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을 앞둔 고티에 카퓌송을 파리에서 만났다. 그는 연인인 첼로와의 뜨겁고 깊은 사랑을 서슴없이 고백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프랑크 브레일리와 함께 베토벤 첼로 소나타 2번,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드뷔시·브리튼의 첼로 소나타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10월 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미 만 스무 살에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새로운 재능으로 일컬어지며 눈에 띄는 데뷔를 했다. 이른 나이에 빨리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콩쿠르 입상도 있었고, 아바도가 이끄는 유스 오케스트라 활동도 일찍 경험했다. 나는 첼로를 네 살 반에 시작했다. 누나와 형(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이 피아노ㆍ바이올린을 하고 있었다. 사실, 먼저 주어진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내가 그 소리를 좋아하지 않고 별 흥미를 보이지 않자 부모님은 첼로로 악기를 바꿔주었다. 첼로를 품에 안자마자 이건 ‘내 악기’라는 걸 알았다. 첼로는 현존하는 가장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악기이다. 프랑스어로 남성형 명사이지만 나는 이 악기가 분명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테는(웃음). 마치 내 몸 위로 몸을 기대오는 또 다른 육체와도 같다. 두 무릎 사이에 자리 잡고, 심장 위에서 소리를 내기에 가장 낮은 베이스 현을 그을 때면 첼로도, 악기를 안고 있는 내 몸도 동시에 떨린다. 이 진동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육체적 기억이다. 네 살 반에 당장 첼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다만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이 악기에 빠졌다. 남녀의 사랑이 그렇듯 누군가에게 반하고 매료되는 데 명백한 이유가 없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 사랑 아닌가. 설명하려는 순간 오히려 빛을 잃고 구구절절 수식을 덧붙일수록 무의미해진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첼로와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 청중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첼로를 통해 내가 빚어내는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이 소통이 더욱 직관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첼로는 당신의 연인인 셈인가.
오래된 연인. 첼로의 크기도 그렇고 연주 자세와 음역 등도 다른 악기보다 훨씬 더 인간을 연상시키는 면이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첼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음악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첼로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제외하고 매일 연습을 하고, 연주 여행을 갈 때에도 함께 온 세계를 돌아다닌다. 가족과는 떨어져 있어도 첼로와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첼로를 비즈니스 좌석에 앉혀 담요를 정성껏 덮어주고 안전벨트를 채워주면, 놀란 눈으로 보는 승객들이 있다. 탑승권에는 ‘첼로 카퓌송’이라고 쓰여 있다.
지금 당신은 눈을 빛내며 “첼로를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존재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 내밀한 무엇을 불특정 다수 앞에 드러낼 때, 두렵지는 않나? 많은 연주자들이 심지어 수십 년 된 무대 경력을 가졌음에도 무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와 첼로와의 관계가 더욱 의미 있다. 보통의 연인들은 세상에 단 둘만 존재하는 듯 행복을 느낄 것이고 그걸 타인들과 나눌 필요는 못 느낀다. 하지만 첼로와 나는 음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타인들과 나눈다. 음악은 원래 함께하고 나누는 것이다. 청중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 혼자 집에서 연습을 하거나,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앞두고 텅 빈 객석을 두고 홀에서 리허설을 한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 무대에서만 일어난다. 긴장과 스트레스야 덜하겠지. 흥분과 아드레날린은 그 자리에 없다. 음악은 연주자와 첼로 사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청중은 음악을 완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수천 명이 숨을 죽이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연주는 완성된다. 무대 위에서 잠시 마법이 일어나듯 음악이 살아 숨쉬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라이브 녹음을 좋아한다. 물론 몇 군데 스튜디오 녹음이 들어가기도 한다. 무대에서만 가능한 흥분과 집중, 아드레날린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을 음반에 담고 싶다. 내 최고의 연주는 언제나 청중으로 꽉 들어차 있는 그런 무대에서 가능했다.
협주곡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아무리 오케스트라가 뛰어나고 지휘자가 유명해도 그냥 “괜찮은 연주”에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파보 예르비ㆍ대니얼 하딩ㆍ발레리 게르기예프ㆍ야닉 네제 세갱과의 만남은 무대 위에서 마법이 일어나는 경험이었다. 물론 나 역시 늘 내 연주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무대에 서는 것보다 두려운 건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이다. 13년 넘게 연주자로 살고 있다. 내 삶을 사랑한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할 거야’ 식의 가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독하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만족스러운 연주를 한 뒤,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나를 마주하고, 향기로운 와인을 마셔도 호텔방에 돌아오면 철저히 혼자다. 고독이 밀려온다.
협연과 독주 못지않게, 실내악 연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호흡을 맞추는 건 어떤가.
마르타는 내가 만난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이다. 가장 대단한 재능을 가진, 피아노를 완전히 지배해버린다. 덧붙여 가장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피아노를 일곱 살에 시작했고, 10년 넘게 진지하게 첼로와 같은 비중으로 배웠다(고티에 카퓌송은 파리 고등음악원에서 첼로와 동시에 피아노 디플롬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휴식처럼 주로 재즈를 연주한다. 첼로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실내악 연주를 할 때, 음악을 보다 전체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큰 장점이 된다. 내가 피아노를 쳐봤기 때문에, 마르타의 독보적 재능과 헌신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녀를 처음 보았던 갓 스물의 나에게, 그녀의 존재는 큰 자극이자 영감이 되었다. 대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무대 위에서 서로의 직관을 믿고 연주할 수 있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연주를 앞둔 마르타의 집중과 헌신을 바로 옆에서 보면, 음악이라는 장르는 숨을 공간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끝없는 노력만이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마르타를 통해 배웠다.
당신 왼손의 굳은 살이 그 증거인가.
그런 셈이다. (왼손을 들여다보며) 이제는 굳은 살이 없어지면 오히려 어색하다. 일 년에 딱 3주,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첼로를 잡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데 그때는 좀 부드러워진다. 이건 내가 첼리스트라는, 첼로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 탓인지, 화려한 비르투오시티가 돋보이는 곡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슈만ㆍ하이든보다 드보르자크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장담컨대 지금까지 쓰인 모든 악기를 위한 협주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다. 그만큼 좋아하는 곡이고, 수없이 연주를 했다. 나는 특히 마지막 악장을 좋아한다. 다소 길지만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곡은 겉으로 드러나는 비르투오시티가 전부가 아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다. 드보르자크는 그가 결혼 전부터 연모했던 처형 요세피나에게 바치는 가곡(‘사이프러스’)을 3악장에 숨겨놓았다. 곡을 쓰던 당시 뉴욕에 있어서 체코에서 숨을 거둔 요세피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부음을 전해 듣기만 했다. 그 마음이 짐작이 가나. 평생 이뤄질 수 없으나 마음 깊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미처 작별 인사를 할 수가 없이 헤어져야만 했으니까. 그가 어떤 생각으로 3악장을 썼을지 헤아리면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기교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악보를 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슬픔이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에게 바쳤던 멜로디를 넣어, 모든 것이 잦아드는 듯한 느낌으로 이 걸작은 끝이 난다. 나는 3악장을 연주할 때, 청중이 이 사연을 모르더라도 드보르자크가 이 곡을 썼던 그 마음을 담아내고자 애쓴다.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뤄지지도 않았고, 제대로 작별을 못한 불행한 사랑이었으므로, 이렇게 음악으로 영원히 남았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당신은 낭만주의자인가. 사랑, 연인, 애정, 좋아하는 것… 이런 단어들을 자주 말하는데.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이 살 것이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도, 뭔가 다르게 해보겠다는 아쉬움도 없다. 똑같이 첼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첼로를 켜지 않는 동안에는 좋은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눈 내린 알프스 부근의 고향에서 스키를 탈 것이다. 음악가는 더욱, 삶을 사랑해야 한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그렇고, 내가 만난 훌륭한 거장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매 순간을 사랑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협연과 실내악 공연을 통해 청중과 만났다.
한국 청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젊었다. 또한 곡에 대해 충분히 공부 혹은 준비를 하고 오는 것 같았다. 그만큼 집중도 대단했으며, 반응도 직선적이었다. 그들은 결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앙코르에서 긴장이 풀린 채 연주를 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뜨거운 환호가 쏟아진다. 유럽이나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반응이다. 젊고 열광적이며 뜨거운 한국의 청중을 얼른 만나고 싶다.
글 김나희(파리 통신원)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