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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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질투의 신
글 이성남(본지 전 편집장) 사진 김현우

한 피아니스트는 “뮤즈가 질투의 신”이라고 했다. ‘천사의 시’ ‘환상의 몰약’ ‘세속의 카타르시스’ 같은 미사여구가 아니다. 흑백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 열 개의 힘으로 청중을 천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피아니스트의 말치고는 거칠다. 음악의 신은 한눈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피아노만 생각하고, 열정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연습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즉각 응징한다고도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연주가의 영혼을 볼모로 사로잡고 있는 ‘질투의 신’은 연극·뮤지컬·무용 등 모든 분야의 예술가에게도 위력을 뻗치고 있다. 예술가를 옥죄는 그 질투의 신이 파괴력을 발휘할수록 관객의 행복지수는 올라간다.
얼마 전 예술가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감동의 한계선을 무한정 끌어올리고 있는 ‘염치없는’ 나를 발견했다. 한국어 첫 라이선스로 제작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였다. 1996년 당시 개막 10주년 기념으로 세계 순회공연 중이던 오스트레일리아 팀 공연을 홍콩과 한국에서 관람한 이후 줄곧 짝사랑해온 ‘레 미제라블’을 재회하는 짜릿함이라니! 런던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의 무대 연출과 캐머런 매킨토시가 발탁한 한국 최고 뮤지컬 배우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을 ‘잘 부른다’라고 머리가 인지하는데도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브로드웨이 판 DVD와 CD로 학습된 세계 최고 가창력을 잣대로 감상하고 있었던 탓인가. 내심 한국 최고 배우들에게 더 지독한 질투의 신이 강림해, 이들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담금질해 주기를 바랐다. 관객은 이토록 얼음처럼 냉정하지만, 예술가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질투의 신에게 삶을 예속당하고 있는 그대들 덕분에 우리의 2013년도 행복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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