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

상실, 그 황홀함에 대하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지는 시대 한 가운데에 서서, 예술의 소멸과 영원 사이에 놓인 질문을 던지는 것, 그 답을 찾으며 잃어버린 존재성을 되새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 1 정재욱, 흩어진 시간

시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1분이 우리 마음속에 그 1분을 체감하도록 시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사람을 다시 창조해낸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로스트

우리가 잡아 놓으려고 해도 모든 물질은 사라진다. 모든 물질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이라는 시간에 밀려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리는 기획전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에서 이은주 큐레이터는 예술의 소멸과 영원 사이에 놓인 질문을 화두로 삼았다. 이번 전시는 김주리·신기운·몽정욱·정재욱·신건우 다섯 명의 작가를 통해서 축소되고 소멸되며 사라지는 것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 아닌, 이들 통해 영원으로 가는 통로를 제시한다.
현대사회는 수많은 이미지와 시간의 속도에 의해 빠르게 생성되고, 또한 빠르게 사라지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떠한 진리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언제라도 원한다면 수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다. 덧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것이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신성 또한 사라지는, 허무한 사회가 되었다.
이번 갤러리 정미소 전시에서는 ‘되찾은 시간’으로 이야기되는 프루스트적 통로를 통하여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불러내려 한다. 해방된 1분을 찾아내어 과거에 기록된 상상을 현재의 시간에 재현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에 의해서 기록된 예술은 초시간계에 남겨져 항상 과거적 시간의 향기와 함께 미래적 시간과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의 융합, 순간의 이중성을 간직하면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시간의 간격을 지워버리고, 덧없이 사라지는 첫 번째의 황홀한 감동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첫 번째 기록되어진 작가의 정신성을 통하여 우리의 잃어버린 존재성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다.


▲ 2 신건우, Landscape-Lamentation


▲ 3 김주리, Scape collect 01


▲ 4 목정욱, The Urban Topography Research figure 06

다섯 작가가 선보이는 사라짐의 미학
작가 김주리는 이번 작업에서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는 집들의 형태가 물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가는, 영원히 보존될 수 없는 흙 조각을 연출하였다. 항상 우리 곁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만 있을 것이라 믿어온 집과 도시의 함묵적 사라짐의 암시와 불안을 통해서 영원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성을 가지고 있는 특정 오브제를 꾸준히 가루로 만들어 그 물성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역사성·사회성·제도성 등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키는 신기운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연기가 자욱이 덥혀 건물의 형태가 한순간에 붕괴되는 화면을 담아내는 목정욱의 작업은 건물이 해체하는 순간을 포착한 수많은 겹의 사진을 겹쳐서 사라지는 상황을 스모그적 환영으로 재현한다. 인간이 구축한 수많은 건물과 기억의 사라짐이 항상 우리 곁에서 언제라도 발생될 수 있는 덧없음을 내포한다.
수 초 내에 굳어버리는 얇은 석고를 소재로 작업을 제작하고 있는 정재욱의 작업은 타인의 손이나 다른 개입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부서져버릴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물리적인 소재가 사라져 없어지는 오브제는 아니지만, 그가 전시장에 상정해놓은 특정 대상의 형태가 으깨지고 변형된다. 깨어진 형태는 석고 잔재로 남게 되어 그 이전의 형태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신건우는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인물·장소성·사건의 내러티브·공간성·시나리오 등의 상황들을 과잉된 스토리로 엮어내어 현대의 신화를 재현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연출보다는 무언가 덧없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상황과 암시를 드러내려 하였으며, 더 나아가 덧없이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잉되고, 넘쳐나기에 무의미한 정황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하고 있다. 2월 7일까지,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글 장윤규(건축가) 사진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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