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디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민철홍의 동그라미를 꺼내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3년, 클래식 음악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 것은 두 명의 젊은 중국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접하면서부터였다.
윤디와 랑랑. 당시 이 두 사람은 떠오르는 천재 피아니스트였고 그들의 첫 내한 공연이 한 달 정도 간격으로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윤디가 스타성 면에서 한수 위였다. 15년 만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뿐 아니라 세련된 패션과 잘생긴 외모가 그 이유였을 것이다. 한 달 간격으로 목격한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그동안 봤던 무대 중에 가장 흥미로웠다. 윤디는 그 연령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와 비교했을 때 깊이 면에서 감탄을 자아냈고, 랑랑은 ‘이보다 재미있을 수 없는’ 화려한 공연이었다. 두 사람의 색채는 분명히 달랐다. 깊음과 화려함. 윤디는 독일, 랑랑은 미국에서 유학. 그리고 지금의 두 사람의 성향은 그때와 일맥상통한다.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다녀온 후 그들의 음반을 구입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특히 윤디의 리스트 음반은 나의 클래식 음악 입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처음 그의 공연에서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를 들었을 때, 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순 있었지만,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음반으로 계속 들으면서 그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됐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독서실에 갈 때면 으레 소니 CD워크맨에 이 음반을 넣어가고는 했다. 공부에 정말 집중 안 되는 날은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만 반복해서 몇 번이고 들었는데, 반복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의 울림은 커져만 갔고, 작품의 저변을 점차 느낄 수 있었다. 윤디의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터치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지고 변화무쌍한 곡의 전체 그림이 서서히 그려지면서 작품의 매력에, 더 나아가 그 마성에 점차 사로잡혀갔다. 훗날 피아노를 전공한 절친한 친구에게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작품으로 이 곡을 꼽자, 그 친구는 “리스트 음악에 너무 중독되지 마. 선생님이 리스트에 중독되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셨어”라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친구는 학부 졸업 연주곡으로 이 곡을 택했다.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는 우주다. 인생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윤디는 “인생에 관한 생각과 의미를 음악 안에 그대로 옮겼다”라고 말했다. 이 곡을 연주하는 그는 늘 최고였다고 평가받곤 했다. 더불어 ‘라 캄파넬라’는 이 앨범에서 가장 예쁜 연주다. 터치의 영롱함과 또렷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연주는 광채가 나는 종이 청명하게 울리는 소리 그 자체다. 실연에서 중반부 트릴의 속도와 또렷함에 감탄했는데 음반에 담긴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음반에서 윤디는 탐구적인 자세로 음악에 접근하면서, 그 자신보다는 음악만이 드러나길 원하는 듯하다. 더불어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그만의 빛깔로 어떻게 표현해나갈지 기대하고 기다려본다.

‘동그라미를 꺼내다’에서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음반’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번 호에는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고 있는 민철홍 씨의 동그라미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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