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이선태

새 시대가 그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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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1988 충남 부여 생
2005 제35회 동아무용콩쿠르 현대무용 학생부 금상
2008 제38회 동아무용콩쿠르 현대무용 일반부 대상
2009 제5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컨템퍼러리 시니어 1위
2011 한국예술종합학교 실기과 예술사 현대무용 졸업
2013 엠넷 ‘댄싱9 출연

유난히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슈퍼스타K’에 비해 엠넷의 또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댄싱9’은 스타 무용수들을 우수수 배출해냈다. 각종 장르의 무용수들이 모인 춤 경연대회 ‘댄싱9’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 없이 팬덤을 만들어냈다. 현대무용계엔 알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 있다. 현대무용가는 ‘직업’으로서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수많은 현대무용 단체들은 직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비영리 단체인 것이다. 젊은 현대무용가들은 순수예술을 대중 앞에 가져다놓고 싶다. 그게 선배들이 해온 방법론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래서 이들은 거대한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대중이 많이 아는’ 스타, 동시에 그 누구보다 정석의 길을 걸어온 유망한 젊은이, 이선태가 있다. 엠넷 출연 이전에 동아무용콩쿠르,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우승 경력이 있는 그가 스물여섯 해 이력을 들려준다.

이선태의 시작
나는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나 ‘문화’라는 것을 모르는 시골 촌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에서 스트리트 댄스를 처음 접했다. 친형이 중학교에서 배워와서 나한테 시켜봤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도 잘 안 되어서 비디오나 ‘힙합’이라는 만화책을 꾸준히 보면서 연마했다. 형이나 형 친구들이 서울 가서 배워와서 전파해주는 걸 얻어 들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됐는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춤을 연습할 시간이 없어 고민이 됐다. 그때 충남예고 현대무용 선생님께서 “너는 키도 크니 현대무용을 해라”라며 진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천안에 있는 충남예고에 입학했다. 그렇게 현대무용을 시작했다. 충남예고는 천안에서도 또 시골에서 있어서 학교에서 연습만 하며 살았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졸업했고, 지금은 전문사 과정에 있다. LDP무용단 단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는 것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 무용계 사람들은 방송 쪽으로 넘어가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한다. 이제 이해가 좀 된다. 그건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의 깊이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 아닌가 싶다. 유명세를 타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가벼워지는 게 있다. 정말로 내가 예술을 하고 싶다면 그런 욕심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댄싱9’이 이선태에게 미친 영향
프로그램에 나갈 때부터 나에게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트리트 댄스도 했었고, 라인 같은 게 콩쿠르에게 적합한 춤을 했으니까. 하지만 방송을 탔을 때 너무 가벼워지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무용수들은 자부심이 강한데, 누구에게 심사를 받고 카메라 앞에서 가식 떨면서 좋은 척 웃기는 척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무용은 대중으로부터 너무 고립돼 있었다. 내가 가볍게 보여주고 현대무용이 매력 있다는 걸 보여준 다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그 목적을 달성했다. 현대무용 공연에 팬들이 보러 와서 다른 무용수들한테 빠지는 현상이 점점 생겨났다. 정말 기분 좋다.

프로임을 느낀 순간
12월에 ‘댄싱9’ 갈라 공연과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런데 그때 몹시 아팠다. 열은 계속 나고 몸은 지쳐서 잠을 한숨도 못 잤는데도 공연 때 티 안 나게 하는 걸 보며 스스로 ‘나도 프로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에서 현대무용가 이나현과 함께 즉흥춤을 췄다. 즉흥춤은 정신을 잠깐 놓치면 상대방이 큰일 난다. 힘도 없고 근육이 다 나가 있는 상태라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무사히 넘겨야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다.


▲ 굵은 선에서 나오는 의외의 유연성이 이선태 춤의 특징이다

무용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시점
지금이 아닐까 싶다. ‘댄싱9’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방송 출연은 물론 많은 환경의 변화를 일으켰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리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무용계의 관심과 질타를 한번에 받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사실 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공연도 ‘댄싱9’이 아니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뭔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결국 예술을 좀더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무용계를 외부로 퍼뜨리고 싶다.

이선태와 가장 밀접한 타 예술 장르
연극. 말로 하는 걸 잘 못하는데, 도전적인 성격이라 해보고 싶다. 그리고 영상 작업. 외국에서 현대무용 안무가들이 영상 작업을 하면 멋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지원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계에 있는 분들은 굉장히 잘 찍는다. 이번에 투애니원 ‘그리워해요’를 같이 찍기로 했는데 공연 일정이 겹쳐서 결국 무산됐다. 내 작품, 내 움직임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다.

가장 영감을 주는 예술가
한국에는 유미나 교수님. 대학 4년 동안 예술적인 영감을 많이 얻었다. DV8의 ‘Can We Talk About This?’를 보고 ‘예술가는 저렇게 말할 수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제롬 벨도 존경한다.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말
그런 게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보이는 그대로. 욕 먹어도 재미있다. 그게 다 관심이니까.

2014년 계획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꼭 작업을 같이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만 나누더라도 말이다. 너무 닫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여러 장르의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 영역을 좀더 넓히고 싶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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