

 

 

 

 

 

이케다 료지 ‘울트라트로닉스’(2022) Noton N+003

 

 

 

알바 노토 ‘제록스 4’(2020) Noton N-049

 

 

 

 

이케다 료지

 

 

 

 

 

알바 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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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반

 

아라시 사파이안 ‘위버바흐’(2016)

Neue Meister 0300825NM

 

 

 

아라시 사파이안 ‘이것은 베토벤이 (아니)다’(2020)

Modern Recordings 538607292

 

 

 

브루스 브루베이커·맥스 쿠퍼 ‘글래스폼’(2020)

InFine Music IF1059

 

 

 

 

맥스 쿠퍼

 

 

 

 

아라시 사파이안 ©Gregor Hoh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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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반

 

데이비드 랭 ‘성냥팔이 소녀 수난곡’(2009)

Harmonia Mundi HMU 807496

 

 

니코 뮬리 ‘모국어’(2008)

Bedroom Community HVALUR5

 

 

 

 

 

데이비드 랭

 

 

 

 

니코 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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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살펴‘봄’ ➋ REVIEW

 

‘막스 리히터 레볼루션’ 2.2 롯데콘서트홀

우리 시대 보편적 현대음악의 표상

서서히 감정을 물들이는 음악

 

작곡가 막스 리히터가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알려진 것은 2012년에 비발디의 ‘사계’ 재작곡 음반이 발매되면서다. 그의 음악은 주로 영화·발레·음반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지만, 이 작품만은 음악회 무대에 올려졌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작품이 세계 각지에서 연주로 이어지면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이는 분명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음악은 필립 글래스의 ‘반복 구조의 음악’의 연장선으로 수용되면서 우리 시대 클래식 음악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니 그의 이름을 내건 이번 공연의 성공은 오늘날의 현대음악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뜻하며, 살아있는 작곡가를 향한 긍정적 관심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드리엘 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시작은 ‘봄’으로,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첫 곡으로 한 세대 앞의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1955~)를 들려줌으로써 막스 리히터가 역사적 흐름에서 이해될 수 있었고, 나아가 리히터의 ‘사계’와 연결돼 프로그램을 하나의 시나리오로 인지하게 했다.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통제 속에 음들이 놓아져 감정도 매우 절제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펼친 화음의 지속적인 반복으로 감상자의 마음은 음악이 전하는 감성에 서서히 물든다. 연주자들은 이러한 특성에 맞게 작품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했다. 롯데콘서트홀의 규모가 커서 음향 전달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오래 지속된 마지막 여운이 종지 없이 마무리하는 이 곡의 코다 역할을 했다.

다음 곡인 리히터의 ‘인프라’(Infra)는 2010년 음반으로, 2005년 런던 테러를 주제로 하여 분위기가 무겁고 마찬가지로 표현이 대단히 절제돼있다. 연주자들은 음표에 담긴 슬픔의 정서에 온전히 집중했으며, 관객은 고요 속에 숨겨진 서정의 밀물에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으로 젖어있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리히터 음반의 수록곡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어서, 음악회에서는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시각적 장치를 활용하거나 음악적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전반부 마지막 곡인 ‘햇빛의 본성에 대하여’(On the Nature of Daylight)는 ‘인프라’와 정서가 연결되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연주하여 감상자의 감정을 분리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이끌어가는 시나리오가 아쉬웠다.

후반부는 비발디의 ‘사계’를 재작곡한 막스 리히터의 ‘사계’ 전곡이 연주됐다. 이 작품은 비발디가 설정한 시나리오를 따르면서 클래식 음악회를 위해 작곡됐기에 공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또한 계절마다 다른 색의 조명을 비춰 시각적인 효과도 꾀했다.

‘봄’은 독주와 함께 여러 악기가 맞물리면서 연주하는 부분이 많아, 섬세하게 조율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주는 음량의 측면에서 불리하게 되기 쉬워,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여름’은 나른함부터 폭풍까지 표현 범위가 대단히 넓은 작품으로서, 독주자를 선봉으로 열정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공간을 음향으로 가득 채웠고, ‘가을’은 여름에서 완충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열정을 이어갔다. ‘겨울’은 비현실적인 음향의 오싹한 분위기로 시작하여, 열정에 찬 독주자(협연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와 집중력을 잃지 않은 모든 연주자가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는 밀도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막스 리히터를 비롯하여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음악으로서 주목받는 작곡가들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서 리히터의 성공은 충분히 그들로 뻗어갈 수 있다. ‘레볼루션’이 시리즈로 확대되어 다른 작곡가들도 연이어 선보임으로써, 우리 시대 음악의 대표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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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엘 김(왼쪽), 한수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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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살펴‘봄’ ➌ INterview

 

작곡가 라이언 로트

모든 것이 가능한 번잡의 시대

터무니없이 넘치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봄, 한 저예산 코미디 영화가 북미의 극장가를 강타했다. 동양계 배우를 앞세워 영어와 중국어 대사가 난무하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대니얼 콴·대니얼 샤이너트 감독)는 북미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영화 장르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이를 인지한 듯, 개봉 첫 주에는 10개의 극장에서만 영화가 상영됐다. 그러나 결과는 첫 주부터 흥행 가도에 진입, 팬데믹 시기 이후 북미에서 두 번째로 좋은 시작을 보인 영화가 됐다. 이내 개봉 2주 차에는 상영관을 38개, 3주 차에는 1,250개, 4주 차에는 2,220개로 늘려야 했으며, 인기는 식지 않아 6주 차에는 아이맥스로 개봉했고, 개봉 16주 동안 ‘박스 오피스 톱 텐’에 머물러 있었다.

영화의 성공엔 다양한 이유가 작용하지만, 이 작품 속 서로 다른 평행우주가 적절한 음악으로 포착됐다는 특징은 이유로 꼽을만한 뚜렷한 장점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달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의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 있다.

작곡가 라이언 로트(1979~)는 영화 속 49개의 전체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밴드 ‘선 럭스’(Son Lux)의 리더로, 영화음악뿐만 아니라 관현악·무용·게임음악·광고음악 등 경계 없이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업과 음악에 관한 생각을 살짝 들춰 봤다.

 

지난 해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를 보는 순간, 성공을 예감했나.

영화감독인 ‘대니얼스’(대니얼 콴·대니얼 샤이너트)가 만든 거친 상상력을 음악으로 뒷받침하는 데 성공한다면, 영화가 잘될 거라고 예상했다. 다양한 평행우주를 감성의 음향으로 접착하려고 노력했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영상 편집과 악보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듯 나란하게 진행됐다. 영상이 음악으로 인해 잘리기도 하고, 음악이 영상으로 인해 잘리기도 했다. 정말이지 반복 작업을 통한 제작 과정이었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언제였나?

작년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페스티벌’ 시사회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관객의 대부분이 코로나 이후 영화관에 처음 온 상태였는데, 다 함께 엄청나게 웃고, 울었다. 덕분에 인류애를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영화의 성공으로 주변 환경이 변했을까?

분명 우리 밴드가 큰 관심과 영광을 얻긴 했지만, 그다지 변한 건 없다. 여전히 다양한 사람과 협력하며 열정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밴드 ‘선 럭스’의 이안 창(1988~)과 러픽 바티아(1987~)와는 2014년부터 함께했다. 셋 모두 작곡을 하는데, ‘선 럭스’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작품에는 작곡가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모든 작업을 함께 하는가?

이건 각자의 개인 작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웃음) 이안 창, 러픽 바티아, 그리고 나, 라이언 로트 모두 개인 음반을 발매한 적이 있으니, 각자의 이름을 스트리밍 사이트에 검색해 보시길.

 

유연한 사고로 만든 가단성 있는 음악

음악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해보자. 음반을 감상하다 보면 미니멀리즘의 영향도 느껴지는데.

오, 그 감상은 꽤 흥미롭다! 어떤 사람들은 내 음악이 ‘맥시멀리즘’같다고 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내가 추구하는 작곡 방향은 ‘역동성’이 느껴지는 음악이다.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을 병치한다거나, 조용하다가 시끄럽고, 생명력이 느껴지는 소리와 기계적인 소리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어떤 음악 배경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클래식 음악으로 대학을 다녔으니, 클래식 음악에 기반을 둔 것은 맞다. 그렇지만 팝·락·재즈·힙합·펑크 등 다양한 장르가 고르게 영향을 줬고, 매일 다양하게 들으며, 계속 배우는 자세를 취하려고 한다. 내가 쌓아온 감각에 스스로 혼란을 주는 걸 좋아해서, 낯선 것을 마주치려고 하는 편이다.

작품을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아주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영감이란 언제나 근처에 있다. 다만 그건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내 정신 상태가 중요하다. 어느 순간·사람·장소·사물을 독특하게 관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게다가 이 혼란스러운 시대가 영감을 받으라고 내게 강요하지 않는가.(웃음)

혼란스러운 시대라는 표현으로 궁금해진다. 본인이 생각하는 21세기 음악은 무엇일까?

우리는 개인 주크박스가 아주 잘 보급된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순간에, 모든 장소에서,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나. 전 세계 음악가들이 순식간에 서로에게 노출되는 시대이니, 음악의 가능성은 정말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와 끝없는 협업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린 음악의 미래가 무엇인지 경험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첫 세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워 난해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20세기 음악과는 다른 선상에 있는 것일까?

우선, 작품이 이상하게 들린다고 해서 그 작품이 어렵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청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다. 한 문화권에서 환영받는 음악이 다른 문화권으로 가면 불길하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음악 취향이라는 것은 문화에서 정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작곡가와 관객은 각자가 가진 틀에 맞춰서 음악을 감상한다. 작곡가와 관객 모두 상대방을 들을 준비가 돼 있다면, 이런 차이가 열띤 토론의 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작품 해석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이 다르게 해석되는 것도 좋아하는지? 실제로 음반 ‘구조 공부’는 무용을 위해 만든 작품이었는데, 뮤직비디오로도 만들어졌고, ‘펜탑틱’에 수록된 ‘원자 세기’는 ‘버버리’ 브랜드의 광고에도 쓰였다.

음악은 아주 유연한 것이다. 새로운 매체와 만나거나, 시각화 과정을 통과하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내 음악이 너무 소중하고, 고귀하고, 신성해서, 건드릴 수 없는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 음악이 춤·영상·영화·리믹스 등을 만나 재생성되는 걸 좋아한다. 음악이 가진 ‘융통성’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특징이고, 그건 아무리 구부려도 부러뜨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무용과의 협업이 많다.

아내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무용을 가르친다. 안무가의 남편으로서 모든 형태의 춤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주 사랑한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선 럭스(Son Lux)

 

라이언 로트(1979~) 작곡 밴드 ‘선 럭스’의 리더이며, 작곡가·프로듀서·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엘리노어 릭비’ ‘페이퍼 타운’ ‘험악한 꿈’ 등의 음악을 작곡했으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웨일스 국립무용단·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등과 협업한 바 있으며, ‘구조 공부’ ‘펜탑틱’ 등의 개인 음반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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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음반

 

라이언 로트 ‘펜탑틱’(2019)

 

 

 

선 럭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A24 Music

 

 

 

©Sergei Sarakhanov

 

 

 

밴드 ‘선 럭스’의 작곡가 이안 창·라이언 로트·러픽 바티아 ©Jes Nij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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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미리‘봄’ ➊ FESTIVAL PREVIEW

 

작년 통영국제음악제는 제20회를 맞아 작곡가 진은숙이 예술감독 자리에 올랐다. 음악제는 호평과 찬사가 가득했다. 20주년에 돌입한 지방 축제가 처음의 의지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이상을 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1회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를 향한 바람은 변함없이 순풍인 듯하다. 과연 ‘경계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뒤를 든든히 받쳐 줄 수 있을까? ‘PART 2’ 지면에서는 올해의 통영국제음악제 공연과 지난달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진은숙과 TIMF앙상블의 활약을 다루어 봄에 다가올 음악을 미리 보도록 하자

 

2023 통영국제음악제 ‘경계를 넘어’ 3.31~4.9 통영국제음악당

현대음악의 봄바람은 남쪽에서 분다

국내 대표 음악제로 선정된 국제 현대 음악제의 올해 모습은?

 

팬데믹으로 전국의 모든 음악제가 타격을 입은 지난 3년. 통영국제음악제 역시 그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2020년의 축제는 두 번이나 취소됐고, 2021년과 2022년은 객석 띄어앉기로 절반의 좌석만 열렸다. 풍파가 지난 올해, 드디어 공연과 좌석이 모두 정상 궤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통영국제음악제는 좌절이 아닌 도약을 보였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평가한 장르대표공연예술제 3개년 종합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다. 사업 계획과 실행이 모두 타당하게 이뤄졌고, 예술성과 공공성을 모두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발전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찬사가 함께였다. 진은숙이 예술감독 자리에 오른 후 상승한 해외 인지도는 금상첨화였다. 덕분에 축제는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장르대표축제로 선정됐고, 2025년까지 매년 6억 원의 국가 지원을 받게 됐다.

올해 축제는 작년 출연진의 일부를 이어받았다. 작곡가 해리 파치(1901~1974)의 작품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파치 앙상블(3.31~4.2)의 공연이 새로운 한국 초연작으로 무대에 3회 오르고, 소리꾼 이희문(4.2)이 ‘적벽가’와 ‘경기놀량’을 선보인다.

올해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3.31, 4.9)와 개막·폐막일을 함께 한다. 마찬가지로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김선욱(4.7)과 함께 브람스·야나체크·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며, 한국의 젊은 연주자인 양인모·박하양·한재민(4.3)과 다섯이 한 무대에 올라 슈만 피아노 5중주를 선보인다.

상주작곡가로 선정된 온드레이 아다멕(4.8·9)은 자신이 개발한 악기와 독특한 구성으로 2회의 리사이틀을 펼친다. 이외에도 그의 다른 작품은 티토 체케리니/앙상블 모데른(4.3)의 공연과 최수열/부산시립교향악단(4.5)의 공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각각 탄생 100주년과 150주년을 맞이한 작곡가 리게티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은 올해 프로그램의 중요한 축을 맡는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의 우승자 첼리스트 한재민(4.1)의 독주회에서 리게티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를 만나 볼 수 있다. 다음날 이어지는 에스메 콰르텟(4.2) 공연에서는 현악 4중주 1번이, 앙상블 모데른과 김선욱(4.6)의 공연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연주된다. 라흐마니노프는 김선욱과 데이비드 로버트슨/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4.1),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바얀(4.2)의 독주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멀티미디어를 다루는 작곡가 미셸 판 데르 아(4.4·5)의 공연과 여러 현악기를 연주하는 세르게이 말로프(4.6)의 독주회는 독특하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위촉으로 공동 제작된 ‘북 오브 워터’는 음악뿐만 아니라 실시간 연기와 영상이 함께하는 하나의 극으로, 기후 변화라는 오늘날의 중요한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다. 말로프는 무대에는 홀로 올라가지만, 여러 대의 악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들어서 연주하는 바로크 시대의 첼로인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부터, 현대의 산물인 전자 바이올린까지 다양한 현악기를 연주할 예정이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통영국제음악제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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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당 ©DAELIM

 

 

Sunwook Kim Conductor and Pianist
Photo: Marco Borggreve

 

 

 

김선욱 ©Marco Borggreve

 

 

 

 

Leonidas Kavakos
Photo: Marco Borggreve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Marco Borggr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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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상주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

 

통영국제음악제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예술감독인 진은숙은 유럽에서 매우 유명하다. 2005년 파리에서 프랑수아 그자비에 로트의 지휘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극도로 신선한 창조력이 느껴졌다. 그 뒤로 진은숙과 베를린에서 몇 번 만나 친해졌다. 그의 음악에 정말로 매료됐기 때문에, 이번 음악제에 초대가 정말 영광스럽고 기대가 크다.

본인의 작품 활동도 매우 독특한 편이다. 직접 계발한 ‘에어머신’을 악기로 사용한다.

어릴 적부터 일상의 모든 물건을 악기로 사용하곤 했다. ‘에어머신’은 그렇게 이어온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약 4년간 제작한 것인데, 처음엔 특별한 목표를 두고 만든 것은 아니라 오버톤 플루트에 풍선을 연결한 것뿐이었다. 이 시작에 사람이 점점 불어 내 아내 캐롤과 독주자 로메오, 두 명의 엔지니어까지 늘어나 ‘에어머신’이라는 악기가 완성됐다.

‘에어머신’을 본 관객 반응 중 기억나는 게 있다면?

반응이 정말 다양하다. 나 역시 사람들이 이런저런 연결점을 찾아내는 걸 바라보는 게 좋다.

‘에어머신’에 인형을 꽂아 연주할 때면, 마치 그 인형이 직접 호흡하는 것만 같다. 이런 모습은 의도된 것인가?

소리를 작업하는 나에게 호흡과 맥박은 언제나 중요한 소재이다. 살아있는 몸에 이 둘은 필수적인 것이니까. 음악 역시 숨을 마시고 또 숨을 뱉는 데서 시작한다. ‘에어머신’의 다른 특징은 정확한 음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그것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우연성이 가득하다.

원래도 전통 악기나 특수 악기에 관심이 있었나?

물론 수 세기를 걸쳐 발전해 온 서양 악기가 익숙하고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다른 문화권의 플루트나 타악기를 수집하기도 했고, 음악을 만들 때 특별한 음색을 얻기 위해 여러 전통 악기를 찾아보게 된다. 이런 과정엔 정말 매력적인 지점이 있는데, 같은 악기라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연주자는 아주 다른 음색을 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클라리넷을 연주해도 유럽인·터키인·한국인 등이 내는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관객들이 이런 작품을 난해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가?

재미있게도 내게 의견을 주는 사람은 오직 이런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이라, 악평을 들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로마의 메디치 빌라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젊은 가톨릭 신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내 악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에어머신’ 음악의 한 부분을 연주했더니, 웃음기 하나 없이 너무나 심각하게 나를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이 ‘에어머신’을 활용한 작품 ‘특히 희거나 검은 결과물’을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다.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음원으로는 무대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무대를 직접 보면 음원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웃음) 실제 공연은 공간 속 연주자의 에너지도 공유하기 때문에 음원으로 듣는 것보다 무대 위의 상황에 훨씬 집중하지 않나. 공간 속에서 함께 긴장하는 경험은 어떤 녹음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날의 다른 작품 ‘디너’도 한국 초연이다. 프랑스 초연 당시 무대 위 화가가 불어로 요리법을 짧게 이야기하는데, 이 내용을 이해하는 게 작품 감상에 중요한가?

공연을 함께 할 화가 샤를로트 기베가 뱉는 단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의 목소리 음색과 단어의 음절이 가진 느낌도 중요하다. 몇몇 단어는 영어로 번역할 계획이지만, 미리 녹음된 가사는 언어보다 음악의 한 부분으로 들릴 것이다.

쭉 들어보니, 청각적인 부분 외에도 중요한 것이 많다. 감각마다 중요성을 비율로 나눈다면?

어느 게 더 중요하다고 나누고 싶지 않다. 시각도 100%, 청각도 100%, 후각도 100%… 모든 게 전부 100% 중요하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온드레이 아다멕(1979~) 프라하 음악 아카데미와 파리 콘서바토리에서 작곡을 전공 했다. 슈투트가르트 작곡상·제오르제 에네스쿠 상 등을 수상했다.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언어를 재료로 사용하는 작품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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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머신

 

 

 

아다멕이 제작한 에어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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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미리‘봄’ ➋ FROM GERMANY

 

독일 크론베르크 TIMF앙상블 공연 2.11 카살스 포럼

새 공연장에, 새 음악을!

해외에서도 입증된 한국인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해석 능력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북쪽, 유럽 금융의 수도를 내려다보는 곳에 유서 깊은 도시 크론베르크가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수준의 문화적 안목을 뽐내는 이 도시에 최근 한 개의 자랑거리가 더해졌다. 카살스 포럼에 새로운 공연장이 탄생한 것이다. 건축가 폴커 슈타브(1957~)와 저명한 음향학자인 마틴 베르카멘이 설계한 이 550석의 연주 홀은 관객에게 환상적인 음향과 건축 미학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지난 2월 11일,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TIMF앙상블(Tongyou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Ensemble)의 기념 연주 ‘2023 한국에서 온 소리’가 있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볼프강 림·윤이상·진은숙·이수빈과 같은 독일과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윤이상이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석방된 후 작곡한 ‘피리’로 문이 열렸다. 마치 작은 호롱불 심지가 어둠을 가르고, 공기를 따라 가느다란 불꽃이 춤을 추는 듯한 피리 음률이었다. 분명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눈앞에서는 동양적인 산수화가 펼쳐지는 것처럼, 전민경의 꽉 찬 오보에 소리가 여백이 풍부한 피리의 음색으로 변하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이어서 볼프람 림의 ‘기호 1’과 이수빈의 ‘환각: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를 통해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TIMF앙상블과 피아니스트 지유경은 정교한 호흡과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작품 속에서 솟구치는 운동 에너지를 구현해냈다.

응집된 에너지는 1부와 2부 각각의 마지막 파트에서 찬란하게 발산됐다. 1부에서는 윤이상의 칸타타 ‘밤이여 나뉘어라’가, 2부에서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 앤 게임’이 발화점이었고, 점화한 이는 소프라노 황수미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보도를 독일에서 접한 윤이상은 나치 시대에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담은 넬리 작스(1891~1970)의 시로 칸타타를 썼다.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황수미는 한계를 초월한 가창과 표현력으로 각 단원이 독주자처럼 놀라운 활약을 보여준 TIMF앙상블과 함께 독일과 한국 역사에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넬리 작스와 윤이상이 비통하게 적어 내린 양국 역사의 비극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현대 청중의 심장에도 저릿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언어유희와 유머가 가득한 진은숙의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2021/22시즌에 황수미는 비스바덴 국립극장에서 파미나·돈나 안나·일리야 등 모차르트의 다섯 오페라의 주인공을 도맡아서 호평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날 황수미는 그가 모차르트 오페라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현대음악 분야에서도 보석같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연주 후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음악을 부를 때,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에 어렵지만 그래서 또 재미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와 진은숙의 인연은 2021년 헬싱키 필하모닉 협연이 처음이었다. 당초 예정됐던 오케스트라 협연 곡이 코로나 시국으로 취소되고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은숙의 ‘언어유희’라는 곡을 한 달 전에 받아 연주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절대 음감도 아닌 그였기에 단시간에 곡을 완성하느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때 끝내 성취해 냈던 경험이 이후 현대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변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날은 어려운 현대음악을 훌륭하게 소화해서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해석가’와, 사명감이 느껴지는 진지한 앙상블의 만남이었다. 예전에 바비칸 센터에서 런던 심포니와 현대음악 지휘자 겸 성악가 바버라 해니건(1971~)의 연주에 관객이 가득 차서 즐기던 광경이 참 부러웠는데,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이런 순간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란 예감이 드는 밤이었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사진 카살스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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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베르크 카살스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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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미리‘봄’ ➌ FROM FRANCE

 

제33회 프레장스 페스티벌 2.7~12 프랑스 메종 드 라 라디오

현대음악의 중심지에서

작곡가 진은숙 ‘집중 조명’!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진은숙이 직접 전해준

세계 속 한국의 음악가들

 

제33회 프레장스 페스티벌(Festival Présences)이 라디오 프랑스의 사옥(Maison de la Radio)에서 열렸다. 이 페스티벌은 20세기 후반 이후의 작곡가 한 명을 조명하는 ‘작곡가의 초상 시리즈’라는 프랑스의 대표 현대음악 페스티벌로, 올해는 진은숙을 초대했다. 이는 그의 작곡 커리어 전반에 보내는 헌정으로, 진은숙 전에 초청된 여류 작곡가로는 카이야 사리아호(1952~)가 있다. 페스티벌 장소 안과 밖을 진은숙의 사진들과 복잡하고 그래픽한 악보들로 전시해 호기심을 더했다.

9일 오후 연주 전, 진은숙을 만났다. 그는 “독일에서는 수십 년 살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니라 더 영광이다”라며 “프랑스에선 2015년 가을 페스티벌 등으로 활동이 많았다. 이렇게 규모가 큰 무대에 설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첫 소감을 밝혔다. 그가 이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것은 4년 전. 그간 프로그램도 짜고, 청탁받은 곡도 시간을 들여 써야 해 꽤 뜸을 들인 구성을 선보였다.

총 30명의 작곡가가 쓴 52개의 곡이 연주됐고, 진은숙의 곡은 16개였다. 바이올린 협주곡 2번, ‘권두곡’ ‘영원에의 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퍼즐 앤 게임’(새 버전)이 프랑스 초연됐으며, ‘사이렌의 침묵’(새 버전)이 세계 초연됐다. 한국 작곡가 6인에게 청탁된 작품들도 세계 초연 및 프랑스 초연을 가졌다. 진은숙은 “음악가들을 모두 직접 추천했다. TIMF앙상블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도와주려는 뜻이다”라며 “이젠 해외에서도 한국에 대한 낯선 감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활동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시기다. 커리어 구축이 어려웠던 내 젊은 시절과 반대다. 이번 프레장스 페스티벌 초청은, 고생해온 보람이라고 느낀다”라고 전했다.

진은숙의 ‘피아노와 퍼커션, 앙상블을 위한 더블 협주곡’과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가 연주된 7일 공연에 이어, 8일에는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사마유가 ‘피아노를 위한 6개 연습곡’을 연주했다. 현대음악이라는 생소함에도 엄청난 청중을 유치하는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알렉상드르 타로(피아노), 강혜선·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 켄트 나가노·프랑수아 그자비에 로트(지휘)를 비롯해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같은 연주진도 이런 명성에 한몫했다.

9일에는 한국의 밤이 열렸다. 청중석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서 ‘오르간에서 거리의 연극까지’를 주제로 1부에서는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이 독주를 선보였다.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BWV 552로 시작해 부다혜(1988~)의 ‘단막극’으로 연결됐다. 작품은 오르간의 소리가 아닌, 건반을 칠 때 연출되는 소음만 들리며 시작한다. 점차 음량과 색감이 강화되며, 크레셴도로 치닫는다. 마치 존 케이지의 작품처럼 시작하는 이 작품은 연주자의 몸짓이 가미되어 있다. 일종의 연극적 상황성에 중점을 두며, 드라마틱한 모놀로그라는 2부로 끝난다. 파이프 오르간이 지닌 음색과 표정을 연극적으로 탐색한 이색작품이었다.

TIMF앙상블이 함께한 2부는 ‘구갈론에서 거리의 연극까지’를 부제로 6개의 곡이 연주됐다. 윤이상 ‘플루트를 위한 연습곡 5번’의 곡상을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뛰어난 호흡과 기교로 잘 그려냈다. 박선영(1974~)의 대금과 앙상블을 위한 ‘침묵의 다른 반쪽’(프랑스 초연)에서는 앞의 곡과 반대로 대금을 플루트처럼 쓰고 있었다. 대금이 지닌 선율적인 면보다 음과 숨소리, 그리고 숨소리와 악기가 마찰할 때 파생되는 소음이나 배음 같은 공명 등 여러 성부의 다차원적 음 체험을 탐색하고 있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수빈의 ‘환각: 우리는 함께 춤을 추었다…’(프랑스 라디오·TIMF 공동 청탁)는 라벨의 왈츠에서 영감을 딴 작품으로, 춤을 추고 있다는 착각을 그리고 있다. 청각적으로는 춤곡 같지만, 마치 춤곡 악보 중 한 파트만 연주해서 이 곡이 진짜 춤곡인지 아닌지 모르게 하는 묘한 느낌을 연출한다. 춤추고 싶은 흥과 묘한 의심 사이에서 몸을 흔들게 하는 유희적인 작품이었다. 젊은 작곡가들이지만, 창의성이 높았다.

한국 거리 연극의 여러 표정을 다룬 진은숙의 ‘구갈론’은 청중에게 쉽게 다가오는 재밌는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중국 동네를 지나며 느낀 거리 풍경을 담았다. 작열하는 피아노의 오스티나토나 약음기를 단 트럼펫, 투정하듯 긴 플루트 선율은 시끌벅적한 군중의 움직임, 멜랑콜리,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의 연극적 상황을 보여준다. 진은숙은 “‘구갈론’은 ‘남을 속이다’ ‘사기 치다’라는 의미의 독일어 고어로, 작품을 고상하기보단 일부러 천박하게 거리 음악처럼 들리게 썼다”라고 제목이 지닌 이중적 의미를 설명했다. 최수열이 지휘한 TIMF앙상블의 연주는 이 의도가 잘 살아나는 뛰어난 기교와 해석을 선사했다.

10일은 필하모니아 홀에서 켄트 나가노 지휘로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연주하는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정적의 파편’이 큰 기대를 모았다(편집자 주_202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협연으로 아시아 초연된다). 진은숙이 카바코스의 심오한 음악성과 에너지, 비르투오소적임에 반해 그를 위해 쓴 작품으로, “제 작품보다 그의 연주가 놀라웠다”라고 말하며 큰 미소를 지었다. 11일 이옥경(1975~)의 첼로와 일레트로닉을 위한 ‘휘파람과 소용돌이’와 임종우(1966~)의 ‘5개의 에스프리’(프랑스 초연), 12일 이성환(1996~)의 ‘시간속의 새Ⅱ’ 또한 미래가 돋보이는 곡들이라고 진은숙은 덧붙였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의 양자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00~1958)에 대한 것으로, 직접 극본을 담당한다. “물리학과 정신분석학이 동일성의 원칙을 통해 하나로 만날 수 있다”고 말한 파울리의 내면적 사색과 심오함으로 보아, 또 하나의 문제작이 탄생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글 배윤미(프랑스 통신원)
사진 프레장스 페스티벌·TIMF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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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France/CHRISTOPHE ABRAMOWITZ

 

 

 

 

 

 

 

 

 

 

 

➊➋ 7일 공연 ➌ 9일 공연, 최수열과 TIMF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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