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순회공연 여는 김선욱

전국을 달굴 열 개의 손가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김선욱이 돌아왔다. 베토벤 32곡 ‘전곡’ 연주를 끝낸 그가 이제 ‘전국’ 연주를 시작한다

 

2012년 3월 29일, 봄. 김선욱은 베토벤 소나타 1번 1악장의 첫 음을 울리며 긴 여정을 시작했다. 베토벤 소나타 사이클. 32개의 곡만큼이나 긴 시간이었다. 6월 21일 ‘비창’을, 11월 8일 ‘월광’과 ‘전원’을, 2013년 4월 13일 ‘템페스트’와 ‘발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중기의 걸작들을, 6월 20일 ‘열정’을, 9월 14일에는 ‘함머클라비어’를 선보였고, 11월 21일 그 대장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진중하면서도 투쟁적인 김선욱식 베토벤을 건반 위에 올곧게 쏟아부었다. 당시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베토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베토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로크(바흐)와 낭만(슈만, 슈베르트, 브람스)을 연결해주는 끈이자 중심이죠.”

생각해보면 그 대장정을 통해 ‘끈’으로서의 베토벤을, ‘중심’으로서의 베토벤을 튼튼히 잡았기에 이번과 같은 레퍼토리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토벤이 만든 32개 관문을 지나 김선욱이 새롭게 들고 온 곡은 바흐의 파르티타 2번,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과 소나타 1번이다. 베토벤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바로크를, 오른편에는 낭만주의를 둔 셈이다.

“4곡 모두 주옥같은 작품이에요. 한국의 독주회에서는 잘 연주가 되지 않던 곡들입니다. 더불어 실연으로 접한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 같아요. 관객들도 신선하게 느낄 겁니다.”

9월, 울산(14일)을 시작으로 여수(16일)·서울(18일)·부산(21일)·대구(23일)·용인(24일)으로 이어지는 이번 투어 준비는 이미 유럽에서부터 부지런히 진행되고 있다. 김선욱은 지난 7월 영국 코브 컬렉션에서 바흐와 프랑크, 슈만 소나타 1번을 선보였다. 당시 사용했던 피아노는 슈만이 생전에 연주했던 에라르 피아노. 또한 같은 달에 있었던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에서도 프랑크와 슈만의 곡을 선보였다. 그리고 2011년 모차르트·베토벤·무소륵스키로 데뷔했던 살 플레엘에서 12월 12일에 가질 독주회도 이번 투어와 같은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시향과 유럽 투어를 앞둔 시점에 김선욱이 있는 런던으로 전화를 걸었다.

‘객석’ 8월호에 한정호 통신원의 시티 오브 런던 페스티벌 기사를 통해 뜨끈뜨끈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음악 외에 핫이슈가 궁금한데요?

5월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런던에 있는 시간은 아내, 아기와 함께합니다. 사실 올여름에 프랑스 남부와 독일의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가족에게는 늘 미안한 빵점짜리 아빠입니다(웃음).

8월,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유럽 투어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하루 걸러 선보이고, 2015년 4월에도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로 유럽 투어가 예정돼 있습니다. 변함없이, 여전히, 늘, 꾸준히 ‘베토벤’인 거 같습니다.

보통 협연은 자신 있는 레퍼토리를 선택하죠. 서울시향도 저도 마찬가지죠. 베토벤을 연주한 지 10년 정도 된 거 같습니다. 베토벤에 몰두해보니 오히려 접해보지 못한 작곡가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그들을 못 만날 거 같다는 생각이요. 폭을 넓혀 올 하반기에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 내년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투어의 선곡은 어디에 기준을 두었는지 많은 질문을 받을 듯합니다.

균형감입니다. 베토벤은 에너지가 세고 남성적입니다. 하지만 90분을 그런 곡들로만 채우면 청중도 연주자도 지치는 듯해요. 멘델스존, 쇼팽, 라흐마니노프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많기에 듣기 좋습니다. 하지만 뭔가 힘이 부족한 듯해 아쉽고요. 1시간 3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어떻게 청중에게 균형감 있게 음악을 전달할지 많은 고민을 하고 선택했습니다.

1부는 바흐 파르티타 2번과 프랑크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를 선보입니다. 낭만파에 속하며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작용하는 슈만의 곡들로 채운 2부에 비해 1부 프로그램의 특징은 뭔가요.

바흐의 후대 중에 바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곡가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프랑크는 바흐와 다른 시기의 작곡가지만 그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는 바로크의 양식을 가져온 곡이죠. 그래서 파르티타 2번과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는 일맥상통하는 느낌이 강하고 공통되는 형식미가 있죠. 다른 곡이지만 연이어 들어보면 통일감 있는 건축물을 보는 느낌을 줄 겁니다.

2009년 ‘객석’과 나눈 인터뷰에서 “연습을 시작할 때는 바흐 파르티타를 친다. 공부니까. 제일 큰 공부가 바흐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바흐로 연습을 시작했나요.

바흐는 연습용이라기보다 연습의 시작입니다. 손을 풀 때, 바흐가 저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곡을 통해 손가락 연습이 잘되어야 하고, 열 개의 손가락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슈만의 템포는 사람들은 못 느낀다 하더라도 내가 느끼는 것은 약간씩 다르다. 사람들은 똑같은 템포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부분마다 다른 스탠스를 취한다. 곡에 대한 확신, 해석을 가지고 하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슈만은 다음에 또 칠 때 어떻게 칠지 기대가 된다.”

– ‘객석’ 2009년 1월호 인터뷰 중

2부는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 Op.1과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선보입니다. 슈만은 어떤 작곡가라 생각합니까?

슈만은 바흐·베토벤·브람스 등과 같이 독일 작곡가지만 이들에 비해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무엇보다도 곡에 다양한 감정이 들어가 있기에 연주자는 슈만의 곡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죠. 청중 또한 연주자의 다양한 색깔을 발견할 수 있고요. 낭만파의 대표적인 작곡가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전적인 면도 많습니다. 그의 이러한 이중성은 저에게 늘 흥미롭게 다가오죠. 소나타 1번은 피아노 독주곡이지만 그 안에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녹아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교향곡으로 만든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곡입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슈만 소나타 2악장을 듣다가 슈만 특유의 로맨티시즘에 취해버렸습니다.

저는 로맨틱하다곤 생각 안 해요. 다만 2악장은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을 법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상의 음악이 아닌 거 같죠. 그래서 저 또한 지상의 음악이 아닌 것처럼 연주하려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처럼.

집에서 연습한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슈만의 아베크 변주곡은 낭만적인 여운이 강한데 그 소리를 듣는 아내가 감상평을 할 때는 없습니까?

연습하고 있는 저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그 누구라도 코멘트 이전에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연주회 하루나 이틀 전까지는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몇 마디를 계속 반복할 뿐이죠. 그 반복하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으면 누구나 참 힘들 겁니다(웃음).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지휘 공부를 마쳤습니다. 지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곡으로 첫 연주회를 구성하고 싶습니까?

그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졸업하면서 피아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서 너무 좋고, 지금은 그 기쁨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지휘는 별로 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매일매일 연습을 해야 하죠. 악기와의 노동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지휘는 오케스트라를 앞에 두고 쌓는 경험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쌓아나가면 됩니다. 다만 피아노는 서른 살 전까지 해야 할 레퍼토리가 많습니다. 그 이후에는 새로운 곡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국에서 갖는 전국 투어는 선욱 씨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라는 질문을 하기 전, 그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에 대한 생각을 먼저 내밀었다.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해외에서 하는 연주는 제 자신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데뷔 독주회’라는 타이틀이 붙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런던 관객은 2007년부터 제 연주를 들어왔지만 한국은 제가 꼬마일 때부터 본 분들도 있을 테고 리즈 콩쿠르에 입상하기 전부터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독주회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제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보여줘야 하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향이기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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