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삶, 작품이 되다

올해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노년의 삶을 들여다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2월 1일 12:00 오전

2016년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주목받은 작품을 이야기할 때 ‘노년의 삶’이라는 소재를 빼놓을 수 없다. 치매나 고독사처럼 고령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고령화 사회를 지나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단역이나 조연에 지나지 않던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이러한 현상과 파급력은 방송계에서 단연 두드러게 드러난다. 올여름 종영한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연기파 노장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전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노년의 삶을 보여주며 최종회 시청률 8.1%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스크린 위에는 고령화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 죽음의 문제를 ‘아무르(2012)’처럼 파격적인 시선을 풀어낸 영화들이 일찍이 있었다. 최근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노년의 고민 등이 담긴 ‘인턴(2015)’이나 ‘유스(2016)’에서 우리는 황혼에 대한 독특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연극 무대에서 노년을 향한 관심은 여느 해에 비해 상당했다.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장수상회(이연우 작·안경모 연출)’를 비롯해 ‘첫사랑이 돌아온다(윤대성 작·이윤택 연출)’, ‘밥(김나영 작·문삼화 연출)’, ‘오거리사진관(한윤섭 작·연출)’, ‘아버지(플로리앙 젤레르 작·박정희 연출)’, 어머니(플로리앙 젤레르 작·이병훈 연출)’ 등이 바로 그것이며 상당수 작품들이 치매나 우울증으로 인한 문제나 에피소드를 다뤘다.

머지않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낯설게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각각 다른 뷰파인더를 통해 풀어낸 작품들을 살펴보자.

드라마·영화에서 발견한 노년의 삶과 고독

드라마로 풀어낸 ‘본격 노년 탐구 생활’부터 영화에서 발견한 ‘진짜 어른’, 그리고 자아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노년의 예술가까지 만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낯설고 유쾌한 꽃중년

흔히 젊은이들에게 그들은 ‘꼰대’라 불린다. 최첨단엔 무지하고, 막무가내에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는 건 기본이다. 지나온 세월을 훈장처럼 여기며 잔소리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데다 이제는 제멋대로 고장 나는 몸이 되어버린, ‘당장 국수를 먹다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나이에 다다른 노인이다. 올해 7월 종영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는 이런 ‘꼰대’들을 향한 노희경 작가의 ‘본격 노년 탐구생활’이다.

전작들에서 노 작가가 보여준 ‘상처받은 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은 ‘디마프’에서도 여전하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감정 표현에 미숙한 부모들은 알게 모르게 자식들에게 상처를 안기고, 자식들은 그 트라우마로 타인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기존 작품과 달리 한걸음 더 나아간 지점은 젊은 세대의 개입이다. 30대 여성 작가 완(고현정 분)이 엄마와 그의 친구들을 관찰하는 것. ‘어른=꼰대’라고 생각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속 유일한 젊은이 완은 그 어른들을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이를테면 안내자 같은 배역이다.

완이 처음부터 엄마와 그의 친구들을 이해한 건 아니다. 완에게 그들은 오히려 부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난희(고두심 분)는 왜 자신에게 집착하는지, 정아(나문희 분) 이모는 짠돌이에 가부장적이고 아내를 가사 도우미처럼 여기는 석균(신구 분) 아저씨와 지금까지도 왜 같이 사는지, 얼마 전까지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지려던 희자(김혜자 분) 이모는 왜 갑자기 행복해졌는지 말이다.

기존 TV 드라마에서 소비됐던 노년의 캐릭터는 ‘전원일기’처럼 안방이나 툇마루에 무기력하게 앉아 배경과 한 몸이 되거나, 전근대적 유물의 아이콘처럼 등장해 가족 내 갈등을 일으키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디마프’에서 보이는 노년은 젊은이들과 별다를 게 없다. 첫사랑으로 얽히고설킨 삼각관계에 연하남과의 ‘썸’도 있고, 친구가 보고 싶다 하면 오밤중에도 달려가는 진한 우정도 있다. 예고 없이 닥치는 누군가의 죽음, 암이나 치매 같은 육체적 한계가 종종 드러난다는 것만 제외하면, 젊은이들이 즐기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바꿔도 손색없을 정도다.

‘디마프’가 그리는 노년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하루하루를 즐기기 위한 유쾌한 몸부림이다. 여기서 방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의 중요성 말이다. 신명나게 살다가 정아의 꿈처럼 ‘길 위에서’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그보다 멋진 인생은 없을 테니까. 여기에 약하고 병든 개개인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약점을 보완하는 모습은 이것을 지켜보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머지않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 기능을 한다. 그리하여 ‘디마프’는 노년들의 끈끈한 관계를 통해 ‘어떤 연대’의 가능성까지 내다보게 만든다.

영화 ‘인턴’, 청춘을 위로하는 ‘진짜’ 어른


▲ 70세 인턴의 연륜이 빛난 ‘인턴(2015)’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2015)’에 등장하는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은 든든한 인생 멘토로서의 노년을 보여준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정년퇴직 후 세계 일주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것은 쓸쓸한 빈집과 공허함뿐. 자신의 삶에 난 구멍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한 인터넷 쇼핑몰의 시니어 인턴으로 취업한다. 최신 트렌드에 따라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회사에서, 오래 못 버틸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70세 인턴은 새 직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40년간의 직장 생활로 다져진 성실함, 거기에서 비롯된 연륜은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무기가 된다. 덕분에 벤은 자식뻘 되는 직원들과 회사의 대표인 줄스(앤 해서웨이 분)의 신뢰까지 얻게 된다.

벤이 젊은 동료들과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이를 앞세워 그들에게 대접받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훈계하거나 그것을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여성 대표가 이룬 성공,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적극 지지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줄스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괴로움에 자책할 때 ‘어르신 특유’의 오지랖을 발휘하는데, 이 순간마저 긍정적이다. 워킹맘인 줄스가 가정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하기 위해, 일적으로 내키지 않는 전문경영인 스카우트를 고민하자 벤은 “남편의 불륜이 두려워 자신이 이룬 성공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됐을 때 건네는 인생 선배의 한마디는 더 이상 잔소리가 아닌 ‘지혜로운 인생 지침서’로 다가온다.

사실 뉴욕의 번듯한 아파트에서 여유롭게 퇴직 생활을 누리는 벤의 캐릭터는 한국 현실에 비춰볼 때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않는 어른이라니… 슬프게도 이건 판타지에 가깝다. 다만 우리의 현실에 맞게 적용해 볼 순 있을 것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에서 백년해로하는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뿐 아니라, 젊은 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한국 사회의 노년 활동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면, 이것 또한 바람에 불과한 걸까.

영화 ‘유스’ ‘아무르’, 자아를 붙든 노년의 예술가들


▲ 말년의 예술가가 선택한 죽음을 보여준 ‘유스(2015)’ ‘아무르(2012)’

앞선 두 작품이 젊은이의 미래, 인생 멘토로서 노년을 다뤘다면 올해 국내 개봉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유스(2015)’는 더 개인적인 황혼의 삶을 파고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의 말년과 죽음’을 다뤘다는 점에서 2012년 개봉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를 참조하게 만든다.

이 두 영화엔 죽는 순간까지 자아를 포기하지 않는 노년의 삶이 등장한다. 예술가였고 누구보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했던 이들은 자신의 꿈이 현실에 부딪히자 스스로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 영화 ‘유스’

소프라노 조수미의 OST 참여로 국내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영화 ‘유스’에는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 지휘자 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노장 감독인 믹(하비 게이틀 분)이 등장한다. 휴양차 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을 찾았지만 의욕을 잃은 프레드는 산책과 건강검진으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반면, 믹은 젊은 스태프들과 새 영화의 각본 작업에 매진한다. 자신의 유언이 될 시나리오라며 한창 작업 중인 영화의 제목은 ‘인생의 마지막 날’. 젊은 작가들과 공동 창작을 하며 열정을 불태우던 그는 어느 날 호텔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생을 끝낸다. 결정적인 이유는 함께 촬영하기로 한 여배우 브렌다(제인 폰다 분)가 출연을 거절하며 던진 직언 때문이다.

“당신의 마지막 영화 세 편은 형편없었어. 당신은 영화를 몰라. 늙고 지쳤기 때문이지. 더 이상 세상을 볼 줄 모른다고. 아는 거라곤 죽음뿐이지.”

절망한 믹이 친구 프레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그의 심정을 짐작케 한다.

“자넨 감정이 과대 평가됐다고 했지. 감정은 우리가 가진 전부야.”


▲ 영화 ‘아무르’

한편 영화 ‘아무르’의 안느(엠마누엘 리바 분)는 성공한 음악가였지만, 이제는 뇌졸중으로 몸이 점점 마비되면서 무기력하게 죽음만 기다리는 중이다. 연주를 못하고, 정신이 육체에 갇히는 것보다 그녀를 더 괴롭게 만드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매번 찾아와 울기만 하는 딸은 안느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물조차 거부하는 안느.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던 남편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낭 분)는 마침내 베게로 아내의 얼굴을 덮어버린다.

우리는 종종 뉴스나 영화를 통해 무너진 탄광이나 고립된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들의 기적을 목격한다. 그러고는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환경을 초월해, 생을 향한 의지와 존엄성 여부에 달려 있음을 확인케 한다. 하지만 이것이 노년의 시간에 들어오면 꽤 잔인하게 적용된다. 여전히 팔딱거리는 마음의 에너지를 노쇠한 몸뚱이로는 미처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체와 마음의 속도가 일치하지 못할 때의 비극은, 특히 창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예술가에게 치명적이다. 영화감독 믹과 음악가 안느는 누구보다 그 욕망에 충실한 예술가였다. 어쩌면 믹이 끝내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됐을 때, 아끼는 제자가 존경이 아닌 동정의 시선으로 안느를 바라봤을 때, 그들의 삶은 이미 멈췄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 비친 노년의 삶은 다채롭고 치열하다. 그동안 영상 매체에서 그려진 노년의 모습이 단편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창작자들이 그들을 둘러싼 편견에서 벗어나거나 그들이 실제로 겪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각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때, 그것을 지켜보는 대중은 더욱 공감과 이해가 가능한 캐릭터, 작품의 탄생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젊은 세대의 오늘, 그리고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 내일이 불안한 청춘과 중년에게 필요한 것은 앞날이 보장된 직장이나 경제적 안정보다는 누군가 이미 지나온 길의 흔적을 확인하는 것 아닐까.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 말이다.

글 황혜민(영화 칼럼니스트)

국립극단 ‘어머니’ ‘아버지’, 미지의 노년과 마주하다

어느 날 노년에 들이닥친 존재감의 상실, 기억의 증발, 고독과 고통. 동시대 연극은 이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국립극단은 지난 7월 13일부터 8월 14일까지 프랑스 출신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아버지’(박정희 연출), ‘어머니’(이병훈 연출)를 동시에 명동예술극장에 올렸다. 한 작가의 두 작품이 형식과 주제 면에서 닮은 것에 착안해, 각 공연을 하나의 무대에서 날마다 번갈아가며 교차 상연하는 기획이었다. 작가는 2010년 ‘어머니’, 2012년 ‘아버지’를 각각 발표했고, 같은 해 두 작품 모두 파리에서 초연되어 현재까지 유럽에서 활발히 공연되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처음 국립극단 공연으로 한국 무대에 올랐다.

지금껏 국내에서 노년의 삶과 문제를 다룬 연극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올해처럼 관련 작품들이 두드러진 경우는 드문 편이다. 민간 극단과 제작사에선 ‘장수상회’(이연우 작·안경모 연출), ‘첫사랑이 돌아온다’(윤대성 작·이윤택 연출), ‘밥’(김나영 작·문삼화 연출), ‘오거리사진관’(한윤섭 작·연출) 등 고령화 사회에서 특히 치매로 인한 문제와 현실을 진중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교훈성을 담보한 채 풀어낸 작품이 상당수다. 이러한 작품들이 정신적·육체적 쇠퇴를 멀리서 본 풍경으로 그려냈다면, 올해 국립극단이 소개한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1979~)의 ‘어머니’ ‘아버지’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세밀화처럼, 미세한 관점의 변화를 통해 현실을 묘사한다. 정상과 치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그러다 결국 문턱을 넘어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황은 극 내내 결코 매끄럽지 않게 이어진다. 어쩌면 ‘나열된다’는 표현에 좀 더 가까운데, 이것은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의 말처럼 “아버지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가 기억 못하고 착각하는 것을 그대로 경험하게 만들고,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어머니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어 관객들은 3인칭이 아닌 1인칭으로 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게 될 인간의 연약함과 고독함에 대하여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어머니’, 추억은 사라졌어요

‘어머니’를 따라가노라면 머리는 어지럽고 숨은 턱 막힌다. 어머니 안느(윤소정 분)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어디론가 떠날까 봐 초조해한다. 장성해 자신의 품을 떠난 아들과의 불통에 우울해하며 집착한다. 집 떠난 딸은 안중에 없다. 아들의 애인은 어머니의 가장 큰 불청객이다. 90분가량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모든 요소는 조금씩 뒤틀리고 계속 반복되는 방식으로 변주를 거듭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어머니의 의식에 균열이 생기고 끝끝내 무너지는 과정을 목격한다.

어머니가 ‘죽이고 싶은’ 아버지의 외출이 계속되고, 애인과 싸우고 갑작스레 집에 들이닥친 아들은 어머니와 통하지 않는 대화를 반복한다. 이들이 딴여자와 나가고 남편의 애인 같은 여자가 찾아오기도 한다. 극의 마지막, 아들이 어머니의 목을 조르며 죽이는 장면이나, 이후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 어머니가 정신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깨어나는 모습은 강렬한 반전이다. 또 동시에 ‘빈 둥지 증후군’으로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의 환상인지, 아님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지켜보는 관객으로선 선뜻 알아차리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른다.

이런 상황 속에 어머니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작품은 교훈이나 위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만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그간 전근대적인 ‘희생적 어머니의 삶’을 다뤄온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차라리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컨템퍼러리 심리극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쉿…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당신은 혼자 늙어갈 거예요. 슬프고 외롭게. 쉿… 더 이상 아무도 당신한테 관심 없을 거예요. 많이 괴로울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진정하세요. … 아주 고통스러울 거예요, 많이 아플 거예요. 쉿….”

‘아버지’, 기억나지 않으세요?

나이 80세, 유머 넘치다가도 고집 센 아버지 앙드레(박근형 분)는 치매를 앓고 있다. 물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서도 기억은 충돌하고 파편화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제대로 된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사이, 딸을 찾던 아버지는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파자마 차림으로 지낸다. 파자마를 입고 있으면서 미처 갈아입지 못한 파자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손목시계는 늘 사라진다. 손목시계를 차고 있어도 그는 끊임없이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하지 못하지만, 그는 꼭 지금이 몇 시인지 묻는다.

아버지에게 매일의 일상은 이상함의 연속이다.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와서 자신이 딸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같은 상황을 다르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집 구조가 바뀌어 있다. 이병훈 연출가는 이것을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공간에 대한 낯섦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무대 위 가구는 점차 하나둘씩 없어지고, 결국 텅 빈 공간은 집이 아닌 요양원이 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곳이 자기 집인 줄 안다. 엄마를 부르고, 자기의 이름조차 기억 못할 때까지.

극은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이 마구 교차한다. 맥락에 대한 설명도 없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치매가 파고든 본인, 그와 마주한 가족이 체감하는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혼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좌절을 관객이 혀끝으로 조금이나마 맛보기를, 작가는 의도한 것 같다.

“당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요? 이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어요. 내 시계가 어딨는지는 알아요. 내 손목에 있어요. 그건, 내가 알아요. 시계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그거 말고는, 몇 시에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이제 모르겠어요.”

누구에게나 지금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 때문에 늙어간다는 것, 살아감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일 수밖에 없다. 상실감은 배가 되고 허무하며 공허하다. 때문에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는 그 불완전한 의식과 현실, 환상을 잘게 쪼개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직접 그 고통을 뒤집어쓴 채 마주하기를 권하고 있다. 인간 내면과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더듬어보는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을 보게 된 것처럼 말이다.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국립극단

12월, 황혼을 담은 연극 살펴보기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공연 ‘황혼’
11월 11일~12월 4일 게릴라극장

알프스의 관광객을 상대로 산짐승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주며 살아가는 70대의 맹인에게 볼품없는 모습의 50대 창녀가 찾아오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고독의 끝, 황혼 무렵 가장 다채롭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알프스의 노을처럼 인생의 황혼에서 만난 두 남녀의 사랑은 소외된 인간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보잘것없이 사회 주변으로 밀려난 노년과 중년의 남녀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며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지한 연극과 통속극, 스릴러와 익살극, 민중극과 철학적 코미디,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채윤일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명계남,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 SAC CUBE ‘고모를 찾습니다’
11월 22일~12월 1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캐나다 대표 작가 모리스 패니치의 대표작으로, 고모와 조카가 30년 만에 만난다는 독득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30년간 연락이 닿지 않던 고모에게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편지 한 장을 받은 남주인공 켐프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고모 그레이스에게 향한다. 하지만 고모는 30년간 연락이 없던 그를 원망하는 것인지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고모를 돌보는 일이 예상과 다르게 점점 길어지고,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함께 보낸 어느 날 경찰의 방문으로 앞집 노부인이 죽은 지 일 년 가까이 되어 미라로 발견된 것을 알게 된다. 죽은 노부인이 켐프의 친 고모였던 것. 이후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구태환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2015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하성광이 조카 켐프 역을 맡고, TV 드라마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탤런트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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