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 하이페츠의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장규원 교수의 동그라미를 꺼내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1 introduction
남자인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여자다. 마누라한테 꼬집혀도 할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게을러 별 일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자유로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든다. 소지품 하나를 꺼내놓고 짝을 짓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은 생소할 수 있는 미팅의 한 풍경이다. 쑥스러움과 설렘으로 맺어진 짝과 마주앉아 썰(說)을 풀었다. 한강에 빠뜨리면 주둥아리만 동동 뜰 거라는 썰꾼은 ‘요 정도면 이 아인 녹았겠지…’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내일을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고이 받아 적는다. 너나 나나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지금과는 달리 집에 한 대의 전화기가 보물마냥 모셔지던 때 애프터 신청은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가 받으면 어떡하누. 오빠가 있다고 했는데, 오빠가 험악하게 “니 뭐꼬?” 하면 어쩌지? 아빠가 이놈 하면 어떡해야 하지? 그 애가 바로 받아야 하는데…. 때론 만용(蠻勇)이 필요한 세상에 만남의 서주(introduction)는 그렇게 시작된다.

2 rondo capriccioso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학창 시절 내내 ‘너는 떠들어라 나는 듣는다!’라는 자세였지만 법으로 논리화된 말주변과 감성의 음악을 버무리면서 슬슬 나의 속내는 드러난다. 논리는 간단했다. 예쁘니까 잘해주고 싶었고, 멋진 수컷이라고 뽐내고 싶었을 뿐이다. 같이 길을 걸으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의 한 소절을 돌담길 걸으며, 또 한 소절을 언덕길 넘으며 휘휘 불면서 걸었다. 좋기에 하도 들어 막힘이 없었고 지침도 없었다. 론도(rondo)는 밀고 당기기, 그래 ‘밀당’이라는 생각이다. 만남에 어이 밀고 당기기가 없을까. 첫사랑 같은 상큼한 멜로디가 이어지지만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선율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과 같다. “첫사랑 언덕에 꽃잎은 지는데, 꿈처럼 사라진 그 아이 그 시절… 한없이 울리네. 첫사랑 언덕에 휘파람 불어보네. 휘파람 불어보네.” 박형준의 ‘첫사랑 언덕’은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울린다. 그래도 지난 추억에 기분이 설렌다. 카프리치오소(capriccioso).

3 epilogue: marche au supplice
단 하나의 좋아하는 곡을 꼽으라는 것은 무모하다. 고정된 틀 속에서는 우리의 삶을 그려낼 수 없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구할 수 없기에 숱한 세월에 걸쳐 쌓아온 가치를 무가치하게 만들 것을 외친 니체는 그래서 음악을 최고의 인식 형태로 꼽지 않았던가. 음악은 한 순간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진다. 마치 며칠 후 시드는 꽃과 같다. 그래 락(樂)의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순간의 찰나에서만 경험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래 어찌 하나만을 뽑아낼 수 있는가. 이 글을 쓰면서도 숱한 추억과 선율이 스쳐간다. 많지 않은 만남에서 마누라 아닌 딴 여자의 추억을 끄집어냈으니, 지금 떠오르는 멜로디는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단두대로의 행진’이다. 지금 내 모습이 딱 베를리오즈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에 대한 추억은 접어야겠다. 과거의 여자로 현재의 내가 곤혹스러워서야… 미래의 나를 위해서. 그래도 또 다른 서주와 론도 그리고 카프리치오소를 그린다.

‘동그라미를 꺼내다’에서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음반’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번 호에는 원광대학교 법과대학 장규원 교수의 동그라미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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