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나빌레라’ 연습 현장

발레를 소재로 한 웹툰 만화, 가무극으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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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5월 1일 9:00 오전

꿈을 향한 도전과 방황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시 ‘승무’(1939)의 첫 구절로, 달밤의 산사에서 춤추는 여승의 고운 자태를 묘사했다. ‘나빌레라’는 ‘나비일레라’의 준말로, 마치 나비와 같다는 의미다. 그는 무엇을 향해 그토록 날아오르고 싶었을까. 공연을 15일 앞둔 4월의 한날, 예술의전당 내 서울예술단 연습실은 높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단원들로 분주했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채로 스트레칭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여느 때와 비슷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몸을 푸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국립발레단 출신 안무가 유회웅과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낸 이후 워싱턴 발레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현웅의 모습도 보였다. 이전 작품에서보다 훨씬 날렵해진 강상준 단원 역시 눈에 띄었다. 가무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적인 춤과 소재를 조명해 온 서울예술단에서, 순수 발레의 향기가 강하게 풍겼다.

서울예술단은 올해 첫 신작으로 가무극 ‘나빌레라’를 선보인다. 1년이 넘는 연재 기간 동안 다음 웹툰 ‘연재 랭킹 1위’ ‘독자 평점 1위’를 유지한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웹툰에 이어 영화와 뮤지컬까지 제작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최종훈(HUN) 작가 작품이다. 나이 일흔에 우편배달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적적한 삶을 살던 덕출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발레를 해보기로 결심하고서 발레단을 찾는다. 그곳에서 전도유망하지만 계속되는 부상과 생활고에 방황하는 스물셋의 무용수 채록을 만난다. 선생과 제자로 만나게 된 이들은, 마치 한 마리의 나비처럼 꿈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끊임없는 도전과 방황을 거듭한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선 깊이 숨죽일 시간이 필요해.”

일흔까지 깊이 숨죽여 온 이유는 마침내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였을까. 덕출로 분한 서울예술단의 맏형 최정수 단원이 넘버 ‘그건 꿈이라서 그런 것’에서 담담하게 읊조리는 말이다. 노인을 연기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에서 그만의 연륜이 묻어났다. 덕출을 연기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은 영화 ‘범죄도시’ ‘극한직업’ 등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 진선규다. 사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하고, 연극 ‘나와 할아버지’ ‘뜨거운 여름’,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난쟁이들’ 등 무대에서 오래도록 활동했다. 진선규는 “공연이라는 오랜 꿈을 향해 늦게나마 꾸준하게 걸어왔던 자신의 삶이 덕출과 겹쳐지며 크게 감동했다”고 말했다.

덕출의 발레 선생님이 되는 채록은 서울예술단 단원 강상준과 보컬 브로맨스 출신의 배우 이찬동이 맡는다. 이들은 무용수에 어울리는 몸짓을 익히고자 안무가 유회웅과 함께 수 없는 구슬땀을 흘렸다. 10kg을 감량했다는 강상준 단원은 매일 스트레칭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다른 춤이라면 빠른 리듬이나 동작 등으로 눈속임을 할 수 있는데, 발레는 기본적인 태(態)의 아름다움이 가장 큰 매력이라서 도저히 속일 수가 없다는 것. 서울예술단 단원은 기본적으로 무용 단원과 가극 단원으로 나뉘는데, 그는 가극 단원이다. 그에 반해 최정수 단원은 무용 단원이지만 예술단 작품뿐만 아니라 연극 ‘오이디푸스’ ‘생쥐와 인간’ 등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공연이 끝나도 계속 발레를 해나가서,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무용이건 연기건 종합적으로 소화하는 배우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원작대로라면 덕출과 채록은 전문무용수 수준으로 발레를 해야 하는 이들이다. 이를 무대 위에서 제대로 구현하려면 국립발레단 무용수 정도는 되어야 한다(실제 원작자들은 채록이란 인물을 만들 때부터 무용수 김현웅을 염두에 뒀고, 그는 궁금한 마음에 서울예술단 연습실은 찾았다). 주역을 맡은 배우들의 깊은 부담감이 십분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오히려 ‘발레’와 ‘노인’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소재라고 말한다. 최종훈(HUN) 작가가 밝힌 ‘나빌레라’는 꿈과 열정,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중요한 것은 노인이 정말 발레를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이야기 안에 있는 진정한 의미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서재형 역시 “드라마를 부각하는 범위 내에서 발레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이것이 관객에게 잘 투영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만약 가무극 ‘나빌레라’가 가슴을 울린다면 주역들이 선보이는 동작 때문이 아니라, 숱한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마치 한 마리의 나비처럼 높게, 그리고 아름답게 날아오르기를 기대한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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