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정 x 신동훈

여러 개의 도그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음악가들은 장르의 넘나듦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음악적 영역을 확장시키고 형성해나가는가. ‘기술’에 대한 천착. 사제지간인 두 작곡가는 그 오래도록 묵은 질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TIMF앙상블의 예술감독이자 연극·음악극·뮤지컬·오페라를 종횡무진하며 작업하는 작곡가 최우정. 그리고 지난해 레드 제플린의 곡을 재해석한 ‘팝업’을 서울시향에서 초연한 젊은 작곡가 신동훈. 각자가 걸어가는 자유로운 길이 흥미로워 알아보니 둘은 사제지간이었다.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알아본 것일까. 두 작곡가의 작업세계를 들춰본다는 의도는 은연중에 ‘미적 태도’와 그 미적 결과물을 전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기술에 대한 집착을 역설하는 것을 들으며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예술을 미적 대상으로 보고, 감각이 그 자체로 학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근대미학의 산물이다. 고대에는 기술이 예술을 포함하고 있었고, 예술이 기술을 안고 있었다. 기술에 대한 탐구는 곧 예술로 이어졌다. 두 작곡가는 미적 입장 대신 기술에 대한 탐구, 그 실현 과정을 길게 설명했다. 이들은 미학에 대한 집착은 도그마를 낳지만, 기술에 집착하면 도그마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말한다. 길은 넓히는 것이 아니라, 넓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카데믹한 작곡 과제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나요?
신동훈 그건 교수님 클래스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최우정 선생님 클래스에서는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미니멀하게 쓰는 학생도 있고, 미분음으로 작곡하는 친구들도 있고, 조성음악을 쓰는 학생도 있고 다양하죠.
최우정 다양한 시도라는 것이 연극 음악이나 가요와 같은 부분까지 포함한다면, 아무리 제가 자유롭다 하더라도 그건 학교의 특성 때문에 어렵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대중음악을 작곡하건,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건 일단 기초가 되는 것, 즉 음과 리듬, 그리고 악기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는 학생들을 면접한 후 교수님이 제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 클래스에서 중요시하는 건 무엇인가요?
최우정 일단 팔굽혀펴기를 잘해야…(웃음). 아무래도 TIMF앙상블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일을 좀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영혼이 자유로운 학생들이 좋아요. 여기저기 클래스를 옮겨다니는 학생들 있죠? 그런 학생들이 많이 와요. (신동훈을 보면서) 내 클래스는 피난처 아니었나?
신동훈 3학년 때 최우정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이전 담당 교수님이던 이신우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네가 재즈나 록 음악을 좋아하는 걸 전혀 몰랐다”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레드 제플린·퀸·딥 퍼플 같은 록 음악과 바그너·브루크너 등 클래식 음악을 양쪽으로 들려주셨거든요.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제가 더 좋아하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아니었어요. 예고를 나오지도 않았고 음악을 늦게 시작해서 좋아하는 음악들이 있는데도 얘기를 안 했어요. 그런데 최우정 선생님께 배우러 가니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얘기하는 걸 권장하더라고요.
최우정 저한테 와서 잘 풀리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 학생들은 대체로 그냥 놔두는 편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죠. 그들이 저에게 와서 말하는 것을 그냥 듣고 있으면 알아서 용기를 얻고 가더라고요. 이게 비법이에요.

다른 장르와 영향을 주고받는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최우정 스물네 살 때 이윤택 선생님의 ‘바보각시’를 보고 그 즉시 밑에 들어가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성이 좋은 분이거든요. 흔쾌히 받아주셨죠.
신동훈 지금 쓰고 있는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2중주곡이 ‘팝업’의 2탄과 같습니다. 베이스 기타에 리듬감과 그루브를 살리기 위해 쓰는 슬램이란 주법이 있는데, 그 주법을 일종의 모티브로 해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리듬적인 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처럼 다른 장르와 협업 작업을 하기엔, 현재로서는 지금 작곡하고 있는 것도 벅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곡가가 제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도그마에 빠지는 것이거든요. 도그마에 빠지면 그때부터 나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곡가에게 있어 도그마에 빠진다는 건 어떤 모습을 말하는 건가요?
신동훈 가령 현대 독일음악에 소위 ‘패거리’가 있어요. 라헨만과 그 무리들이요. “소음으로 음악을 쌓아나가는 것만이 진정한 음악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도그마죠. 물론 라헨만은 대단한 작곡가이지만, 라헨만보다 좋은 작곡가가 그쪽에서 나오지 않잖아요.

반대로, 도그마에 빠져 있지 않은 모습은 어떤 건가요?
신동훈 작곡을 함에도 여러 가지 당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그룹이나 패거리의 당위가 있는 게 아니라 각자 개인의 당위가 있는 거죠. 왜 음악을 하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서 음악을 하는지. 그러한 개인의 당위를 따르는 게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최우정 그게 바로 도그마에 빠져버리는 것 아닌가? 도그마를 여러 개 가지면 도그마에 빠지지 않아요. 도그마를 여러 개 가지거나, 아니면 도그마를 모르거나.
신동훈 (인터뷰 후 신동훈은 ‘개인의 당위’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았다며 이메일로 정리된 글을 보냈다) 제가 말한 ‘개인의 당위’란 영속적이며 절대적인 당위는 아닌 것 같고, 시간이 흘러가며 변화하는, 즉 쓰고 싶은 걸 쓰는 일종의 용기와 솔직함이 아닐까 싶어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뒤 몇몇 곡을 쓰면서 제 자신의 곡이 너무 관습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에 사로잡혔고,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해보고자 고민하던 차에 ‘팝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제게 익숙한 기술과 미적 가치에 집착했다면 ‘팝업’과 그 이후의 곡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 최우정

도그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최우정 제가 다성음악을 가르치다 보니 ‘여러 개’로 이루어진 것을 좋아해요. 세상 모든 게 대위법으로 되어 있어요. 가끔 신동훈과 문자로 음악에 대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얼마 전에는 어떤 현대음악 악보를 놓고 다성음악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죠.
신동훈 리게티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대위법적인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스케일을 올라가는 라인과 내려가는 라인의 색채감을 다르게 해서 “후다다다다닥” 하며 날아가는 듯한 소리를 내는 기법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그 기법을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리게티는 한 음을 써도 의미 있게 쓴다는 얘기를 해주셨죠. 그러고 나서 리게티의 ‘바르샤바의 가을’이라는 에튀드를 보는데, 성부를 다루는 방식이 슈만과 굉장히 흡사하더라고요. 기술적인 이야기가 제일 재밌어요.
최우정 기술적인 것에 집중하면 도그마로부터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신동훈 미학적인 집착에서 도그마가 시작되는 거거든요. 예술가들의 미학적 집착이 심해지면 그게 도그마를 만들어요. 팻 메스니가 ECM 레이블에서 나와 ‘We Live Here’라는 음반에서 힙합 음악을 가져다 썼어요. 재즈 리스너들이 강하게 반발했죠. 그때 팻 메스니는 “음악에 대한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음반이 옛날 음반보다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팻 메스니 팬들이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이고, 정작 그 자신은 ‘어떻게 하면 음악을 더 좋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기술적인 집착에 천착해 있었던 것이죠.

작곡하면서 기술적인 것, 어법적인 문제로 새로움을 찾고, 그것을 성공시켰던 적이 있나요?
최우정 성공하려고 노력해본 적은 있는데, 성공해본 적은 없어요.
신동훈 어떤 작곡가한테 물어도 성공했다고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시도라고 할 만한 것은?
최우정 작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동기는 기술적인 것에서 옵니다. 옛날 작품들을 보다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그런 상황들 말이죠. 기술적인 측면에 눈을 뜬 것이 대학교 3학년 때 피아노곡을 썼을 당시로 기억하는데요. 화성적 리듬을 컨트롤하는 방식, 다성음악을 조직할 때 주선율 또는 주제를 피치가 아니라 음색으로 구성하여 모방해내는 방식 등 현대에 와서 확장된 기술적 도구와 옛날 작품을 분석하며 얻어낸 것을 결합하는 것이죠.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것은 그런 기술들을 하나씩 터득해나가고 시험해보기 위함입니다. 저는 ‘음악의 영감’ 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아요. 학교에서 대위법을 가르치다 보니 13세기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문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기술적 측면에 집중하여 봅니다. 상상이나 꿈과 같은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기술적인 요소들입니다. 지금 공연 중인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이 연극과 결합할 때 작동하는 기술적인 장치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음악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들었을 때 그것을 발견해내기는 쉽지 않지요. 음악은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는 것이잖아요. 음악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해석해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기술적인 문제거든요. 알아듣고 해석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른 장르와 작업할 때조차도 기술적인 면에 집중합니다.
신동훈 저도 학생 때 처음으로 쓴 오케스트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화성적 리듬에 대한 시도를 했습니다. 일정 부분에서는 성공을 하고, 일정 부분에서는 성공을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실패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아요. 거기서 뭔가를 배워서 새로운 걸 만들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작곡을 한다는 것은, 결국 기술적으로 계속 실패하는 과정인 거 같아요. 앞선 곡에서 실패를 하면,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다음 곡을 써요. 다음 곡에서 보완을 한 것 같은데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계속 이어나가는 거죠. 저는 판타지나 영감을 믿는 편이에요. 어느 날 아침에 꿈을 꾸고 일어나서 3일 만에 오케스트라 곡을 써내는 그런 건 아니고, 음악을 시작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걸 먼저 생각한 다음, 필요한 기술들을 골라서 공부하면서 점점 더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합니다. 그 자극은 외부에서 올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팝업‘은 레드 제플린 1집을 듣다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거대한 전자 기타가 되어 하드 록이라는 음향적 실험의 발자취를 쫓는다면 멋지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원곡의 특징들과 요소를 철저하게 분해시켜 원형을 제거하고, 그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해내면 완전히 새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작업에 착수한 것이지요. 기술적으로도 실수를 통해 영감을 받을 때가 있어요. 벡이라는 음악가는 “기술적인 실수를 통해서 음악을 만든다”라고 했죠. 벡은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실수로 튀어나온 것들을 믹스 앤 매치해서 음악으로 만드는데, 그런 방식도 있습니다.


▲ 신동훈

음악, 지적인 작업

다른 예술작품들이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는 경우가 있나요?
최우정 저는 13세기 이후의 다성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의 정악을 많이 듣습니다. 기술적인 영감, 기술적인 판타지를 주는 곡들이 수두룩하죠. 저는 음악을 다양하게 듣습니다. 아주 난해한 것부터 단순한 것까지요. 어린 딸이 있어서 요즘엔 아이들 노래를 많이 듣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야노스 스타커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같이 들었고요, 평소에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려주려고 하죠.
신동훈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록 그룹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는 여섯 번째 앨범 ‘Hail To The Thief’에 대해 “펜데레츠키의 음악이 우리 음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작곡가들이 라디오헤드를 듣는 것보다 그 사람이 펜데레츠키에 접근하는 게 더 어렵지 않겠어요? 그들도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게 접해보고 공부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현대음악을 한다는 작곡가들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이 좀더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최우정 저는 음악은 표현이 아니라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곡가는 음악의 고저장단·상징·암시를 통해서 말을 해요. 옛날부터 그래왔어요. 바로크 시대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부터 음악은 언제나 말을 했는데, 그것을 알아듣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그것은 지적인 작업이지 결코 감성적인 작업이 아니거든요. 그런 지적인 작업 상황에서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소통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흔히 말하듯 조성음악으로 쓴다고 해서 알아듣기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동훈 저는 옛날 음악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모차르트를 듣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사실 제가 관객에게 뭔가를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집착을 갖고 있는 작곡가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쓰는 것이고, 그것이 결과론적으로 어느 정도 대중적으로 소통할 수 있겠죠. 사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갖고 있는 고루한 이미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앰비언트 음악은 난해해도 ‘쿨’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전혀 안타깝진 않아요. 다들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하루키가 보르헤스보다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보면 트립합, 드럼 앤 베이스, 투스텝 등 여러 장르들이 한때 흥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안 들어요. 하지만 우리 음악은 최소한 유행은 타지 않죠.

글 김여항 객원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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