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드 파블로 카살스 페스티벌

돌격, 음악 속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열정적인 미셸 르티에크의 연주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에서 내레이터로 나선 프랑스 연극배우 디디에 상드르의 구수하고도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으로 관객 모두는 작품 속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프라드 파블로 카살스 페스티벌이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13일까지 열렸다. 품격 높은 실내악 페스티벌의 명성에 걸맞게 올해는 파인아트·에네스코 같은 세계 정상의 현악 4중주단이 초대됐고, 올해 프라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새암의 ‘죽음의 무도’가 세계 초연됐다. 피카소가 몸담았던 세레 현대미술 박물관에서는 예술작품을 테마로 한 즉흥 연주회도 열렸다. 필자는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프라드에서 열린 공연들을 살펴보았다.

투리나와 피카소, 스트라빈스키와 듀피의 조우
7월 30일 공연은 루이 14세 당시 만들어진 리베리아 요세에서 열렸다. 이날의 테마는 ‘병사이야기’로 군대에 관한 곡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성 조르주의 현악 4중주 1번, 하이든의 현악 4중주 Op.74-3 ‘기수’, 힌데미트의 ‘미니막스’가 에네스코 현악 4중주단에 의해 연주되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이야기’는 하가이 샤함(바이올린)·장 클로드 반덴 에인덴(피아노)·미셸 르티에크(클라리넷)와 함께 디디에 상드르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군악대 엉터리 연주자들이 잘난 체하는 장면을 코믹하게 그려낸 힌데미트의 ‘미니막스’이다. 곡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연주자들은 음정이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2바이올린은 자신이 세계적인 솔리스트인 양 잠시 착각하면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한 주제를 연주한다. 그러다 “아차!”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원래 스코어로 돌아온다. 제2바이올린주자 프롤린 시게티는 작품 속 엉터리 연주자의 연기까지 근사하게 해내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병사이야기’는 하가이 샤함과 미셸 르티에크의 연주도 대단했지만 프랑스 연극배우 디디에 상드르의 구수하고도 유머러스한 내레이션이 인상적이었다. 그 덕분에 난해할 것만 같았던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세계로 청중 모두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7월 31일 공연은 모두 세레에서 열렸다. 세레는 피카소·앙드레 마송 등 여러 화가들의 영감이 된 도시이다.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현대미술 박물관에서 피카소가 기증한 투우사를 주제로 한 도자기 시리즈를 비롯해 칸딘스키가 기증한 그림들과 앙드레 마송의 풍경화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날 박물관 안에서 이뤄진 총 네 차례의 연주들은 그림을 주제로 한 즉흥연주로 펼쳐졌다. 박물관에서의 마지막 공연으로 파인아트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한 호아킨 투리나의 ‘투우사의 기도’는 피카소의 작품에 연결되어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콘체르티노는 라울 뒤피의 추억에 헌정된 작품이었다. 박물관의 어쿠스틱이 다소 산만했지만 화폭 앞에서 현악기들의 울림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계 초연된 김새암의 ‘죽음의 무도’
8월 1일 생 미셸 드 쿠샤 수도원에서는 ‘피카소·카살스, 평화를 위한 두 파블로’라는 테마로 다양한 작품들이 연주됐다. 그중에서도 카살스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몽상’, 스트라빈스키의 ‘피카소를 위한 다섯 마디’,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5중주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 작은 도시 프라드에서, 이렇게 작은 수도원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연주를 맡은 칼리오페 앙상블은 비평을 초월한 음악적 환희 그 자체였다.
이날 특별히 기억될 연주는 김새암이 작곡한 ‘죽음의 무도’였다. 1987년생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 작곡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이 장송 춤곡을 두고 “움직임과 비움직임을 통해 생명이 빠져나가는 상태를 그리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평소 생각해온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과 프랑스 19세기 시인 앙리 카잘리의 시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라고 밝혔다. “앙리 카잘리의 시에서 밤마다 죽은 해골들이 일어나 움직이는 것을 묘사한 부분을 봤어요. 제가 의도했던 것은 완전히 정적인 것과 극도로 광란적인 것의 대비를 부각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도 죽음 앞에서야 광란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될 수 있기에 죽음을 메인 테마로 삼았어요.”
콩쿠르 규정 상 최소 세 개의 악기에서 최대 여덟 개의 악기로 구성된 실내악 작품으로, 악기에는 첼로가 꼭 들어가야 했는데 그녀는 작품에 플루트와 클라리넷을 함께 구성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은 어둡지 않은 악기지만 그녀의 작품에서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강렬한 인상을 창조해냈다.
김새암은 작곡가 박영희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독창성에 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아직 작곡을 배우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작품 가운데에서 독창성을 부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사위원들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현대적인 측면에서 독창성이 결여됐다”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셸 르티에크는 이 부분을 두고 “모차르트도 당대에는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곡을 직접 들어보면 좀 어렵기는 하지만 명확한 작품”이라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코어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 모두가 분명하고 명철하다”라고 말했다.
칼리오페 앙상블의 연주로 작품과 직접 마주한 필자는 그러한 논쟁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도입부에서 플루트와 클라리넷은 해골들이 추는 을씨년스러운 춤을 묘사하고 있었다. 리스트나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와 유사한 분위기로 후기낭만적인 느낌이었다. 이어서 유니슨으로 정적인 2부가 연주되는데, 여기에서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색과 분위기가 넘친다. 압권은 두 파트가 하나로 완성되는 3부인데, 매우 몽상적이고 광란의 분위기를 내는 춤곡은 강열한 포르테로 질주한다. 여러 논쟁을 떠나 작품에 압도된 청중들은 “강렬한 풍미”라며 저마다 박수갈채를 보냈다. 연주자들과 무대에 선 그녀는 이 갈채가 마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은 듯 기쁨에 찬 박수를 치면서 청중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Le Festival Pablo Casals de Pr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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