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만나는 B급 생명체

비주류의 괴물, 매력 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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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8월 6일 12:01 오전

FOCUS

대중에게로 성큼 다가선 괴생명체·프랑켄슈타인·좀비

뮤지컬 ‘록키 호러 쇼’

올여름 공연계에선 B급 문화의 움직임이 활기차다. 획일화된 주류 문화에 대한 일탈 작용으로 ‘엽기’ 코드가 20세기 후반부터 폭발적으로 유행했다면, 최근엔 관객이 거리낌 없이 다가설 수 있는 B급 문화로 변모하고 있다. B급 문화에 다수 출연하는, 괴기한 형상을 지닌 생명체의 스토리는 관객의 뇌리에 강력하게 꽂혀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공연 도중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법을 통해 B급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일탈을 체험하도록 하기도 한다. 비주류의 문화라고 인식되어 온 B급 문화가 조금씩 ‘주류와 비주류 사이’ 그 어딘가로 위상을 옮겨가고 있다. 괴생명체, 그리고 B급 문화의 대표 주자 프랑켄슈타인이나 좀비가 어떻게 대중을 조금씩 사로잡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권하영 기자

사진 클립서비스·쇼온컴퍼니·오픈리뷰

 

 

 

 

 

 

 

괴생명체: 사랑과 유머 사이
2017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온몸이 비늘로 덮인 양서류 괴생명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중세 고딕 스타일의 흡혈귀 영화 ‘크로노스’로 시작해 ‘블레이드2’ ‘헬보이’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 B급 영화를 다수 연출해 온 델 토로 감독의 전작들에는 흡혈귀·양서 인간·기괴한 요정·외계 괴물 등이 등장해 인간을 위협한다. 그러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로맨스라는 코드를 사용했다. 불완전한 존재와의 사랑이라는 환상을 자극함으로써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확보한 것이다.

판타지 로맨스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했다면, 괴생명체의 부도덕한 행동에 유머를 녹여냄으로써 일탈을 선사한 경우도 있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뮤지컬 ‘록키 호러 쇼’는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캐릭터와 스토리, 음악을 통해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트랜스섹슈얼 행성에서 온 양성 과학자, 그를 따라 지구로 온 외계인 남매, 근육질의 인조인간 등 갖가지 괴기한 생명체가 등장해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를 담은 대사와 짓궂은 유머를 던진다. 능청스럽고 요염하지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한순간 잔인하게 돌변하는 양성 과학자 프랑큰 퍼터는 1970년대 쾌락주의를 상징한다. 중독성 있는 글램록과 로큰롤 음악이 섹슈얼한 이미지를 증폭한다. 1975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이후 꾸준히 공연되며 컬트 장르의 개척자로 자리했다. 국내에서도 2001년 초연 이후 지속해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괴생명체의 행동을 따라 하는 ‘콜백’이란 관람문화를 통해 일탈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뮤지컬 ‘록키 호러 쇼’

8월 3일~10월 21일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마이클리·송용진·조형균(프랑큰 퍼터)/간미연·최수진·이지수(자넷 와이즈)/김찬호·고훈정·하경(리프라프) 외

 

프랑켄슈타인: 인간과 괴물 사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B급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일탈’과 ‘모방’이다. 앞서 말한 뮤지컬 ‘록키 호러 쇼’에서 인조인간을 빚어내는 과학자의 이름은 프랑큰 퍼터이며, 그가 빚어낸 창조물의 이름은 록키 호러다. 프랑큰 퍼터라는 이름의 유래이자 괴물을 빚어낸다는 콘셉트를 가진 작품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세계 최초의 SF 소설로 평가받는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은 수려한 문장과 그로테스크한 심상, 작품을 관통하는 뛰어난 자연경관 묘사를 통해 몽환적 분위기를 선사하며 고전으로 자리했다. 머리에 나사가 박힌 초록색 괴물의 형상은 1931년 유니버설 사의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알려졌다. 영화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기본 줄거리는 가져왔지만, 괴물을 단순히 무서운 대상으로만 그려 본질이 완전히 왜곡된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엽기와 공포를 오가는 B급 문화로서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내는 데는 큰 역할을 했다.

‘프랑켄슈타인’은 19세기 초부터 세계무대에서도 꾸준히 상연되었다. 특히 2011년 영국 내셔널시어터가 제작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프랑켄슈타인과 괴물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원작 소설과 달리 프랑켄슈타인보다 괴물의 관점에서 극을 이끌어나가며 고독한 괴물과 이기적인 인간을 극명하게 대비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었는데, 역시 원작에서는 기본 줄거리만 가져오고 주변 인물과 세부 내용은 각색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친구이자 연구 파트너인 앙리가 등장하는데,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시체로 창조물 ‘크리처’를 만들어낸다. 괴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것 또한 원작 소설과의 차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6월 20일~8월 26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류정한·민우혁·전동석(빅터 프랑켄슈타인)/박은태·한지상·카이·박민성(앙리 뒤프레·괴물) 외

 

좀비: 사회상과 욕망 사이

뮤지컬 ‘이블데드’

베트남 전쟁, 인종갈등, 세대 간 갈등 등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1960년대 말 미국에서는 좀비물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이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선보였다. ‘멀쩡한 사람들이 현실적인 원인에 의해 좀비가 되고, 이로 인해 무질서가 도래한다’는 콘셉트는 혼란스러운 대중을 사로잡았다. 전염과 식인 테마는 21세기 들어 문화계에 대거 재등장했다. 산 자들이 좀비를 피하거나 처치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특히 백신이나 정착지를 찾는 중에 벌어지는 액션 위주의 활극이 주를 이룬다. ‘월드워Z’ ‘레지던트 이블’ ‘메이즈 러너’ 뿐 아니라 ‘나는 전설이다’ ‘워킹데드’ ‘피어 더 워킹데드’ 등 좀비에게 잠식당한 이후의 삶을 그려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공연계에서는 잔인하지만 유머로 무장한 좀비를 통해 관객들이 욕망을 분출하도록 했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좀비와 그로부터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폭력으로 맞서는 인간을 마주하는 관객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쾌감을 느낀다. 좀비물의 핵심인 전염 코드를 사용해 관객을 좀비화하는데, 좀비가 된 관객은 일탈을 경험한다. 샘 레이미 감독의 저예산 공포 영화 ‘이블데드’(1989)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이블데드’는 원작의 공포를 과장해 표현함으로써 공포를 웃음으로 승화했다. 2003년 캐나다 초연, 2006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이후 B급 코미디 호러 뮤지컬로 성장한 ‘이블데드’는 2008년 국내에서 초연됐다. 극장 내 스플레터석, 일명 ‘피 뿌리는 좌석’에서는 좀비가 된 배우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에게 무자비하게 피를 뿌린다. 좀비에게 감염된 관객들은 좀비의 움직임을 춤으로 구현한 댄스 타임을 거치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뮤지컬 ‘이블데드’

6월 12일~8월 26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강정우·김대현·서경수(애쉬)/우찬·유권(스캇)/김려원·최미소(애니·셀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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